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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와 모세를 태우고 나타난 서기 30년의 UFO성서와 UFO 2017. 5. 16. 16:27
과거 나는 성서를 대할 때마다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여러 대목을 발견하곤 했다. 이에 여기저기 다른 책을 찾아보고 보다 난 사람들을 찾아 물어도 봤지만 만족할만한 답을 얻은 적은 드물었다. 그래서 스스로 결론을 내린 것이 지금 썰을 풀고 있는 '하나님=외계인'설로, 그 계기가 마련된 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1996년 11월 22일에 근접 목격한 UFO의 편대비행이었다.(* '들어가기 - 나의 UFO 목격담' 참조)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성서 전반에 대해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상격(相隔)'이다. 나는 나름대로 '상격'이란 최적의 단어를 골랐지만 해득이 어렵다면 '별거'로 이해해도 무난할 듯싶다. 별거 부부와 같이 서로 따로 살거나 따로 노는 느낌이 현격하다는 것이니, 그 두 책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고리인즉 신기하게도 별로 없다.
기독론자들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태복음 5:17)↘
↖고 하는 예수의 말을 내세워 모세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말하지만, 정작 각론에서는 모세의 율법은 예수에 의해 많은 부분이 부정당했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자면 다음의 내용들이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애급기 21:23-25)
이렇듯 구약에서는 철저히 동해(同害)보복의 탈리오의 형법이 적용되지만,↘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부분). 모세의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나 있다.
출애급기를 보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시나이 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났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광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카란(קָדַַו)이다. 그런데 이 '카란'은 '뿔을 갖다'는 뜻도 가지고 있는 바, 아마도 미켈란젤로는 후자로 해석된 라틴어 성서를 읽은 듯 보인다. 아마도 히에로니무스가 라틴어 성서 '불가타'를 내면서 모음이 없는 고대 히브리어 qrn을 qaran(뿔을 갖다)으로 해석한 탓일 게다.
↖예수는 그것을 이렇게 부정한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마태복음 5:39-40)
미켈란젤로의 예수 상(부분).이 예수 조각상은 문헌상으로만 존재해왔으나 지난 1997년 이탈리아 시골 수도원에서 로마대학의 스콰르치나 교수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었다. 전체 길이 2m가 넘는 거상이다.어쩌면 이같은 훌륭한 인격을 '완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각론으로는 분명 부정당한 것이며, 보다 냉정히 말하자면 이는 오히려 완성이 아니라 퇴보라 할 수 있다. 모세의 율법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반면(상해를 입은 만큼만 보복하고 그 이상 보복하지 말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음을 상기하자) 예수의 율법은 전혀 비현실적이다.(신앙의 유무를 막론하고 위 마태복음의 말씀처럼 행했다는 자에 대해 듣거나 본 적이 있는가? 심지어는 예수조차 자신의 뺨을 때린 대제사장의 꼬붕에게 잘잘못을 따지며 화를 냈다/요한복음 18:22-23)
아무튼 구약(the Old Testament), 즉 여호와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옛날 약속은 예수를 통해 맺어진 새로운 약속, 즉 신약(the New Testament)으로 바뀌게 되는데, 꼭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구약과 신약은 서로의 연결 고리가 매우 빈약하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일 그 연결 고리가 튼튼했다면 유대교에서 신약을 제쳐놓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의 모태인 유대교에서는 신약을 인정하지 않고(예수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구약 39권만을 경전으로 여기는데, 반면 기독교에서는 구약 39권에 신약 27권을 더한 66권의 신구약의 합본을 모두 정경(正經)으로 여긴다. 따라서 무겁게 모두 들고 다닌다.(내 생각으론 가벼운 신약성서 한 권만 들고 다니며 그저 3X9=27의 공식 정도만 아는 것으로도 족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다면 성서의 신구약의 고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앞서 말한대로 빈약하나마 그 고리가 존재하는 바, 기독론자들이 주장하는 고리는 우선 구약성서 이사야서에 등장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이같은 예언의 실현이 곧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탄생한 예수이므로 신구약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최근 카톨릭 교계로부터 공식적으로 부정됐다. 이유인즉, 원문인 히브어 성서에 써 있는 알마(עַלְמָה)는 일반적 호칭으로서의 '젊은 여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카톨릭 영역성경에서는 2011년 3월 9일 부로 '처녀(virgin)'를 '젊은 여자(youngness)'로 바꿨다 하는데, 17년 동안 50명의 신학자와 바티칸에서 인정한 5명의 신부가 수많은 토론과 검증을 거쳐 내린 결론이라 한다. 물론 카톨릭에 한해서이고 기독교에서는 아직 처녀를 고집하고 있다. 참고로 처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툴라(בתולה)이다.
사해 사본 이사야서와 문제의 단어 '알마'
이와 유사한 주장으로서 구약성서 미가서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지에 대한 예언이 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으리라. (미가 5:2)
이같은 미가의 예언은 언뜻 신빙성이 짙어보인다. 훗날 정말로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 왕궁을 찾아갔을 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옛 기록을 근거로써 이스라엘 왕의 탄생지로 베들레헴을 지목하기도 한다.(* '예수의 탄생 때 출현한 베들레헴 상공의 UFO' 참조)
그러나 이 내용 역시 최근에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는데, 다만 이것을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좁다. 여러 이설이 존재하는 미가서의 '베들레헴 에브라다'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베들레헴이라 한다 해도, 그 전에 상존하는 문제들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요지를 말하자면,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이 사실인가?'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로마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켄수스(CENSUS), 즉 인구조사령의 시기부터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야 하는 바, 이에 대해서는 따로 지면을 마련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 I, II, III' 참조)
그밖에 구약성서 창세기 3장 15장에 등장하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만들 여자의 후손'이 곧 예수를 지칭한다는 매우 어처구니없는 연결 고리를 들이대는 기독론자들도 있으나, 이 같은 해석은 그저 억지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으므로 무시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아울러 다니엘서와 스가랴서에 기록된 메시아, 십자가 형, 은(銀) 30개 등의 단어를 예수의 출현 및 죽음에 관한 예언으로 결부시키기도 하는데, 이 역시 억지춘양으로 오히려 성서의 격만 떨어뜨리는 꼴이다.(* '가룟 유다를 위한 변론 I' 참조)
그런데 이 모두들 아우를만한 확실한 기록이 신약성서에 존재한다. 바로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에 등장하는 이른바 '거룩한 변모'라 불리는 내용으로, 그중 마태복음에 실린 상세는 다음과 같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꼐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꼐서 나아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마태복음 17:1-8)
위 기록의 배경으로 알려진 타볼산.(이것이 맞는 지는 알 수 없으니 성서에는 그저 '높은 산'으로 표기됐을 뿐이다)
지도는 위 사건이 일어난 곳이 갈릴리의 타볼 산인지 그 위쪽의 헤르몬 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성서를 충실히 읽은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지도이다.(마태/마가복음에서는 이 사건 직전에 예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도착한 곳이 유다의 북부지방인 '빌립보 가이사랴'로 되어 있다. 헤르몬 산에 대해서는 'UFO를 타고 왔던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후 어떻게 되었나?' 참조)
아무튼 타볼 산 꼭대기에는 이와 같은 '거룩한 변모 성당'이 세워졌다. 이를 입증한 사람은 서기 348년의 치릴루스 주교라는데, 어떻게 증명했는지 정말로 궁금하다.
성당은 20세기 초에 세워졌으며, 안에는 성서의 내용을 설명하는 벽화가 그려졌다. 가운데 예수의 왼쪽이 모세, 오른쪽이 엘리야이며, 아래는 예수와 함께 산에 올라간 제자들이다.
교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를 '거룩한 변모'라 부르며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수난과 영광의 부활을 미리 보여준 징표라 해석하는데, 카톨릭에서는 특별히 이 날을 '거룩한 변모 축일'을 정해 따로 기념하기도 한다. 이 같은 교계의 해석에 대해서는 본인도 특별히 이견이 없다. 공관복음서에 써 있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또 그 각론의 해석에 있어서도 같다. 이 이야기의 내용은 가이샤라 빌립보 근방의 높은 산(근방의 높은 산은 헤르몬 산밖에 없다)에 올라간 예수가 문득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장차 예수의 예루살렘에서 죽음에 관해 논의했다는 것인데, 그 논의 내용에 관해서는 누가복음의 내용이 보다 자세하다.(9:30-31) 기타 몽환에서 깨어난 베드로가 그들을 위한 초막을 짓겠다는 헛소리를 해댄 것에 대해서는 그저 충성심만이 가상해보일 뿐, 달리 주목할 내용은 없어 보인다.
아울러 누가복음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났으며, 그들이 떠날 때는 구름이 와서 그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9:30-31/9:34)'는 내용이 등장하는 바, 그들이 UFO를 타고 나타났다 사라졌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영광'이란 단어가 UFO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서 수없이 방점을 찍었으므로 따로 부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이 만난 UFO와 가나안 이주의 진실 I/ 'UFO의 레이저 빛에 혼쭐이 난 사울' 참조)
기원전 1300년 전의 모세와 기원전 850년 전의 엘리야가 어떻게 다시 나타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어지는 아래의 성서 내용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엘리야의 재림에 관한 그 모든 것을 함축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UFO의 모선에 끌어올려진 선지자 엘리야' 참조)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마태복음 17:9-13)
이상 마태복음 17장의 내용과 누가복음 9장의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1. 예수의 모습이 빛과 같이 하예진것은 문자 그대로 강한 빛이 내리쬤기 때문이며,
2. 그 빛이 내리쬔 곳은 UFO로서 모세와 엘리야는 그것을 타고 왔고,
3. 그중에서 특히 엘리야는 세례자 요한에게 DNA를 공여한 자였다.(* 'UFO의 모선에 끌어올려진 선지자 엘리야'/ '세례자 요한의 정체' 참조)
4. 그들 세 사람이 산 꼭대기에서 만난 것은 예수가 제안한 죽음과 부활의 방법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는데,
5. 다만 모세와 엘리야는 그 같은 예수의 생각에 부정적이었다.
6. 하지만 예수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은 UFO 속에서 이 논의를 지켜보던 여호와의 추인을 얻어낸다.
7. 이에 모세와 엘리야를 태운 UFO는 돌아가고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산을 내려오는데,
8. 이때 예수는 제자들이 산에서 본 것들을 떠들어 혹시라도 산통을 깰까, 자신의 부활 전까지 이 모든 것에 대한 철저한 함구를 당부한다.
이상이 구약을 대표하는 강력한 두 명의 선지자와 예수와의 만남에 관한 풀 스토리로서, 이는 구약과 신약을 잇는 확실한 가교인 동시에, 성서에 있어서의 UFO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겠다.
이후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있어서의 하늘나라 사람들(엘로힘)의 역할은 앞선 챕터인 '예수 승천 때 출현한 UFO의 모선'편의 설명을 참조해 주시길.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apan Images
-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 국내도서
- 저자 : 김기백
-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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