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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돌하르방
    탐라의 재발견 2022. 5. 29. 23:58

     

     

    위의 사진 제주시 관덕정 후원에 있는 돌하르방으로, 천진함을 담은 귀여운 웃음으로 인해 제주도에 있는 45개 돌하르방 중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석인(石人)이 되었다. 육지 사람들은 대개 이러한 모양을 연상하나 일반적 생각과 달리 제주의 돌하르방은 조선시대 행정구역인 1목2현의 것이 완전히 다르다.  

     

    '제주도 돌하르방의 미스터리'에서 살펴본 것처럼 제주의 돌하르방은 조선시대 행정구역에 따라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이 같은 지역적 특색은 제주도의 돌하르방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제껏 이러한 차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들을 것 같지는 않다. 제주도 돌하르방이 탄생한 이유 자체에 대해서도 아직 밝혀진 것이 없는 마당이라.... 아무튼 대별하자면 아래와 같다. 

     

     

    제주목 돌하르방
    대정현 돌하르방
    정의현 돌하르방

     

    조선시대부터 전해지는 오리지널 돌하르방은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져 있었던 바, 그 역할은 아마도 마을수호신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즉 돌하르방은 제주읍성 동·서·남문 앞 세 곳에 각 8기씩 24기, 주요 치소(治所)였던 대정현과 정의현 성 문 앞에 각 12기 씩 모두 48기가 세워져 마을을 지켰다. 하지만 현재는 45기만 전하는데, 그중 제주읍성  것 1기는 일제시대 행방불명되었으며 2기는 1960년 서울로 옮겨졌다.

     

    뿐만 아니라 제주읍성 돌하르방 24기 중 제자리를 지키는 것은 없으니,

    동문의 것은 제주시청(2기), 제주 KBS 앞(2기), 제주대 박물관 앞(2기)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2기)으로 옮겨졌고,

    서문의 것은 삼성혈 건시문 앞(2기), 관덕정 앞뒤(4기), 제주대 박물관 앞(2기)으로 옮겨졌으며, 

    남문의 것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입구(2기) 제주목 관아(2기), 삼성혈 입구(2기), 제주돌문화공원(1기)으로 옮겨졌다.

     

     

    제주읍성 동문 밖에 있던 돌하르방 / 일제시대 도로 정비 직전 찍은 사진이다.

     

    그중 현재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 있는 2기는 말한 대로 제주읍성 동문의 것으로서,(위 사진) 살펴보니 같은 동문의 것인 제주대 박물관 앞의 2기와 매우 닮은 꼴이다.(누가 형제 아니랄까봐....) 그리고 받침돌에 서로 정낭을 맞걸은 구멍이 파 있어 한 쌍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생김새와 구멍들로써 이들은 서로 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제주와 서울에 존재하는 이산가족이 되었고, 게다가 만날 수도 없는 바, 안타까운 마음 떨칠 수 없다.  

     

     

    국립민속박물관 우측 돌하르방 / 대석에 정낭을 끼우게 만든 구멍이 있다.
    제주대박물관 우측 앞쪽 돌하르방 / 대석에 정낭을 끼우게 만든 구멍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좌측 돌하르방 / 대석에 정낭을 밀어 걸치도록 홈이 파여 있다.
    제주대박물관 좌측 앞쪽 돌하르방 / 대석에 정낭을 밀어 걸치도록 홈이 파여 있다.
    제주대박물관 좌우의 돌하르방
    국립민속박물관 좌우의 돌하르방과 정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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