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세를 통한 외계인의 지구 공략 작전- 모세의 출생(II)성서와 UFO 2019. 2. 18. 13:26
1840년 이라크 모술(수도 바그다드 서북쪽 약 400Km 지점에 위치)에 프랑스 영사관이 세워졌다. 모술은 역대로 페르시아와 터키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바, 이 지역의 중요성을 간파한 프랑스가 발 빠른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당시 일대를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는데, 그후 곧 이 지역의 역사적 독자성의 찾기 위한(그래서 프랑스의 침략 명분을 마련하기 위한) 모술 영사 폴 에멜 보타의 대대적인 발굴이 시작됐다.
그 3년 후인 1843년 5월, 보타는 모술 인근의 코르사바드에서 마침내 고대도시의 유적을 찾아냈고, 프랑스의 각 신문들은 앞다투어 이 사실을 보도했다. 니네베(니느웨)로 추정되는 성서의 고대 도시가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타는 전문 고고학자가 아니었던 바, 더 이상의 연구는 진행되지 못했고, 이 고대 도시가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였다는 사실은 1846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고고학자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Austen Henry Layard)의 7년 발굴의 결과로 밝혀지게 되었다.
사르곤 왕의 청동 두상
에밀 보타가 발굴핬으나 보타는 이 두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에밀 보타의 라마수 발굴 광경
라마수는 사람의 얼굴에 황소의 몸과 새의 날개를 가진 왕궁의 수호신으로 앗시리아 제국의 지표유물이다.
라마수 상과 길가메시 상
루브르 박물관 앗시리아관을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유명한 조각품이나 그 앞에서 사진 찍고 있는 여자가 더 조각 같다. 마치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비현실적인 인체 조각상을 보는 듯하다.
앗시리아(앗수르) 제국은 성서에서 무려 132회나 표기된 역사의 강국이었고, 수도 니네베도 20회가 표기됐는데, 요나서(3:3)의 기록을 보면 걸어 통과하는 데만 3일이 소요되는 큰 성이었다. 이 니네베 성을 발견한 사람 역시 레이어드로, 그는 님루드 언덕 지하 6m 지점에서 길이 13km, 높이 60m에 마차 3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두께를 가진 거대한 성벽의 유적을 찾아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세상을 경악시킨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1849년 래썸(H. Rassam)이 발굴한 니네베 대도서관의 유적으로서, 그곳에서 출토된 수만 점의 설형문자 점토판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획기적 전환시켰는데, 결정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의 역사가 이제껏 알려진 인류 최고의 문명 이집트에 앞선다는 인식의 전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 토판이 발견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레이어드가 발굴한 니네베 성벽
복원된 성문
레이어드의 발굴을 바탕으로 그린 니네베 성
레이어드의 라마수 상 발굴 광경을 그린 그림
브리티시 박물관 앗시리아관 입구의 라마수 상
대영제국의 산물인 브리티시 박물관은 앗시리아의 유물들을 그야말로 닥치는대로 긁어 모았다. 그리하여 지금은 문자 그대로 보물창고가 되었던 바, 인터넷으로 검색 가능한 유물만도 1,106개에 이른다.
길가메시 서사시 중 대홍수의 기록이 새겨진 토판
브리티시 박물관의 사서 조지 스미스가 그 내용을 판독했다.(브리티시 박물관 소장)
사르곤 1세 때의 앗시리아 영토(BC 1850년경)
앗시리아 제국의 최대 영토와 니네베의 위치
현대의 장갑차처럼 생긴 앗시리아 공성기(브리티시 박물관 소장 부조)
앗시리아가 자랑하던 전차부대. 앗시리아는 이 전차부대를 앞세워 오리엔트 세계를 1000년 이상 지배했다.(브리티시 박물관 소장 부조)
그 유명한 빈사의 사자상(브리티시 박물관 소장 부조)
살마네셀 3세의 블랙 오벨리스크
1845년 레이어드가 모술 남부에서 발견한 완전한 형태의 앗시리아 오벨리스크로, 높이 180cm의 이 돌에는 살마네셀 3세(BC 859-824)의 승전과 이스라엘 왕국의 조공 기록이 새겨져 있다.(브리티시 박물관 소장)
이 도서관은 앗시리아 제국 앗슈르바니팔 왕(BC 669-626)이 세운 것으로, 이곳에서 쏟아진 3만 개 이상의 고대 기록 파편들은 한편으로는 유럽 사람들을 딜레머에 빠뜨렸다. 앞서 말한 길가메쉬 서사시 토판에 기록된 대홍수의 기록도 그러했지만, 또 다른 토판에 기록된 고대 앗시리아 왕 사르곤 1세의 출생 설화 역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거기에 써 있는 사르곤 왕의 출생 설화가 출애급기 2장에 기록된 모세 출생과 너무도 닮아 있는 까닭이었다. 게다가 토판 기록은 누가 봐도 성서의 기록에 앞선 것이었다.
발굴된 니네베 도서관 유적.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왕립도서관의 서가이다.
사르곤 왕의 출생 설화가 적힌 토판(브리티시 박물관 소장)
니네베 도서관 출토 토판(브리티시 박물관)
문학, 의학, 과학, 역사, 행정과 법률에 관한 기록, 편지 등 다양한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모술에 재건된 앗슈르바니팔 왕의 도서관
앗슈르바니팔 왕의 사냥 장면을 묘사한 부조(브리티시 박물관 소장)
우선 성서에 기록된 모세의 출생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 그러므로 바로(파라오)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레위(고대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을 역임하던 족속)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출애급기 1:22/2:1-10)
사르곤 1세 토판 내용이 위 출애급기의 기록과 다른 것이라곤,
1. 어머니가 (레위 여자가 아닌) 신전의 여사제임.
2. 아기가 버려진 곳이 (나일 강이 아닌) 유프라테스 강임.
3. 아이를 건져낸 사람이 시녀가 아닌 아키(Aqqi)라는 인물이며, 기른 사람은 (파라오의 딸이 아닌) 이쉬타르(Ishtar) 여신임.
위 3개 뿐이다. 게다가 출애급기의 내용은 개연성도 떨어지며 때로는 사실성이 아예 없다.
1. 모세의 생모가 레위 가문이라는 것은 사르곤 왕 설화의 여사제 신분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함.
2. 갈대 상자에 바른 역청(bitumen)은 석유 산지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는 흔한 것이지만, 나일 강 유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음.(게다가 나일 강물은 진흙 토사가 많아 강물에서의 목욕 관습은 옛날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함)
3. 출애급기에서는 유기된 아기가 히브리인이라는 데 대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밑도끝도 없이 아기가 히브리 사람이라고 들이댐(그냥 사르곤 왕의 설화를 베끼다 보니)
4. '아기 이름을 모세라 한 것은 아기가 물에서 건져낸 때문'이란 문장은 어불성설임.(히브리어에 '물에서 건지다'라는 뜻을 가진 모쉐·Mosche라는 낱말이 있기는 하나, 왕녀인 양어머니가 당시 노예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아기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말이 안되며, 왕녀가 히브리어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전무함)
이상의 요약인즉, 출애급기에 실린 모세 출생에 관한 스토리가 사르곤 왕의 출생 설화의 카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찌기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가 지적한 적이 있으며(* 요세푸스에 대해서는 '예수의 정체에 관한 4가지 질문 I'/'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 II' 참조), 초대 기독교 교부 유스티아누스 역시 그 점에 대해 지적했다.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역청
일대의 흔한 역청은 지구라트를 비롯한 벽돌 건축물의 접착재와 방수재로 쓰였다. 노아의 방주에도 이 역청이 사용됐다.(창세기 6:14)
우르 지구라트에 사용된 역청의 흔적. 바벨탑의 건립에도 이같은 역청이 몰탈로 사용됐다.(창세기 11:3)
출애급기에 실린 모세 출생에 관한 스토리가 허구임은 이제 명백해졌다. 다음은 '그렇다면 모세는 과연 누구의 자식인가'를 밝혀야겠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를 추정할만한 자료는 전혀 전해지는 게 없는 바, 앞에서 말한 그대로 그 이름으로써 신분을 짐작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모세의 전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사도행전 7장에서도 그 출생에 있어는 출애급기의 내용을 답습한다)
그렇게 보자면 모세는 본래 히브리인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집트인일 수도 있고, 일대에 많이 살았던 미디안인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물론 히브리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가 어느 민족 출신인가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한 일도 아닐 터, 외계인 여호와에게 중요했던 것은 제 고향 가나안 땅을 떠나 이집트 등지에 이주해 살고 있는 히브리 민족들을 규합할 지도자를 세우는 일이었다. 여호와가 지구 지배의 목적으로 만들어내고 지금까지 어렵게 이끌었던 제 종족의 후예들이* (여호와가 잠시 관심을 놓은 동안) 지금은 타국 땅에서 지리멸렬의 상태에 놓여진 바, 그들을 규합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되돌리게 만든 뛰어난 영도자가 필요할 뿐이었다.
* 아담이 외계인의 체세포 복제로 만들어진 인간이고, 그 아담의 후손들이 곧 아브라함의 후손인 지금의 히브리인들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밝혔고, 또 성서에도 누차에 걸쳐 서술돼지고 강조돼 있는 바, 이에 대해 설명은 앞으로도 계속 하지 않을 예정이다.
말해자면 외계인 여호와가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영도자를 세운 것은 지구 지배 연장 계획의 일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는 야곱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손을 놓았던 지구 경영을 다시 시작하려 했으나 자신들의 직접 통치가 통했던 창세기 시절과 달리 세상은 변했던 바, 이번에는 이른바 선지자들을 앞세운 간접통치 방식으로 전환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외계인의 지배 방식은 다음 3가지로 대별된다.
1. 창세기 시절의 직접 통치 방식(①그들이 최초로 지구를 발견했을 당시. ②1만 년 전 빙하기가 물러나고 그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부터 노아의 시대까지)
2. 족장이나 영도자, 혹은 선지자를 내세운 간접통치 방식(①아브라함부터 야곱까지. ②모세로부터 말라기 시대까지)
3. 예수라는 인물을 통한 종교적 통치 방식
수라는 인물을 통한 종교적(사상적) 통치 방식
앞서도 말했지만, 통치 방식이 달라진 이 각각의 시기 사이에는 500년 이상의 간격, 즉 지구의 역사에 불간섭하던 시기가 나타나는데, 이는 바로 여호와의 고민을 나타낸다. 흡사 계륵과도 같은 지구를 계속 관리할 것이냐, 과감히 포기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유인 행성인지라 계속 통치 방식을 달리 하며 지구 역사에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그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한 대로 부분적 단절이 있긴 했지만 여호와의 통치는 외계인이 지구를 발견한 이래로 지속돼 왔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니, 그것은 다름아닌 여호와의 영생이다. 그들이 두번 째로 지구 통치를 시작한 1만 년 전부터 예수 시대까지만 헤아려보아도 여호와의 나이는 1만 1천 살 정도 된다. 성서 속에서는 아담과 하와를 만들 시절의 여호와가 예수 시대까지 애오라지 유일신 하나님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외계인의 두번 째 지구 통치에 관해서는 본인의 책 첫 번째 챕터인 '하나님의 1차 실패와 2차 경영―창세기의 1장과 2장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에서 자세히 다뤘다)
무지 안 팔리는 본인의 책(그래도 간간히 나가줘서 아직 절판은 안 됐다 --;;)
그렇다면 반드시 짚고 넘아가야 할 것이 있다. 여호와는 영생하는가, 즉 외계인은 영생의 방법을 찾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앞서 체세포 복제 방식의 인간 탄생을 말하면서,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한 영생을 거론한 바 있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그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럴 리는(창세기의 여호와가 예수 시대의 여호와일 리는) 없어보이니 아무리 오래 살기를 희망한다 해도 삼천갑자(18만 년) 동방삭과 같은 삶은 지겨워서라도 포기할 듯싶다.
다시 말하자면 창세기의 여호와와 예수 시대의 여호와는 분명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여호와는 어느 특정인을 지칭하는 호칭이 아니라 지구 통치를 담당하는 외계인의 직책을 지칭함이니, 이에 대한 증거는 성서의 곳곳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직책은 상황에 맞춰 야웨(Yahweh), 엘(El), 엘로힘(Elohim) 엘리온(Elyon), 아도나이(Adonai), 샤다이(Shadai), 엘 샤다이(El Shadai) 등으로 조금씩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이상은 모두 성서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이름으로서, 지금 다루고 있는 출애급기의 시절의 여호와의 이름은 '엘 샤다이'다. 출애급기 6:3)
이에 다음 회에는 출애급기 시절의 여호와 '엘 샤다이'가 벌이는 지구 공략 작전을 입체감 있게 펼쳐 보이려 한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와 UF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는 왜 모세를 죽이려 했을까? (2) 2019.02.21 새로운 여호와 알 샤다이의 출현 (0) 2019.02.20 모세를 통한 외계인의 지구 공략 작전- 모세의 출생(I) (0) 2019.02.16 UFO가 개입됐던 기브온 전투 (2) 2019.02.09 여호수아의 아이(Ai) 대학살 (1) 2019.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