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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동천 장경교에서 반궁천 서반수 빨래터까지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11. 18. 18:40
장경교(長慶橋)는 종로구 연건동과 이화동 사이 대학로를 흘렀던 흥덕동천의 대표적 돌다리로, 정조가 임금이 되던 해인 1776년 여름, 경모궁(景慕宮)에 행차하기 위해 만들었다. 길이는 10.5m, 폭은 6m 정도였다. '장경'(長慶)은 '경사와 상서로움이 천만년 지속된다'는 뜻으로서, 장생전(長生殿) 앞에 있다 하여 장생전교 혹은 장교로 불리기도 했다. 장생전은 왕실의 관짝을 만들어 국상에 대비하던 관청으로 1444년(세종 26) 설치됐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옛 창경궁 원림(園林)인 함춘원 자리에 경모궁을 지었다. 아울러 경모궁으로 가는 첩경을 가로막은 창경궁의 담장을 헐고 월근문(月覲門)을 내었다. 정조는 매월 초하루에는 이 문을 통해 사도세자를 뵈러 갔던 바, 문의 이름이 자연스레 월근문이 됐다. 여기서 근 자는 '뵐 근(覲)' 자이다.
흥덕동천은 북악산의 남서쪽에서 흘러 내려와 성균관 반촌(泮村)을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긴 하천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복개되어 찾기 힘들고 다만 반촌 서쪽을 흐르던 서반수 상류 빨래터에서 약간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현재 대학로 한켠의 흥덕동천은 2009년 10월 서울시가 기획한 '대학로 실개천 조성사업'을 통해 생긴 물길이나 그저 장경교의 위치만 비슷할 뿐 옛 흥덕동천과는 물길이 전혀 다르다.옛 흥덕동천은 1965년 최초로 복개 계획이 세워진 후 1966~67년에 혜화로 구간 및 효제동에서 종로까지 구간이 복개되었다. 하지만 혜화동로터리에서 이화사거리까지 구간은 오랫동안 미복개 개천 상태로 남아 있어 내 어릴 적에도 본 기억이 있으나 1977~78년 마저 복개되었다.
옛 흥덕동천은 성균관 쪽의 두 물길, 즉 동반수와 서반수가 혜화동 쪽의 지류와 합해지고 다시 효제동천과 합류하여 청계천으로 들어가는데, 동반수와 서반수가 합져 흐르는 물은 반궁천(泮宮川),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은 따로 쌍계동천(雙溪洞天)으로 불리기도 했다. 흥덕동천은 이것들을 한데 부르는 말로, 북묘 자리에 있었던 조선초의 사찰 흥덕사에서 이름이 비롯됐다.
장경교에서 흥덕동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응난교(凝鸞橋) 표석을 만난다. 응난교는 경모궁 동쪽에 있던 궁지(宮池)의 물이 흥덕동천으로 들어가는 물길 위에 놓인 다리로, 정조가 경모궁 행차 후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고개를 돌려 경모궁을 바라보았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는데, 난(鸞)새가 고개를 돌려 응시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해서 붙어졌다. (그런데 난새는 전설상의 새다)응난교 표석이 있던 혜화동 전철역 3번 입구에서 혜화동 전철역 4번 입구 쪽으로 올라가다 보이는 전철역 앞 도로가 광례교(廣禮橋) 자리로 짐작된다. 광례교는 성균관 쪽에서 흘러내린 반궁천이 혜화동 쪽 지류와 합류하는 지점에 있었는데, 흥덕동천 다른 다리들에 비해 규모가 넓어 광교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이 다리 동쪽에 현방(오늘날의 푸줏간)을 두어 성균관 유생들의 영양보급원이 됐다.
광례교에서 대명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사락교(思樂橋)가 있던 곳이다. 사락교는 사락다리라는 연원을 알 수 없는 다리 이름에서 비롯됐으며 사락다리를 한자어로 옮긴 것이 사락교이다. 이 동네의 옛 이름은 북장우(北墻隅)였는데, 경모궁의 북쪽 담 부근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북장우에는 관우물이라는 큰 우물이 있었다. 곧 설명할 관기교 아래의 우물이라 해서 관우물이라고 했다는 말도 있으나 필시 관가에서 관리하는 시영 우물이었을 것이다.
사락교에서 다시 대명로를 택해 조금 올라가면 관기교(觀旂橋)가 있던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옛 주소로는 명륜동 2가 180번지에 있었다. 과거 정조가 경모궁에 행차할 때 임금의 수레는 월근문을 나와 박석고개를 넘어왔는데, 어가 행렬이 박석고개에 이르면 이 다리에서 행렬의 선두에 선 용기(龍旂, 용무늬 깃발)를 보고 임금 행차를 알았다고 해서 관기교라 불렸다. 여기서 관 자는 '볼 관(觀)' 자이다.
정조는 경모궁뿐 아니라 성균관에도 자주 행차해 유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보곤 하였는데, 이때 성균관 유생들이 임금을 맞이한 장소도 관기교였다. <정조실록>에는 관기교에서 행차를 맞이한 유생들에게 즉석 글짓기 시험을 실시한 후 1등을 차지한 진사 조형기를 곧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하도록 하였다는 특별한 기록도 보인다.
명륜동2가와 명륜동4가 사이에 걸쳐 있던 동네 박석동은 박석고개에서 유래되었다. 박석고개는 창경궁과 경모궁에 비해 지대가 낮아 지맥을 보존하기 위해 깐 박석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그보다는 저지대의 길이 빗물에 질어 박석을 깔았던 것이 지명의 유래가 되었을 것이다. 창경궁로 박석고개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유명 칼국수 전문점도 있다.
관기교가 있던 대명거리를 나와 성균관대 입구 버스정류장 옆 횡단보도에 서면 올리브영 건물과 스타벅스가 보인다. 여기서 올리브영의 오른쪽 성균관대학 입구 쪽으로는 동반수(東泮水)가 흘렀고 스타벅스 골목 쪽으로는 서반수(西泮水)가 흘렀다. 말하자면 조선시대에는 올리브영 건물 자리가 동반수와 서반수가 합쳐지는 두물머리였던 셈이다. 오늘은 서반수 쪽으로, 다음에는 동반수 쪽으로 갈 예정이다.
골목 중간에 사섬시(司贍寺) 터가 나온다. 종로구육아종합지원센터가 사섬시가 있던 자리로 기둥 아래 표석이 설치돼 있다. 조선시대 저화(楮貨)의 주조 및 외거노비(外居奴婢)의 공포(貢布, 세금용 면포)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로서, 1401년(태종 1)에 설치한 사섬서(司贍署)가 1460년(세조 6) 개칭됐다.
고려말 조선초의 종이화폐인 저화는 조선초 실질적으로 발행이 끝났다. 그래서 사섬시의 기능이 축소되었을 듯 보이나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시대 양반은 병역과 세금용 면포가 면제되었으므로 국가 수입의 큰 포션을 차지하는 면포는 평민과 외거노비에 의해 충당되었다.*
* 당연히 병역을 의무를 져야 하고, 당연히 더 많은 세금을 냈어야 할(수입이 평민이나 노비보다 많았으므로) 양반은 뒷전에 물러나 있고 평민과 노비가 국가를 지탱하는 시스템을 갖춘 이상한 나라가 조선이었다.(단 노비는 병역이 면제됐다. 양반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므로)
성균관은 사회적 신분 상승 외에 그와 같은 혜택을 누리기 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유생들이 모여 공자를 받들며 공부하던 곳으로, 쉽게 말하자면 국립 국가고시학원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정식으로 문과에 합격하면 곧 고위공무원이 되었던 바, 준(準) 양반으로 대접받았다.(병역도 면제되었다) 지금의 성균관대학 부근에 형성되었던 반촌 (泮村)은 성균관 노비로 알려진 반민(泮民)이 살며 성균관 유생들을 뒤치다꺼리하던 곳이었다.
종로구육아종합지원센터 골목 끝에는 앞서 말한 서양화가 도상봉의 작은 기념관 '도천 라일락집'이 있다. 그리고 골목을 빠져나오면 성균관의 왼쪽 담장이 시작되는데, 그 길을 따라 서반수가 발원하는 응봉으로 오를 예정이다. 그런데 그전에 '도천 라일락집' 건너편에 자리 잡은 우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런 안내문도 없지만 이 우물은 임금이 성균관을 방문했을 때만 특별히 사용됐다는 서반수 어정(御井)이 재현된 것이리라.
목적지인 서반수 빨래터는 창덕궁과 담장을 같이 하고 있어 더 이상 갈 수 없게 돼 있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담장 너머에 창덕궁 후원이 있고 태극정과 청의정이 있다. 아래 사진으로 보다시피 빨래터는 이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하지만 담장 너머 창덕궁에서 나오는 작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어 그나마 서반수의 흔적으로써 만족할 수 있었다.
그저 그것뿐,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닌 빨래터를 보고 내려오다 선물과 같은 집을 하나 만났다. 서예가이자 한학자인 이가원( 1917~2000)이 살던 집이다. 앞서 말한 바 있거니와 1986년 옛 모습대로 복원된 남양주 조안면 마재 정약용 생가 여유당(與猶堂)의 상량문은 그가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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