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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의 중복된 오류, 브엘세바에서 생긴 일
    성서와 UFO 2020. 3. 8. 20:09


    구약성서 창세기의 내용 중에서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상납하여 당장의 기근을 해결하고 부자가 되어 돌아온 사건은 독자를 당황시킨다. 나아가 그 불쾌한 사건은 가나안 땅 브엘세바에서 반복된다. 마치 데자뷰와 같은 그 사건에 대해 일단 다시 한번 읽은 후 썰을 풀어보자. 논지(論旨)는 당연히, 이와 같은 오류가 왜 성서에 실렸는가 하는 것이 되겠다.


    ※ 이 이야기는 성서의 예문을 길게 인용해야 되고 설명이 복잡하여 자칫 지루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껏 다루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빼놓을 수는 없는 내용이다. 최대한 축약시켜 설명드리도록 노력하겠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창세기 12:10-20)


    위 창세기 12장의 스토리는 곧이어 20장에서 비슷한 내용이 이어진다.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 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창세기 20:1-16)


    이 20장의 내용이 위의 12장과 다른 게 있다면 그저 왕이 바뀐 것뿐이다. 그런데 대체 아브라함은 왜 그런 부도덕한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까? 당장의 기근을 쉽게 해결하고, 쉽게 부자가 되는 데 재미를 붙였던 것일까? 여기까지 보자면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아래의 21장과 26장을 읽어보면 성서 구성상에 있어서의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창세기 21:22-34)


    이상의 사건은 아래 창세기 26장에서 짜파구리처럼 두 개의 스토리가 어우러진다. 자신의 아내를 누이로 속이고 마침내는 거부가 되며, 아울러 브엘세바의 우물에 관한 소유권과 영유권을 인정받지만, 그 모두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대에 이루어진다. 언뜻 보면 그간의 갈등이 해결된 듯한 결론이지만, 이건 또 무슨 황당한 대물림인지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창세기 26:1-33)



    브엘세바의 위치

    성서에서는 관용적으로 가나안의 영토를 '브엘세바에서 단까지'로 지칭한다.


    브엘세바의 우물

    브엘세바 구 시가지 관광안내소 뒤에 있는 유적으로 흔히 '아브라함의 우물'이라 불리나 그때의 것인지 최근에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브엘세바 고대 유적지

    기원전 10~7세기의 유적이다. 성서가 딱히 지적하고 있지는 않지만 브엘세바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살던 곳으로, 야곱이 리브가와 공모해 형 에서를 속인 곳이기도 하다. 이 고대 유적지는 그때의 토대 위에 지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브엘세바 유적지의 부감 



    위의 괴상한 전개는 구약성서가 야훼계(J), 엘로힘계(E), 사제계(P) 등으로 각각 전승돼 오던 것이 취합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다. 창세기에는 이외에도 이들 각 전승의 취합으로 인해 같은 구절이 반복되거나 서로 충돌하는 상이한 내용이 함께 실려져 있다. 이를테면 노아가 방주에 집어넣은 짐승의 수가 같은 창세기 7장에서도 달리 설명돼 있어(7장 2절과 9절) 뭐가 맞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답이 궁해지기도 하고, 위처럼 동일하거나 비슷비슷한 내용이 중복되어 그 내용 전체가 의심받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하나님의 이름이 다른데, 이것이 바로 야훼계(J)와 엘로힘계(E)의 두드러진 충돌의 예로 거론된다.(야훼계 전승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 즉 여호와로, 엘로힘계 전승에는 엘로힘으로 지칭된다) 성서학자들은 이상 각각의 전승이 바빌론 유수 시절에 취합되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따르자면 성서의 모순적 문장은 그런대로 해결되어진다.(이를테면 사람이 두 번 만들어지는 천지창조의 과정/창세기 1:27과 2:7)


    그러나 나는 지금껏 야훼계 전승이나 엘로힘계 전승 같은 것을 무시하고 천지창조가 두 번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사람이 두 번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야훼는 저들 외계인 중 지구 식민지 프로젝트 책임자의 직함이고, 엘로힘(אלהים)사전적 정의 그대로 ‘하늘에 있는 존재들’이다.*


    * 제프리 W. 브라밀리 <성서 신학사전’>. 단수는 엘로아 (אלוה).


    성서에는 엘로힘과 여호와가 혼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혼재 속에 첫번 째 천지창조가 이루어진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세기 2:1-3)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세기 2:4-7)


    앞의 문장, 즉 2장 1절부터 3절은 창세기의 1장을 받아 하나님의 휴식까지를 설명하였는데, 결론으로서는 이로써 모든 창조의 과정이 끝났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 절부터는 느닷없이 이 땅에 초목도 없고 채소도 없이 오직 안개만이 지면을 적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1장에서 만든 그 많던 초목들, 즉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 좋았다’던 그 풀과 나무와 채소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것이 단종(單種)도 아니었고 각기 종류대로였으니 시간이 지났다면 오히려 더 무성해져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어 복을 주었다는 남자와 여자(창세기 1:27) 역시 이 땅에서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던 조물주의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오히려 멸종했다는 말이다.(그들은 분명 여호와가 자신들 엘로힘보다 못하게 창조했다. 시편 제8편) 나는 저들의 1차 식민지 경영을 성서의 내용에 충실하게 '실패'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브엘세바에서 생긴 일은 전승의 과정이 잘못 옮겨진 오류임에 분명하다.


    ※ 글이 쌓임에 따라 본 블로그의 조회수가 조금 증가했다. 이에 '성서와 UFO' 카테고리 속의 그저 하나의 글만을 읽고 불쑥불쑥 밑도 끝도 없는 악플을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따라 늘었다. 기독교 신자라면 나의 주장이 황당하고 기분 나쁘기도 할 터, 그와 같은 행위를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여호와와 엘로힘에 대한 구별은 이렇다는 것쯤은 아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만 생각이 그러할 뿐 성서의 전승에 야훼계와 엘로힘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그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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