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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의 중요성
    동양사에서 배우는 세상사는 법 2018. 6. 13. 23:59


    춘추시대의 첫 패자 제 환공을 만든 관중(管仲)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앞서 '관포지교, 이게 우정이라고?'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관중과 그 계열에 속하는 학자들의 언행들을 모아 편찬한 책이 "관자(管子)"인데, 당대의 것은 아니고 한나라 때 유향(劉向)이 그때까지 전하던 기록에서 중복된 부분을 제외하고 86편으로 정리한 책이다.(현재는 그 가운데 76편만이 전한다)


    갑자기 "관자"라는 책을 언급함은 그 책 안에 가장 오래된 '조선'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당연히 고조선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중은 제나라의 재상이 된 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그 지리적 특성에서 오는 소금이나 해산물 등을 특화시켰는데, "관자" '규도(揆度)'편에서 관중이 환공에게 말한 내용을 보면 관중은 발조선(發朝鮮)의 문피(文皮, 무늬 있는 동물 가죽)*를 해내(海內, 제 나라가 속한 바다 수역)의 일곱 가지 특산물 중의 하나로 꼽고 있다.  * 문피는 해달피(바다표범 가죽)로 짐작된다. 


    관중은 또 환공에게 이르기를, (문피를 많이 생산하는) 발조선에 그 문피에 대한 값을 쳐주면 제나라에 갖다 바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관자" ‘경중갑(輕重甲)’편-



     춘추시대의 제나라와 고조선



    즉 관중은 환공에게 발조선의 문피를 사서 내수도 하고 수출도 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인데, 여기서 발조선이 고조선만을 말하는 것이지, 아니면 발(發)이란 나라(혹은 지역)와 고조선을 분류해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조선으로부터'라고도 해석돼질 수도 있다)


    아무튼 이것이 중국의 사서에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고조선의 기록이다. 물론 "관자"라는 책은 기원전 6세기 전한(前漢) 시절에 유향이 손을 본 책이므로, 당대의 정확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한 바대로 그때까지 전해져 오는 제나라의 기록을 편집해 편찬한 책인 바, 제 환공의 재위  당시(기원전 685년~643년)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했었음은 명확하다. 


    전국시대에 들어 고조선은 또 한번 중국의 사서에 등장하니 이 역시 유향이란 사람이 지은 "전국책"에서이다.(* "전국책"에 관해서는 '예양의 의리' 참조) '합종책'으로 유명한 소진(蘇秦)이 연(燕)나라의 문후(文侯, 재위: 261-333)를 설득하러 갔을 때, 연나라의 동쪽에 조선과 요동이 있음을 언급했던 것이다.(이와 관련해서 따로 한 말은 없다)


    전국시대의 연나라와 고조선



    이후 중국의 사서에서 고조선이 구체적으로 다뤄진 것은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에서이다. '조선열전'에서 동방의 나라 조선은 한나라 무제(武帝)가 보낸 군대와 1년 간을 싸우다 내분으로 수도 왕검성이 함락되며 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기원전 108년) 그후 그 땅에 식민 통치기관인 4군현이 설치되니 이것이 이른바 한사군(漢四郡)이다.(사마천이 말하는 조선은 그나마도 연나라 출신의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이다)


    우리 민족의 뿌리 고조선은 이렇듯 중국과는 고대부터 밀접한 관계에 있어왔지만 서로 독립적인 관계였다. 그런데 중화인민공화국이 강성해지며 지금의 중국 영토 안에 속했던 모든 나라를 자국의 역사 안에 편입시키 위한 공식적인 역사 왜곡 작업을 시작했으니, 그중 고조선과 고구려와 발해가 존재하던 동북쪽 땅에 대한 중국 역사로의 편입 작업이 이른바 '동북공정'이다.


    이것이 대략 1983년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에 변강역사지리연구중심이 설립되면서부터인데, 중국의 대표 소수 민족인 위구르족이 살고 있는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역사를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에 포함시키기 위한 서북공정, 마찬가지로 중국의 대표 소수 민족인 티베트를 중국 역사화하려는 서남공정도 함께 진행 중이다.


    ~ 중국으로 볼 때 동북공정의 작업 대상인 고구려와 발해는 지나간 역사이지만, 신강 위구르 지역의 위구르 민족과, 티베트 자치구 지역의 티베트 민족은 지금도 분리 독립의 문제가 걸려 있는 현안인 바, 사실 무게감은 그 쪽이 더 하다. 이슬람교에 바탕을 둔 신강 위구르 지역과, 티베트 불교에 바탕한 티베트 지역의 독립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는 정말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신강 위구르, 티베트 자치구와 북중 접경 지역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5월 28일을 기해 신강 위구르 지역에 대해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신강 위구르 민족은 중국의 한족과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더 나아가 중화인민공화국은 과거 중국의 세력이 미쳤던 곳까지 모두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는 바, 그와 같은 논리라면 과거 몽골이 점령했던 러시아 폴란드 독일은 몽골의 역사가 되고, 과거 로마제국이 지배했던 대부분의 서유럽 나라와 터키, 그리고 이집트를 비롯한 아프리카 북안(北岸)의 여러 나라가 이탈리아의 역사가 되며, 사라센 제국에 점령당했던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스페인 포르투칼도 사우디 아라비아의 역사가 된다. 


    그런데 그와 같은 역사 왜곡 작업에 우리가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것은 이를 반박할 만한 '우리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사실이니,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대한민국 고대에 관한 기록들은 모두 "한서(漢書)" '지리지', "삼국지" '위지(魏志) 동이전'을 위시한 중국 측 사서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단은 우리의 기록이 없는 까닭이니, 그 결과 지금 아래와 같은 수모를 당하고 있다. 



    중국측 교과서에 실린 전국시대 지도(연나라의 영역이 대동강 너머 황해도까지 이르렀다)


    중국 측의 극단적인 한사군 주장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함은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규탄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다만 '기록의 중요성'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도 '나의 기록'이 없으면 '남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만일 어떤 날의 어떤 일에 대해 남과 정확성을 다퉈야 될 일이 발생했을 때, 나의 기록이 없다면 절대적으로 불리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것이 그저 일상의 기억을 다투는 소소한 일이라면 별 문제겠거니와, 만일 채권과 채무, 혹은 임금 등이 걸린 일이라면 문제가 커진다. 불행히도 그것이 소송까지 갔을 경우, 개인의 기억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 게다가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당연히 한계가 있는 터, 아무리 메모리 용량이 큰 두뇌라 할지라도 숫자 하나 하나까지는 담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가는 반드시 실종된다. 


    그 불완전한 기억을 담아둘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록뿐이다. 그리고 기록의 중요성은 비단 금전에 국한되지 않으니, 개개인의 소소한 생활의 기록도 언젠가는 반드시 큰 도움이 된다. 아니 당장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사람마다 기억의 능력은 모두 다르다. 이에 뛰어난 기억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꼭 일기 형식일 필요는 없다. 다만 하루하루의 소소한 일이라도 때와 장소와 행위를 끄적거리는 습관을 가진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때와 장소에 관계 없이 유익한 행위로서 다가올 것인데, 경험상으로 보자면 실종의 개연성이 예비된 컴퓨터나 모바일 기록보다는 수기(手記)를 권장한다. 그 수기는 보관만 된다면 천 년은 거뜬하니, 고조선의 최초 기록이 등장하는 "관자"는 무려 2,500년 전의 책이다.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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