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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천문도와 일본 기토라 고분 천문도
    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18. 4. 29. 02:57


    1983년 일본의 고도(古都) 나라현 아스카마을에서 발견된 7세기 경의 고분 하나가 열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기토라 고분으로 명명된 그 고대 무덤은 발견 당시 이미 도굴되어 훼손이 심한 상태였음에도 세상의 주목을 받기 충분했던 바, 무엇보다 그것이 벽화고분인 까닭이었다. 10년 전 인근의 다카마츠에서 발견된 벽화고분의 감동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현재까지도 일본의 벽화고분은 그 두 기 뿐이다/다카마츠 고분에 대해서는 '민족의 얼, 북두칠성 I' 참조)


    하지만 고분은 도굴꾼들의 무분별한 파괴로써 붕괴의 위험이 있었고, 공기의 접촉으로 인한 산화가 심하였으므로 여러가지 복원 절차를 거친 후 2016년(평성 2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반인 공개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고분은 공개 이전부터 NHK 방송국 내시경 카메라 영상을 통해 국내외적인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카메라에 잡힌 아래와 같은 사신도(四神圖) 벽화 때문이었는데, 그보다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던 건 무덤 천장에 그려진 크고도 정밀한 천문도였다. 



    2017년의 기토라 고분 2차 공개 안내 팜플렛


    일반 공개도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기토라 고분의 현무도를 비롯한 사신도는 고구려 강서 대묘와 강서 중묘의 사신도를 연상케 했다.


    고구려 강서 대묘의 현무도


    가까스로 파손을 면한 기토라 고분의 주작도(오른쪽 파손된 부분이 도굴꾼이 입구를 내기 위해 깨뜨린 곳이다)


    고구려 강서 대묘의 주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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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지신상 그림도 일습으로 발견되었다


    내시경 촬영을 하는 NHK 조사팀



    NHK에서 특별 방송한 기토라 고분 '세계 최고' 천문도의 수수께끼. 천장에는 천문도가, 후면에는 현무도와 12지신상이 보인다.(두 명의 아나운서는 당연히 그래픽 화면으로 무덤방은 실제보다 훨씬 크게 묘사됐다. 실제 무덤방은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규모다.


    산케이 신문에서 최초 보도한 복원 전의 천문도(복원을 위해 천장에서 탈착된 상태임)

     

    복원된 천문도의 상세(북두칠성을 비롯한 별자리들이 금박과 붉은 선으로 표시되었다)


    나라현 '기토라 고분벽화 체험관'에 재현된 천문도


    동경국립박물관의 기토라 고분벽화 특별전(위의 주작이 그려졌다)



    위의 고대 천문도는 날이 갈수록 화제를 모았다. 처음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본격적인 천문도로 그야말로 세계의 이목을 받았으나, 이후 또 다른 무엇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무엇이란 다름 아닌 그 천문도에 그려진 하늘이 발견지역인 일본 나라(奈良) 지방의 하늘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의문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1998년 발굴을 담당했던 도시샤(同志社) 대학의 천문학자 미야지마 카즈히코(宮島一彦) 교수였다.


    그는 면밀한 조사 끝에 천장에 그려진 별자리가 북위 39도와 40도 선에 사이에 있는 지역의 별자리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이 그려질 수 있는 곳은 39도에 인접한 고구려의 평양성밖에 없었다. 아울러 천문도에 그려진 별은 6mm 정도로 모두 350개를 둥근 금박으로 표시했으며, 그것들을 붉은 선으로 연결시켜 68개의 별자리를 만들었데, 그중 남쪽 하늘의 시리우스(Sirius α) 등의 4개 별은 지름이 9mm임을 또한 밝혀냈다. 밝기가 가장 밝은 1등성의 별을 표시한 것이었다.  


    문제는 시리우스, 즉 천랑성(天狼星)은 한반도에서는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지만 중국 북부나 일본 지역에서는 지평선에 가려 여간해서 관측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이와 같은 분석은 일본 내에서 커다란 반발을 불러왔다. 일본에서는 애초부터 이 천문도를 중국의 영향을 받은 일본 고유의 그림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야지마 교수는 뛰어난 학자적 양심의 소유자였던 듯, 끝까지 양심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밝기에 따라 별의 크기를 차별하여 표시하는 것은 한반도 천문학의 전통이므로 이 천문도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극히 미약하며, 더불어 별의 위치상 이 무덤의 피장자가 백제보다는 고구려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피력하였다. 한편으로는, 피장자가 백제 왕족인 구다라 쇼세이(百濟唱成: 백제 의자왕의 손자)일 것이라는 설이 부각되던 무렵이었다. 


    나아가 미야지마 교수는 중국과 한반도는 서로 독자적인 천문관(天文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수준에 있어서는 한반도가 훨씬 우수하였던 바, 위·진 남북조, 수·당시대 700년 간에 형성된 68기의 벽화 고분 중에서 16기 만이 성좌 벽화가 있었던 반면, 고구려는 평양 천도 전후 300년 동안 만든 벽화고분 중에서 별자리를 그린 것이 모두 24기로, 그 수준과 관심이 중국을 앞선다고 설파했다.  


    아울러 그는 성좌를 일관되게 엮는 방법 역시 고구려가 우월하였으며, 양국의 천문도를 비교해 보면 고구려는 자신들의 우수한 천문관측 기술을 오히려 중국에 수출한 사례도 발견된다고도 하였다.(딱히 한반도의 입장을 두둔해서가 아니라 이상과 같은 비교 연구방법을 봐도 그는 매우 뛰어난 천문학자임에 틀림 없어 보인다) 



    나라 문화재연구소가 펴낸 기토라 고분 천문도 성좌사진 자료집. 부분적으로 미야지마 교수의 의견이 개진됐다. 



    하지만 아직은 일본의 사회적 성숙도가 미야지마 교수의 의견을 수용할 정도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듯, 지금껏 기토라 고분 천문도는 중국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그러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만든 사람은 고구려계의 장인집단 황문(黃文)씨라고 믿고 있는데, 이는 필시 미야지마 교수의 주장이 개진된 결과일 것이었다.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미야지마 교수의 주장에 바탕이 된 건 아마도 고구려의 하늘을 그린 '천상열차분야지도'일 듯하다. 그 짐작의 근거는 천문도의 동심원 안에 존재하는 68개의 별자리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거의 일치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태양의 경로를 표시한 동심원 안의 또 다른 원, 즉 황도 부근의 별자리로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그 자리가 조금씩 다른 것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조선초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즉 세차운동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다.('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해서는 '인류 최초의 천문기록, 우리나라 고인돌' 참조)


    또한 기토라 천문도를 미루어볼 때 고구려의 '천상열차분야지도'도 68 수 정도의 별자리가 표시됐을 것으로 짐작되며 나머지 225개는 조선초의 제작자인 류방택이 첨가한 것으로 여겨진다.(참고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는 293개, 별의 수는 1,464개이다) 기토라 천문도에서 또 한 가지 특기점은 천구(天球)의 좌우에 표시된 해와 달로서, 이 역시 고구려 벽화의 천문도에서 나타나는 표현 양식 중의 하나이다.('민족의 얼, 북두칠성 I' 참조)


      

                    

    기토라 고분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


    고분의 펼친 그림. 천장의 천문도, 그리고 동 청룡, 서 백호, 남 주작, 북 현무를 그렸다. 도굴범이 파놓은 구멍을 통해 내시경 카메라로 내부를 조사했음을 설명하고 있다. 시신이 들어 있는 관도 이미지임을 밝혔다.



    기토라 고분 천문도의 천랑성(시리우스)과 노인성(카노푸스)


    특별 사적으로 지정된 기토라 고분(2000년)



    *고구려 천문도에 대한 상세는 '민족의 얼, 북두칠성 I' 참조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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