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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여호와 알 샤다이의 출현
    성서와 UFO 2019. 2. 20. 15:55

     

    신약성서 사도행전 속에는 다행히도 출애급기를 축약해놓은 듯한 내용이 실려 있다. 내가 다행이라 함은 모세의 이야기를 진행함에 있어 표절된 그 출생의 스토리를 계속 달고 가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얘기다. 사도행전 속에는 적어도 아기가 강물에 버려지고 건져내고 하는 스토리는 없는 바, 그 내용을 빌림에 있어서의 부담감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니, 앞서 말한 예수의 탄생 때처럼 거기에서도 다만 모세만 구제될 뿐 다른 많은 아기들은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 스토리를 한번 읽어보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사도행전 7:17-22)

     

    여기서 새로 등극한 파라오가 히브리 족속을 괴롭히고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한 것은, 이집트 내에서의 히브리인 인구가 번성함에 따른 불안감 때문으로서, 이에 출생한 아이들 중 사내 아이는 나일 강에 던져지는 지경을 맞이해야 했다.(출애급기 1:22) 그런데 무슨 영문에서인지 하나님은 이와 같은 비극적 상황을 방관하며 그저 누군가 나타난 이들을 구해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면 이와 같은 비극적 상황을 피할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고안해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 민수기(民數記·Numbers)를 보면 출애급의 다음해에 이루어진 인구조사의 기록이 나오는데,(민수기는 문자 그대로 당대의 인구조사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때 레위 지파를 제외한 스무 살이 넘은 군 입대 예정자들의 수가 603,550명이었다.(레사장 가문인 레위 지파는 여호와가 성막에서 제 호위와 뒤치다꺼리를 시키려 군 징집 면제 혜택을 주었다/민수기 1:46-54)




    이스라엘의 하레디(Haredi)

    이스라엘에서는 검은 모자에 검은 외투, 귀 옆으로 머리를 따내린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하레디라 불리는 집단인데, 이들은 과거의 레위지파처럼 신에게 봉사하는 소임으로 군 징집을 면제받는다. 모세 때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재현된 성막(聖幕)

    출애급기에서 신비감을 씌워 길게 설명된 성막은 그렇듯 대단한 장소가 아니라 그저 여호와가 가끔 먹고 자는 숙소였다.(* '잃어버린 성궤의 진실을 찾아서' 참조)



    따라서 레위 지파를 제외한 남녀 동수만을 따져도 보아도 성인 남녀의 수는 120만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들이 낳은 남아(男兒)의 수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출애급기의 기록을 따르자면 결코 적지 않은 아기들이 나일 강 물에 버려졌을 것이다. 그러한 아기들의 죽음을 하나님은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라 매우 무능하고 무책임한 하나님이다. 그래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의 여호와는 전보발령되고 새로운 여호와가 오게 되는데, 모세가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새로운 여호와였다.(여호와가 어느 특정인을 지칭하는 호칭이 아니라 지구 통치를 담당하는 외계인의 직책이라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아무튼 그 같은 상황 속에서 오직 모세만은 '하나님이 보기에 아름다운지라' 죽음 면하고 오히려 왕궁에서 자라게 되며, 거기에 이집트의 선진 교육까지 받게 된다. 그리고 나이 40살에 이르러 하나님이 유인한 시나이 산에 올라 이집트 땅에 사는 히브리 백성들을 이끌 지도자로 선임된다. 이때 여호와의 사자가 보여준  떨기나무 불꽃 쇼가 연막탄과 같은 간단한 속임수였다는 것은 앞서 '호렙 산의 UFO/모세를 속인 여호와의 절묘한 트릭'에서 말한 바 있는데, 상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 하는고 하니 그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애급기 3:1-6)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그 신기한 떨기나무 속에서 하나님이 출현했으므로 모세는 그렇게 나타난 자를 초월적 존재라 믿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 된 것인데, 앞서 나는 '외계인이 나무 주위에 연막탄과 같은 것을 터뜨려 신비감을 연출하며 환상적으로 출현했다'고 설명했지만, 간단히 이해하자면 그저 아래의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것을 연상하면 편하다. 



    보다시피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는 이렇게 표현됐다.(영화 '십계'의 한 장면으로, 이 같은 연출 역시 외계인들에게는 별거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나타난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하나님과는 그 호칭이 다른 엘 샤다이(אֵל שַׁדַּי‬,)다. 보다 정확히 짚자면 이 엘 샤다이는 창세기 17장 1절, 아브람의 나이 99세 되었을 때 처음 나타난다. 말하자면 그는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만났던 하나님과는 다른 존재였지만, 우리가 몇 번 안 본 서양인의 얼굴을 다 엇비슷하게 여기듯, 또한 서양인들도 자주 접촉하지 않는 동양인 개개인의 얼굴을 잘 구분 못하듯, 아브라함에게는 모두 똑 같은 여호와 하나님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 외경심에 감히 구별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실제로 아브라함은 여러 번 여호와와 천사를 동일 인물로 혼동한다) 좌우지간 그때 이 지구에 왕림했던 엘 샤다이가 지금 모세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역할 길이 막연해 '엘 샤다이'를 그저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엘(El)'을 '강한'(혹은 '지극히 높은')이라는 접두사로서 해석한 것 같다. '엘'을 그렇게 해석한 것은 뭐 그럭저럭 말은 된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무난한 해석일 듯도 싶다. 그 외에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혹간, 고대 악카드어인 샤데(shade)가 산(mountain)이라는 뜻이 있다 하여 엘 샤다이를 산신(山神)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옳지 않은 듯하다.(그러면 정말로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원어 성서(히브리어 성서)의 엘 샤다이를 '전능한 하나님'으로 해석해 버린 결과 샤다이를 설명할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본시 전능한 존재이므로 두 단어에 대한 차별성을 둘 재간이 없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진짜 순 참기름'처럼 '가장 강하고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그래서 교계(敎界)에서는 딱 까놓고 샤다이의 뜻은 명확지 않다고 말한다. 도저히 다른 말로 설명할 길이 없어서 나온 최후의 솔직함이랄까. 이는 인간이 궁지에 몰렸을 때 결국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 이는 영역 성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일반적으로 샤다이와 엘 샤다이는 그저 the LORD와 God로 구분된다. 영역 성서는 뭔가 다르지 않나 했지만 NIV를 비롯한 거의 모든 성서가 그런 식이었다.(그 사람들도 해석이 궁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나 역시 중뿔난 해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 그저 '엘'을 강한 자를 뜻하는 접두사 쯤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샤다이와 엘 샤다이에의 구분은 확실하니, 나는 샤다이를 외계인 사령관, 엘 샤다이를 총사령관 쯤으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하면 성서의 전문을 해석함에 아무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참고적으로 말하자면 아브람이 남방 동맹군과 싸워 승리를 거둔 후 만난 살렘 왕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따로 '엘 엘리온(El Elyon)'으로 불렀는데,(창세기 14:19/국역 성서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해석됨) 이는 아마도 외계인들이 자체적으로 부르는 최고 사령관의 뜻인 엘리온에 극존칭인 '엘'을 붙여 말한 것 같다. 


    엘리온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모두 31번 나오는데, 그 해석에 있어서는 '최고 사령관'을 접목시키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이에 대해서는 기회가 나면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 성서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멜기세덱이란 인물, 그리고 그를 외계인이라고 하는 돌출된 해석에 난감해하실 분들을 위해 본인의 책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의 한 대목을 옮겨볼까 한다.(아래 회색으로 마킹된 문장)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셀람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主宰)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세기 14:17-20)


    여기서 갑자기 출현한 살렘 왕 멜기세덱이 누구인지 위 성서의 문장만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당시 하나님으로부터 선민(選民)으로 택함을 받은 자는 오직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 즉 아담의 피를 받은 아브라함뿐이었다. 즉 성서 상으로 볼 때 아브라함은 당대 최고의 인간인 셈이었던 바, 그 위에 따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이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멜기세덱이란 자는 언뜻 아브라함 위에 군림하는 듯 여겨지며,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축복을 이끌어내기까지 한다. 게다가 그는 대적(大敵) 남방 동맹군을 쉽게 격파할 수 있게 해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찬양하라 명하고 있는 바, 이 전쟁의 배후에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을 명확히 암시하고 있다. 이렇듯 선민 아브라함을 능가하며, 하나님과 직접 통교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선민 아브라함으로부터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상납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수하인 엘로힘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멜기세덱은 가나안의 한 지역인 살렘, 곧 예루살렘 지역을 관할하며 지구상에 머물던 외계인, 즉 저들 나라의 지구 주재원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었다. 이것이 아니고는 당대의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의 존재를 알고 있는―게다가 아브라함 위에 군림하는 듯한―이 사람을 설명할 길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아무튼 새로운 사령관 엘 샤다이는 그렇게 지구에 부임했다. 그리고 곧 모세에게 자신이 새로운 지구 사령관임을 알린다. 모세가 이를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만, 여호와는 나름대로 자신이 앞서의 사령관들과는 다른 새로운 신(神)임을 천명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엘 샤다이)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출애급기 6:2-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를 비롯한 위 문장을 그저 국역 성서로만 들여다보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다.(그건 다른 성서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매양 외치던 여호와거늘 왜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닿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하나님의 말인즉, 자신은 과거에 총사령관으로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난 적이 있으나, 당시는 지구 통치를 담당하는 여호와가 아니었으므로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서 알릴 수 없었다는 말이다.(그가 노아에 대해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니, 대홍수와 같은 일은 자신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직접 여호와(지구 사령관)로서 부임하였던 바, 과거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한 약속*을 지킬 것이니 너희는 나를 이집트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킨 신으로 기억하게 되리라는 언급이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여호와, 즉 지구 통치 책임자임을 재 천명한다.


    * 알 샤다이란 호칭이 처음 사용된 창세기 17장의 약속을 말함인데, 이는 다음 회에 다시 언급할 예정이다. 


    이 같은 일성만 보아도 새로운 여호와는 전임 여호와와는 달리 이집트에의 칼날이 쾌 사납고 날카로울 것이라 짐작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세와 그의 형 아론을 통해 이집트 파라오에게 선전포고를 한 여호와는 곧 이집트 땅에 무지막지한 10가지 재앙을 퍼붓는다.


    * 다음 회로 이어짐.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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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인 던 바, 그 위에 따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이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멜기세덱이란 자는 언뜻 아브라함 위에 군림하는 듯 여겨지며,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축복을 이끌어내기까지 한다. 게다가 그는 대적(大敵) 남방 동맹군을 쉽게 격파할 수 있게 해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찬양하라 명하고 있는 바, 이 전쟁의 배후에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을 명확히 암시하고 있다. 이렇듯 선민 아브라함을 능가하며, 하나님과 직접 통교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선민 아브라함으로부터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상납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수하인 엘로힘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멜기세덱은 가나안의 한 지역인 살렘, 곧 예루살렘 지역을 관할하며 지구상에 머물던 외계인, 즉 저들 나라의 지구 주재원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었다. 이것이 아니고는 당대의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의 존재를 알고 있는―게다가 아브라함 위에 군림하는 듯한―이 사람을 설명할 길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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