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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되는 법(I) - 조간(刁間)의 경우동양사에서 배우는 세상사는 법 2020. 1. 22. 07:18
부자가 되고픈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래서 10여 년 전 "부자되세요~"라고 외치는 광고가 등장했을 때, 나는 그것이 좀 경박하다고 여겼지만 그 광고는 의의로 반응이 좋아 장수했으며 당대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다. 그걸 보고 내가 느낀 점은 다음과 같았다. "아. 나는 역시 돈하고는 거리가 먼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부자가 되는 법은 보고 들어 알고 있는 바, 동양사에서 익힌 그 부자되는 방법을 공유해 볼까 한다. 명저 <사기(史記)>에 써 있는 방법이니 사기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 있게 추천하는 바이다. '동양사에서 배우는 세상 사는 법' 중의 한 챕터로 마련한 '부자되는 법'은 대략 10편 정도 연재될 예정이지만 굳이 사기열전의 순서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며 재미 없는 대목은 과감히 삭제하려 한다.(다들 재미 있게 읽으시고 참고하시어 새해에는 정말로 모두 부자되셨으면 좋겠어여~^^)
사마천은 유명한 <사기>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열전편에 <화식열전(貨殖列傳)>이라는 것을 두었다. '화식'은 돈을 늘린다는 뜻으로서 쉽게 말하자면 '부자 이야기'라는 의미의 섹션인데, 내 생각으로는 춘추전국과 전한 시대의 그 많은 인물을 소개한 열전편에서 <자객열전>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읽혀진 섹션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권력가와 금수저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서민 부자들이다.
사마천은 우리 조상님네들마냥 '부'(富)에 대해 겉으로는 경멸하면서 속으로 부러워 하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척도한 것이 아니라 진솔하게 부러워 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민 부자들을 높이 샀던 바, 그들은 권력을 이용해 쉽게 돈을 벌거나 남의 재물을 갈취하거나 하지 않았으며, 법률을 교묘히 이용해 축재하지 않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며 돈을 모으는 일 또한 드물었다. 이를 보면 사마천은 유교적 가치관에 기인한 인의도덕을 주지하고자 한 것처럼도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성인군자 식의 장사꾼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화식열전>을 살펴보면 사마천의 경제관은 오히려 무척이나 현세주의적이어서, 돈을 버는 데 있어서는 특별히 정해진 직업도 없고 정해진 방법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까닭에 오로지 밭을 갈아 돈을 번 양씨(梁氏)를 서두에 소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으며,(누구나 다 하는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직업이었지만 양씨는 오로지 밭농사 하나로 돈을 벌어 강남 최고의 부자가 됐다. 땅값이 오른 것은 아님 ^^) 양 내장을 삶아 말리는, 어찌보면 하찮은 곱창 삶는 재주 하나만을 가진 탁씨(濁氏)를 장사꾼의 모범사례로 소개하기도 한다.(그는 기마행렬을 거느릴 정도의 부자였다)
나아가 사마천은 전숙이나 환발 같은 자를 소개하기도 하는데, 전숙은 남의 무덤을 파 돈을 번, 말하자면 도굴꾼 갑부요, 환발은 투전판을 전전하며 돈을 번, 요즘 말로 타자 갑부였다. 물론 사마천이 그것을 바람직하게 바라보았을 리는 없었을 테지만,(분명 나쁘다고는 했다) 그렇다고 직업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디밀지는 않았다.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이거나 손락질받고 지탄받는 하찮은 직업이라 하더라도 역경에 굴하지 않고 부자가 된 인생 역전의 케이스로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또 질씨(郅氏)는 오직 칼갈이 하나로 돈을 벌어 제후와 같은 밥상을 차려 식사하는 사람이 됐으며, 옹낙성(雍樂成)은 세상에서 가장 천시하는 떠돌이 행상으로 천금의 재물을 모았다. 촉(蜀) 땅에 살던 과부 청(淸)이란 사람은 여자 혼자 몸으로 단사(丹沙, 적색 황화수은, 불로장생제의 재료로 쓰임) 광산을 개발하여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그밖에 오지 땅의 나(倮)는 목축업으로 재물을 얻어 황제의 빈객으로 대접을 받는다.
사마천은 그들이 이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아래와 같이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나는 시골뜨기 축목주(畜牧主, 목축인)에 불과하고 청은 두메산골의 의지할 데 없는 과부였지만 만승(萬乘, 전차 만 대)의 천자와 대등한 대접을 받고 그 명성을 세상에 알렸던 바, 이는 모두 그들이 부유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기타 <화식열전>에는 범려, 자공, 백규, 의돈, 곽종, 조간, 사사 등의 춘추전국시대의 부자들이 소개되고, 한나라 초기 대상(大商)인 탁씨, 정정, 공씨, 임씨 등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그 중 조간의 이야기를 되짚어 볼까 한다.
조간(刁間)은 제나라 사람이었다. 제나라 사람들은 오랜 풍습에 따라 노예를 업신 여겼으니 마치 짐승을 대하는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조간은 사람들이 멸시하는 그 노예들을 발탁해 생선 장사와 소금 장사를 맡겼다. 또 그들과 함께 수레를 타고 고을 태수나 재상을 만나기도 했다.(或連車騎交守相) 이는 노예들을 노예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장사를 시킴도 보통 사람들은 행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수레를 탄다는 것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체면이 망가지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반면 노예들의 입장에서는 보통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사람 취급받는 것 자체도 기쁜 일이었는데, 고관대작을 만나러 가는 자리도 수레를 함께 타고 같이 하니 영광도 그런 영광이 없었다.(사실 이것은 평등 사회인 요즘도 어려운 일이다) 노예들은 그런 조간을 위해 문자 그대로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했다. 노예들이 그렇듯 개와 말처럼 노력해준 덕에 조간은 수천만 금의 재물을 모을 수 있었다. 아무튼 당시 제나라에서는 '벼슬살이를 하느니 차라리 조간의 노예가 되겠다'(能爵毋刀言其能使豪奴)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이 말은 조간이 노예들을 얼마나 인격적으로 대했는가를 말해주는 방증이기도 했다. 아마도 조간은 그들을 부리며 갑(甲)의 행세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을 듯하다. 예문이 노예라서 구체적인 비유를 들기가 힘든데, 그냥 아랫사람이라고 해보자. 그 아랫사람의 노력을 이끌어내는 길은 강한 폭풍우가 아니라 햇빛이고, 무엇보다도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대접일 터, 하지만 요즘 윗사람들은 오히려 갑질로써 제 인격도 깎아먹고 아랫사람의 근로 의욕마저 깎아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회사는 당연히 정체하거나 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부자가 되는 데는 정해진 직업이 없고, 재물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과 다른 기이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다."
그 기이한 방법이 인간에 대한 투자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니, 과거 오기(吳起)가 부하 병사의 종기를 빨아주었을 때 그 병사의 어미가 통곡했다는 연저지인(吮疽之仁)의 일화는 무척 유명하다.
"아니, 대장군께서 아드님의 고름을 빨아주셨는데 왜 우십니까?"
누군가 묻자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내 아들의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해 그렇소. 저번에 대장군이 내 남편의 종기를 빨아주자 그 양반이 제 몸 아끼지 않고 앞장 서 싸우다 죽더이다."
로마의 안토니우스도 비슷한 예이다. 그는 동료나 부하들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는데, 금전적으로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때 그는 상대를 자기 집에 초대해 식사를 한 후 식탁의 은 접시를 부인 몰래 상대의 손에 쥐어주곤 했다. 비록 안토니우스는 악티움 패전에서 패해 로마의 패자(覇者)가 되지는 못했지만 패전 이후의 부하들 진로를 걱정해줄 정도로 덕장(德將)이었다.
흔히 호사가들이 나폴레옹의 성공 비결로, ①사람을 보는 눈 ②영감적이며 순간적인 판단력 ③부하의 헌신적인 희생을 이끌어내는 힘 등을 꼽는데, 부하의 헌신적인 희생을 이끌어내는 데는 아마도 그 자신의 희생이 선행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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