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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I)성서와 UFO 2018. 12. 3. 16:34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가'에 대한 설명은 아무래도 BC와 AD로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BC와 AD는 편년체 역사 서술에서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는 라틴어 약어 표기법이다. 조금 자세히 말하자면 BC는 'Before Christ'(비포 크리스트) 즉 '예수 탄생 전', AD는 'Anno Domoni'(아노 도미니) 즉 '주(님)의 해'로, 인류의 모든 역사가 예수의 탄생 전후로 나뉜다는 기독교적 사고가 물씬한 연대 표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표기법을 처음 쓴 사람은 6세기 로마의 수도원장이자 스콜라 철학자였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로 알려져 있는데, 그때가 중세 기독교의 극성기이니 딴은 그 같은 표기법도 이해가 갈 일이다.(디오니시우스의 의도는 예수 탄생 전인 'Before Christ'는 역사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465-530)의 조각상
BC와 AD의 Timeline
BC와 AD의 기준 연도는 당연히 예수가 태어난 기원 1년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기원 1년에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제는 그 사실을 세상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BC와 AD는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천 여년 간 사용한 역사의 연대를 이제와서 바로 잡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저 기원 1년에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뿐 예수의 탄생 연도를 밝혀낸 것도 아니다.(물론 예수의 탄생 연도가 밝혀진다 해서 BC와 AD의 모든 연대기가 바뀌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 예수 탄생 연도에 대한 문제는 예수 탄생 때 뜬 '베들레헴의 별'과 함께 여지껏 우리 인류가 풀지 못한 커다란 수수께끼이다. 성서의 기록에 따르자면 예수는 33년 정도를 살다 간 것 같으나 태어난 해를 모르니 죽은 해 또한 짐작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백과사전에서도 예수의 탄생 연도는 제각각인데, BC 4~6년이 일반적이지만 혹간 AD 16년이라 적혀 있는 백과사전도 있다. 학자들에 따라 물경 10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예수의 정체에 관한 4가지 질문'에서 말했듯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성서 이외에서 기록에서 예수의 존재를 확인하기란 극히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 예수라는 인물은 역사로 편입됐고 게다가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남았다.(당연히 종교의 힘이다) 그럼에도 그 위대한 인물의 탄생 연도는 막연하니, 이는 마치 '위대한 인물의 죽음만 뉴스화하지 말고 탄생도 알려주자'는 시중의 썰렁 개그와도 별반 다름이 없다.
이렇듯 예수의 탄생 연도가 제멋대로인 것은 학자들이 성서를 제멋대로 해석한 때문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성서에 기록된 예수 탄생에 관한 기록이 온통 오류 투성이라는 데 있다. 오늘 살피고자 하는 그 문제의 성서 기록은 다음과 같다.(재차 말하거니와 예수의 탄생과 생애에 관한 기록은 오직 종교서인 성서에만 실려 있다)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퀴리니우스)가 수리아(시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복음 2:1-7)
이상은 성서에 언급된 예수 탄생 시기에 관한 유일한 기록의 전문이다. 그 요지인즉,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인구조사령을 내렸고, 그 바람에 요셉과 그의 정혼자인 마리아도 남편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해 갔는데, 마침 인구 조사령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여관이 만원이었으므로 궁여지책으로 마굿간에서 출산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학자들이 예수의 탄생 연도의 근거로 삼은 것은 '그때에 가이사 아우구스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다'는,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인구조사령, 이른바 켄수스(Census)이다.(라틴어 켄수스는 오늘날의 인구조사를 뜻하는 센서스의 어원이 된다)우리에게 익숙한 아우구스투스(재위 BC 27-AD 14)의 조각상
역사적으로 볼 때 아우구스투스가 집정관일 때를 포함하여 그의 치세에 인구조사가 실시된 것은 다음의 세 차례이다
1. 옥타비이누스(훗날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아그립파가 집정관이었던 BC 28년.
2. 가이우스 켄솔리누스와 가이우스 아시니우스가 집정관이었던 BC 8년.
3.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가 집정관이었던 AD 14년.
* 로마시대에는 현대에서와 같은 편년체 역사 기술이 없었으므로 '누구 누구가 집정관이었던 해'라는 식으로 역사 기술을 했다. 어떤 사건이 어느 집정관의 통치 시절에 있어났는가를 기록한, 이른바 '집정관 연대 산정법'의 역사 서술이다.
따라서 예수의 탄생 연도는 위 3개 중 하나를 골라 유추해봐야 겠지만 이중 BC 28년은 일찌감치 배제되었다. BC 28년을 받아들이면 예수와 얽힌 헤롯왕가의 일화라든가, 티베리우스 황제 15년에의 요한의 세례와 즈음하여 시작된 예수의 공생애, 그리고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은 예수의 이야기 등은 모두 헛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역대 학자들은 BC 28년을 제외한 BC 8년과 AD 14년을 두고 갑론을박했는데, 그 논쟁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백과사전에서 BC 4~6년이 기록된 것이나 AD 16년이 거론되는 것은 황제의 인구조사령이 로마제국의 극동 변방 지역인 유다 땅까지 도달되어 시행되기까지는 2년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가정이 전제됐다)
아우구스투스 치세의 로마제국 영토. 인구조사령이 수도 로마로부터 변방인 유대까지 하달돼 시행되는 데 2년 쯤의 시간이 소요될 듯도 보인다.
하지만 BC 8년과 AD 14년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아우구스투스의 인구조사령은 수리아 총독 구레뇨(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의 재임기간과 충돌한다. 역사에서 말하고 있는 퀴리니우스(Publius Sulpicius Quirinius)의 시리아 총독 재임기간은 AD 4~7년인 까닭이다.(당대의 시리아 총독은 유다와 시리아 지방 및 터키 남부 킬리키아 지방을 관할하였다)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역대 학자들이 내세운 합리성의 이론들은 다음과 같다.
1. 누가복음의 저자는 당대의 총독 퀸틸리우스(Publius Quintilius Varus, 재임 BC 6~4)와 후대의 총독 퀴리니우스(재임 AD 4~7년)의 이름을 혼동했을 것이다.(따라서 BC 6~4년의 예수 탄생 연도는 옳다)
*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이론이다.
2. 퀴리니우스가 AD 4~7년에 시리아 총독으로 재임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전(시기는 불분명하지만)에도 시리아 총독을 지냈을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그때에 인구조사를 했는데, 이는 AD 6년에 시행한 인구조사와 다른 것이다.(말하자면 퀴리니우스는 시리아 총독을 두 번 역임했으며 총독이던 BC 시대의 어느 시점과 AD 6년, 두 번 인구조사를 했다는 것)
* 이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삼는 것이 위의 라피스 티부르티누스(Lapis Tiburtinus) 비문이다. 이 비문은 1764년 로마에서 발견됐는데, 비문에 퀴리니우스의 이름은 명시돼 있지 않지만 그라고 간주할 만한 내용들이 적혀 있다. 학자들이 위의 내용을 주장하는 근거는 비문의 '그가 시리아로 가서 두 번 째 총독(레카투스)이 되었다'는 내용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 번 째'가 시리아 총독을 두 번 지낸 것인지 다른 지방의 총독을 지내다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물론 첫 번째 총독 시절 인구조사를 했다는 말도 없다) 한 마디로 근거라 박약한 증거라 할 수 있다.
3. '그때에 가이사 아우구스(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호적은 구레뇨(퀴리니우스)가 수리아(시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 처음 한 것이라'는 성서의 내용을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인구조사령이 퀴리니우스가 총독 시절 행한 인구조사보다 먼저 행해진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 위 사진은 문제의 인물 푸블리우스 술피시우스 퀴리니우스의 조각상과 그가 행한 AD 6년의 인구조사 기록편이다. 이외에도 AD 6년의 인구조사령은 여러 기록으로 남아 분명하며 그가 시리아 총독을 지낸 사실은 요세푸스의 '유대인고대사'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그가 과연 예수 탄생 때의 시리아 총독이었는가 하는 것인데, 위의 학자들의 해석은 아무래도 억지춘양이다.(그럼에도 이 독특한 헬라어 번역은 많은 신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4. 퀴리니우스는 헤롯의 사망 전 시리아 총독을 지냈던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재임 BC 8~6)와 시리아 지방을 공동통치하던, 말하자면 부총독 격의 인물로서 이후 시리아의 정식 총독이 되었다. 당대 시리아의 2인 통치 체제는 요세푸스의 '유대인고대사' 등으로 증명할 수 있다.
* 위 사진은 로마 시대의 역사가였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AD 37-100년 경)의 조각상으로 그가 저술한 '유대고대사'와 '유대 전쟁사'는 예수의 존재 증명과 탄생에 관련한 더없는 간접자료로 활용된다. 그렇지만 위의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인용한 내용은 억측에 가깝다.
5. 누가복음의 인구조사는 퀴리니우스의 통치 기간이 아니라 사투르니누스 총독 시절에 있었다. 즉 인구조사는 역사서에 기록된 대로 가이우스 켄솔리누스와 가이우스 아시니우스가 집정관이었던 BC 8년에 실시됐는데, 변방인 유대 지방에는 BC 6년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누가복음의 퀴리니우스 운운의 기록은 변조된 것이다.
*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터툴리아누스(약 160-225)로 그가 초기 기독교의 확립에 공헌한 바는 지대하나 위 이론만큼은 큰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살펴본대로 이상 학자들의 이론들은 예수의 탄생 시기를 어떡해든 BC 6년에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야만 역사와 성서의 기록이 조화를 이루게 되기 때문에 여러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이었다. 이상의 내용을 뭉퉁그려 말하자면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에 관한 기록은 한마디로 '믿을 바가 못된다'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학자들이 무리수를 둔 이유는 의외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의 인구조사에 있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누가복음 기록의 시대적 불일치를 해결하려든 것처럼 보이지만 저변에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헤롯대왕의 사망 시기와 예수 탄생 시기를 연결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이었다.(시기 모호한 인구조사령과는 달리 헤롯의 사망 시기는 매우 명확하므로)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의 통치자 헤롯대왕..... 로마에 의해 유다 지방의 분봉왕이 된 폭군 헤롯은 재위 말년 예수의 탄생에 즈음해 출현한 베들레헴의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을 만난다. 그래서 무언가 조짐을 가장 먼저 체득한 그는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두살 이하 아기들에 대한 학살령을 내리게 된다. 이에 이집트로 피신했던 요셉 부부는 그의 사후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 바,(마태복음 2장) 그의 사망 시기와 요셉 부부의 동선을 맞춘다면 예수의 탄생에 관한 정황 단서(contextual clues)를 보다 정확히 추론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헤롯대왕이 죽은 해가 바로 BC 4년으로,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헤롯의 죽음이 BC 4년 월식 후 유월절 전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천문학적으로 보면 헤롯의 사망 시기는 더욱 명확하니 그는 BC 4년 3월 말이나 4월 초에 죽었다.(월식은 3월 12일과 13일 사이에 있었고 그해 유월절은 4월 11일에 시작됐으므로) 다시 말하거니와 그간의 학자들의 노력은 이 명확한 시기와 예수의 탄생 시기를 꿰맞추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그 마태복음의 기록은 과연 믿을만한 것이었을까?
* '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II)'로 이어짐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 국내도서
- 저자 : 김기백
-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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