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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잉카제국의 천문대 (남 아메리카 I)
    거꾸로 읽는 천문학개론 2018. 5. 7. 22:09

    1. 잉카제국의 천문대


    무엇이 됐건 잉카를 말하려면 우선 슬프다. 그리고 어이없다. 12세기에 시작하여 15세기 남미대륙을 아우르는 통일제국을 이룩한 잉카 왕조는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겨우 172명의 스페인 군대에 의해 왕은 붙잡혀 죽고 제국은 멸망당한다. 당시 잉카의 인구는 2,000만이 넘었고 정규군만 8만 명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총으로 무장을 했다 해도, 또 그들이 묻혀가지고 온 천연두와 같은 유럽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의 결핍으로 대책 없이 쓰러졌다 해도, 그래봤자 상대는 모두 172명에 불과했다. 저항의 의지만 있었다면 활을 쏴도 됐고, 또 어느 분 말씀맞다나 잉카군사 8만 명이 짱돌을 던져도 반 나절이면 쳐죽일 수 있었다.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에 당했다는 말에 언뜻 설득력이 실리기도 하나 어떤 전염병이든 하루 아침에 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제국은 사라졌다. 이후 그 제국의 전토는 스페인 군대에 의해 점령당했고, 문자도 말도 모두 잃어버린 채 스페인의 글과 말을 쓰고 있다. 더 어이없는 건 지금의 남미국가 국민들이 지닌 신앙이 침략자에게 강요된 신앙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종교는 사랑과 평화를 교리의 기본으로 한단다.(남미 각국의 정확한 데이터는 찾기 힘드나 아시아의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인구의 83%가 카톨릭을 신봉한다) 



    쿠스코의 예수상 

    이 거대 예수상은 리오 데 자네이로 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페루 쿠스코의 삭사이와만이란 곳에 세워진 것이다. 침략자 피사로는 이곳에서 크리스트교로의 개종을 거부한 수많은 원주민들을 집단학살했는데, 이 예수상은 속죄의 뜻으로서 훗날 가톨릭 교단에서 건립했다.(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좌우지간 뭔가 안 맞는다) 


    쿠스코 삭사이와만 요새


    삭사이와만 요새의 성벽

    삭사이와만은 수도 쿠스코를 방어하던 요새 도시로서 한 변의 길이가 400m, 세 겹의 거대한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발 3700m의 고지에 세워진 이 요새의 3단 축대 높이는 평균 18m이다. 어떤 것은 100톤이 넘는다는 이 거대한 돌의 축성도 신기하지만 이와 같은 훌륭한 요새를 지닌 잉카인들이 무력하게 당한 사실은 더욱 신기하다.(그럴거면 돌을 왜 저리 단단히 짜맞췄는지.... 아무튼 이곳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거....) 



    과거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지배를 받았던 중남미 지역의 정식 명칭은 라틴 아메리카다. 라틴어를 쓰는 아메리카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 슬픈 역사를 지닌 민족에게도 천문학은 있었다. 그 잉카인이 쓰던 달력은 1년이 365.2일로 매우 정확하다. 그만한 민족적 역량을 지녔기에 그래서 더욱 슬프다. 브래타니커 백과사전은 파사로의 잉카 정복을 침략자 172명은 한 명도 죽지 않은 기묘한 정복전쟁이라고 적고 있다. 


    그들이 쓰던 천문대가 '전설 속의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에 남아 있다.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의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1875-1956)이 발견했다고 돼 있지만 이건 팩트가 아니다. 빙엄은 탐험이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자료 수집 차 페루가 갔다가 우연히 원주민들에게 마추픽추라는 산 속의 옛 주거지를 전해들었다. 그리하여 그곳을 확인한 후 미국에 알렸을 뿐이다. 숨겨진 도시였던 것이 아니라 원주민들에게는 원래부터 잘 알려진 장소였다는 얘기다. 


    ~ 시몬 볼리바드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혁명 투사로 19세기 남미의 콜롬비아, 에쿠아도르, 베네수엘라, 페루, 볼리비아의 다섯 나라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켰다. 볼리비아는 그의 이름을 붙인 나라이다.  20세기 체 게바라가 있었다면 19세기에는 시몬 볼라비르가 있었던 것인데, 볼리바르는 페루와 볼리비아의 대통령으로서 죽었지만,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혁명 당시 볼리비아 정부군에 사로잡혀 총살당했다. 남미대륙을 통합시켜 제국주의에 대항하려는 생각은 두 사람이 같았다



     시몬 볼리바르(1783-1830)


      체 게바라(1921-1967)



    마추픽추에서 아래의 해시계가 있는 곳은 인티와타나라 불리며 주거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아울러 그 밑에는 주신전이 위치하는 바, 통상 천문대로 추정되는 인티와타나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를 측정하였고 그에 맞추어 농사의 기본을 정했으며, 동지날에는 제물을 바치고 태양을 붙들어매는 의식을 가졌다. 아래의 그래픽은 이곳이 천문대임을 명확히 해준다.(인티와타나는 이곳 케추아어로 '태양을 끌어들이는 자리'라는 뜻이며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라는 뜻이라는데, 뭔가 애잔한 느낌을 준다) 





    인티와타나와 꼭대기의 해시계


    인티와타나의 위치


    인티와타나 전경


    계단식 논경지와 마추픽추 전경



    번외의 것이긴 하지만 잉카인들이 남긴 나스카 그림, 이른바 나스카 라인은 한 번 구경하고 갈 필요가 있다. 페루 남부 나스카 평원 너른 바닥에 그려진 엄청난 규모의 그림은 20세기에 들어서야 발견되었다. 지상에서는 그림이 확인되지 않는 까닭이다. 새의 날개 길이 하나는 100m가 넘는데, 원숭이나 거미, 개, 외계인 문양 등, 그와 같은 그림이 현재까지 발견된 것만 370점이다. 이 유적지는 1939년 처음 발견됐고 유네스코는 1994년 이 그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면적은 총 500 평방킬로미터다.  


    아직까지도 나스카 라인은 누가, 어떻게, 왜 그렸는지 명확히 설명되지 않은 미스터리 유적이다. 나스카 라인은 고대인들이 사용했던 달력이라는 설부터 종교 의식과 관련되었다는 설까지 다양한데, 그중 가장 흥미로운 가설은 역시 외계인 관련설이다. 고대 외계인들이 두 개의 활주로를 건설하고 떠난 뒤 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자신들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공중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거대한 도식을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스카 라인 부근에서 발견된 토기와 직물에 그려진 비행체처럼 보이는 문양과 하늘을 나는 사람이 묘사된 그림을 통해 이러한 주장은 더욱 힘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명확히 납득할 수 있는 주장과 근거는 밝혀지지 않고 있어 미스터리는 더욱 의문으로 남는다.('다음백과' 참조)


    아무튼 이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업용 세스나 경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와 같은 잉카인의 비행기 유물이 발견되어 또한 화제를 모았었다. 그런데 무슨 날벼락인지 올해 1월 31일 페루의 어떤 트럭 운전사가 이 그림 위를 마구 달려 세계문화유산이 파괴되었다. 그 안타까운 현장을 사진으로 보고자 하는데, 문제의 운전자는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아 훈방조치됐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원래 그림이고, 아래는 훼손된 사진




    나스카 라인 그려진 장소



    이 유물들은 그냥 애교로....^^ 그런데 뭔가 있긴 있었던 듯....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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