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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III)성서와 UFO 2018. 12. 3. 16:35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 적시된 사실이지만, 예수 탄생이라는 한 사건을 두고 성서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자는 서로 딴소리를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자면 과연 어느 누구의 말이 옳은지 도통 헛갈린다. 오늘은 그에 관한 진실을 들여다보려 하는데, 이에 앞서 신구약에 대한 개관을 약술해 보기로 하겠다.
기독교의 정경으로 쓰이는 책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조금 깊이 있게 말하자면 구약성서(Old Testament)의 원어(原語) 격인 라틴어 '베투스 테스타멘툼(Vetus Testamentum)'은 ‘인간과 맺은 신의 계약’을 의미하며, 신약성서(New Testament)의 '노붐 테스타멘툼(Novum Testamentum)'은 ‘인간과 맺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약’을 의미한다. 그래서 구약(舊約)이고 신약(新約)인 것이다.
내용과 구성을 보면, 구약성서는 창세기로부터 말라카이기(記)까지 여호와에 의해 간섭된 유대의 역사와 시가(詩歌)가 히브리어 39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신약성서는 예수의 언행을 적은 4권의 복음서를 필두로, 사도들의 서간문(書簡文) 및 묵시록까지의 기록이 헬라어 2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신구약을 합치면 총 66권으로 3x9=27로 기억하면 편하다.
이 가운데 신약 27권을 살펴보자면, 27권 중에서 예수의 언행이 기록돼 있는 책은 마가, 마태, 누가의 3복음서 및 요한복음서로, 앞 세 권의 책은 그 구성과 스토리가 거의 같아 공관복음(共觀福音)으로 일괄돼 불리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 ‘함께 본 복음서’라는 뜻이지만, ‘공통된 관점으로 쓰인 복음서’라 이해해면 편리하다. 공관복음이란 말은 영어의 ‘The Synoptic Gospels’를 그대로 직역한 듯 보이는데, 영어의 Synoptic 역시 헬라어인 순옵티코스(συνοπτίκόϛ)의 음과 뜻을 그대로 빌려온 것으로서, 마찬가지로 ‘함께 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장 오래된 신약성서 코덱스 시나이티쿠스(Codex Sinaiticus/'호렙 산의 UFO/모세를 속인 여호와의 절묘한 트릭' 참조)
그런데 ‘함께 본다’는 공관복음서도 때로는 시각과 관점을 함께 하지 않는 경우가 나타나니, 그 대표적인 경우가 위에서 짚은 예수 탄생의 스토리다. 그리고 복음서라 해도 모두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이 아니니, 마가복음에는 예수 탄생에 관한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으며 요한복음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예수 탄생의 스토리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비교, 분석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으로 해서 위처럼 합치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아예 합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따로 노는 이야기들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마태복음에서는
- 동방박사가 돌아간 후,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다시 나타나 ‘헤롯왕이 아기를 해칠 것이니 이집트로 피신하라’ 지시하고,
- 이에 요셉이 일어나 밤에 아기와 아내를 데리고 급히 이집트로 떠난다.
- 아니나 다를까, 태어난 아기에 두려움을 느낀 헤롯왕은 베들레헴을 비롯 한 유대 땅의 두 살 이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 이후 헤롯왕이 사망하자 주의 사자가 또 다시 나타나 ‘아기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죽었으니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 지시한다.
- 요셉과 마리아는 지시대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지만 헤롯의 아들 아킬레오가 대를 이어 유대의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힘이 미치지 않는 갈릴리 지방 나사렛이란 동네로 가 터전을 잡는다.
- 아울러 이 모든 것이 ‘구약성서와 옛 예언자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일이다’라고 거듭해 강조된다.
반면 누가복음에서는
-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전국적인 인구조사령을 내린다.
- 이에 시리아 총독 구레뇨(퀴리니우스)가 칙령에 따라 유대 백성들을 제 고향으로 보내 인구조사에 응하도록 만들고,
- 유대 백성인 요셉 또한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 동네를 떠나 아내인 마리아와 함께 유다 땅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가는데,(요셉은 다윗왕의 후손이므로)
- 이때 이미 임신 상태였던 마리아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게 된다.(마땅히 해산할 장소가 없어서)
- 요셉과 마리아는 8일 후 아기의 할례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할례는 모세의 율법이므로)
- 예루살렘에서 아기는 시므온이라는 의인과 안나라는 늙은 여자 선지자에게 메시아로서의 인정을 받게 되는데,
- 이후 가족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인 나사렛에 이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구약성서 예언자의 예언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상 살펴보았듯이 두 복음서에서는 서로 합치될 수 없는 내용들이 나열돼 있다. 두 복음서가 아기의 출생에 관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기 예수와 그 부모가 이집트로 피신했다는 마태복음의 내용은 아기 탄생 후 예루살렘으로 가 할례를 했다는 누가복음의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게다가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 어디인지 헛갈리게 만들었으니, 마태복음에 의하면 마리아는 다른 설명 없이 그저 베들레헴에 있는 ‘집’에서 출산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 이집트로 피신했는데 헤롯의 아들 아킬레오가 대를 이어 본시 살던 곳을 다스리게 되었던 바, 그를 피해 북쪽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란 동네로 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살던 곳은 원래부터 베들레헴이었다는 말이 된다.(하지만 누가복음에는 그들이 살던 곳은 원래부터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었다고 밝히고 있고, 다만 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베들레헴에 온 것으로 되어 있다)
시대적 차이 또한 두드러지니
- 누가복음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구조사령의해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가 인구조사를 한다.
- 그런데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이 된 해는 서기 4년 경인 바,(앞서 말한대로 역사적 기록에 따르자면 퀴리니우스의 부임 연도는 절대 서기 4년을 상회할 수 없다) 이는 유아 살해를 명령했다는 헤롯왕이 죽은 지 7년이 지난 시점이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두 복음서에서는 이같은 상치(相馳)를 보완할 만한 어떤 단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또 기록상의 납득할 수 없는 상황도 존재하니
- 인구조사를 위해 생업을 팽개치고 천릿길을 가야 하는 조사의 방법이 전혀 납득되지 않으며,(요셉 식구뿐이 아닌 로마제국 전 백성의 대규모 인구이동을 상상해보라) 요셉이 천 년 전의 조상인 다윗의 고향으로 가서 호적 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 또한 이해되지 않는다.(무엇보다 이 같은 방법으로 인구조사를 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로서는 마태복음의 기록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겠는데, 이렇게 보면 예수의 아비 요셉은 본시 베들레헴 출신이며 예수 역시 그곳 아비의 집에서 태어났다. 예수의 탄생 연도 또한 헤롯이 죽기 1년 전인 기원전 5년 쯤으로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사실 이것은 내 생각만이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공유하는 학설이기도 하다.(우리는 그동안 보아온 영화나 연극은 두 복음서의 내용을 짬뽕시켜 버무려 마치 두 복음서의 내용이 같은 연결선 상에 놓인 듯 여겨지지만, 말한 바와 같이 시공간이 판이하다)
성서에 의하면 지오토가 묘사한 천사와 동방박사가 한 공간에 위치한 이와 같은 상황은 연출될 수 없다. 하늘의 혜성 또한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과학으로 본 '베들레헴 별'의 정체' 참조)
그렇다면 누가복음의 저자는 왜 그렇듯 불합리한 기록을 남긴 것일까? 그 이유는 자명하다. 저자는 예수가 유대 역대의 가장 칭송받는 왕이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다윗왕의 후손이며, 더불어 다윗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음을 부각시키고자 함이었는데, 나아가 그 족보를 아브라함과 아담과 하나님에까지 직행시킨다. 마태복음의 서두에 등장하는 예수의 족보에서(아브라함에서 시작된) 더 나아가 신의 혈손(血孫)임을 강조한 것이다.(누가복음 3:23-38)
즉 누가복음의 저자는 예수가 하나님의 직계임을 역설코자 역사적 사실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인구조사(켄수스)를 끌어들였고,(미가서의 예언에 의거, 예수는 꼭 다윗왕의 고향에서 태어나야 했으므로) 이때 후대의 총독인 퀴리니우스의 이름을 잘못 기재하였으며, 나머지 무리한 설정도 뒤따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노력이 너무 지나쳤음일까, 누가복음의 저자는 자신의 가상한 노력을 스스로 무위로 만들어 버리는 자충수를 두고 말았으니, 그와 같은 예수를 낳은 어머니가 처녀였다고 수차례에 걸쳐 언급한 때문이다. 즉 요셉은 다윗왕의 후손임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태어난 아기는 남편인 요셉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아이가 돼 버리고 만 것이었다.(차라리 그 족보가 마리아의 것이면 말이 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리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저작된 해는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2000년 전, 그간 두 복음서의 상치를 극복해 보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임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이를 극복한 사례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껏 나 역시 마찬가지였던 바, 성서에 외계를 끌어들인 나의 시도는 오로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그것만이 베들레헴에 뜬 별과, 목자들 앞에 나타난 천사와,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않은 동방박사 및 요셉 부부가 이집트로 피신하고 또 돌아오게 된 그 꿈을 납득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예수는 기원전 5년 제 집에서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에게 깃든 성령에 의해 태어났다.
자. 다음은 자연히 이른바 그 성령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말할 차례가 되겠다.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 국내도서
- 저자 : 김기백
-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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