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자객 섭정(聶政)과 그의 누이
    동양사에서 배우는 세상사는 법 2018. 6. 16. 06:59


    "사기" '자객열전'을 사기열전의 백미로 꼽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의리'와 '장렬함'이 각인되었을 듯싶다. 아울러 복수 자체의 통쾌함도 있을 듯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복수를 꿈꾸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강자에 대한 복수는 아무래도 쉽지 않을 터, 이에 대한 대리 만족 같은 것이 작용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예양의 의리'에서 자세히 설명했거니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나누는 시기는 기원전 403에 완결된 진(晉)나라가 한(韓), 위(衛), 조(趙)의 세 나라로 나뉜 사건, 이른바 '삼진(三晉)의 분리'를 기점으로 해서 인데, 그 과정에서 일어난 자객 예양의 장렬한 죽음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자신을 알아 준 이에 대한 복수를 위해 평생을 바친 한 남자의 크레이지한 스토리였다. 


    공교롭게 전국시대의 서막을 연 사건도 한 자객의 광란의 살인이다. 그의 이름은 섭정(聶政)으로 제(齊)나라 사람이다. 그는 엄중자라는 사람을 위해 한(韓)나라의 재상 협루를 죽이는 일을 수행하였는데, 사실 그의 이야기는 예양의 일화처럼 멋지지 않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섭정에 관한 스토리를 소개하는 이유인즉슨 그보다는 그의 누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인데, 그 '자객열전' 섭정에 대한 풀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한(韓)의 애후(哀侯)를 섬기던 엄중자(嚴仲子)라는 인물은 재상이던 협루(俠累)와 사이가 나빴다. 까닭에 그는 협루에게 살해될까 봐 도망쳐 다니다 제나라에 이르렀는데, 그곳의 어떤 사람에게 섭정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해듣는다. 과거 누군가를 살해하고 숨어 사는 신세지만 의리가 충만한 강건한 사내라는 것이었다. 이에 엄중자는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섭정에게 접근한다. 


    당시 섭정은 소 돼지를 잡는 백정의 일을 하는 천민이었다. 그럼에도 귀족 엄중자는 허물없이 그를 대하며 만날 때마다 술을 사고 적지 않은 돈을 건내주었다. 노모에게도 드리고 생활비에도 보태 쓰라는 것이었는데, 그러기는 거금이었던 바, 섭정은 돈만큼은 한사코 사양했다. 하지만 엄중자란 인물에 대한 호감은 있었는 듯 만남은 지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섭정이 엄중자에게 묻는다. 제후인 당신이 한낱 백정인 나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 그것이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엄중자는 비로소 그 속내를 털어놓았으니, 사실은 원수를 갚아 줄 의인을 찾아다니다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자백한다. 섭정으로서는 어찌보면 기분 나쁠 법도 했건만, 상대의 지체가 워낙에 높아서인지 별 감정없이 받아들이며 답한다. 


      "내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며 시장바닥에서 도살을 업으로 삼음은 오직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함입니다. 그 노모께서 살아계시니 아직은 몸을 남에게 허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마음을 굳힌 듯, 주위에 이렇게 천명한다. 


      "나는 한낱 시정잡배에 불과한 인물로, 칼을 휘둘러 개 돼지나 잡는 천한 몸이나, 엄중자는 명문가의 제후 출신이다. 그런데도 천리를 마다않고 수레를 몰아 찾아와서 나와 친교를 맺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해준 것이 없다. 그가 나를 원했으나 나는 노모가 살아 계심에 사절했다. 이제 노모가 타고난 수명대로 살다 가셨으니 나는 장차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쓰여지려 한다."


    그리고는 엄중자를 만나 같은 뜻을 전했다. 이에 엄중자는 복수의 대상이 한나라의 재상 협루라는 것을 밝히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협루는 재상이기도 하거니와 군주의 친적이므로 나는 그를 죽이는 데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가 없습니다. 아울러 사람이 많으면 의견이 상충될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시비가 생기지 않을 수 없으며, 또 그렇게 되면 비밀이 새나가게 되어 한나라가 이 엄중자를 원수로 생각할 것입니다.(語渫 是韓擧國而與仲子爲讐)"


    말인즉, 되도록 조용히 그를 처치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러면서도 걱정이 됐는지 도우미를 붙이겠다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섭정은 사람이 많으면 번거롭고 그 또한 말이 새나갈 수 있다며 거절하고, 수레조차 거절한 채 홀로 한나라로 향했다. 


    섭정은 그 자신감 그대로 일을 완수하였으니, 협루가 일을 보고 있는 관청으로 뛰어들어 그를 살해하고, 주위에서 달겨들는 수십 명의 사람까지 죽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두 눈을 파냈으며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낸 후 죽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철저히 자신의 신체를 훼손시킨 것이었다.(이것이 정말로 가능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자신의 남은 가족, 그리고 엄중자를 위해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한 셈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한나라에서는 자객의 신원을 확인한 길이 없게 되었다. 이에 당국에서는 그의 시신을 저잣거리에 내놓고 신원 파악에 천금을 걸었으나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여인이 와서 부패된 그의 시신을 껴안고 통곡을 했다. 제나라에 살고 있던 그의 누나 섭영(聶榮)이었다.(그녀는 크게 훼손되고 부패된 시신임에도 단박에 알아보았다고 한다)


    섭영은 이미 결혼을 해 출가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한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을 듣고 그 자객이 자신의 동생 섭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동생의 성정을 익히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리하여 불원천리 한나라까지 오게 된 것이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자객의 시신은 제 동생의 것이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섭영을 염려해 말했다. 


      "죽은 자는 천금의 현상금이 걸린 대역죄인이요. 그대가 죽은 자의 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뜻인즉, 그러니 그만 울고 어서 몸을 피하라는 것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섭영은 담담히 답했다. 


      "내 동생이 저렇듯 제 몸을 상하게 만듦은 살아 있는 나에게 해가 미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오. 동생은 저렇게까지 나를 위했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오. 이런 마당에 내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 하겠소?"


    대답을 마친 섭영은 다시 한참을 통곡하다 결국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하는 바, 그 동생에 그 누이라고 하는 말이 나올 법한 죽음이었다. 훗날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의 죽림칠현이었던 혜강은 이 이야기를 주제로 한 광릉산(廣陵散)이란 거문고 곡을 작곡했는데, 그가 종회의 무고로써 억울한 죽음을 맞이 했을 때 죽기 전 연주한 곡도 바로 이 광릉산임을 앞서 '백발 인물열전(천자문의 저자는 누구인가?)'에서 말한 바 있다. 





    자객 섭정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여기서 다시금 말하거니와 섭정의 죽음이 과연 가치있는 죽음이었는가 하는 것에는 의문 부호가 찍힌다. 스스로의 말에 따르면 자신 역시 예양처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은 의로운 죽음이라는 것이지만, 순수하게 예양을 인정해준 지백(知白)과 달리 엄중자는 목적을 가지고 섭정에게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예양의 의리' 참조)


    이렇듯 엄중자는 처음부터 목적을 염두에 둔 사귐이었던 것이고, 그리고 면밀히 보면 섭정은 엄중자가 자신을 알아준 데 대한 보답으로써 거사를 치렀다기보다는 그간 대접받고 얻어 먹은 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 것처럼 보인다. 비록 돈은 사양했지만, 그저 신분 높은 자와 어울린 황감함에 대한 보답을 표한 것이다. 


    어쩌면, 어차피 희망도 없는 구차한 삶을 영위하느니 좋은 일이나 해주고 죽자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마천의 표현대로 그는 유협(幽峽, 협객)이었으니..... 까닭에 어찌 보면 그의 죽음은 별 의미 없는 개죽음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를 개죽음에서 면케 해주고, 그저 그대로 세상사에 묻혀버렸을 이 이야기를 살려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누나 섭영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동생과 함께 죽음으로서 섭정을 개죽음에서 면케 해주고 또 제 동생의 이름을 세상에 남겼다. 내 동생 섭정은 의리 있는 사람으로서, 신분이 천하고 때를 못 만난 까닭에 이렇게 죽었으되 본시 그 그릇이 큰 위인이었다는 것을 섭영 본인의 죽음으로써 세상에 알린 것이었다.(어찌보면 섭정의 누이는 섭정보다 훨씬 유협적인 인물이다)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세상 천지에 가족밖에 없다. 주위, 혹은 드라마 등등에서 보면 재산권 다툼 등으로써 일어나는 형제간의 분쟁이 타인과의 그것을 훨씬 능가할 때도 있다. 대부분 각자가 가정으로 꾸림으로써, 그리하여 남의 살붙이가 끼어들면서 일어나는 갈등이다. 물론 이 또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결국 기댈 곳은 가족밖에 없음을 주위, 혹은 드라마는 보여준다. 


    친구 관계는 열 번을 잘하다가도 한 번 틀어지면 회복되기가 힘들다. 어쩌면 이것이 타인의 속성일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가족은 살면서 몇 번을 틀어져도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온다. 이 또한 가족의 속성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다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고인돌 섭정의 일화가 새겨진 석각

    그런데 대상은 한나라 왕이 아닌 재상 협루였고, 섭정 외에 축(筑, 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을 타는 자객과 제 3의 인물이 묘사된 것을 보면 섭정, 고점리, 형가 등의 스토리가 혼재돼 새겨진 듯 보인다.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