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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는 왜 모세를 죽이려 했을까?
    성서와 UFO 2019. 2. 21. 23:42


    1967년 6월 5일 아침 8시, 이스라엘 군은 국경을 넘어 이집트 영토인 시나이 반도를 향해 쳐들어갔다. 이른바 제 3차 중동 전쟁의 시작이었다. 이스라엘 측의 겉으로의 명분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게릴라를 지원한 이집트 군에 대한 보복이었지만, 실제로는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에 의해 봉쇄된 시나이 반도 티란 해협을 확보하자는 데 목적이 있었다. 쉽게 말해 시나이 반도를 빼앗자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군은 먼저 이집트 군의 공군기지를 공습해 무력화시켰고, 이어 잘 짜여진 속전속결 작전으로 레바논을 제외한 모든 접경국의 영토를 잠식해 들어갔다. 그리하여 제 나라 영토의 2배에 달하는 시나이 반도는 물론 팔레스타인인 거주 지역인 웨스트 뱅크와 가자 지구, 그리고 시리아 국경 요충인 골란 고원을 손에 넣었는데, 그것이 불과 전쟁 개시 6일 만이었다. 아랍과 이스라엘과의 세번 째 전쟁은 그대로 끝이 났다.(이때 획득한 예루살렘 동쪽의 공동관리 지역은 지금도 문제거리이다. * '하나님이 장난친 도시 예루살렘' 참조)







    전격 공격에 나서는 이스라엘 군과 기습 공습으로 파괴된 이집트 공군기지(아래). 이집트 공군력의 상실은 전쟁의 향배를 일찌감치 결정지었다.


    6일 전쟁의 비포 앤 애프터

     

    6일 전쟁의 영웅 모세 다얀(1915-1981) 국방장관(왼쪽)

    애꾸눈 장군으로 유명한 그는 1941년 프랑스 비시 정권 당시 프랑스군과 싸우다 시리아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었다. 이후 이스라엘 독립전쟁(1차 중동전쟁) 때 예루살렘 사령관을 맡은 것을 필두로, 이스라엘 총참모총장, 시나이 반도 총사령관, 국방부 장관, 외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오른쪽 인물은 훗날 이스라엘 총리가 된 아리엘 샤론으로 지난 2014년 별세했다.




    시나이 반도는 이후로도 15년을 점령하다 1982년 중동 평화협정이 체결되며 비로소 이집트에 돌려졌는데, 그 15년 간 이스라엘 고고학자의 반도 전체에 대한 지속적인 탐사와 발굴이 있었다. 그들은 목적은 무엇보다 성서 출애급기에 기록된 출애급의 흔적을 찾자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도 널리 알려졌고, 성서에도 요란벅적지근하게 기록된 대사건이었지만, 정작 출애급의 사건, 즉 모세가 영도한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사건은 세계 학계로부터 역사적으로 일어난 실제 사건이 아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심지어 이스라엘의 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단순명료하다. 출애급에 관한 기록이나 흔적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기록하기를 좋아한 이집트인의 것을 우선하여 주변 어떠 나라의 기록에서도 그에 관한 기록이 없으며, 이 대사건과 유추시킬 수 있는 역사적 흔적도 없다. 한 마디로 허구라는 것이다. 오직 주장할 것이라곤 성서의 기록뿐이나 유감스럽게도 성서의 기록은 세계 역사학계에서 사료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저 잡다한 내용이 담겨진 하나의 설화집에 불과할 뿐이다.


    * 위에서 말한 이스라엘의 시나이 반도 점거 15년 간, 이스라엘의 고고학자들은 시나이 반도를 거의 이 잡듯 조사했으나 결국은 아무런 성과물도 얻어내지 못했다. 그들이 바라던 것은 출애급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기원전 13세기의 흔적이었지만, 종래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그 무엇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는 그 조밀하고 방대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왜 역사적 자료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까? 한마디로 여호와 탓이다. 모든 것이 여호와라는 신의 조화로써 형성되고 귀결되어지는 그와 같은 기록을 역사로 인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으로, 그와 같은 초자연적 허무맹랑함을 역사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하지만 안타까운 부분도 있다. 그것이 단순한 설화라면 힘들이지 않고 그저 짠!하며 갈라져야 마땅하겠거늘, 그 사건이 기록된 출애급기(14:21)에는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는' 여호와의 뜻밖의 수고로움도 기재되어 있음이다.




    성서에는 이와 같은 기적적인 장면이 없다.




    그런데 이같은 수고로움은 사실 기독교인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이것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할 짓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가 아니라, 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세가 바다위로 손을 내밀면 짠!하고 갈라져야 옳다. 진실은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UFO로부터 작동된 강력한 바람이 갈대 무성한 호수, 즉 '얌 수프(yam suph)'의 물을 밀어냈음이다. 다시 말하지만 고대 히브리어에는 바다라는 단어가 없었기에 바다나 호수나 모두 얌'(yam)으로 표기될 수밖에 없었다.(* '엑소더스 당시의 UFO/여호와는 정말 바다를 갈랐을까?' 참조)


    또 한가지 뜻밖의 기록은(그래서 출애급기가 사실로 여겨지게 만드는) 여호와가 모세를 죽이려 했던 사실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출애급기 4:24-26)


    이 충격적인 기록은 장구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을 텐데, 그간 학자들의 고민을 서울대학교 김호동 교수는 이렇게 대변했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의 하나이며 그동안 많은 성경학자들을 괴롭혀왔고 다양한 설명이 제기돼왔지만, 우리의 의문을 말끔히 씻어줄 만한 철벽같은 정답은 아직 없는 듯하다.('한 역사학자가 쓴 성경 이야기')


    '한 역사학자가 쓴 성경 이야기'라기 보다는 '한 종교가가 쓴 성경 이야기'에 가까운 그 책에서도 역시 이에 대한 시원한 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답을 이미 성서가 말했다. 진실은 앞서도 언급한 창세기 17장에, 즉 모세를 죽이려 했던 바로 그 알 샤다이가 처음으로 출현해 아브라함에게 한 말 속에 숨어 있는데,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연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세기 17:10-14)


    간단히 말하자면 원인은 모세의 포경이었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를 자신이 강조했던 약속을 어긴 자라 보았고 나아가서는 모세가 히브리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겼던 것이다. 모세가 포경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앞서도 말했듯 태어나자마자 바로 버려졌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명령이고 언약이고 간에 바로 버려질 아이에게 포경수술을 시킬 부모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눈에 불똥이 튀기게 만드는 일이었음에는 분명할지니, 자신이 억지로 윽박지르고 달래어 만든 히브리의 영도자라 할지라도 용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 앞서 말했듯 여호와는 모세를 호렙산으로 유인해 그를 히브리인의 영도자로 삼았음을 천명한다. 그리고 모세에게 파라오 앞에 가서 자신의 선전포고를 전하라 했지만, 모세는 자기는 말주변이 없어 자신이 없다며 한사코 이를 거부한다. 이에 여호와는 말 잘하는 네 형 아론과 같이 가면 되지 않느냐며 윽박지르고, 모세에게 보여준 요술 지팡이(선진 과학기술의 능력이 담긴)를 힘주어 건네며 모세를 내모는데, 그 대목을 살펴보자면 이러하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애급기 4:10-17)



    그런데 이렇듯 어렵사리 포섭한 모세를 포경이라는 이유로 죽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사태의 급박함을 인지한 아내 십보라가 순발력 있는 행동으로써 남편을 구해낸다. 급히 돌칼을 가져다가 제 아들의 포피를 잘라 바치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제 아들도 포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포피를 잘랐으니 히브리인이 된 셈입니다. 제 남편도 마찬가지이니 이리하면 제 남편의 피도 히브리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꽤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으니, 여호와 자신도 과거 '히브리인의 집에서 난 자뿐 아니라 너희 돈으로 산자라도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이며, 그럴 경우 그들 또한 영원한 연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고 하는 말을 뱉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말은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얄 샤다이(אֵל שַׁדַּי‬,) 그 자신이었다.(창세기 17장의 여호와와 출애급기의 여호와는 같은 알 샤다이로 표기된 동일 인물임을 앞서 말한 강조한 바 있다) 이에 여호와도 죽이려는 생각을 접고 모세를 놓아주게 되는 것이다.


    * 흔히 '장가 잘 갔다'거나 '마누라 잘 얻었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것이 물론 처가의 재력이나 와이프의 미모를 두고 하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본 뜻은 어디까지나 배우자의 현명함을 칭송하는 말일지니, 위 출애급기에서 보여준 십보라의 행동은 이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 '십계' 속의 십보라

    " I lost him when he found his god "의 대사가 유명하다. 그만큼 남편을 사랑했다는 뜻일 텐데 웬지 부럽다.^^



    성서에서는 이 십보라가 르우엘(혹은 미드로)이라고 하는 미디안족 제사장으로 딸로 나오며,(출애급기 2:16-21) 이 미디안족은 아브라함이 아내가 죽은 뒤 새장가를 가서 그두라에게서 낳은 자식 중의 일파인 바,(창세기 25:1-2) 넓게 보면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임 셈이었다. 따라서 여호와의 입장에서는 비록 할례는 안 받았지만, 그래서 이민족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된 듯하고, 설령 그가 이집트인이라 할지라도 할례만 받는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쉬운 까닭이었다.(사실 모세는 이집트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어찌됐든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도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으니 이때의 여호와의 선택은 현명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는 그 혈통이 못내 마뜩잖았는지 모세의 사후 그의 시신을 돌보지 않았던 바, 그 사체를 악마가 거두게 된다. 이에 뒤늦게 시신을 수습하러 간 천사장 미카엘은 그 사체의 소유권을 두고 악마와 격하게 다투게 되는데,(하지만 다소 꿀리는 자세로/유다서 1:9) 이에 대해서는 차후 기회가 닿는 대로 언급해보겠다.


    이들 모세 부부가 살았던 곳 역시 그간의 관심거리였으니, 성서의 기록에서는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에서 출생한 여섯 번째 아들 미디안이 미디안족의 조상이며, 아브라함이 적자(嫡子)인 이삭과 분리시켜 미디안을 동방으로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성서학자들은 기드온 전투에서 패한 미디안 병사들이 도망간 방향 등을 근거로 들어, 또 고대 역사가들(프톨레마이오스, 요세푸스, 유세비우스)의 기록을 들어 미디안족의 거소가 시나이 반도 아카바 만의 북쪽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에 출애급의 흔적과는 별개로 모세 부부가 살았다는 미디안의 거소를 찾는 일도 심심찮게 이어졌던 바, 대표적으로는 이탈리아의 유대인 고고학자 임마누엘 아나티의 탐사를 들 수 있다. 그는 1980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추적 끝에 시나이 반도 아카바만 동북쪽의 고대 주거 유적을 찾아냈고, 이를 모세 부부가 살았던 곳으로 추정했으며 나아가서는 인근의 카르콤 산이 성서의 호렙산이라 하는 주장까지 폈다. 훗날 적대국가가 되긴 했지만 출애급기에 미친 미디안족의 영향은 학자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터이라, 1987년에 행해진 아나티의 탐사 발표는 적잖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해발 850m의 카르콤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임마누엘 아나티. 그는 이 산이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적 종교 중심지라고 주장했다.


    아나티가 펴낸 1987년 보고서. 카르콤 산을 신의 산, 즉 성서의 호렙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티가 발견한 고대의 주거 유적





    아니티가 발견한 고대 암각화와 청동기 시대의 제례용 돌기둥



    하지만 그의 주장은 이스라엘 고고학계의 정식 비판을 받으며 곧바로 찌그러졌다. 그가 밀리게 된 것은 결정적으로 출애급이 있었던 기원전 13세기의 유적이나 유물이 제시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에 급해진 아나티는 부랴부랴 출애급의 연도가 기원전 2000년이라는 주장을 내놓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고 배는 침몰한 후였다. 말하자면 그는 3년간 괜한 고생만 한 셈이었다. 어찌됐든 당시 모세 부부의 삶은 아래 베드윈족의 생활상과 비슷했을 것이고 장소도 그 어드메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시나이 반도 남쪽 베드윈 유목민의 생활상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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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