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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핑크스의 진실(III)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3. 10. 20:07

     

    비록 정설로는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엔서니 웨스트의 종횡무진한 활동이 많은 지식인들에게 자극이 된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생각과 궤를 같이 하는 무리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으니 앞서 소개한 일련의 얼굴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그레이엄 핸콕의 활약은 단연 발군이었던 바, '신의 지문'을 비롯한 여러 저서는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로버트 보발과 에드리언 길버트의 활약도 못지 않았으니, 그 두 사람은 1994년 출간한 '오리온 미스테리'에서 가히 혁명적인 가설을 제기했다. 요약을 하자면,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군 배열이 일직선 상을 벗어나 위치하고 있는 이유는 저 밤하늘의 오리온 좌를 따랐기 때문이며, 나아가 일대의 피라미드 역시 오리온 좌 주변 별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자 지역에 있는 3개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3천년경이 아니라 기원전 1만1천년 경의 오리온 자리의 세 별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비단 이집트 피라미드 뿐만 아니라 고대문명의 건축물은 천문학적 지식을 반영한 별자리와 많은 연관이 있는데 그 시기가 대략 기원전 1만5천년에서 1만년 사이라고 한다. 이러한 배치와 표현이 가능한 것은 지구의 세차 운동(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 26,000년을 주기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현상으로, 이에 따라 천구의 별자리가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라는 자연현상에 대해 고대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http://epicurus.tistory.com/127 [閑良傳_세상의 정원에서 놀고 쓰다]
    헨콕은 고대 문명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 이집트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도 초고대문명의 유적이라고  주장한다. 헨콕에 따르면 일부의 학자들은 스핑크스가 기원전 1만년 보다 더 오래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한 추리가 가능한 것은 건조지대인 이집트의 기후 특성과 맞지 않게 스핑크스가 비에 의해 침식당한 흔적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집트가 우기였던 때, 즉 기원전 1만년보다 더 오래 전에 이미 스핑크스가 건축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출처: http://epicurus.tistory.com/127 [閑良傳_세상의 정원에서 놀고 쓰다]
    또한 기자 지역에 있는 3개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3천년경이 아니라 기원전 1만1천년 경의 오리온 자리의 세 별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비단 이집트 피라미드 뿐만 아니라 고대문명의 건축물은 천문학적 지식을 반영한 별자리와 많은 연관이 있는데 그 시기가 대략 기원전 1만5천년에서 1만년 사이라고 한다. 이러한 배치와 표현이 가능한 것은 지구의 세차 운동(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 26,000년을 주기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현상으로, 이에 따라 천구의 별자리가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라는 자연현상에 대해 고대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http://epicurus.tistory.com/127 [閑良傳_세상의 정원에서 놀고 쓰다]
    헨콕은 고대 문명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 이집트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도 초고대문명의 유적이라고  주장한다. 헨콕에 따르면 일부의 학자들은 스핑크스가 기원전 1만년 보다 더 오래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한 추리가 가능한 것은 건조지대인 이집트의 기후 특성과 맞지 않게 스핑크스가 비에 의해 침식당한 흔적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집트가 우기였던 때, 즉 기원전 1만년보다 더 오래 전에 이미 스핑크스가 건축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출처: http://epicurus.tistory.com/127 [閑良傳_세상의 정원에서 놀고 쓰다]

     

    그들의 주장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이는 바, 기자 피라미드군의 배열은 '가장 이상적이었을' 일직선 상의 배열을 거부하고 있다. 아래 그림과 사진에서 보듯 기자 피라미드군의 가장 왼쪽에 있는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는, 가운데 카프레 왕 및 오른쪽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보다 현저히 작을 뿐 아니라 그 직선 배열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 이유는 당연히 오리온 좌의 민타가(Mintaga) 성(星)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자 북쪽 네부카 왕의 피라미드도 오리온 좌 왼발의 밝은 별과 위치를 같이 하며, 기자 남쪽 아부 로와시에 있는 제데프레 왕의 피라미드 역시 오른 손 밝은 별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기타 오리온 좌를 충실히 완성시킬 수 있는 나머지 두 개의 피라미드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보발은 이에 대해 "이 두 개의 피라미드는 건설되지 않았거나 파괴되어 사막의 모래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라고밖에 결론지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집트에는 그와 같은 피라미드도 상당수였을 터, 보발의 말도 딴은 이해가 간다. 오리온 좌와 일치하는 이상 다섯 개의 피라미드만으로도 그들의 노력은 인정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오리온좌 삼태성에 해당하는 기자 피라미드군
    리겔(Rigel)에 해당하는 네부카 왕 피라미드  
    베텔게우스(Beteigeus)에 해당하는 제데프레 왕 피라미드

     

    이상의 대중적 인기에 힘입은 핸콕과 보발은 이번에는 둘이 연합하여 1996년 '창세의 수호신(Keeper of Genesis)'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스핑크스의 새로운 천문학적 연대였다. 그들은 우선 스핑크스의 얼굴이 정동(正東)을 향하고 있는 것은 어떤 천문학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스핑크스와 태양신을 동일시했다는 논란 거리 없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 주장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스핑크스를 하르마치스라고 불렀는데, 이는 '지평선의 호루스 신'을 뜻하는 '호르 엠 아케트'에서 나온 말이었다. 또 셉 앙크 아툼이라는 명칭도 있었는데, 이는 '아툼 신의 살아 있는 형상'이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스핑크스는 셉 앙크 아툼의 축약인 '셰셉 앙크(Shesep-ankh)'에서 파생된 말로 여겨지고 있다. 아무튼 스핑크스가 태양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바, 그것은 아래의 그림으로도 증명된다. 

     

     

     

     

     

    핸콕과 보발은 지리학적인 정동이 춘분인 3월 20일에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을 중요시했음은 여러 모로 알 수 있는데, 그들이 피라미드의 동서남북을 정확히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춘분과 추분점을 활용했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이집트인은 이 춘분점을 표시하기 위해 스핑크스를 건립했으며 이 같은 사실을 자신들 컴퓨터 역산의 핵심 포인트로서 가정했다. 

     

     

    스핑크스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태양  

     

    이에 앞서 보발은 자신의 책에서 기자의 파라미드군이 기원전 1만500년 무렵의 오리온 자리임을 주장하였던 바, 그들은 이번에도 그 시기에 맞춰 컴퓨터로써 당시의 하늘을 모습을 재현해 보았다. 그리고 춘분일의 새벽 직전 스핑크스가 기자 고원 건너편에 떠오르는 사자자리를 바라보았을 것이라는 추론을 이끌어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만500년 전에는 사자 형상의 사자자리가 동쪽을 향한 스핑크스의 정면에 떠올랐을 뿐 아니라 지평선과 평행하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증명해낸 것이었다. 

     

     

       <그림 1> 
     <그림 2>  
       <그림 3>

     

    위의 그림을 가지고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기존에 알려진 스핑크스의 건립 연대인 기원전 2500년을 대입하면 춘분 새벽 직전 사자자리(Leo)는 정동쪽에서 떠오르지 않고 북쪽으로 28도 기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 스핑크스의 위치와 예각을 이루게 되나,(그림 1) 1만500년을 대입하면 사자자리가 스핑크스의 정동에 떠오를 뿐 아니라(그림2) 지평선과 평행하게 자리잡게 된다는 것으로서,(그림 3) 이같은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지구축의 세차운동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은 앞서 앤서니 웨스트가 설명하지 못한 스핑크스의 건축 동기와 건축자들을 한꺼번 해결하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고대 이집트의 많은 스핑크스 상이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는가를 아우를 수 있는 주장이었다. 아울러 이는 그레이엄 핸콕이 자신의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초문명(超文明)을 합리회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편이 되었는데, 이것이 좀 미진하다고 여겼던 것인지 사자 숭배는 빙하기에 남극대륙에서 번성했던 선진기술 문명이 남긴 유산의 일부라는 다소 기이한 주장을 덧붙이기도 하였다.(남극대륙 문명설은 핸콕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것이다)

     

     

     

     

    사자 형상의 스핑크스 상 

     

    핸콕 주장의 근거가 된 1513년에 만들어진 남극지도

     

    그러나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인류의 역사는 그야말로 엉망이 되는 바, 반론이 없을 수 없었다. 이에 그동안 핸콕의 입장을 두둔하는 편이었던 고고학자 피터 제임스나 닉 소프마저 다음과 같은 단호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핸콕의 지나친 이론은 스핑크스 연대 재조정에 관한 그 자신의 주장과도 상충된다. 그는 지구 지각판의 대규모 이동설을 즐겨 차용하는데, 그 같은 대격변이 사실이라면 지난 1만2천 년에 걸친 지구 자전축의 편향으로 인한 세차운동에 기초를 둔 그의 컴퓨터 역산이 즉각 무효화되리라는 점을 핸콕은 간과한 듯 보인다. 핸콕이 상정하는 지각판 이동은 이집트를 비롯한 지구의 모든 부분이 과거에 다른 위치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집트는 태양이 뜨고 지는 위치, 춘분, 별자리 위치와 완전히 다른 관계에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핸콕이 주장하는 이론들은 서로 모순된다."

     

      "펜을 탁자 위에 던질 경우 펜은 어느 별이나 해, 혹은 달이 뜨는 방향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의미가 있거나 중요한 결과로 보기 어렵다. 고고학 유적지에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모든 건축물들은 별 한두 개와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입증될 수 있다. 물론 가장 터무니없는 혼동은 특정한 유적의 건축 연대가 불분명할 때 일어난다. 하늘의 형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천천히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고대유적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 천문학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으나, 비논리적이고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극도의 신중을 기하여 천문학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의 생각도 그들의 의견과 별 다름이 없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운석으로 만든 칼이 나왔다고 해서 고대 이집트인과 외계인의 상관관계를 억측해서는 곤란하다. 나는 지금도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이 블로그의 운영 또한 그 존재 증명에의 일환이지만, 작금에 오르내리는 외계인에 관한 황당한 기사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다.(그저 실소만 짓는다) 핸콕과 보발의 대중적 인기가 내심 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저 내 길을 갈 뿐이다. 

     

     

    투탕카멘 왕의 단검은 2000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운석과 그 성분(코발트, 니켈, 인)이 거의 일치한다.(카이로 박물관 소장)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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