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페르츠의 단상
-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사실적인 성화와 비사실적인 성서미학(美學) 2024. 5. 9. 18:20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 1563~1639)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화풍 시대의 화가로서 피사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의 화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서의 내용을 화폭에 옮기는 종교화를 많이 그렸는데, 다분히 카라바조 풍이다. 카라바조 풍은 성서의 내용을 그리되 성(聖)스럽게보다는 '속'(俗)스럽게 표현하는 작법으로,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를 개막한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가 채용한 작법이라 하여 그렇게 불린다. 그렇지만 '속'(俗)스럽다 하여 저속하게 그린 것은 결코 아니고 그저 그 당시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를테면 의상이나 생활양식을 고대가 아닌 현실에서 가져오는 식이었다. 따라서 그림의 이해가 쉬웠다. 이에 ..
-
서울근교의 최고 비경(秘景) 삼천사 계곡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5. 8. 18:10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의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절로, 흔히 진관사·흥국사와 더불어 북한산 3대 사찰로 불린다. 이 절을 정말로 원효대사가 창건했는 지는 확인할 길 없으나 이 절의 산령각 앞에 위치한 높이 3미터의 마애여래입상은 형식으로 볼 때 최소한 고려 초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 시대적 가치와 조형미를 인정받아 1979년 보물 제657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삼천사에서 눈이 가는 유적은 그것이 전부다. 물론 절 자체가 옛 자리가 아닌 새 터에 지어진 새 절인 까닭에 옛 당우가 전혀 없기도 하지만, 너무도 화려하게만 꾸며진 탓에 그저 볼수록 정신 사나울 뿐이다. 물론, 뽀샵 지나친 절들을 혐오하는 개인적 성향이 반영된 결과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절..
-
불멸의 여신 모건티나의 비너스(혹은 페르세포나)미학(美學) 2024. 5. 6. 16:46
모건티나(Morgantina)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가운데에 있는 고대 그리스·로마 유적지이다. 모건티나 유적은 크게 두 곳으로 분류되는데, 이중 시타델라 지역은 BC 11세기부터 BC 450년경까지 존속했으며, 셀라 올란도 지역은 BC 450년부터 AD 50년경까지 존재했다. 모건티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BC 465?~400?)의 것이며, 로마의 역사가 테이투스 리비우스(BC 59?~17)가 남긴 '이 땅이 2차 포에니 전쟁 중 스페인 용병에게 전리품으로 주어졌다'는 기록이 주목받는다. 20세기 초 발굴조사 중 발견된 HISPANORUM이라고 각인된 동전 속 주인공이 그 용병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이 땅을 무르겐티니(Mugentini)라..
-
북촌 한 동네에 살던 혁명의 주역들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5. 4. 21:40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써 외면 하는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萩)시는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야마구치현까지는 부산에서 약 215km이다. 다만 직항은 없어 전통의 부관페리를 타고 밤 10시에 출항하면 다음 날 아침에 7시에 시모노세키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관부연락선이라고 불렸던 부관페리는 부산과 하관(下關, 시모노세키)에서 한 자씩 따 붙였다. 시모노세키에서 차로 갈아타고 북쪽으로 약 1시간 30분을 가면 하기시 죠카마치(城下町, 성밑 마을)에 이른다. 1874년 스스로 해체한 하기 성(城)과 이어진 죠카마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유명한 요시다 쇼인(1830~ 1859)의 쇼카손주쿠(松下村塾)가 있다. 요시다 쇼인은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
-
율도(밤섬)에서 일어난 엽기적 살인사건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5. 3. 08:26
앞서 1편(☞ '한강의 무인도 밤섬')에서 채 설명을 못했으나 밤섬이라는 지명은 와우산에서 본 모양이 밤톨처럼 생긴 데서 유래됐다. 당시에는 한자어인 율도(栗島)로 불렸다. 지금 보면 밤보다는 땅콩처럼 생겼으나, 과거 섬이 작았을 때는 밤톨처럼 보였을 것이니 아래 심사정의 그림에서 당시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마(馬), 판(判), 석(石), 인(印), 선(宣)씨의 5개 희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며, 이들은 앞서 말한 대로 배를 만들고 누에를 치며 생계를 이었다. 주민들은 길이 18m의 장도릿배, 15m 정도의 조깃배, 12m 정도의 늘배 등을 만드는 배 목수 일을 했다. 이들의 기술은 꽤 뛰어났던 듯, 상류인 단양·영월에서부터 하류인 김포·강화도에서까지 배를 만들려는 사..
-
한강의 무인도 밤섬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5. 2. 23:09
한강의 밤섬은 지금은 무인도이며 들어갈 수조차 없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살던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천여 명의 주민들이 고깃배 제작과 함께 누에를 치고 약초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었다고 하는데,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섬 전체가 뽕나무 밭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밤섬 전체 면적의 절반가량이 버드나무와 뽕나무 군락이다. 1968년 섬을 폭파하고 뽕밭을 싹 밀어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를 만들었음에도 다시 섬이 생기고 뽕밭을 이룬 것을 보면 자연의 힘이란 정말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밤섬에는 1960년대 말까지도 78가구 443명의 주민이 살았다. 하지만 이들은 마포 창천동 와우산 기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고,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다이너마이트 폭발 굉음과 함께 섬은 폭파되었다. 당시 공..
-
일본서기와 임나일본부잃어버린 왕국 '왜' 2024. 5. 1. 00:01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아스카시대에 해당하는 서기 4~6 세기 중엽, 한반도 남부지역(임나)을 정벌해 일본부(日本府)라는 통치기구를 세웠으며, 이후 제후국(번국) 또는 식민지로 삼아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대한민국 학계는 이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거짓으로 규정했다. 즉, 일제강점기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 쓰다 소키치(津田左右佶), 스에마츠 야스카즈(末松保和),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등이 에 근거해 만들어낸 가짜 역사라는 것이다. 나아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된 마저 위서(僞書)로 보았다. 사실 우리로서는 그럴 수 있는 입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가 위서라면 거기 쓰여 있는 내용을 깡그리 버려야 옳겠거늘, 일부는 취사선택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동·재동·미동초등학교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4. 29. 21:40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는 서울 종로구 운현궁 부근에 자리한 서울교동초등학교이다. 교동초등학교는 서구식 근대교육을 위해 1894년 9월 18일 관립교동소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 그때가 으악! 고종 31년이다. 초기 재학생 수가 130~150명 정도로 적지 않았는데, 필시 교동향교에서 공부하던 학동들이 옮겨왔을 터이다. 교동향교는 교동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유서 깊은 향교였으나 결국 그해 폐교되어 사라졌다. 안타깝지만 교동향교의 훈장님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을 듯싶다. 관립교동소학교는 1906년 관립교동보통학교, 1941년 경성교동공립국민학교, 1947년 서울교동국민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가 1996년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두번째로 오래된 초등학교는 재동 헌법재판소 건너편에 자리한 서울재동초등학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