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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핑크스의 진실 (I)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3. 8. 08:47


    고대의 미스터리 건축물 스핑크스는 유적이라 해야 될지 유물이라 해야 할지 그것부터 애매하다. 아무튼 이집트 기자의 스핑크스는 그 거대한 규모와 ‘고대’라고 하는 건축적 시기로 인해 늘 ‘불가사의’의 범주에 속했다. 그렇다고 이제껏 별다른 도전에 부딪힌 적은 없었으니 그저 아래의 전통적 가설이 진실로 여겨졌다.


    미술품으로서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스핑크스는 이집트 기자에 있는 거대한 와상(臥像) 스핑크스로, 카프레 왕(제4왕조의 제4대 왕, BC 2575경~2465경)의 재위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스핑크스의 얼굴은 카프레 왕의 초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스핑크스는 당시 왕의 얼굴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대개의 외국인들에게 스핑크스의 이미지는 이집트의 스핑크스에 근거를 두고 있다.('다음 백과')



    쿠푸 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1887년 헨리 비쳐드가 촬영한 스핑크스


    17989-99년 프랑스 나폴레옹 원정대가 그린 쿠푸 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이것이 스핑크스에 대한 교과서적 해석으로, 이 같은 해석은 20세기 말엽까지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해석은 지난 1993년 아마추어 이집트학 학자이며 이집트 여행안내서 책자의 저자에 불과한(?) 존 앤서니 웨스트에 의해 무너졌다. 기존의 가설에 의문을 품었던 웨스트는 뉴욕 경찰국 소속의 몽타주 전문가 프랭크 도밍고를 불러들여 기자의 스핑크스와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카프레 왕의 조각상을 비교해줄 것을 의뢰했는데, 그 결과가 기존의 가설을 뒤집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까닭이었다. 도밍고가 컴퓨터 그래픽과 뉴욕경찰의 표준감식법을 이용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뽑은 여러 장의 사진들을 측정해본 결과로서 얻은 나의 최후 결론은 처음의 짐작과 일치한다. 즉 두 대상은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이는 전면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측면 얼굴에서는 각 부위의 비율이 전혀 맞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바, 스핑크스와 카프레가 동일 인물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단 1%도 되지 않는다." 



     프랭크 도밍고가 분석한 기법


    프랭크 도밍고의 결정적 사진. 카프레 왕과 스핑크스는 턱 끝에서 눈 끝까지의 각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아래는 앤서니 웨스트와 프랭크 도밍고가 스핑크스 얼굴과의 비교 모델로 삼았던 카프레 왕의 조각상이다. 이 화강섬록암 조각상은 19세기 말 스핑크스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계곡의 신전에서 발견된 것으로, 브리티시 박물관의 이집트 학예사 어니스트 버지 경은 이것을 카프레 왕의 조각상으로 추정하였다.




    카프레 왕의 조각상



    아래 비석은 스핑크스의 다리 사이에서 발견된 투트모세 4세(재위 BC 1400-1390)의 비석으로, 그 내용에는 투트모세 4세가 저녁 식사 후 선 잠에 들었을 때 스핑크스가 나타난 모래 속에 파뭍인 자신을 꺼내주면 왕위에 오르게 해주겠다는 일화가 들어 있다. 그리고 아래 비석 맨 마지막 줄에는 '카프레' 혹은 '카프라'로 추정할 만한 명문이 새겨져 있었던 바, 스핑크스를 카프레 왕이 만들었으며, 근 계곡의 신전에서 발견된 위의 조각상을 카프레 왕의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투트모세 4세의 비석 


    발견 당시의 사진(화살표)

     

    스핑크스 인근의 신전



    아마추어 학자가 제기한 새로운 학설에 충격을 받았음일까, 비슷한 시기에 시카고 대학의 정통 이집트학 학자인 마크 레너는 카프레 왕으로 알려진 다른 여러 조각상을 가지고 분석에 들어갔다. 그는 아래의 조각상을 카프레 왕의 것으로 추정했는데, 어니스트 버지가 말한 '카프라(Cha-f-Ra)'는 단순히 카프(Khaf)라는 음절일 뿐이며, 왕족의 이름에서 나타나는 '카투쉬'가 없다는 이유로 위의 조각상이 카프레 왕임을 부정했다



    쿠푸 왕의 히에로글리프(상형문자)에서 보이는 카투쉬(이름을 둘러싼 둥근 타원형)


    関連画像





     레너가 주장하는 카프레 왕



    그렇다고 마크 레너의 분석기법이 뛰어난 차별성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레너는 눈 코 입의 각 부위를 보다 정밀히 분석하고 두 대상의 얼굴을 겹쳐 식별을 쉽게 만들었는데, 그가 주장하는 조각상에서도 역시 스핑크스와는 큰 차이점을 나타냈다. 



    래너가 비교한 두 조각상


    스핑크스를 분석하는 마크 레너



    이렇게 하여 스핑크스가 카프레 왕의 얼굴이라는 기존의 가설은 무너지게 되었는데, 어찌됐든 이에 대한 아마추어 이집트학 학자 앤서니 웨스트의 공로는 지대한 것이었다. 아울러 그는 더 나아가 지질학적 연구와 천문학적 상상력을 곁들여 스핑크스의 건립 연대를 기원전 9000년까지 대폭 끌어올려 다시 한번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상상력이 지나쳤던 것일까, 그는 오랫동안 화제가 됐던 저 유명한 화성의 인면(人面)상을 우주의 스핑크스 상으로 해석해내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그 옛날 스핑크스를 만든 어떤 존재가 화성의 심볼을 건설하였을지 모른다는 대범한(?) 가설을 제시한 것인데, 문제의 인면상이 빛의 음양효과로 인한 착시임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아서였다. 



    1976년 7월 25일 NASA의 화성탐사선 바이킹 1호가 촬영해 보내온 화성의 인면상


    1998년 4월 5일 재촬영된 사진(가운데)과, 2001년 NASA에서 컴퓨터로 화질을 향상시킨 사진(오른쪽)



    한마디로  앤서니 웨스트는 체면을 구기는 헛발질을 한 셈이었다. 그러나 웨스트의 상상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으니, 그의 생각은 '오리온 미스테리'의 저자인 천문학자 에드리언 보발, 그리고 세계적 베스트셀러 '신의 지문'의 저자 그레이엄 핸콕에게 커다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창세의 수호신(Keeper of Genesis)'이라는 책을 써 냈던 바, 스핑크스의 건립 연대는 기존의 기원전 2500년에서 기원전 1만500년으로 수직 상승하였다. 이에 대해 저명한 고고학자 피터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같은 스핑크스의 연대 재조정이 정확하다면 이집트학 학계는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각종 고대사 교과서들을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기존의 학설로 알다시피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200년경에 비교적 갑자기 일어났다. 그 시기에 도시, 신전, 상형문자 기록, 탁월한 미술 등이 처음으로 이집트에 나타났다. 스핑크스가 기원전 1만500년 이전에 조각되었다면 그것을 누가 만든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 답이 밝혀진다면 참으로 소름끼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배치도


    스핑크스와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스핑크스는 그 뒤의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및 장제전(張祭殿)과 포장도로로 연결돼 있어 흔히 카프레 왕의 건축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피터 제임스의 말처럼 이제 스핑크스는 우리에게 소름끼치는 답을 말하려 하고 있다. 


    * '스핑크스의 진실 II'로 이어짐.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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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