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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고금의 유명 천문대 (우리나라 편 1)
    거꾸로 읽는 천문학개론 2018. 5. 4. 21:13

    * 천문학이 천체를 살피는 데서 출발한 학문이며, 천문대는 그 천체를 보다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든 곳임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역대 천문대를 비롯한 세계의 유명 천문대들을 찾아보았다. 그 선정 기준은 오직 본인의 주관이지만 부가 설명은 사실에 충실했다.(혹간 본인의 생각도 추가했어요 ^^)



    1. 우리나라 천문대


    1) 고조선의 천문대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지도를 제작한 민족임과, 그 지도(별자리 석판)가 나온 청동기 시대 무덤을(충남 청원군 가호리 아득이 마을 고인돌) 앞서 지도 및 관련 논문을 함께 엮어 밝힌 바 있다.(* '인류 최초의 천문기록, 우리나라 고인돌참조) 그리고 독립된 석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최고(最古) 별자리 그림이 새겨진 고인돌도 소개했는데, 그 고인돌에서 출토된 그릇의 연대측정 결과는 무려 4,926700년이다. 따라서 그 고인돌을 세계 최고의 천문대로 보아도 무방할 듯 보이나 이건 어디까지나 본인 생각이다. 




    위 별자리가 새겨져 있는 평남 증산군 고인돌(사진 출처: 북한지역 정보넷) 



    아울러 위 고인돌과 거의 판박이인 강화도 하점면 고인돌도 소개했는데, 이를 미루어 보면 아래 강화 하점면 고인돌 역시 청동기 시대의 천문대로 간주될 듯싶다. 혹 이를 억지라고 여기는 분이 계신다면 이번 주말이라도 당장 강화대교 건너에 있는 하점면 '고인돌 공원'을 찾아 보시라. 그리하면 너른 벌판에 홀로 앉은 아래의 고인돌과 그 위로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감동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강화 '고인돌 공원' 내의 고인돌(덮개돌 길이 6.40m, 폭 5.23m, 높이 2,54m)


    KBS '천상의 컬렉션'에서도 주목한 하점면 고인돌

     


     

    ~ 가신다면 바로 옆에 있는 '강화 역사박물관', '강화 자연사박물관'도 함께 들러보시길! 정말로 살아 있는 역사의 숨결을 느끼실 수 있으며, 2009년 강화 해변에 좌초됐던 14m 향유고래도 만나 보실 수 있어요. 비록 뼈만 남았지만 멋있어요. ^^



    강화 역사박물관

    강화 자연사박물관


     

    2) 신라의 천문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인 첨성대이다.(통상 그렇다고들 하나 공식적으로 인정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천문대인지 뭔지 모르겠다는 말도 있는데, 그 말도 일견 수긍이 간다. 별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두세 번 걸치고, 또 좁은 구멍을 두 번 통과해야 하는데,(중간의 입구와 천장 구멍)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듯싶다. 또 첨성대 자체가 높은 것고 아니고..... (말하자면 평지에서 별을 관측하는 것과 진배없다) 일설에는, 원래 인근 가장 높은 곳에 있었는데, 궁성인 반월성이 내려보인다 하여 선덕여왕이 평지에 옮겨 지었다는 말도 있으나 근거는 없다. 



    경주 첨성대 



    한가지 분명한 건 '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사서에 실려 있는 '그 속을 사람들이 오르내리며 별을 관측했다'는 기록이다. 그 실물이 지금 경주 땅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동서남북 사방을 가리킨다는 꼭대기의 정(井)자 돌, 28수 별자리를 의미한다는 스물 여덟 단으로 쌓아올린 높이, 여기에 기단석과 정자 돌 두개를 합치면 30개로 한 달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돌은 모두 세면 362개로 음력의 1년을 의미한다.(어떻게 세느냐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절묘한 이 같은 구조를 보면 그것이 천문대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곳을 오르내렸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구조는 여전히 인간 친화적이지 못한 듯한데, 어쩌면 아래와 같은 사람들을 생각한 조상님들의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화제의 인물들은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인터넷과 SNS를 달궜던 사진(일제 시대의 수학여행)


    여학생들도 마찬가지.... (그런데 예전에는 다 이렇지 않았나?)



    그럼에도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이후 1400년 동안 단 한 번의 보수없이 그 원형을 유지해온 고대의 유일한 건축물인 것이다. 역사에 빈번히 기록됐고 지금도 가끔 발생하는 그 무시무시한 지진까지 모두 극복하고 말이다. 




    아무리 봐도 첨성대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은 블편해 보이지만 아직까지 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니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은 등장하지 않았으므로 아래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사진출처: 대구신문)


     


    추억 삼아 예전의 10원짜리 한 장을 올려봤다(사실 가물가물....;;)


    최근 경주에서 찍은 사진도 한 장.....(예전에는 입장료를 받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무료입장이다)



    3) 고려의 천문대


    현존하는 고려의 천문대는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에 남아 있는 첨성대로, 신라 첨성대와 이름이 같다. 지금은 기둥 다섯 개와 판석만 남아 있지만 과거에는 천문대와 부대시설이 일습으로 갖춰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의 높이는 2.8m로 주춧돌 위에 기둥돌을 세우고 댓돌을 틀을 짜 맞춘 다음 사방 3m의 판석을 얹었다. 판석의 4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는데 모서리마다 파인 큰 구멍을 보면 그 위에 또다른 구조물이 올라 앉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개성의 정궁 만월대 서쪽에 있는 첨성대의 유구(사진 출처: 북한지역 정보넷)  


    만월대 


     

    최근 북한의 연구자들은 판석 위의 홈과 부근에서 수습된 부재들을 근거로 아래와 같은 복원도를 만들었다. 그것이 얼마나 원형에 가까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연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북한 '조선기술발전사'에 실린 첨성대 복원도

    (그럴듯해 보이나 지붕은 사족이다. 지붕이 있으면 관측이 엄청 불편할 것 같다)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참성단도 고려의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 참성단의 구조는 면적은 6.6㎡이며, 상단 방형 1변의 길이는 1.98m, 하단 원형의지름은 4.5m이다. 자연석을 다듬어 반듯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쌓았고, 상방단 동쪽면에는 21계단의 돌층계가 설치되어 있다. '고려사'에는 고려 원종5년(1264)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별 관측의 기록이 있다. 또 고려 말 권근의 기록에서는 우왕과 창왕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 제문을 찾을 수 있는 바, 천제(天祭)의 장소와 천문대의 역할을 함께 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단군 왕검의 전설까지 깃들어 있는 참성단


    '한국천문학'지에 실린 1930년대의 참성단



    4) 조선의 천문대 


    앞서 '민족의 얼, 북두칠성 II' 에서 밝혔듯 조선 전기의 천문학은 세계 Top이었다. 그와 같은 천문학을 선도한 곳이 서운관(書雲觀)이라는 관청이고,(후에 관상감으로 이름이 바뀐다) 그곳 학자들이 천체를 관측한 곳이 관천대(觀天臺)다. 문자 그대로 '하늘을 보는 대'라는 뜻이니 지금의 천문대라는 이름보다 오히려 역할에 가깝다. 관천대의 유적이라 알려진 곳은 두 곳으로, 하나는 창경궁 안에 있는 관천대고,(보물 제851호) 다른 하나는 계동 현대사옥 대지 안에 있는 관천대다.(사적 제296호)


    하지만 창경궁 내 관천대를 과연 천문대로 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존재한다. 남문현 건국대 교수의 주장이 대표적으로, 그는 창경궁 관천대는 천문대가 아니라 표준시간 계측기구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를 놓는 받침대라고 밝혔다. 일성정시의는 북극성의 위치와 한낮의 그림자를 살펴 정확한 시각을 계측하는 도구로서 조선시대의 표준시계였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서 조선 후기 학자 황윤석(1729-1791)이 지은 '이재전서'의 내용을 제시했는데, 거기에는 일영대에 올라 측경기(測景器)를 살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영대는 관천대의 다른 이름이고, 측경기는 조선 전기의 시계 일성정시의'의 신제품으로 여겨진다. 



    세종대왕 영릉에 복원된 관천대와 일성정시의

    마침 네이버 블로그에 적당한 사진이 있어 옮겨 싣는다. 아래의 창경궁 관천대에 이와 같은 시계가 올려져 있었다는 말이다.  


    창경궁 관천대

    이 관천대의 역할에 대해서는 남문현 교수님의 주장이 타당해 보인다. 한 자리에서 천체를 관측해 기록을 남기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이 작은 높이가 천체 관측에 별다른 도움을 주었을 것 같지 않기에.....



    계동 현대사옥 내에 있는 관천대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천문대다. 이 계동 관천대는 조선 세종16년(1434)경 만들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손상되고 지금은 일부 흔적만 남았는데, 위 창경궁 관천대와는 크기만 다를 뿐 거의 똑 같은 모양새다.(아래 옛날사진 참조) 그럼에도 이것을 이론의 여지 없는 천문대로 보는 이유는 '조선왕조실록'에 그곳에서 관측된 많은 천문기록이 실려 있을 뿐더러 그 높이가 제법 천문대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현대사옥 내의 관천대

    '조선측후사략'에 실린 1913년 때의 관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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