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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한복음 속 예수의 황당한 거짓말 퍼레이드
    성서와 UFO 2020. 4. 22. 06:47

     

    한복음에는 예수의 신비한 탄생에 관해 일체 언급이 없다. 또한 삼위일체설에 대해서도 유추만한 내용이 실려 있지 않다. 말하자면 예수의 신성에 관한 주요 테마가 빠진 셈이다. 그래서인지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서두에 밝혀두는 담대함을 보여 준다. 시작부터 예수가 메시아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한복음 1:1-5) 

     

    아울러 세례자 요한의 증언 속에서도 메시아로 등장하고,(1:19~34) 예수가 제자들을 불렀을 때 안드레는 형 시몬에게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한다.(안드레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사마리아 여인과의 짧은 만남에도 예수는 여인에 대해 훤히 꿰고 있었으며 또한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밝힌다. 기적도 공관복음에서 볼 수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작심하고 '예수는 신이다'라고 부르짖는 듯하다. 하지만 공관복음서는 출생부터 다르다.

     

    이미 여러 번 강조했거니와 예수의 출생과 부친에 대해서는 '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누구인가'섹션 I, II를 통해, 그리고 '예수가 외계인의 자식이 아닐 경우 생겨날 문제점들' 섹션 I, II, III, IV를 통해 충분히 설명했던 바, 사실 더 할 말도 없다. 이상 신약성서에 써 있는 예수의 출생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무성생식이요 단성생식이다. 따라서 모친은 있으되 부친은 존재할 수가 없다. 단언하거니와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태복음 1:23-25)

      

    보다시피 예수는 오직 마리아의 XX 염색체만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세상에서 이렇게 태어날 수 있는 생물은 적어도 고등생물에는 없다. 그렇지만 복음서에는 그렇게 써 있기에 이를 부정하면 성서의 내용을 부정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신성모독에도 해당한다. 기독교는 처녀가 잉태하여 태어난 그 특이한 출생으로써 예수를 신의 아들이요, 메시아요, 나아가 (훗날에는) 신으로써 신성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거니와 고등생물 중에서는 이와 같은 번식법으로 태어난 생명이 없다. 지구상의 생물 중에서 그와 같은 단성생식(Parthenogenesis=처녀생식)의 번식법을 가진 것은 물벼룩, 진딧물, 호박말벌류와 같은 하등생물 뿐이다.(최근에 바퀴벌레도 단성생식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예수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태어났다고 하니 그야말로 미신이 따로 없다.

     

     

     

    '무엇이 신화인지 당신은 아십니까?'

    무려 3천 7백 만 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포세이돈 같은 그리스 신, 예수, 산타크로스, 데빌과 같은 악마를 모두 신화로 생각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이와 같은 열등한 출생을 '성령에 의한 탄생'이라는, 역시 미신적인 방법으로 벗어난다. 나아가 그 '성령'이라는 것을 이용해 '삼위일체'의 신으로까지 등극하는데, 그 '성령'의 정체는 지금까지도 모호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설은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사제들의 투표로 정론이 됐으며(즉 예수는 투표에 의해 신이 됐으며) 이 투표 결과는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뜻을 받든 결과였다. 

     

    예수의 정체를 규명하고자 소집된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소집자인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통치 이데올로기의 일환으로서, 똑부러지는 아리우스의 이론 아게네토스(agennetos, 예수는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보다는 아타나시우스의 모호한 이론 호모우시온(homoousion,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실체를 가진 동격의 신)을 선호했다. 즉 그는 기독교도들을 다스리는 데에 황제의 입김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이론을 선택한 것이었고, 그 황제의 뜻을 좇는 딸랑이들의 몰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삼위일체의 진실(II) - 황제가 만든 신 예수')

     

     

    예수를 신으로 만든 황제 콘스탄니누스 1세

     

    들어진 신 예수의 바탕이 된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론

     

     

    이렇듯 예수라는 신은 인간의 투표에 의해 탄생하게 되었는데, 기실 그가 가지고 태어난 신성이라고는 오직 동정녀 마리아에 의한 출생 뿐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그 출생법이 매우 열등한 바, 나로서는 이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그 단성생식을 믿는 것이 오히려 신성모독이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체세포 공여방식을 생각해낸 것인데, 이는 늘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부른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이 체세포 공여방식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수없이 언급했으므로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예수의 황당한 탄생을 체세포 공여방식에 의한 출생으로 여기면 그 불가사의함에서 벗어날 수 있거니와 성서의 모순도 해결된다. 아울러 열등한 단성생식법의 출생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가 이를 너무 남용함으로써(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오히려 신뢰성을 떨어뜨렸으니 대표적으로는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5)라는 말을 들 수 있다.

     

    천지창조 전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있었다고 한 이 말은 최후의 만찬 때의 언급으로서, 예수는 이 말을 마친 후 로마 군인에게 붙잡혀 무력하게 끌려간다. 세상에.....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천지창조에도 관여했다는 그가(요한복음 1:1-3) 겨우 지구 한쪽을 다스리는 로마의 힘에 눌려 몇 안 되는 로마 군인들에게 무력하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니...... 게다가 로마황제도 아닌 일개 변방 총독에 의해 사형판결을 받고 십자가형을 당해 죽다니..... 이 두 가지 일은 괴리감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유다의 입맞춤으로 체포되는 예수

    지오토 디 본도네가 그린 스크로베니 성당 벽화 중의 '유다의 키스'다. 지오토는 복음서의 내용을 뭉퉁그려 시스틴 성당 벽화에 버금가는 성화를 완성했다.('지오토 디 본도네의 예술 세계')

     

    유다의 입맞춤으로 체포되는 예수

    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스틸컷이다. 예수의 고난을 그린 이 영화도 실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짬뽕이니, 요한복음에서는 입맞춤의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예수는 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과 언쟁을 벌일 때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브라함 전에 존재했었다고 구라를 친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요한복음 8:52-59)

     

    예수의 구라에 열받은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하자 아브라함 전에도 존재할 만큼 시공간을 주름잡았던 이 무시무시한 능력자는 제자들 사이에(혹은 군중들 사이에) 숨어 황급히 성전을 빠져나간다. 그에 앞서 갈릴리 시절에도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또 1천여 년을 거슬러 오르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어이없는 거짓말을 한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요한복음 5:43-47)

     

    예수는 이처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변하고 있지만, 모세가 그런 사실에 대해 기록한 글은 없으며 그러한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은 구전으로라도 전해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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