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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이 장난친 도시 예루살렘 (I)
    성서와 UFO 2017. 12. 11. 22:01






    금번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전격 선언(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이 아니더라도 예루살렘이란 도시는 내게 늘 혼란스러움을 제공해왔다. 특히 이번 문제의 핵으로 떠오른 예루살렘 올드 시티 (Old City) 구역은 더욱 그러한 바, 그 혼란의 원인을 한번 찾아 나서볼까 한다. 그에 앞서 우선 예루살렘의 위치부터 살펴보자.



       

       예루살렘의 위치



    보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 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웨스트 뱅크 지역)의 거의 반반씩 걸쳐 위치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UN 총회 회의에서는 예루살렘의 서쪽 지역은 이스라엘이, 동쪽 지역은 요르단이 관할하되 양국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국제도시로 삼기로 결의한 바 있다.   

       

    그러다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이스라엘에서는 6일 전쟁, 아랍측에서는 6월 전쟁이라 부르는) 당시 이스라엘이 웨스트 뱅크 지역을 점령하면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통치지역이 되었는데,(그러면서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삼았다) 1993년 오슬로 평화회담이 체결되며 한 발 물러나긴 했으나 여전히 동예루살렘에 대한 실효 지배를 하던 차에(국제사회는 이를 계속 비판했음에도) 2017년 12월 6일 트럼프의 전격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국경선의 변천



    ~이틀 후인 12월 8일 UN 안전보장 이사회는 즉각 대책 회의를 열어 트럼프의 발언을 규탄했다. 트럼프가 국제사회의 반대를, 특히 아랍권의 반대를 예상하면서도 이와 같은 행동에 나선 것은 그의 중뿔난 성격에도 기인했겠지만, 그보다는 미국 내 파워 엘리트인 유대인 집단의 집요한 로비에의 성과물로 보면 될 것 같다. 앞선 챕터에서도 말했듯 웨스트 뱅크 지역에는 2013년 팔레스타인국이 정식으로 건국되었는데, 그들도 예루살렘(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던 바, 유대인들에게는 이것이 내내 눈엣가시였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은 왜 그리 예루살렘에 매달리는 것일까? 이 역시 예루살렘 시 지도의 올드시티 구역을 살펴보면 그 답을 쉽게 얻을 수가 있다. 아래 지도의 작은 그림에서는 예루살렘 시의 중앙에 위치한 올드시티 구역을 볼 수 있는데, 녹색선 지역이 제 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독립전쟁) 이후에 얻은 곳임을, 그리고 예루살렘 전체는 더욱 나중에 획득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4개 권 

     

     

    지도 큰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 올드시티는 4개의 권역으로 관할권이 나뉘어져 있다. 즉 기독교 권역, ②이슬람 권역, ③유대 권역, ④동방정교회의 일파인 아르메니아 권역이 그것인데, 문제는 이슬람 권역 내에 템플 마운틴 구역(오른쪽 짙은 황색 직사각형)이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 템플 마운틴, 즉 성전산 구역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 누구에게도 내줄 수 없는 매우 소중한 곳이니, 그곳이 바로 이스라엘의 3대 왕 솔로몬이 세운 여호와의 성전이 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후 신바빌로니아 네부캇네자르 2세(성서의 느부갓네살 왕)의 근위대장 네부살라딘에 의해 파괴되었던 성전은 BC 516년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유대 민족의 지도자 스룹바벨(공식 직위는 페르시아 제국의 유대 총독)에 의해 재건되고, 이민족 출신의 지배자인 헤롯 대왕(재위 BC 37-4년)에 의해 다시 크게 만들어지지만, 결국은 로마제국에 의해 파괴돼 사라지고 만다.(그후 유대 민족도 그 땅에서 축출되어 세상을 떠돌게 되었음은 앞선 챕터인 '성서와 UFO/외계인이 지어준 국호 이스라엘'에서 설명을 마친 바 있다. 



    예루살렘 성전의 상상도



    그때 로마인은 예루살렘의 성벽도 파괴하였는데, 그나마 조금 남은 서쪽 지역의 성벽이 당시의 아픔을 되새기게 만드는 이른바 '통곡의 벽(Wailing wall)'으로 이 역시 유대인에게는 매우 소중한 장소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또한 위치하고 있는 곳은 이슬람 권역, 무슬림의 '바위 사원(Dome of the Rock)' 밑이니 유대인의 입장으로는 매우 통탄스럽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이 성벽이 이슬람 권역과 유대 권역의 경계를 이룬다)


    「trump wailing wall」の画像検索結果


    「trump wailing wall」の画像検索結果

    '통곡의 벽' 앞에 선 미대통령 부부

    2017년 5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이다. 트럼프는 유대 전통 모자인 키파를 썼는데, 과연 무슨 기도를 드렸을까 궁금하다. 

     


    따져보자면 어디 그뿐이랴. 그 성전산인즉 구약 성서의 모리아 산으로서, 다윗 왕 치세의 말년, 이스라엘 땅에 역병을 퍼뜨리신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 다윗 왕이 매입한(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기 위해) 바로 그 땅이며,(역대상 22:1). 마침내 그 아들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세워진다.(역대하 3:1)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찾자면 이 장소는 저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으로 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침으로서(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믿음을 담뿍 얻은 바로 그곳이다.(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없을 듯하고,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기조차 함에도) 


     

    하나님은 이런 맹목적 충성울 원하는가?

    기원전 2세기 경, 아브라함의 충성심을 100% 신뢰할 수 없었던 여호와는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어이상실의 명령을 내린다.(창세기 22:1-13의 내용으로, 본 블로그 '아브라함이 만난 UFO와 가나안 이주의 진실 (III)'의 그림을 다시 옮겨왔다) 



    그런데 이슬람의 꾸란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다만 다른 것은 이때 번제물로 바쳐진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라는 점인데, 아시는 바와 같이 이스마엘은 모든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시조로 여기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미 주지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은 기독교, 천주교, 유대교 및 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이 되는데, 작금의 문제로 대두된 이슬람과 기독교의 싸움은 그들의 선명성의 싸움이라 볼 수 있다.(꾸란에서는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적자로 등장한다)


    ~반면 불교와 기독교는 그 뿌리와 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악심을 먹고 일부러 싸움을 걸지 않는 한 충돌할 이유가 없다. 간혹 그 두 종교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일도 있으나 이는 종교적 우월감을 지닌 못난이들의 돌출 행위일 뿐, 양자 간에는 하등의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 양자 중 상대방의 종교를 비난하는 설교를 입에 담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그야말로 찌질이다. 


      이 이스마엘의 탄생과 성장의 과정은 성서에도 자세히 나와 있는 바, 그 주요 대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급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나의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급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년 후였더라.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창세기 16:1-16) 



    본 바와 같이 성서에서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서자로 출생을 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예전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처럼, 하갈에게도 그 후사의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 셀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 것이며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형제들과 힘을 합쳐 대항할 것이라 하였던 바, 하갈의 후사인 이스마엘로 인해 큰 알력이 있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이스라엘과 아랍 동맹국 간의 싸움이 쉬 연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약속하시고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마엘을 주어 이슬람을 탄생케 만든 까닭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내가 만나 본 여러 신학자들도 이에 대해 곤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호와께서 훗날 이삭을 만들거면서 왜 굳이 이스마엘과 그 후손에 대한 비호를 약속하시는가에 대한 곤혹스러움이다.(그 두 사람의 후손, 즉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이 서로 친밀하게 잘 지낸다면 모를까, 지금 그들의 후손들은 질시와 반목과 대립, 나아가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나름대로 정확한 답을 내렸다.(이것은 본 블로그 '성서와 UFO'의 취지이기도 하다) 즉 위의 혼란스러움이나 곤혹스러움은 모두가 여호와라는 인물이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선진 과학의 힘으로 모든 면에서 크게 우월해 보였을 뿐 결코 전지전능하지 못한 외계인들의 획책에 우리 지구인들이 놀아나고 있는 셈이다. 과거처럼 직접 통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념적으로 이 지구를 영구히 지배하려는 그 고차원의 수작에 당했다는 것이다. 

     

    * '성서와 UFO/하나님이 장난친 도시 예루살렘 (II)'로 이어짐.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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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과 그림의 출저: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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