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
이완용 생가 터와 별장 터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4. 16. 23:40
2년 전 대통령 선거 이후로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과 백현동은 전국민이 모두 다 아는 유명한 동네가 됐다. 작년 11월 말 그 백현동의 한 유치원 앞에 화강암 몸체에 까만 오석(烏石) 명판의 비석 하나가 세워졌다가 5일 만에 철거되는 일이 발생했다. 다름 아닌 만고역적 이완용 생가 터에 세워졌던 기념 비석이었는데, 성남시가 백현동 아파트 공사로 생가를 철거한 후 뭔가 허전함에 비석 하나를 세웠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 철회했던 것이다. 성남문화원장 김대진의 이름으로 세워진 가로 75센티미터·세로 112.5센티미터 크기의 이 비석에는 이완용의 친일 행적 등이 425자로 담겨 있었다. 문화원 측은 이완용의 친일 행적을 알려 후대에 역사적 교훈을 전하고 경각심을 주자는 취지로서 세웠다고 했으나, 주민들 사이..
-
충정로의 역사적 건물, 충정·성요셉·서소문아파트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4. 9. 23:58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는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을 기려 명명한 도로이다. 민영환은 1905년 11월 일본과의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칼로 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에서 그와 같은 죽음은 많지 않다. 부모에게서 받은 신체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의 유교사상은 죽음에까지 적용되었으니 할복과 같은 결기를 보여주는 죽음은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민영환은 차고 있던 긴 칼을 빼 유혈 낭자한 죽음의 길을 택했다. 망국의 신하로서 처절한 죄값음을 하겠다는, 그리고 자신의 죽음은 굴복이 아니라 강한 저항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충정로는 이렇듯 지명의 유래가 분명하니 충정로역 부근의 충정아파트는 처음에는 그 이름이 아니었을..
-
만리동(중림동)에 살던 사람들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4. 6. 21:42
만리동이라는 명칭은 만리재(萬里재) 혹은 만리현(萬里峴)에서 유래되었다 둘 다 만리고개라는 의미이니 같은 소리인데, 조선 세종 때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최만리(崔萬里)가 이 고개에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에 반대해 신하로써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가 올린 상소에는 반대의 이유가 분명하다. 대국 중국이 쓰는 문자인 한문을 버리고 제멋대로 글자를 만들어 쓰는 것은 여진이나 일본 같은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이니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그는 중국에 대해 늘 "쎼쎼"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자였던 같다. 이에 세종대왕은 불같이 화를 냈다. "제 나라 문자를 가지면 오랑캐란 말이냐? 나는 백성들이 우리나라 말을 우리 식으로 편히 적게 하려는 것이거늘, 그것이 어찌 오랑..
-
서울시 기념물 1~5호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4. 5. 22:24
이번에 잠원동의 '잠실리 뽕나무'를 찾아가며 '서울시 기념물'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지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내(內) 역사적으로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시(市) 차원에서 지정·보호하려는 목적으로서, 지금까지 44호가 지정되었다. 다만 종로구 세검정이나 이화장(이승만 대통령 사저)처럼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국가 사적으로 승격되며 지정 해제된 곳도 있고, 자양동 낙천정 터처럼 장소 불확실 및 고증 미흡 등의 이유로 가치가 상실돼 해제된 곳도 있다. 마침 1~5호는 모두 1~2년 사이에 다녀온 곳이라 최근 사진을 소개한다는 의미로 포스팅해 보았다. 1~5호의 개관은 아래와 같다. 번호 이름 (한문표기) 소 재 지지정년월일 1호잠실리(蠶室里) 뽕나무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1-..
-
잠원나루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뽕나무와 가장 비싼 아파트가 있다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4. 3. 22:35
앞서 말한 새말·사평나루 근방에는 잠원나루가 있었다. 잠원한강공원 신사나들목 입구에 위치한 '잠원 나루터' 표석을 보면 잠원나루는 「한남대교 북단 한강진(漢江鎭)에서 말죽거리 원지동을 거쳐 삼남지방(충청·영남·호남)으로 이어진 교통 중심지였음」이라고 되어 있으나 주변의 이수나루와 더불어 작은 나루였다는 것이 이곳 토박이들의 증언이다. 다만 이 작은 나루가 왕실과는 관계가 깊었으니 역대 임금이 헌인릉, 선정릉 행차 시 도강(渡江)하였고, 문정왕후와 같이 불심 깊은 사람은 봉은사 왕래 시 이 나루를 이용했다. 또한 이곳은 왕실용 비단을 생산하는 뽕나무를 키우던 곳이기도 하였으니 인근 100만 평에 이르는 평원이 모두 뽕밭이었다. 성현(1439~1504)의 에는 구 잠실(현 송파구 잠실동)에 이어 지금의..
-
한강 신사동 나루를 배 타고 건너던 시절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4. 2. 22:28
새말나루는 조선시대 한강 사평리(沙坪里)에 있던 나루터였다. 새말과 사평리는 생소한 지명이겠지만 강남구 신사동은 모르는 분이 없을 것이다. 강남구 신사동은 새말의 새(新) 자와 사평리의 사(沙) 자가 합쳐져 생긴 동명(洞名)으로, 1962년까지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속했다가 1963년 서울시 성동구에 편입되었고, 1975년 분구(分區)가 이루어지며 강남구에 속하게 되었다. 사평리는 문자 그대로 '모래밭 마을'로, 고려시대에는 사평도(沙坪渡)라 불리었다. 아울러 나룻가에 사평원(沙坪院)이라는 역원(驛院)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같은 구전에 의지하자면 마을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된 듯하다. 잠원 한강공원에 세워진 표석에 따르면, 사평리는 조선시대에도 한남동 한강나루터와 이어지는 나루터가 있어 상업이 성..
-
양성지의 비변십책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3. 26. 00:03
앞서 1892년 일본공사로 부임했던 오이시 마사미의 지적을 언급한 바 있다. 다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조선은 이미 망한 나라이다. 그저 다른 나라가 아직 이 땅을 집어삼키지 않고 있을 뿐이다. 조선은 이른바 국가를 조직하는 뼈대가 모두 무너져내려 국가라고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은 강대국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도 국경에 방위할 군사를 단 1명도 배치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안에 군함이나 군항이 전혀 없을 정도로 국방력이 허약하니 아프리카 토인보다 못한 세계 최악의 지경이다. 아울러 관리들의 부패와 뇌물 수수로 정부의 재정은 매우 궁핍하고 경제전반은 침체되었으며 근대식 교육마저 미비해 앞으로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또 이러한 국가 위기를..
-
서울 을지로에서 태어난 이순신 장군 & 같은 동네 살던 류성룡 대감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3. 23. 22:45
흔히들 이순신 장군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충청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아산 현충사 및 그곳에서 멀리 않은 곳에 위치한 무덤 때문이리라. 보통 타지에서 생활하다 죽더라도 고향 선영에 장사지내는 것이 통례이기에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 이후를 잠시 좇아가면, 1598년 유해는 노량 바다에서 남해군 관음포로 옮겨져 잠시 안치되었다가 강진 묘당도 월송대로 이장돼 80일 간 모셨졌다. 이후 1599년 2월11일 충남 아산시 음봉면 금성산에 장사 지내졌다가 전사 16년 뒤인 1614년(광해군 6) 왕으로부터 선무공신의 칭호를 받고 좌의정으로 추증된 후 현재의 아산 삼거리 어라산 자락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아산 현충사와 9km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 유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