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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벨탑과 언어혼란의 진실
    성서와 UFO 2017. 5. 14. 20:08


    성서 창세기의 이야기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한 사건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그것은 바벨탑에 관한 일화이리라. 인간은 신에 대한 도전으로써 하늘에 닿을 만한 높은 탑을 쌓으려 했고, 이를 경계한 신이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어 그들을 흩어지게 만든 사건..... 창세기에 전하는 그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로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세기 11:1-9)



    16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피테르 브뢰헬이 그린 '바벨탑'은 바벨탑에 관한 그림 중 가장 유명하다. 사실은 4각뿔 형식이었을 탑이 원뿔형으로 그려져 있으나, 신의 분노로 무너진 탑과 흩어지는 사람들이 잘 묘사돼 있다. 



    이 이야기에 대한 기독교의 설명은 간단하다. 미천한 인간이 하늘에 도전함을 노여워 한 신이 그들의 교만을 징벌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그러니 너희들은 감히 신에게 까불지 말라'는 경고가 실려 있으며, 그같은 강렬한 경고의 임팩트가 지금까지 각인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해석은 전혀 옳은 것이 아니다. 아니, 터무니없기조차 하여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막연하기까지 하나, 순서대로 하나 하나 풀어가 보기로 하겠다.

     

    우선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이야기의 핵심은 '신의 인간 대한 징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핵심을 찾자면 '튼튼한 도시를 건설하여 유리되지 않고 공생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건전한 의지'라고 볼 수 있다. 탑의 건설은 그 의지에의 실천이었다. 그런데 그 같은 의지를 하나님은 불쾌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에서 굳이 하나님의 불편한 심기를 헤아리자면 그 단서는 '탑'뿐이다. 이것이 이른바 '바벨탑'으로, 이 또한 굳이 설명을 달자면 


    1) 하나님이 이 높은 탑을 하늘에 대한 도전으로 오인하여,

    2) 혹은 다른 신들에 대한 신전의 건축을 경계하여, 인간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어 그들의 성읍 건설과 탑 건설을 무위로 만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서 1)의 해석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오해'라는 또 다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바, 무난하게 2)의 해석을 좇아보자.(이것이 일반적인 해석이기도 하다)


    그 2)의 해석에는 헤로도토스(BC 480-420년경)가 저술한 '역사(Historiae)'의 기록이 뒷받침된다. 그는 시날 평원, 즉 메소포타미아 평원에 고대의 거대한 탑이 있다는 소문을 좇아 기원전 5세기 동방을 찾아왔다. 그리고 탑을 발견한 그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탑은 가로 세로 높이가 180 큐빗으로 견고한 기단 위에 세워졌고, 그 위에 층층히 8단의 탑신을  쌓았으며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었다. 꼭대기에는 멋진 신전이 있으며, 그 안에는 신이 편히 쉴 수 있는 대형 침대의자와 황금의 탁자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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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로도토스의 흉상과, 그의 기록에 근거한 탑의 상상도

    그림은 앞에서도 언급된 구스타프 도레의 작품으로 이라크 북부 사마라의 첨탑을 참고한 듯싶다. 



    하지만 이 탑은 BC 479년, 이곳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에 의해, 그리고 이후의 사람들에 의해 차츰 파괴당했다. 그리하여 어느덧 탑은 사라지고 전설만이 남았는데, 그로부터 2500년이 지난 20세기에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1855-1925)가 이 전설 속의 탑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이라크 중부의 황량한 벌판에서 그 탑의 유지(遺址)를 발견하였다. 가히 세상을 놀라게 한 발견이었다. 

      


     


    콜데바이의 사진과, 그가 발견한 바벨탑의 유지


    関連画像

    2004년, 구글 맵에서 포착한 바벨탑 유지(화살표)

    위의 사각형 건물은 복원된 바빌로니아 시대의 유적이며, 그 왼편 원형 안의 건물은 바빌로니아의 영광을 재현하려 했던 사담 후세인의 궁전이다.



    콜데바이는 이곳이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의 자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훗날 미국의 울리가 우르에서 아브라함의 유적을 발견했을 때처럼 흥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이 탑은 유감스럽게도 전설상의 바벨탑이 아니었다. 진실의 발단은 지난 20세기, 이라크 에사길라 신전 터에서 발굴되어 골동품상을 떠돌던 신바빌로니아 당대의 석판 하나가 감정되어지면서부터였다. 지금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돼 에사길라 태블릿이라 명명된 점토판이었다.(발견은 1913년 콜데바이가 했으나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사길라 태블릿은 당대의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수학 교과서로, 거기에는 놀랍게도 바빌론의 거대 신전의 밑변과 높이를 묻는 문제가 실려 있었다. 그에 대한 정답은 공(共)히 91.2m, 헤로도토스의 기록 및 콜데바이의 발굴 유지와 거의 일치하였던 바, 바벨탑을 신전으로 비정함에 무리가 없었다. 


     

    「esagila tablet」の画像検索結果

    에사길라 태블릿 전면과 후면



    그리고 에사길라 테블릿에는 이 신전을 (신바빌로니아의) 나보폴라사르 왕과 네부카드카드네자르 2세가 피라미드 형태로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그 형태가 정확히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이상의 의문을 일거에 해소시켜줄 돌 하나가 2001년 뜻밖에도 세상에 나왔다. 바빌로니아학의 권위자인 런던 대학 엔드류 조지 교수의 성과로서, 현재 노르웨이의 오슬로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길이 너비 25cm, 높이 47cm의 작은 현무암 돌덩이였다. 



    関連画像



    「babel tower」の画像検索結果

    석판의 오른쪽에는 네부캇네자르 2세로 추정되는 사람이 서 있고, 탑의 평면도와 입면도가 그려져 있다. 탑 위의 글씨는 '에텐 멘 앙키 지구라트 카 딩키 라키', 즉 '카 딩키 라키에 세워진 이 땅의 중심이 되는 지구라트'라는 의미로서, 카 딩키 라키는 수메르어로 바빌루, 즉 '신의 문'을 의미한다. 

     

     

    돌은 사진에서 보여지듯 하단부의 글자 부분이 망실된 채 세상에 나왔다. 그럼에도 돌은 창세기의 불편한 진실을 밝히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즉, 옛 바빌론 땅에 지어진 거탑은 성서의 바벨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바빌로니아의 정복군주 네부캇네자르 2세(성서의 느부갓네살 왕/BC 630-562)가 바빌로니아의 최고 신 마르둑에 헌정한 거대 지구라트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시켰던 것이다. 


      



    돌에 돋을 새김된 탑과 글자의 세부



    이로써 성서의 바벨탑은 인간의 신에 대한 도전이나 오만에서 비롯된 건축물이 아니라 신(新)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캇네자르 2세가 바빌론의 주신(主神) 마르둑에게 봉헌한 탑임이 명확해졌다. 한마디로 말해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라는 성서의 기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니, 무엇보다 창세기와는 최소 3,00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적 거리가 실재하고 있다.


    렇다면 성서의 바벨은 무엇을 의미함일까?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공언한 바 있으니, 바벨은 고대 악카드어(語)의 밥일이(Bab-ili), 즉 ‘신의 문(門)’에서 파생된 말로서, 이 밥일리를 ‘혼란시키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인 발알(Balal)에 연관시킴으로써 위와 같은 성서의 기록이 남겨지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창세기의 민족 이동 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탑이 있었을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형식은 어디까지나 ‘신의 문’이었을 것이다. 즉 인간들이 신을 맞이하기 위한 신전 형식의 탑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니, 실제로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고대 수메르 문명의 중심도시인 우루크에는 기원전 3000년 이전, 최고 신 엔키에게 봉헌된 거대한 지구라트 신전이 존재했었다 하며, 아울러 아칼쿠프와 옛 바빌론 근방 보르시파 지역에도 거대 유구(遺構)가 존재하는 까닭에 그 탑들이 창세기 기록의 모태가 되지 않았을까 추정하기도 한다.



    아칼쿠프 지구라트

    극심하게 파손되고 풍화되었음에도 높이가 56m에 이른다.



    보르시파에 남아 있는 거대 지구라트의 흔적



    또한 실제로 이라크 남부 옛 우르 땅에는 달의 신 난나에게 봉헌된 기원전 2100년 경의 지구라트 신전이 현존하는데, 규모가 위에 거론된 건축물들에 크게 미치지 못함에도 그 위용은 창세기의 기록을 연상시킨다.



    우르의 지구라트

    현재는 2단만 남았으며 밑변의 길이는 가로 62.5m, 세로 43m이다. 



    그러나 이 역시 창세기의 내용과 연관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무엇보다 키포인트인 ‘언어의 혼란’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 기간 고민을 하였다. 일관된 본인의 주장인즉슨 성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합리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창하게 된 것이 하나님 외계인설이지만, 아무리 선진 과학기술을 지닌 외계인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언어를 순식간에 혼잡케 만들기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니, 이는 훗날 예수가 행했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일이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신이며, 못지않은 존재라 할지라도 어찌 인간의 언어를 순식간에 혼잡케 만들 수 있으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어찌 순식간에 5천명이 배불리 먹게 만들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바벨이 악카드어 밥일리의 뜻, 즉 ‘신의 문’에서 나온 단어라는 데에 대해서는 본인도 이견이 없다. 그리고 후대인이 ‘혼란시키다’는 의미인 히브리어 ‘발알’과 혼동함으로써 위와 같은 기록이 남게 되었다는 주장 역시 동의한다. 구약이 고대 히브리어로 쓰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 바, 성서의 기록자가 구전돼 오는 민족의 이주사(移住史)를 기록할 때 그와 같이 해석했을 가능성이 충분한 까닭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배경을 덧붙이고 싶은즉, 그들 고대 유대인의 민족 이동기에 있었을 현지인과의 갈등이 그것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그들 셈의 후손들이 아르메니아 지방을 떠나 메소포타미아로 이주할 때, 이미 그곳에 정주하고 있던 현지인과의 심한 알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주민들인즉 아무리 지구인과의 교합으로 인한 종족의 번성이 있었다 할지라도 조상인 아담의 피의 색깔을 지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현지인과 상이한 외모에 따른 부적응을 피할 수 없었을 터인데, 그보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그들의 서로 다른 언어였다. 


    지금 남아 있는 점토판 등의 기록을 보면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수메르인은 교착어(膠着語)를, 나머지 셈족의 악카드인, 바빌로니아인, 앗시리아인 등은 모두 굴절어(屈折語)를 사용하고 있다. 따로 설명할 것도 없이 한 민족의 언어란 쉽게 형성되고 변화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 그중에서도 특히 어근(語根)과 접사의 결합으로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교착어(한국어, 일본어, 터키어 등)는 어형과 어미의 변화로서 문장을 만드는 굴절어(영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유럽나라의 언어)와 언어적 유사성이 전혀 없어 배우려 해도 결코 쉽게 배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만일 그처럼 이질적 언어를 쓰는 두 민족 집단이 공동의 목적으로써 한 도시를 건설한다면 그 민족들의 외형의 상이함을 떠나서라도 결코 성사될 수가 없을 터, 그들은 성 쌓기를 그치고 온 지면에 흩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셈의 후손들은 시날 평원을 여러 곳에 흩어져 정착했다. 그것이 바벨탑의 사건 이후 다시 이어지는 창세기 11장 10절부터의 이주 기록인데, 그러나 그들이 메소포타미아 전체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였으니, 곧 ‘문명의 새벽’이 잉태됨이었다. 즉 그들이 가져온 선진 문물이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탄생시키는 데 엄청난 공헌을 하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시날 평원에 정착했던 셈의 후손 중에는 저 유명한 아브라함이 있다. 아브라함의 조상은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가장 남쪽인 우르에 정착해 살았다. 위 사진의 지구라트가 존재하는 바로 그곳이다. 거기 살던 아브라함은 어느날 여호와의 명령으로 우르를 떠나 가나안, 즉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으로 들어가게 된 일, 이것은 창세기에 있어 가장 큰 사건으로 여겨진다. 성서의 이스라엘의 역사 및 오늘날의 이스라엘의 근거가 바로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인 바, 다음에는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를 설명해볼까 한다. 물론 그 이주 과정과 정착 과정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성서 속의 UFO를 설명하고자 함이다.


    후기 수메르인의 정착

    화살표는 그들이 내려온 방향이고 빨간 점은 그들이 세운 도시국가들이다. 지도에서는 에리두가 중심도시로 강조되었으며, 딜문이라 불린 해양왕국과도 교류하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에리두 지구라트 흔적

    성서에서처럼 연와(구운 벽돌)와 역청(끈적한 석유 몰타르)이 사용되어진 흔적이 역력하다. 


    「babel tower」の画像検索結果

    수메르인들의 지구라트 건설 상상도

    「babel tower」の画像検索結果

    성서에 의거한 바벨탑 건설 중단의 상상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싸우는 모습을 그렸다. 


    http://www.livius.org/site/assets/files/19853/babylon_map2.gif

    바빌론의 평면도와 이에 근거된 복원도 


    중심에 에테 멘 앙키가 있으며, 앞쪽의  ㄱ 자 건물이 에사길 신전이다. 



      http://www.wiseoldgoat.com/images-cse/cse-part3a_slides/Slide192.jpg   https://encrypted-tbn0.gstatic.com/images?q=tbn:ANd9GcSjuaOah2ikZc-R1OlqswbjUENd8IvQisatNVw8k--h-aA7GvQdIw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바빌로니아의 영광 재현이 평생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롤모델인 네부캇네자르 2세가 함께 새겨진 주화까지 발행하였으나 결국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image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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