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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누구인가(II)
    성서와 UFO 2019. 3. 5. 22:28

    앞서 '그것이 알고 싶다-예수가 이 땅에 온 진짜 이유'에서 언급했듯 나는 과거 신학도 시절, 마태복음에 나오는 임마누엘과 예수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고 여기저기 발품도 꽤 팔았다. 그리고 그때 이에 관해 물어보면 꼭 등장하는 것이 아래 이사야서 7장의 내용이었지만, 그것과 마태복음에 언급된 임마누엘이라는 자와는 정말이지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당연히 예수와는 더더욱 무관하다.


    그 대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3-14)


    아닌 게 아니라 언뜻 들여다보면 뭔가 있어 뵈는 문장이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착시효과일 뿐이니, 이사야서의 임마누엘은 그야말로 젊은 처녀가 잉태해서 낳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God is with us)'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저 이사야의 평범한 둘째 아들에 불과하다. 아울러 그가 백성들을 곤궁에 빠뜨린 다윗의 집안(왕실)을 응징하였다는 기록 또한 박약한 바, 이는 그저 이사야 자신의 아들이 그것을 해주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비롯된 이름일 게다.


    * 여기서 말하는 처녀는 동정녀를 뜻하는 베툴라(betulah)가 아니고 단순히 젊은 여자(almah)를 지칭한다는 것을 '엘리야와 모세를 태우고 나타난 서기 30년의 UFO'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서 전혀 특기할 만한 일이 못될 터이며, 신약성서 마태복음 등에서 언급된 예수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와도 당연히 아무런 상관이 없다. 즉 이사야서와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출생과는 하등의 연관성도 없는 별개의 기록인 것이다.(오히려 마태복음 저자의 저의가 의심된다)



    사해사본 이사야서와 문제의 단어 알마(almah)    


    사해사본 이사야서의 문제의 문장


    1947년 사해사본이 발견된 이스라엘 쿰란 동굴(발견된 후 거래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조만간 다룰 예정이다)



    * 이사야서에는 모두 3명의 이사야가 나오는데,(따라서 이사야서는 적어도 3명 이상의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으라는 게 중론이다) 위의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를 말한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지 않고, 오로지 팽창하는 앗시리아 제국에 대한 줄타기 외교로써 나라를 지탱하려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에게 대단한 적의를 품고 있던 선지자였다.

     

    그 이사야는 자신의 세 아들 이름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이름으로 작명했는데, 그의 셋째 아들의 이름 마헬살랄하스바스(Mahershalasbaz)는 성서에 나오는 가장 긴 이름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사야가 '아내를 가까이하매 그 아내가 임신하여 낳은 자'일 뿐이다.(이사야 8:3) 단지 그뿐이다.


    * 위의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는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앗시리아 제국이 팔레스타인 방면으로 남하하던 시기로, 이에 당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진 팔레스타인의 두 왕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앗시리아 제국에 대해서는 '모세를 통한 외계인의 지구 공략 작전 II' 참조) 지리적 위치상 먼저 공격을 받게 된 이스라엘은 3년 간을 결사 항전했으나 기원전 722년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되며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유다 왕국 역시 공격을 받아 46개 성을 빼앗기고 기원전 701년에는 수도 예루살렘마저 포위당하는데, 이때 여호와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한 말은 다음 같았다.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열왕기하 19:32-34)


    과연 그러하였으니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지 않았다.(여호와의 말과 달리 가열찬 공격은 있었지만) 그러나 아래 지도의 Puppet states and tributaries(꼭두각시 주 및 종속지역들)라고 표시된 지역을 보면 그 같은 신의 가호가 얼마나 옹색한가를 알 수 있다. 이후 유다왕국은 조공을 바치며 115년을 연명하나 결국 신흥제국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되고 만다.(* '성서 속의 UFO/선지자 에스겔이 만난 외계인' 참조)



    분열시대의 북이스라엘·남유다 왕국 및 주변 나라들


    이사야 시대의 앗시리아 영토(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오직 유다 왕국만 살아 남았다)



    또 아래의 부조를 주목해보자. 이 부조는 1847년 경, 앗시리아 고도(古都) 님루드 디글랏빌레셀 3세의 궁전 유적에서 발견된 것 중의 일부로, 그 시대적 상황 및 도시 이름에 새져진 U자의 흔적으로 볼 때 유다 왕국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는 앗시리아 군을 묘사한 부조로 추정된다.

     

    부조는 매우 세밀하여, 왼쪽으로는 사다리를 타고 성을 공격하는 앗시리아 군과 성 안에서 저항하는 유다 군 및 추락하는 병사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공성기 위에서 활을 쏘는 사수와 꼬챙이에 찔려 매달려진 시체, 아래 쪽으로는 부월수(도끼를 주무기로 쓰는 병사)가 적을 죽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브리티시 박물관 소장)

     

    이때 다급해진 유다 왕은 부자들에게 은(銀)을 강탈해 디글랏빌레셀에게 바쳤고,(열왕기하 15:19) 산헤립이 침공했을 때는 예루살렘 성전 곳간의 모든 은 및 성전 문짝의 금과 은을 다 떼 바쳤다.(열왕기하 18:15-16) 위의 호언과 달리 여호와의 무력함이 부각되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앗시리아의 예루살렘 공격 부조



    앗시리아 제국의 화려했던 과거가 전개되는 브리티시 박물관 앗시리아관 회랑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예수 탄생에서 언급되어지는 마태복음 2장의 임마누엘은 이사야서의 임마누엘과는 전혀 무관한 하늘의 천사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이사야는 세 아들의 이름을 모두 독특하게 지었는데, 그 첫째의 이름은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뜻의 스알야숩이었고, 둘째가 바로 '신이 우리와 같이 한다'는 뜻의 임마누엘, 그리고 셋째가 '노략품을 잽싸게 취하라'라는 마헬살랄하스바스였다.(첫째와 셋째의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는 유추해보기도 막연한 바, 그저 당사자만이 알 일이다)


    이상 살펴보았듯 구약의 임마누엘은 이사야가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천사의 이름을 제 아들에게 갖다붙인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따라서 그간 강조돼 온 '예수 탄생은 구약의 예언에의 실현' 운운의 것 등은 괜한 견강부회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성령에 의한 출생 운운하는 교계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감히 말하거니와, 끝까지 성령에 의한 출생을 고집하고 싶다면 성령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 제시와 함께(알레고리칼한 해석은 사양함) 천사 임마누엘과의 관계를 먼저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천사 임마누엘의 DNA 공여로 탄생한 예수는 열두살 무렵까지만 해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던 듯하니, 그것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유일한 어릴적 기록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먼저 그에 관한 전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누가복음 2:41-52)


    이상은 예수 12세 때,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에서 아들을 잃어버리고 난 후 생긴 사건으로, 예수의 어린 시절이 기록된 유일한 복음서 기록이다.


    * 성서 이외의 것으로는 도마복음이 있긴 하나 거기 등장하는 어린 예수의 기적은 공관복음서의 예수는 저리 가라인 바, 전혀 믿을 것이 못된다. 공관복음서에 보이는 예수 기적의 행적들이 어쩌면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도마복음의 저자가 예수의 제자 도마가 아님은 물론이다) 


    위 원문에서 보듯 예수 가족은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일을 기념해 열리는 예루살렘 유월절 행사에 참석했는데, 그 북새통에 아들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들 부모는 당황 속에서도, 자식이 어린 나이도 아니고 하니 일행과 함께 먼저 갔다보다 애써 위안한다. 그러면서 발바닥에 불이나도록 하룻길을 걸어 동행했던 자들을 만났으나 그곳에 예수는 없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부모는 사흘 동안이나 눈이 빠져라 아들을 찾아 헤메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 아들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랍비들과 둘러 앉아 고급진 이빨을 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선 기쁘고, 또한 놀랍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론 당연히 화가 났을 마리아가 예수를 다그쳤다.

    "네가 우째 여기 이러고 있는겨? 자, 봐! 니 아빠와 내가 얼마나 후달리며 널 찾아 댕겼는지 알아?"


    하지만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싸가지 그 자체였다.

    "왜요? 우째 절 찾으셨어요?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는 거, 그거 당연한 한 거 아녜요? 아니, 그것도 몰랐던 말예요?"


    부모는 이 자식이 시방 무슨 소리를 하고 자빠졌나, 금방 이해가 안 됐겠지만, 비록 싸가지는 없었어도 예수의 대답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는 제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의 피는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는 천상의 자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들 천상의 사람들이 머무는 이 집에(물론 자주 오지는 않고 게다가 요즘은 아예 발길을 끊은 듯하지만) 자식인 그가 찾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노릇이었다. 


    사실 어머니 그 내막을 잘 알고 있었던 바, 마음 같아서는 "그래? 아이고, 너 잘났다. 그럼 아예 거기서 눌러 살아, 임마!"하고 싶었겠지만 그저 속에 담아둘 도리밖에 없었다. 다만 그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는 말은 사실과는 벗어난 얘기인 듯하니, 이후 하나님은 방임하였고, 그도 점점 제 정체성을 잃어 갔다.



    예수가 방문했을 무렵의 예루살렘 시와 성전의 미니어처.


    지금의 예루살렘 시. 중앙 바위돔 사원이 있는 곳에 성전이 있었다고 보면 대충 과거의 모습과 비슷하다.



    따라서 그는 30세 무렵 다른 사람들에 묻혀 덩달아 세례를 받을 때까지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으며,(오히려 세례자 요한은 그를 알아보았던 바, 크게 황송해 하며 당황한다/마태복음 3:13-14) 세례를 받은 후 하늘이 열린 듯 갑자기 나타난 UFO로부터의 소리를 들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마태복음 3:13-14)


    이후 예수는 UFO로부터의 명령에 이끌려 사해 인근의 광야로 가게 되고, 거기서 40일 간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또 이때 그는, 때는 찬스다 하고 나타난 외계의 악마(여호와의 적) 사탄의 시험을 겪게 된다. 사탄은 예수 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아니 하는지, 즉 여호와의 예수 보호에의 의지를 시험해보려고 하도(당연히 예수의 마음을 흔들 요량으로), 또 아래와 같은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예수를 회유해보려고도 한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태복음 4:8-9)


    * 이 마태복음의 내용은 성서에서 말하는 악마가 어떤 존재인지, 아울러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추론할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그외는 사탄의 정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된 대목이 없기에.




    '시험 산' 전경

    사탄이 예수를 유혹했다는 예리코 '시험 산'의 사진을 다시 한 장 올렸다. 물론 이 장소는 추정되는 곳이다.



    하지만 예수가 강력한 거부 의사를 표함함에 따라 결국 사탄은 물러가고, 이같은 시험들을 이겨낸 그를 천사들이 나와 에스코트하며 격려한다. 그후의 일들, 즉 이상의 일들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회복한 예수가 마을로 돌아와 난데없는 잘난 체를 해댄 일, 그리고 그렇게 껍적대다 낭떠러지로 끌려가 죽을 뻔 한 일 등은 앞서 '방황하는 예수(I)'에서 자세히 밝힌 바 있다.


    성서의 순서에 상관 없이 그 중의 몇 패러그래프를 옮겨보기로 하겠다.


    광야에서 돌아온 예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제 고향 나자렛의 회당(유대교 교회)에 가서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한 것인데, 이때 보인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이러하였다.


    예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마태복음 13:55-57) 


    이같은 나자렛 사람들의 얘기인즉 예수가 그 전에는, 즉 서른 살쯤 전에는 이 같은 능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즉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머물기 전에는 그저 보통의 마을 사람, 그리고 위에 열거된 형제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얘기다.(비범을 숨긴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예수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누가복음 4:24-27)

     

    요지인즉, 너희가 구원을 받으려면 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 없는 말에 화가 난 마을 사람들은 예수를 회당 밖으로 쫓아내고 동네 야산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리려고 하는데, 이때 그들이 그 일로 예수를 죽이려 했음은 그가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매우 신뢰 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인물이었음을 증언한다.


    사실 예수가 그 마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젖먹이 때부터 자랐고 이후 서른 무렵까지 거의 30년을 함께 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꼭 사이좋게 지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웬만해서는 절대 끌고가 죽이려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그저, '이놈이 나갔다 오더니 좀 돌았나?'하는 정도였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 예수는 제 고향에서의 사역을 포기하고 멀리 갈길리 가버나움으로 떠난다. 어찌됐든, 이제 바야흐로 본격적인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됨인데, 순서에 따르자면 이제 나 역시 그 발자국을 따라 내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그를 추적해봐야 겠지만, 그전에 위에서 언급되어진 예수 아버지의 집 예루살렘 성전을 한번 고찰해보려 한다. 위 글을 쓰다 그곳 예루살렘 성전이 UFO를 대신해 지어졌다는 열왕기의 한 대목을 발견한 까닭이다.



    예수가 활동했던 당시의 가버나움 유적

    앞에 보이는 호수가 갈릴리 바다이고, 가운데 건물은 당대에 사용됐던 유대교 회당이다. 왼쪽의 UFO처럼 생긴 건물이 베드로 생가(추정)에 지어졌다는 베드로 기념교회로, 지금은 이 일대가 '가버나움 예수타운'이란 이름의 관광지가 되었다. 예수 이후, 지진으로 무너지고 아랍인에 훼손돼 매몰되어진 것을 1838년 미국의 탐험가 에드워드 로빈슨이 처음 발굴했다.

    가버나움 유적지의 베드로 기념교회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건물 내부 가운데가 강화유리로 돼 있어 아래 베드로의 집을 내려볼 수 있다고 한다. 베드로 집의 진위 여부를 넘어 거기서 기도하면 진짜 실감 날 것 같다. 실제로 예배도 본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교인데 집전은 누가 담당하는가 물었더니 그건 잘 모르겠단다. - -;;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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