탐라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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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와 제주 불탑사탐라의 재발견 2021. 8. 16. 00:42
다시 말하거니와 언필칭 반만년 역사라는 우리의 장구한 역사다. 그런데 조금은 부끄럽게도 그와 같은 장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임에도 -5천년이면 세계 최고(最古) 문명이라는 이집트 역사에 필적한다- 세계사에 내놓을 이렇다 할 인물은 드문데, 그래도 그중 고구려 출신의 고선지와 고려 출신의 기황후, 이 두 사람은 세계사를 움직인 인물로서 드러낼 만하다. 고선지에 대해서는 앞서 '고선지 장군과 종교개혁 I, II' 편을 통해 그가 간 길을 밟아봤고, 기황후에 대해서도 '원나라 장인이 만든 최고의 걸작 경천사 10층 석탑'에서 족적을 조명한 바 있다. 물론 그것이 대제국 당나라와 원나라의 힘에 편승한 발자국이지만 개인의 역량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고선지의 경우는 선악을 가리기 힘든 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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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 마지막 성주의 무덤을 아시나요?탐라의 재발견 2021. 8. 15. 05:12
언필칭 반만년이라는 우리의 역사다. 반(半)만년, 즉 우리의 역사가 5천 년이라는 것인데 세계 최고(最古) 문명이라는 이집트 역사에 필적한다. 그런데 (한국사가 함께 표기된) 세계사 연표를 보자면 이상한 역사의 기록들이 발견되니 로마의 카이사르가 바다를 건너 브리타니아에 원정했을 때 신라의 박혁거세가 박(바가지) 모양의 알에서 태어난다. 시기는 기원전 57년이다. 뿐만 아니라 로마가 브리타니아를 완전 점령했을 때 가야국의 김수로도 알에서 나오고,(AD 43) 네로 황제가 즉위할 즈음 신라의 석탈해 역시 알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우리 조상이 렙틸리언(파충류 인간)이었나 하는 의심을 하게 될 즈음 다행히도(?) 김알지가 금 궤짝으로부터 나온다.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한 서기 64년 무렵이다. 내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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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삼성혈의 비밀탐라의 재발견 2021. 8. 14. 01:39
제주도 자체가 이국적이기 때문인지 국립제주박물관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전시 유물들도 그러하거니와 건물과 초목도 그러한데 그중의 하이라이트는 박물관 중앙홀 천정의 스테인드글라스로 탐라 개국신화인 삼성(三姓)신화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제주의 명산인 한라산과 나무와 사슴 등을 묘사했는데 여기의 많은 사슴들은 필시 백록담(白鹿潭)의 물을 마시던 흰 사슴일 것이다.(백록담은 '흰 사슴이 물을 마시던 연못'라는 뜻이므로) 그리고 그 사슴들과 노는 신인(神人)과 활을 쏘는 신인도 묘사돼 있는데, 잘못 해석하면 언뜻 '잘 놀다가 활을 쏘는 것 또 뭐냐?'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각자의 영역을 정하기 위해 한라산에서 활을 쏘는 신인을 그린 것이다. 즉 모흥굴(삼성혈)의 세 지혈(地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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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의 시조도 보트피플이었을까?탐라의 재발견 2021. 8. 13. 00:08
앞서 신라 경주김씨 및 가야국 김해김씨의 시조가 전한(前漢)과 신(新)나라 교체기에 배를 타고 지금의 경상도 지역으로 건너온 흉노족 출신의 보트피플임을 누차에 걸쳐 말한 바 있다.(☞ '경주 월성에서 나온 흉노족의 인골' 外) 그리고 이것은 본래 나의 주장이 아니라 과거 KBS '역사추적'에서 말한 내용에 살을 덧붙인 것이라는 사실도 말한 바 있는데, 이후 흉노족 설을 반박하는 글들(신라 김씨 왕실은 흉노의 후예였나/최경선 外)도 읽었지만 썩 와닿지가 않아 계속 흉노족 설을 신봉(?)하고 있는 마당이다. 말한 바대로 내가 경주김씨의 조상에 집착하는 이유는 나의 조상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족보상으로는 원성왕 계열의 왕손인 바, 나의 조상이 흉노족이었다는 사실은 진위를 떠나 일단 흥미롭다. 그리고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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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의 수수께끼탐라의 재발견 2021. 8. 12. 00:25
산굼부리을 방문한 사람들은 적어도 두 가지에 놀라게 된다. 첫 번째는 6000원이라는 입장료에 놀라고(성산 일출봉 입장료 5000원을 능가하는 제주도 관광지 중 최고가 입장료이다) 두 번째는 목적지인 산굼부리 분화구까지의 거리가 의외로 짧다는 데 놀란다.(천천히 걸어도 10분 정도?) 오름이라고 하니 최소한의 등산을 생각하지만 관람객들이 경험하는 건 그저 약간의 오르막이다. 그리고 목적지에 이른 사람들은 대부분 실망의 얼굴이 된다. '겨우 이걸 보려고 6천원 씩이나....?' 하는 표정이다. 초입에서부터 엄청난 억새의 율동을 경험하게 되는 가을철 방문자들은 이런 실망감을 갖지 못할는지 모르나 요즘 같은 한여름의 방문자들은 어김없이 그런 마음일 텐데, 거기에 화장실도 여느 관광지 같지 않아 재차 언짢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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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오름의 재발견탐라의 재발견 2021. 8. 11. 00:54
생이 다하는 날까지 제주도의 오름을 사진에 담았던 사진작가 김영갑 씨는 "제주도를 참 모습을 알려면 오름에 오르라'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말 뜻을 모르겠지만 제주 오름을 오르다보면 어느 순간 불가의 돈오(頓悟)처럼 깨닫게 된다"고 했는데, 나는 나름대로 그 뜻을 깨닫기 위해 일몰의 고개길을 오르는 수도승이요 그러다 돌아본 노을에 감격하는 순례객이었다. * 김영갑에 대해 (에서 발췌)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을 일군 사진작가 김영갑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래 20여 년 동안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그곳에 매혹, 1985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 아예 섬에 정착했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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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도 관심 없었던 이양선탐라의 재발견 2021. 8. 10. 01:32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로 정배된 이유는 이른바 윤상도 옥사 사건에 연루된 때문이다. 윤상도 옥사 사건은 윤상도라는 사람이 호조판서 박종훈 등의 관리를 탐관오리로 탄핵했다가 역공을 받아 국문 중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의 세도가인 안동김문은 이 사건의 배후로 전(前) 세도가의 좌장인 경주김문의 김노경을 지목했던 바, 바로 김정희의 아버지였다. 이에 김노경은 전라도 절해고도인 고금도로 유배가게 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김정희는 윤상도가 제출한 탄핵문의 초안을 작성했다는 죄로 뒤늦게 잡혀갔는데, 안동김문은 그의 죄가 아비 김노경보다 더 깊다 하여 사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지만 국문 과정에서 관련된 증인들이 모두 고문치사하는 바람에 공소유지가 어렵게 되었다.(김정희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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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강정마을 해군기지와 조선시대 화북 수전소탐라의 재발견 2021. 8. 9. 00:47
10여 년 전, 좌파의 집단 광기가 서귀포를 뒤덮은 적이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미래에 대한 혜안으로써 제주도 해군기지를 입안하고 2007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기지를 착공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처음부터 큰 암초에 부딪혔으니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일부 주민들과 외래세력들의 시위가 지속되었다. 그때 관광객의 호기심으로 강정마을 민가에 걸린 깃발과 시위대를 촬영하던 나는 '수상쩍은 자'가 되어 그들 시위대로부터 일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때를 더듬자면, 당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시위대의 대형 플래카드에 써 있던 '칼을 잡은 자는 모두 칼로 망하리라'는 성경 구절이었다.(마태복음 몇 장 몇 절이라는 출전도 달려 있었다) 그러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그 플래카드 아래 사람들의 다분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