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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야청청했던 태종의 8자 근녕군 이농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2. 18. 18:28

     

    앞서 태종의 일곱째 아들 온녕군 이정과 그 후손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언급했다시피 온녕군의 아들 우산군과 그 아들 6형제는 연산군의 폭정에 뇌동하지 않은 죄로 모두 귀양을 가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한 가문이 이와 같은 절의를 보인 예는 사적(史的)으로도 드문 경우이니, 이들 7공자(公子)를 배향한 고양시 대자동의 혜덕사 안내문에는 온녕군의 4대손까지 명시해 가문의 충절을 자랑하고 있다. 

     

     

    혜덕사 숭모문
    혜덕사 방지원도(方池圓島)
    혜덕사 안내문의 온령군파 4세 일람
    혜덕사 입구의 온녕군 신도비

     

    그런데 이들 7공자의 절의와 반골 성향은 온녕군이 아닌 태종의 8자 근녕군(謹寧君) 이농(李襛, 1411~1462)에게서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서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근녕군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충의지사(忠義之事)로서, 왕권 제일주의의 조선시대에 정말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불러온다. 사실이라면 이것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사건일 터, 두고두고 충절의 표상으로 기려도 부족함이 없을 일이다. 

     

    족보를 살펴보자면 근녕군 이농의 어머니는 태종의 후궁 신빈 신씨로, 그는 신빈 신씨가 생산한 3남 7녀 가운데의 3남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족보상의 기록일 뿐 실제 생모는 정빈 고씨로서, 태종 임금 후궁 중 한 사람이었던 정빈 고씨가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신빈 신씨의 아들로 길러졌다. 신빈 신씨는 비록 자신이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친자식과 구별을 두지 않고 동등하게 사랑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온녕군 이정은 신빈 신씨의 둘째 아들이 되고 (첫째 아들은 함녕군 이인) 셋째 아들은 근녕군 이농이 되는데, 앞서 말한 대로  온녕군 이정이 아들 없이 죽자 동생 근녕군의 차남인 우산군 이종을 계자로 삼아 후사를 이었던 것이다. 근녕군은 어려서부터 시예(詩藝)를 좋아하였으며 평소 행실이 바르고 겸손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종을 도운 공으로 익사공신에 올랐고 1430년 12월 정1품 군(君)이 되었다. 

     

     

    고양시 대자동의 근녕군 묘역과 신도비

     

    그리고 충절 또한 남 달랐던 듯하니,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찬탈한 수양대군이 1455년  단종에게 선위 받을 때 종실백관 가운데 유일하게 거부감을 표했다. 당시 종실의 왕족과 고위 관료는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보고 정난공신에 맹훈하는 책에 서명했다. 말하자면 모두가 새로운 왕 세조에 대한 충성을 서약한 것이나 근녕군은 홀로 서명하지 않고 관악산 연주대에 올라 14일간 절식하며 통곡하였다고 전해진다. 

     

     

    관악산 연주대

     

    이는 마치 영화와도 같으니, <엘 시드>라는 영화에서, 누나와 공모해 왕위 계승자인 형 산초를 죽이고 새로운 왕이 된 알폰소 왕자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거부하는 용장(勇將) 로드리고를 보는 듯하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고 문무백관 모두는 무릎을 꿇어 충성을 맹세하였지만 로드리고 홀로 꼿꼿이 서 있는다. 그리고 알폰소 앞에 나아가 산초 왕자의 죽음과 무관함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며 성경에 손을 얹고 결백을 맹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폰소 왕 : "로드리고. 너는 왜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냐?"

    로드리고: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차마 무서워 말을 못하고 있지만, 당신이 산초 왕자의 죽음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왕이 되려면 먼저 결백을 밝히셔야 합니다." 

     

     

    알폰소 왕의 결백을 묻는 로드리고 (오른쪽)
    강제로 성경에 손을 얹게 만드는 로드리고

     

    그 장면이 담겨 있는 동영상

    <엘 시드>는 충신 로드리고의 레콩귀스타(이슬람에 점령된 스페인의 고토 회복운동)를 그린 영화다.

     

    근녕군은 영화 속 로드리고처럼 장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충분히 죽음을 각오하고 한 일일 터, 조선역사 600년에 이만한 충의지사도 드물다. 아니, 우리 역사에서 드문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와 같은 장면을 목도한 적이 있다. 영화처럼 스펙터클하지는 않았지만 다분히 감동적이었던 그 장면은 2024년 12월 11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연출됐다.

     

    이날 첫 질문자로 나선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특유의 탁한 목소리로 국무위원들을 향해 계엄을 막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 : "국무위원 모두 다 국민 앞에 백배 사죄드린다고 지금 크게 인사하십쇼."

    국무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사과했지만,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요지부동.(아래 장면 1)

    윤건영 민주당 의원 : "모든 국무위원이 일어나서 허리를 굽혀 국민께 사과했습니다. (김문수) 장관은 윤석열 씨의 비상계엄 발표에 찬성합니까?" 

     

    묵묵부답, 앞만 쳐다보는 김문수 장관.(아래 장면 2)  

     

     

    장면 1
    장면 2

     

    김문수 장관은 의사 표명 요구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반대합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요구에 세 번이나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김 장관의 표정은 내내 무표정했다.(아래 장면 3) 개인적으로 반대는 하지만 계엄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적법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분위기 상 차마 주장하지 못할 뿐, 계엄이 헌법에 명시된 적법한 행위임에도 내란으로 치부된 상황에 대해서도 불만인 듯했다.

     

     

    장면 3

     

    이날 이후 이변이 일어났다. 단 한 번도 대통령 출마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는 김 장관이 다른 쟁쟁한 잠룡들을 젖히고 차기 대권주자 범여권 1위로 급부상한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예상 주자들을 멀치감치 떨어뜨린 채.... 그래서 기자들이 난리가 났다. 기자들은 당연히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출마 여부와 관련해 물었다.

     

    김 장관은 "검토하거나 생각한 것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윤 대통령의 탄핵 재판도 진행되고 있고 계엄 관련 수사도 계속하고 있고 재판이 진행되지 않나. 조기 대선 가능성은 존재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는 매우 당연한 말을 했다. 다른 정치가들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고, 때로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보임에도 그는 독야청청하다. 충절이 사라진 시대에 홀로 남은 충의지사(忠義之士)를 보는 듯하다. 

     

     

    충신 근녕군의 묘
    근녕군 묘표
    좌우 문인석 / 키가 작고 어깨를 움츠린 모양새다. 형식이 시기와 맞지 않으나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 없다.
    황폐했던 무덤은 최근에 말끔히 단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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