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 양주시가 정체성과 역사·문화적 가치를 담은 지역 상징물들을 설치해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해서 그중 한 곳인 백석읍 동이마을을 구경삼아 다녀왔다. 유독 동이마을을 찍어 다녀온 이유는 첫째는 마을이름이 예뻤고, 둘째는 양주시에서 홍보용으로 공개한 사진 중 동이마을의 상징으로 설치한 우물 정(井)자, 혹은 해시태그로 쓰이는 # 모양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양주는 숨은 이야기와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대도(大盜) 임꺽정의 은거지였던 불곡산이나 고려말 조선초의 최대 사찰이었던 회암사지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서는 앞서 몇 차례 썰을 풀 바 있는데, 그 양주 회암사지를 다녀오며 발견한 아래의 표석은 그간 몰랐던 또 하나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19세기의 유랑 시인 김병연(1807~1863)이 태어난 곳이 바로 양주시 회암동이다.
동이마을의 유래는 불곡산 천녁골엣서 물동이를 지고 처녀고개를 넘었던 고단한 마을 아낙네의 옛 모습과 그들이 머리에 이거나 등에 졌던 물동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 우물에 있었다면 그들의 고단함이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우물 정자 형태의 해시태그를 마을의 상징으로 삼았다 했는데, 그외에도 마을을 풍요롭게 만들려는 여러 노력이 돋보이는 이곳에 오면, 초입의 8사단사령부 정류장에서부터 아래와 같은 세계의 명화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백석읍 동이마을에 도착하니 심심했다. 무언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밖에는 아무 것도 없더라는 얘기다. 그 썰렁한 동네를 돌며 문득, 최근 방문한 광주시의 펭귄마을이 생각났다. 지금은 핫플이 되었지만 광주직할시 남구 양림동의 펭귄마을에도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동네에 펭귄이 산다거나, 살았던 것도 물론 아니다. 펭귄마을은 독거노인을 비롯해 주민 연령층이 높은 이 마을의 특징에서 이름이 비롯됐다.
표현하기 좀 송구한 얘기지만, 그곳 마을의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걷는 모습이 뒤뚱거리는 펭귄을 닮아 별칭처럼 부르던 것이 이제는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양림동 관계자의 말로는 젊은이들이 떠나 적막한 마을 분위기를 활력 있게 바꿔보려는 애정 어린 별칭이라 했는데, 그와 같은 노력에 약간의 예술이 가세해 지금의 양림동 펭귄마을은 현지 젊은이들은 물론 외지 관광객까지 찾는 명소가 됐다.
펭귄마을의 특정 지역은 야밤임에도 사람들이 붐볐다. 당연히 카페와 음식점이 몰려 있는 곳이었는데,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초상권에 민감해 멀찌감치에서 핸드폰을 들어도 다가와 뭐라 하는 분이 있다. 얼굴이 식별되지도 않을 거리임에도..... 아래의 사진들은 사람들이 없는 곳만 골라 찍은 것인데, 그래서 놓친 곳도 있지만 펭귄마을과 어울러진 양림동 거리는 정말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다시 양주로 돌아와 말하자면, 2년 전 양주시는 유형별 지역 상징물을 설치하기로 계획하고 시범사업으로 지난 2022년 1차로 읍·면·동 지역 상징물 세 곳, 지난해 각 마을 지역 상징물 두 곳을 설치했다. 그중 동이마을은 위에서 말한 우물 정자 모양의 해시태그를 상징물로 채택했는데, 이것이 여간 범상치 않다. 이 해시태그가 바로 광개토대왕의 상징이자 고구려 국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여러 글에서 다룬 바 있다.
그런데 우연일까? 근방에 양주 대모산성(大母山城 / 사적 제526호)이 있다. 소재지는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789 일원으로 동이마을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이다. '우연'을 강조하는 것은 대모산성이 남한에서는 드문 고구려 유적이기 때문이니, 부근인 봉암리 태봉산 보루(堡壘)에서는 최근 고구려 군의 찰갑(札甲, 쇠비늘 갑옷) 100여 조각과 화살촉, 투구 꼭대기 부분인 복발 편이 발견되기도 했다. 더불어각종 토기류와 보습 등을 찾아냈다.
고구려 토기와 보습은태봉산 보루가 고구려 보루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병사들이 농사를 지으며 장기 주둔하였음을 말해준다. 대모산성은 딱이 고구려가 쌓은 성이라고 말할 증거는 없지만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쟁패했던 곳은 분명하니 그곳에서는 지금도 삼국시대의 토기 편과 기와 편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렇게 쉽게 옛 토기와 기와편을 주을 수 있을 곳이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일전 구리 아차산성에서도 고구려 붉은 기와편을 발견해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행운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흔하다.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동이마을과 고구려 보루, 혹은 대모산성과의 연계이다. 대한민국에서 고구려 유적과 이렇듯 가까이 접하고 있는 곳은 없다. 동이마을은 고구려의 국기 해시태그뿐 아니라 훌륭한 역사·문화 콘텐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오늘 가보니 발굴조사가 끝나 유구가 복토 중이었다. 이 콘텐츠가 활용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