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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II)
    성서와 UFO 2018. 12. 3. 16:35


    지난 2007년 이스라엘에서 유다 왕 헤롯의 무덤이 발견됐다. 건축광이었던 그가 궁궐 겸 요새로 만든 예루살렘 남쪽의 헤로디움에서였는데, 헤브라이 대학 고고학 팀의 30년 발굴의 결과였다. 헤롯의 무덤은 AD 66년과 70년에 걸쳐 일어났던 유대인의 1차 반란 당시 이곳으로 피신했던 유대인들에 철저히 파괴되었고, 헤로디움 역시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었으므로 부숴진 채로라도 그의 관이 발견된 것은 거의 천운이라 할 만했다.

     



    헤롯왕의 관



    헤로디움 요새와 궁궐 유적


    구글 맵에서 본 헤로디움(화살표 위치가 관이 발견된 곳) 


    유대인의 최후 항쟁 마사다 전투(AD 72-74)가 벌어진 마사다 요새

    유명한 이곳 역시 헤롯왕의 작품으로 그는 이 천혜의 지형에 성벽을 두르고 궁궐을 지어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다.



    헤롯(BC 73?-4)은 예수의 탄생 시기에 유다 지역의 왕이었던 인물로 흔히 헤롯대왕(Herod the Great)으로 불린다. 그에게 대왕이란 호칭이 붙은 이유는 그가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치한 까닭도 있겠지만, 재위 시절 절대권력을 휘둘렀다는 점에 기인할 할 것이다. 그는 로마제국에 속한 일개 속국의 왕(분봉왕/Tetrarch)임에도 황제의 신임 속에 호가호위했던 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그는 본시 유다 사람이 아닌 남쪽 에돔(이두메아) 출신의 외국인으로, 처음에는 단지 로마 원로원에 의해 임명된 지방행정관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후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며 중앙정부로부터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하였고, 결정적으로는 악티움 해전*에서의 선택이 분봉왕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싸움에서 처음에 복종했던 안토니우스를 변절하고 옥타비아누스에 돌아섬으로써 명실공히 ‘유다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기원전 31년, 그리스 서북부 악티움 앞바다에서 벌어진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과 옥타비아누스 군(軍)과의 해전. 이 싸움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함으로써 공화정이 끝나고 제정(帝政) 로마가 시작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클레오파트라의 최후' 참조)




    헤롯왕의 조각상과 로마 2차 삼두정치에서의 영토 분할 지도(BC 43-31)

    가운데 붉은색은 옥타비아누스, 히스파니아와 아프리카 북안의 녹색은 레피두스, 오른쪽 파란색 지역은 안토니우스가 차지하였다. 헤롯은 팔레스타인 지방의 지방관이었으므로 당연히 안토니우스 군에 속하게 되었으나 안토니우스를 배신하고 옥타비아누스를 도움으로써 훗날 황제(아우구스투스)가 된 옥타비아누스의 절대적 지지를 받게 된다.



    헤롯은 이후 30년간을 흔들림 없는 유다의 제 1인자로서의 위치를 지켜왔다. 하지만 그는 유다 왕조인 하스몬 왕가의 자리를 찬탈하여 왕이 되었고, 게다가 유대인인 아닌 변방 이민족 출신의 왕이었므로 정통성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헤롯에게 있어 일종의 아킬레스 건이었는데, 그 재위 말년 멀리 동방(파르티아 제국)에서 온 낯선 이방인 학자들로부터 깜짝 놀랄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이 다스리는 유다 땅에서 유대인의 왕이 될 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그 내용을 다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들이 그렇게 기록하였으므로.....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도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약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마태복음 2:1-12) 



    예수 탄생 때 뜬 '베들레헴의 별'과 그 별을 보고 멀리 만리타국에서 찾아 온 학자들(이른바 동방박사들)에 대해서는 이미 '과학으로 본 베들레헴 별의 정체''예수 탄생 때 출현한 베들레헴 상공의 UFO'에서 자세한 설명을 마쳤으므로 재론하지 않겠다. 그들이 헤롯의 부탁을 뒤로 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진짜 이유 역시 같은 챕터에게 거론하였으므로 부연하지 않겠으나, 당시 헤롯이 동방박사들이 전해준 깜놀 뉴스에 적잖이 추위를 탄 사실 만큼은 여기서 재삼 강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아기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으로부터의 소식을 학수고대하던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돌아오지 않자 결국 제 스스로 아기를 찾아 죽이기로 마음 먹는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무지막지하였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마태복음 2:16)



    하지만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을 한 까닭에 화를 면할 수 있었는데,(마태복음 2:13-15) 문제는 이와 같은 유아 학살이 과연 가능한 일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의 내용은 예수를 차별화시키기 위한 설정, 즉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와 거짓말에 대한 증명은 아래와 같다. 


    1. 아무리 로마 황제의 신임이 두터운 헤롯이라 할지라도 언필칭 법의 나라인 로마에서 이 같은 극악무도한 유아 집단 학살극을 감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이는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불가능하다)  


    지오토 디 본도네가 그린 '죄 없는학살' 



    2. 말년에 피부병으로 고생한 사실 등, 헤롯에 관한 세세한 기록을 남겼던 역사가 요세푸스의 어떤 저작에서도 헤롯이 유아를 집단 학살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이 같은 대사건이 누락되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1619년 판) 

    마사다 전투와 같은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헤롯왕 재위 말년, 심한 피부 질환으로 성기가 썪어 구더기까지 나왔다는 시시콜콜한 기록까지 담았다.  



    3. 마태복음의 저자는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그 전후에 태어난 아기까지 다 죽였음을(그렇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살아났음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예수와 요한(훗날의 세례자 요한/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남)만이 살고 나머지 아기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설정은 너무도 비인도적이다.


    역사의 기록에서 이와 같은 충격적 대사건에 관한 기록이 누락돼 있음도 마태복음의 내용이 의심받아야 할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위의 아기 학살은 종교 텍스트에는 절대 오를 수 없는, 아니 올라서는 안 되는 내용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서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을 터, 그 아기들에게는 대체 무슨 죄가 있어 그같은 화를 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저 죄라면 예수와 비슷한 시기에 인근 장소에서 태어났다는 것인데, 만일 그것이 원인이라면 그 원인제공자는 예수를 그때 그 장소에 태어나게 한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것을 변명하고 의미를 축소시키고자 함인지 국내에서 출간된 한 성서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살해된 아이들의 수는 수천 명으로 과장되기도 하지만 당시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었기에 실제로 죽은 아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고 이것은 잔인한 행동이었다."(고고학 성경)


    죽은 아기의 수가 많든 적든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소위 성령으로 태어난 제 자식과, 제 자식의 앞길을 열기 위해 탄생시킨 자(세례자 요한/누가복음 1:1-80, 마태복음 3:1-12, 요한복음 1:1-28)는 살리고 나머지 아기들의 죽음은 방관한 여호와의 행위 자체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위 마태복음 2장 16절의 대학살령이 사실이라면 기독교의 신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잔인하기조차 하다. 


    그리고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성서는 더욱 가치없는 책이 되고 마는 바, 그런 엉터리 같은 내용을 써 놓고 예수를 믿으라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허구를 담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신은 살고 나머지 아기들은 그로 인해 모두 죽임을 당하는 그런 잔인성을 아무렇지 않게 기술하고 있는 경전이라는 얘기다. 


    이같은 극단적 이기주의..... UFO의 발견보다도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기독교를 저버린 이유이다. (* '들어가기 - 나의 UFO 목격담' 참조)



     * 성서에는 기록돼 있지 않지만, 예루살렘의 남서쪽 도시 아인카렘에는 아기 요한(훗날의 세례자 요한)이 탄생한 곳에 세워졌다는 성 요한 교회가 있다. 그리고 그 교회에는 헤롯의 대학살령을 피해 아기 요한을 안고 도망가던 엘리사벳이 막다른 바위 앞에서 기도하자 기적처럼 갈라져 숨을 수 있었다는 바로 그 바위가 모셔져 있다. 그렇지만 예수와 요한 외 나머지 아기들은 다 죽었다. 구전되는 바에 의하면 요셉 부부는 지금의 가자 지구를 거쳐 멀리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근방의 펠루시움이라는 곳까지 도망갔다 한다.  




    성 요한 교회와  요한이 숨었다는 '기적의 바위'


    르네상스 시대,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이집트로 몸을 피하는 성 가족(st. family)' 

    그외에도 이집트로 피신하는 요셉 부부의 일화는 역대 화가들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이상의 편향성을 지적한 나의 물음에 과거 어떤 목사님이 이르시길,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 즉 우리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아기들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예수의 죽음, 이른바 '거룩한 대속'으로 인류가 구원됐다고 하는 것이 기독사상이므로) 말하자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켰다는 것인데, 내가 들어 본 말 중 가장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그러면서 헤롯의 대학살령으로 죽은 그 아기들은 모두 천당에 갔을 것이라던데, 나 참, 이게 정말 말인지 막걸리인지.....  


    * '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III)'로 이어짐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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