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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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경의선(I)ㅡ남은 신촌역과 사라진 수색역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2. 23. 22:30
예전 을지로에서 버스를 탔을 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처음 탄 버스 안에서 누가 나를...?'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나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승객도 몇 되지 않아 더욱 의아함이 느껴지는 순간,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야! 여기야, 여기!"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운전석 앞 거울에서 머리가 반쯤 벗어진 알 듯 모를 듯한 얼굴의 운전사가 웃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야 그 운전사가 고등학교 동창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름이 바로 생각났는데, 그러고보니 우리는 서로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가까웠던 사이였던 듯하다. 하지만 세월 탓일까? 기억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는 못한 듯했고, 다만 한 가지 분명히 공유하고 있는 것은 신촌역에서 경의선 기차를 타고 백마역 부근에 있는 그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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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미타사 금보암에서 발견된 국보급 불상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2. 18. 22:30
서울 미타사는 성동구 옥수동 한강변에 위치한 비구니 도량으로 창건연대는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인 신라 진성여왕 2년(888)까지 올라간다. 이 절을 창건한 사람은 원효나 의상 같은 고승이 아니라 대원(大願)이라는 비구니스님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창건연대가 미더워지며 아울러 비구니의 오랜 역사에 괜히 놀랜다. 대원스님은 기록으로 전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비구니일 것이다. 이 같은 사적기(寺跡記)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천년고찰이 존재했을 것임은 그 위치 하나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의 미타사는 온통 한강뷰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고, 그 때문인지 스스로도 고졸함을 잃어 예스러운 풍치가 없지만, 과거 이 일대는 절승(絶勝)으로 인해 수많은 유·무명의 정자들이 명멸했던 곳이니, 세종 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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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여래좌상은 15세기 제작된 티베트계 목조불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2. 17. 00:34
기억에만 의지해 말한다면 조계사 대웅전은 2004년 대대적인 내부수리를 했다. 앞서 I편에서 말한 대로 이 건물은 불교 건축물이 아니라 보천교라는 신흥종교의 본당 십일전(十一殿)이었다. 보천교는 전라도 정읍에 본부를 둔 도교 계통의 신흥종교로 한때 신도가 200만 명을 상회할 정도로 번창했으나, 교주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의 사망과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급격히 기울어졌고, 급기야 1938년에는 십일전 본당마저 매물로 나왔다. 이것을 1938년, 서울 도성 안 사찰 건립을 추진하던 태고사(1954년 조계사로 이름을 바꿈)에서 1만 2000원이라는 헐값에 구입해 서울 수송동 지금의 조계사 자리로 옮겨와 대웅전으로 삼았는데, 이전 건립 비용으로 17만원이 소요되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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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대웅전과 대웅전 불상의 비밀 I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2. 14. 22:43
앞서 '무학대사와 회암사 3대 화상(和尙)'에서도 언급했거니와, 무릇 종교의 흥망을 좌우하는 것은 그 교리의 합리성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종교는 합리성과는 거리가 있다. 신의 신통력은 더더욱 아닐 터이다. 종교는 오직 권력을 등에 업으면 흥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쇠하는 것이니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 세상의 모든 종교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인용한 글에서 언급된 동국제일 가람 회암사의 예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러함에도 내가 틈틈이 사찰을 찾음은 신앙보다는 역사와 미학을 추구함이니, 이는 오래된 가톨릭 성당이나 성공회 교회를 찾아 발품을 파는 이유와도 같다. 반면 교회는 별로 찾지 않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몇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역사성도 없거니와 건축미도 빼어나지 못하다.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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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의 검은 기억 II - 남영동 대공분실에 기생한 악마들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2. 8. 18:16
남영동하면 떠오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71길 37에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경찰청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자를 조사하기 위해 만든 여러 대공분실(對共分室) 중의 하나로, 지금은 남영동 대공분실만 남아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그곳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이다. 처음의 뜻은 대공분실, 즉 공산주의와 관련된 조사를 하기 위한 기관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건물은 2005년까지 경찰청 안보관련 기관으로 쓰였다. 그리하여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던 많은 학생과 투사들이 이곳에서 취조와 고문을 당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1985년 김근태 고문 사건과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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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의 검은 기억 I - 조선육군창고와 군납 제과업체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2. 7. 21:30
오래전부터 서울 남영동(南營洞)은 조선시대 훈련도감의 남영(南營)이 있는 곳에서 유래되었다는 항간의 속설을 믿어왔다. 그리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굳어졌다. 최근 스텝 바이 스텝으로 후암·갈월·청파·동자·남영동을 둘러보며 훈련도감 남영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전혀 미치지 못한 까닭이다. 훈련도감의 남영은 사실 문헌상으로도 근거가 박약하다. 훈련도감의 본영은 새문[新門]안, 현 구세군회관 부근에 있었다. 하지만 정작 군사들의 훈련은 그곳에서 행해진 적이 없었다. 국초(國初)부터 새문안 부근에는 태종의 최측근인 이숙번 등의 권세가가 살고 있었고 이후로도 권신과 왕족들의 거처가 운집해 있는 곳이라 함부로 총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이에 훈련은 서대문 밖 모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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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개 순교지와 부근의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의 흔적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2. 6. 22:25
한국 천주교에서 조성한 서울 용산구 당고개 순교성지는 새남터 순교성지나 서소문 순교성지와 달리 천주교인의 순수한 순교성지라 할만하다. 당고개 순교성지는 기해박해의 막바지인 1839년 12월 27과 28일(음력)에 걸쳐 천주교도 10명이 이곳에서 처형된 것을 기려 성지로 꾸민 곳이다. 순교자들의 이름은 박종원, 홍병주·영주 형제, 손소벽, 이경이, 이인덕, 권진이, 최영이, 이문우이고, 나중에 이성례 마리아가 추가로 순교했다. 원래는 위의 교인들도 서소문 밖 형장에서 처형당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때가 설 명절을 앞둔 때였고, 이에 남대문 시장 상인들이 명절 대목 장에 방해가 되니 형장을 바꿔 달라는 요청이 있었던 바, 당고개 야산 언덕에서 형이 집행되었던 것이다. 내가 '순수한'이라는 형용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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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촌(東村)에 살던 사람들 IV - 겨레를 깨운 김상옥의 총소리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1. 31. 04:29
지난 1월 22일은 의열단원 김상옥 의사가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 작년에 이어 김상옥 의사를 조명하고자 자료를 모았으나 전쟁기념관에서 개최 중인 '김상옥 의사 일 대 천(1 : 1000)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 특별전' 관람마저 차일피일하다 결국 망각하고 말았다. 그러다 지난 토요일 동촌(東村) 나드리를 왔다가 연동교회 벽에 걸린 김상옥 의사 기념 특별전의 대형 포스터를 보고 퍼뜩 정신이 들어 급히 효제동으로 발길을 틀었다. 가장 먼저 '종로 5가. 효제동. 김상옥 의거 터'라고 쓰여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다음의 글과 첫 대면을 하였다. 3.1운동 100주녀을 맞아 이 정류장 이름을 " 종로 5가. 효제동. 김상옥 의거 터'로 병기합니다. 의열단원 김상옥은 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