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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퍼시벌 로웰과 조선
    거꾸로 읽는 천문학개론 2018. 5. 1. 04:02


    화성의 운하에 미친 퍼시벌 로웰은 이후 애리조나에 사설 천문대를 짓고 구경 30cm의 천체망원경도 마련해 화성에 살고 있는 외계인 찾기에 몰두한다. 앞서 '퍼시벌 로웰과 화성의 운하'에서 말했듯 그는 화성의 마리너 계곡을 인공의 수로로 보았던 바, 그간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화성인 찾기에 쏟아부었다. 만일 그가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골든 스파이크 컴파니와 같은 개인 우주여행 회사를 차렸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1904년에 찍은 퍼시벌 로웰(1855-1916)의 사진



    로웰이 애리조나 주 플래그스태프에 지은 천문대


    자신의 천문대에서 300mm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는 로웰 


    최근에 새로 지은 로웰 천문대 


    로웰 천문대 엘번 클라크 돔 내부(최초의 돔 내부를 흉내내 목재로 지은 돔이 이채롭다. 관람객들도 그저 신기한 듯)


    최초의 천문대는 지금 박물관이 되었다. 



    로웰이 이 같은 천문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자신의 열정이 주된 이유였지만 집안의 재력도 큰 뒷받침이 되었다. 그의 가문은 전통적 부호이자 명문가로 하버드 대학의 총장을 맡았던 에봇 로렌스 로웰이 그의 형이었다. 그런데 그는 우리나라 조선과도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이었던 바, 그 대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버드 대학교를 나온 그는 젊은 시절에는 극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하여 일본을 여행했는데,  그때 마침 미국으로 가는 민영익을 대표로 하는 보빙사(報聘使: 조선 수호통상사절단) 일행을 만나게 된다.(1883년 5월) 주일미국공사의 요청으로 보빙사 일행을 미국으로 인도하는 임무를 맡게 된 로웰은 그해 8월 18일 그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다. 



    퍼시벌 로웰과 보빙사 일행.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유길준, 변수 등이 보인다. 이때 유길준(뒷줄 왼쪽에서 세번 째)은 미국에 남아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 된다. 



    보빙사 일행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국서 번역 등의 보좌 업무를 도와준 로웰은, 이들이 체스터 아서 대통령을 접견하여 고종 황제의 국서와 신임장을 전달하고 난 후에는(9월 18일) 이들 보빙사 일행을 자신의 고향 보스톤으로 초청해 사비(私費)로 접대하기도 한다. 이후 조선으로 귀국한 일행은 고종에게 로웰의 노고를 보고했고 이에 고종은 그를 국빈으로 초대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1883년 12월 20일 조선을 방문한 로웰은 약 3개월 가량을 체류하며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지리, 계절 등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했는데, 그 2년 뒤인 1885년 이 기록을 정리해 출판한 책이 유명한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다. 그는 이 책에 조선의 풍경과 풍물을 소개한 25장의 사진을 실었는데, 그중에는 자신이 찍은 고종의 사진도 있었다. 조선에서는 특히 수학자 김낙집과 친하게 지냈다 하나,(로웰의 전공이 수학이었다) 김낙집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아마도 천문학과 수학에 조예가 깊은 관료였을 듯싶다)



    하바드대 출판국에서 출간한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과, 보빙사 대표들과 찍은 로웰의 사진


    로웰이 자신의 책에 소개한 고종의 사진


    로웰이 찍은 경회루



    그는 이후로도 조선의 상황에 대해 관심이 깊었던 바, 1884년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등 이른바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을 때는 일본에서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접수하여 '조선의 쿠데타(A Korean Coup d'Etat)'라는 제목으로 시사평론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에 게재하기도 하였다. 


    미국에 돌아와 사업에 매진하던 그는 까미유 플라마리옹이 쓴 '행성 화성(La planète Mars) '을 읽은 후 깊은 인상을 받은 듯 천문학에 매달리게 되는데, 특히 1877년 이탈리아 천문학자 지오바니 스키아파렐리가 언급한 '화성의 수로'에 큰 관심을 보인다. 앞서 말했듯 그의 논문을 번역해 미국에 소개한 사람도 로웰이었다. 



    지오바니 스키아파렐리가 그린 화성의 수로



    1894년 로웰은 자신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천체 관측이 용이한 애리조나 주 플래그스태프로 아예 이주를 한다. 플래그스태프는 해발 고도 2000 미터에 위치하며 구름이 적게 끼는, 천체 관측소로서의 최적의 장소였다. 그는 이곳에 많은 돈을 들여 천문대를 짓고 이후 15년 동안 화성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관측 내용을 세 권의 책으로 출간했는데, 제목은 각각 '화성'(Mars, 1895년), '화성과 운하'(Mars and Its Canals, 1906년), '생명체가 있는 곳 화성'(Mars As the Abode of Life, 1908년)이었다. 


      로웰의 역작 '화성과 운하'


    로웰의 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화성의(儀)와 3권의 저서


      로웰이 그린 화성 지도



    로웰은 자신의 관측 결과를 토대로 화성의 고등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더욱 굳히게 된다. 아울러 그는 천왕성이 불규칙하게 운동하는 이유는 해왕성 외에 또 다른 행성인, ‘행성X’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 그의 사후 클라이드 톰보가 1930년 로웰의 천문대에서 명왕성을 발견하면서 결실을 맺게 된다. 명왕성의 천문기호는 퍼시벌 로웰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의 이름 두 문자 P와 L을 합성한 로 정해졌다.(* 명왕성과 클라이드 톰보에 대해서는 '지구의 또 다른 형제들''뉴호라이즌스 호의 새로운 소식' 참조)

      


    1930년 3월 14일, 뉴욕 타임즈의 명왕성 발견 기사


    로웰 천문대에서 찍힌 명왕성


    클라이드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한 로웰 천문대의 천체망원경



    로웰은 1916년 1월 21일 임종해 천문대 근방의 마스 언덕에 묻혔다. 그리고 죽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상상력은 과학의 발전과 명확한 학습에 요구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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