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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마전(伏魔殿)과 연운16주(燕雲十六州)
    동양사에서 배우는 세상사는 법 2019. 7. 31. 15:13

     

    효율성 떨어지는 태양광 사업을 정부가 왜 그렇게 밀어붙이나, 궁금증을 가지고 KBS의 고발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을 유심히 지켜봤다. 아닌 게 아니라 뭔가가 있었는데, 그 정점에 등장한 허인회 씨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386 운동권 대표주자 중의 한 사람으로, 나이 좀 든 사람 치고 그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정도의 유명인이었다. 대부분의 운동권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정치판에 뛰어들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고발 프로그램에 얼굴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다분히 불명예스러운 등장이었고 시청자인 나의 소회는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 내 기억으론 전대협 의장이었던 임종석은 내가 살던 성동구에서 출마했는데 결국 거물 이세기를 쓰러뜨리고 국회에 입성했고, 삼민투 의장이었던 허인회는 동대문구에서 출마했는데 거듭 낙선을 했다. 

     

    그러고 보니 '시사기획 창'의 '태양광 사업 복마전'이라는 고발 제목이 참으로 적절한 듯싶었다. 알다시피 복마전은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이란 뜻'으로 소설 수호지에 나오는 말인데, 서울시라는 전각 안에 허인회 씨를 비롯한 386 시대의 영웅들이 수호지 복마지전(伏魔之殿) 속의 108 영웅처럼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정치가로는 실패했지만 사업가로는 성공을 한 듯 보이는 허인회 씨...... '시사기획 창'의 '태양광 사업 복마전'은 허인회 씨가 어떻게 태양광 업계의 일인자가 될 수 있었는가를 말해주는 프로그램이었고, 나는 평소의 의문에 대한 거의 모든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녹색드림 허 이사장

     

     

    이쯤되면 더 이상 들여다 볼 것도 없다.

     

    차제에 복마전을 가 보았다. 서울시 관련부서를 찾아갔다는 것은 아니고 중국의 복마지전을 다녀왔다는 소리도 아니다. 말했다시피 복마지전은 소설 속에 나오는 전각이다. 그 소설 속의 전각을 들여다봤다는 얘기다. 소설은 명·청대(明·淸代)에 완성되었지만 첫 배경이 된 시대는 송나라 인종(1010-1063) 때이다. 소설 속에서는 이 당시 전국에 큰 역병(전염병)이 번졌고, 이에 인종은 용호산에서 수도 중인 장천사(張天師)라는 도사에게 구국(救國) 기도를 올려줄 것을 청원하기 위해 태위(太尉, 국무총리) 홍신(洪信)을 파견한다. 그런데 홍신은 그곳에서 오히려 큰 사고를 치고 만다.

     

    그가 용호산에 도착했을 때 장천사는 이미 도성으로 출발한 뒤였다. 힘들게 찾아온 만큼 구경이나 하고 가자는 심사로 용호산 도교 도량(道場) 여기저기를 거닐던 홍신은 뒤 편에 자리한 큰 전각에 호기심을 가진다. 문 앞에 각종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도 흥미롭거니와 무엇보다 '복마지전(伏魔之殿)'이라는 현판이 눈길을 끄는 전각이었다.

     

     

     

     

     

      "으음, 마귀가 엎드려 있는 전각이라....? 이 전각은 뭐하는 곳이냐?"

      "옛날에 노조천사(老祖天師)께서 세상의 마귀를 잡아 가둔 곳입니다."

      "그래? 허면 저 종이들은 무엇이냐?"

      "대당동현(大唐洞玄) 국사를 비롯한 역대 도사께서 붙인 부적입니다. 마귀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봉인을 해둔 것이지요."

      "거 참, 흥미롭구나. 어디, 안에 한번 들어가 보자. 문을 열어라."

     홍신은 주위를 윽박질러 봉인을 해제시킨 후, 결국 결국 복마지전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린 용호산 복마지전  

     

    홍신은 거듭 말리는 주지를 제치고 안으로 들아갔다. 뭔가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어두컴컴한 전각 안에는 5~6척 정도 되는 비석이 거북 받침돌 위에 세워져 있었다. 비문의 앞면에는 도가(道家)의 알 수 없는 전서체의 글씨가 써 있었으나 뒷면은 다행히도 해서체의 정자(正子)였다. 그 뒷면의 비문을 읽으려 횃불을 비춰보던 홍신이 '우홍이개'(遇洪而開)라는 글자에 눈이 꽂혔다. 분명 '홍 씨를 만나 열리리라'는 뜻이었다.

     

     

     

    홍신의 눈에 들어온 글자, 우홍이개(遇洪而開)    

          

    홍신은 더욱 흥미가 끌렸다. 우연찮게도 그가 홍 씨였던 것이었다. 그는 다시 주위에 명령했다.

     

      "이 비석을 치워라. 이 안에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리라."

      "아, 안 됩니다, 더 이상은. 이 돌을 치워 마귀가 달아나면 어찌하려 그러십니까? 역대 도사께서 돌을 치우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怎生是好 他日必爲後患)"

      "말이 많구나. 여기, 굴을 파 고착시켰지만 나를 만나 열린다는 글을 보지 못했느냐?(鑿着 遇洪而開呀)"

     

     

     

     

    홍신은 주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코 비석을 치우고 판석 밑을 세 자 정도(1m 내외)를 파내려 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마도 입구를 덮었음직한 넓은 돌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돌 위에는 국조천사가 친히 쓰고 날인까지 한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누구든 돌을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의 문구였다. 이것이 분명 국조천사가 만든 최초의 봉인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마지막 경고문인 셈이었다. 

     

     

    짠!  최후의 봉인     

     

    이쯤에서 홍신은 잠시 숨을 골랐다. 호기롭게 여기까지 일을 진행했으나 전설의 대사(大師) 국조천사가 직접 쓴  봉인을 보자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일을 중단하는 것도 태위의 꼴을 사납게 만드는 일이었다.

     

      "뭣들하느냐? 어서 돌을 젖혀라."

     

    홍신은 결국 마지막 돌까지 밀어젖히게 만들었다. 이윽고 사람 두어 명은 드나들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이 출현했다. 순간 전각 안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의외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곧 땅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와 함께 뭔가가 치밀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커다란 굉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솟구쳤고 그 속에서 108개의 황금빛이 사방으로 뻗쳐 달아났다. 봉인 속에 수천 년을 갇혀 있던 땅 속의 108 요괴가 드디어 탈출을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의 아비규환을 경험하며 사방으로 놀라 달았다.

     

     

    명·청 전환기 쯤에 만들어진 수호사전 전서(水滸四傳 全書)의 삽화    

     

    수호전의 저자 시 자안(施子安)은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기에 걸쳐 살았다. 호가 내암(耐庵)이라 시내암 저(著)로 된 많은 이본(異本) 또한 존재한다. 정본 또한 다양하나 100회본과 120회본으로 대별되고 나중에 명·청 전환기의 인물인 금성탄(金聖嘆)이 축약시킨 70회본이 출현한다. 나는 그중 120회본을 택했던 바, 그 판본에만 108 영웅의 요나라 정벌과 그 후의 이야기들이 나오는 까닭이다.

     

    ~ 모두가 알다시피 복마지전을 탈출한 108 요괴는 그 100년 뒤인 휘종 치세(1119-1125)에 나타나 내우외환으로 어려워진 송나라의 구국의 영웅으로 떠오르는데, 요괴가 갑자기 착한 영웅이 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시대상에 따라 마귀도 영웅이 되고 영웅도 마귀가 되는 모양이다.
     

    그 108 요괴가 국가를 위해 처음으로 나선 것은 북쪽의 요나라 정벌로서, 그들은 그 거란족과의 전투에서 단주(檀州), 계주(薊州), 패주(覇州)에서 승리하고 유주(幽州)에서는 요나라 최고 장수 울안광이 지휘하는 요의 대군을 격파한 후 황제 야율휘가 있는 연경성(燕京城)을 포위한다. 하지만 요나라의 뇌물을 받은 송나라 재상 채경(蔡京)이 화약(和約)할 것을 종용하였던 바, 사령관 송강은 어쩔 수 없이 점령한 땅들을 요나라에 돌려주고 변경(汴京)으로 개선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송강 등의 양산박 108 두령만 빼고 모두 실존의 인물이다.[각주:1] 또한 송강이 이끄는 송나라 군대가 점령한 땅은 이른바 연운 16주(燕雲十六州)라 불리는 만리장성 남쪽의 16개 지역으로 송나라가 꿈에라도 회복하기를 바랬던, 또한 실재했던 지명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송나라는 역대로 이 땅을 점령한 적이 없고, 오히려 역공을 당해 매년 은(銀) 10만 냥과 비단 20만 필을 보내야 하는 꼴사나운 평화조약을 맺어야 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단연(澶淵)의 맹(盟)이다.

     

     

      연운 16주 지도(빨간 글씨는 수호전의 송강이 점령한 땅으로 송나라 고토 회복의 염원이 소설로 일시 이루어진다) 

     

    이 연운16주는 당나라 망하고 송나라가 들어서기 전까지의 혼란기인 5대 10국 시절,(907~960) 후진(後晉)의 건국자 석경당[각주:2]이 후당(後唐)과 싸울 때 요(遼, 거란)의 도움으로 후당을 멸망시킨 연유로 인해 요나라에 내주게 된 땅이었다.(938) 이로써 북방 이민족은 처음으로 만리장성을 넘어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던 바, 중원의 여러 나라들은 이 땅을 회복하려 여러 번의 공격을 감행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각주:3] 송대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연운16주의 할양은 중국 역사상의 굴욕적 사건으로 이 땅의 탈환은 자존심 회복의 차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북방 이민족의 남침이라는 실질적인 문제가 걸려 있었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연운16주는 중국의 중원을 감싸며 병풍처럼 넓게 퍼져 있을 뿐 아니라 장성 이남에 있는 땅이었다. 따라서 중원 국가들은 만리장성이라는 오랜 북방 방어선을 잃어야만 했으며, 거란의 기마병이 쳐들어올 경우 그들을 막아설 특별한 지형적 장애물이 없어 중원까지 무방비로 뚫릴 수밖에 없었다. 후진이 망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무튼 수호전의 주인공들은 숙제의 땅 연운16주를 일시적으로나마 회복하고 개선하나 곧 하북(河北)에서 일어난 전호의 반란 진압에 투입되고, 이어 회서(淮西)에서 일어난 왕경의 난 진압에 다시 투입된다. 송강은 이들을 진압하고 이어 강남에서 일어난 방랍의 난 또한 토벌하지만 이때 남은 두령의 수는 36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돌아오는 길에 임충과 무송은 지병과 부상으로 중도에 남게 되고 노지심은 병사하니 변경으로 돌아온 사람은 고작 27명 뿐이었다. 그럼에도 송강은 결국 조정에서 보낸 독주(毒酒)에 죽고, 나머지 두령들도 하나 둘 독살되거나 피살됨으로써 소설은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이때가 휘종 연간이다.

     

    하지만 연운16주의 비극과 송나라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인걸은 사라지고 모리배만이 춤추는 나라는 곧 그 반쪽을 잃고, 다시 전체를 잃는 멸망으로 이어지며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 '연운16주(II) -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던 송나라'로 이어짐.

     

     

     

    중국 도교의 성지 용호산 전경

     

    소설 속 양산박이 있었던 산동성 동평(東平) 

                             

    자신의 최후를 예감하는 급시우(及時雨) 송강.

    급시우란 때 맞춰 내리는 비를 말한다. 오죽하면 호가 급시우였을까?

     

      진짜 복마전은 이 전각 안이 아니라 우리 사는 세상일는지 모른다.

    (이상 관련 사진은 중국 강서성 용호산 도교사원에 재현된 것들임)

     

     

    1. 송강도 송사(宋史)에 등장하는 반란의 실제 주인공이긴 하나 요나라와의 전쟁은 픽션이다. [본문으로]
    2. 석경당은 원래 후당의 군대를 지휘하는 절도사였으나 후당의 황제와 사이가 벌어지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반군이 진압군에 밀리자 석경당은 요(거란)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이때 자신보다 10살 어린 요나라의 군주 아율덕광을 아버지라 칭하고 연운 16주의 땅을 내주기로 약속했다. 요나라의 도움으로 반란에 성공하여 후진의 황제가 된 석경당은 요나라의 군주를 부황제(아버지 황제)라 칭하고 자신을 아황제(아들 황제)라고 하였는데, 연운 16주도 당연히 할양됐다. [본문으로]

    후주의 세종만이 일시 영주와 모주를 회복했을 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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