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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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사냥하러 온 레옹 벵카르트와 벨기에 영사관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12. 31. 21:54
앞서 '지상 최고의 악마 레오폴 2세와 벨기에 초코릿'이라는 글을 통해 콩고, 르완다, 브룬디라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살아 있는 지옥으로 만든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Leopold II, 1865~1909)를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유럽이 제국주의를 추구하던 시절, 그 제국주의 열차의 막차를 타고 아프리카로 진출하여 콩고를 무력 점령한 후 거대한 카카오 · 고무농장을 경영하며 최소 수십만 명에서부터 최대 1,500만 명에 이르는 원주민의 목숨을 앗아갔다. 원주민의 노동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그 가족들의 손발을 자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1885년 레오폴 2세는 열강의 틈바구니를 뚫고 운좋게 콩고 분지를 차지하였다. 콩고는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땅이었으나 너무나 열악한 환경 탓에 땅따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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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촌의 돌우물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12. 28. 22:54
요즘 세대들이 ☎의 표시를 보고 "이게 무어냐?"고 물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전화기의 표시로 이렇게 통째로 전화기를 그리거나 혹은 수화기만을 그려 나타내는 경우가 있지만 요즘 세대들은 그 어느 쪽도 모른다고 한다. 그것이 언뜻 기이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핸드폰 세대들은 위와 같은 전화기를 거의 본 적이 없을 터, 모르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나간 것은 잊히기 마련이니, 과거의 우물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우리는 우물을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아주 오래 전의 우물은 잊혔다. 우물을 기억하는 세대라 할지라도 거의가 동그란 테두리의 우물만을 보았을 터, 우물의 기원인 井자 우물은 그저 '우물 정' 자의 한자로만 남아 있다. 2004년 서울 천호동 풍납토성 정비과정에서 발견된 동문 밖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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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사와 나운규의 '아리랑'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12. 25. 00:14
앞서 1920년에 세워진 인천 싸리재의 애관극장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극장으로 소개한 바 있다. 제목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애관극장'이었다. 그런데 서울 종로에 그보다 13년이나 앞서 세워진 극장이 있다. 1907년 서울의 소상공인 지명근·주수영·박태일 등이 공동 출자하여 세운 단성사 극장이다. 그런데 왜 애관극장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으로 소개했을까? 이유는 위의 사진이 말해준다. 애관극장은 지금도 영화관으로 존속하고 있는 반면 단성사는 폐관된 까닭이다. 과거 90년대 '장군의 아들'(임권택 감독, 박상민 주연), '서편제'(임권택 감독, 오정혜 주연)를 보기 위해 종묘까지 늘어선 장사진에 끼어 순서를 기다리던 일이 어제 같은데 말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1926년 무성영화 '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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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월대 앞에 서서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12. 17. 23:48
지난 10월 15일 문화재청이 복원한 광화문 월대를 이제야 보고 왔다. 광화문 월대는 현재 서울의 4개 궁궐을 포함한 모든 문 중에서 유일한 것으로, 1394년 이성계가 경복궁을 건설할 때 만들어진 시설물이 아니라 1866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조성되었다. 월대는 1923년 일제가 광화문 코앞으로는 지나가는 전차노선을 가설하며 없앴는데 그것을 최근 복원공사에 들어가 2023년 10월 15일 완공시킨 것이다. 동십자각과 짝을 이루던 서십자각도 1923년 전차노선이 가설되며 사라졌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총독부 건물이 건립되며 광화문이 사라졌다. 조선총독부는 원래 남산 왜성대, 옛 통감부 자리에 있었다. 통감부 자리에 지은 것이 아니라 1910년 한일합방으로 총독부가 설치된 후에 통감부 건물을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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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고종 어극사십년 칭경기념비전' 앞에서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12. 16. 23:51
세종대로는 명실상부한 서울 최고(最古)의 거리이자 최대의 거리로 그 폭은 무려 100m나 된다. 이 거리를 오랫동안 이순신 장군이 원 톱으로 지켜왔으나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는 지적에 2009년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져 지금은 투 톱 체계가 되었다. 그렇게 뒤늦게 합류한 세종대왕은 오히려 센터의 위치를 점했는데 그 바람에 차로가 줄어들며 극심한 교통 체증을 유발했다. 물론 그것이 세종대왕 본인의 잘못은 아니다. 그 도로의 오른쪽 라이트포워드 자리에는 존재감 없는 비각 하나가 서 있다. 흔히 광화문 비각이라 부르는 것으로, 비각의 현판에는 한문으로 '기념비전(紀念碑殿)'이라고 쓰여 있다. 그 안에는 '대한제국 이황제 보령망육순어극사십년칭경기념비송(大韓帝國李皇帝寶齡望六旬御極四十年稱慶紀念碑頌)'이라고 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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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동의 광희문·서산부인과 병원·희극인 김희갑의 집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12. 13. 23:02
최근 어릴 적 살던 신당동 시구문 시장 부근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 시구문 시장은 없어졌지만 시구문(광희문)은 그대로 있었고, 이제는 다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던 신당동 대장간거리의 철공소들도 일부 남아 있어 반가웠다. 정말이지 이곳은 한양의 옛 모습이 남아 있는 많지 않은 곳으로, 지금도 1890년대 이사벨 비숍 여사가 찍은 성문과 성벽 모습, 혹은 1907년 9월 7일자 프랑스 일뤼스트라시옹지에 실린 광희문 밖 모습이 고스란하다. 프랑스 일뤼스트라시옹지의 사진은 1907년 8월 1일에 벌어진 대한제국 군인과 일본군 사이에서 벌어진, 이른바 남대문전투에서 전사한 후 광희문 밖에 버려진 대한제국 군인의 시신과, 시신을 찾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이 전투에서 대한제국 군인은 장교 13명을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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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VII) ㅡ 보신각과 보신각 종 변천사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12. 12. 22:06
서울 도성 4대문의 명칭이 유학의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를 좇아 붙여졌으나 유독 북대문에 ' 지' 자가 가 붙여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숙정문, 혹은 숙청문에는 문루가 존재했을까?'에서 잠시 다룬 적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명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이 맹자께서 군자의 중요 덕목으로 여긴 '오상'(五常), 즉 '인 · 의 · 예 · 지 ·신'에서 유래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신'(信)은 어디갔을까? 보신각(普信閣)이 가져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보신각은 서울시 종로 한복판에 위치한 누각으로 흔히 '종각'(鐘閣)이라 불려진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을 빠져나가면 바로 종루가 나오는 바, 종각역의 명칭도 이 누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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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학회와 서북청년회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12. 9. 18:43
서울 지하철 안국역에서부터 낙원상가 사이의 삼일대로(三一大路)는 3.1만세운동의 시발지로 길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다. 천도교 수운회관 앞에서는 '독립선언문 배부 터'라는 표석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천도교 신도이자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기도 했던 이종일이 1919년 2월 27일, 자신이 운영하던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2만여 부를 인쇄한 후 천도교 회관 앞 자신의 집에 숨겨두었다가 거사일인 3월 1일, 집 앞에서부터 배포하였던 것이다. 그외도 삼일대로에는 시대를 휩쓸고 간 역사의 흔적이 오롯한데, 특히 해방 직후 혼란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지금은 세인들에게 잊혔고 별 관심도 없지만 삼일대로 안내판 아래의 조선건국동맹 터 표석은 해방 후의 극심한 반목을 대변한다. 그곳은 아직도 여전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