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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렌디피티와 새롭게 밝혀진 월지 출토 유물의 연대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3. 29. 23:42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사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① (문어) 무엇이든 우연히 잘 찾아내는 능력

    ② 운 좋은 발견

    ③ (-ties) 재수 좋게 우연히 찾아낸 

     

    같은 제목의 멜로 영화도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이것을 보면 세렌디피티는 인관관계에서도 적용되는 단어인 것 같다. 영화는, 우연히 만나 좋은 감정을 느낀 남녀가 그 짧은 만남을 끝으로 기약 없이 헤어지지만 7년 후 우연찮게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모두 결혼을 앞둔 상태였던 바.... (주인공은 존 쿠삭과 케이트 베킨세일이며 2001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세렌디피티'의 스틸컷
    '세렌디피티' 포스터

     

    하지만 스토리를 보면 세렌디피티는 인간관계보다는 아마도 장소를 지칭한 듯하니, 남자 주인공이 옛 일이 그리워 찾아온 스케이트장이 세렌디피티가 될 것 같다. 그곳에서 여자 주인공을 다시 만나게 되니 말이다. (우리가 많이 기대하는 우연이나 현실에서 이루어질 확률은 거의 제로?) 일반적으로도 세렌디피티는 장소에 국한되어 쓰이는 듯하니 우연찮게 만난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 의외의 절경 등의 용례로 많이 사용된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 역시 세렌디피티를 기대할 때가 많은데, 특별한 무엇이면 더욱 좋겠지만 이곳에 과거 무엇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석만 발견해도 기쁘다. 최근에는 서울 중구 저동 1가 남대문세무서 앞의 양향청 터 표석을 발견한 일도 세렌디피티라 할만하다. 양향청은 조선후기 훈련도감 소속의 재정 관서로 훈련도감에서 소용되는 의복·무기·비품 등의 물품을 조달하고, 급료 등의 재정을 관리, 운영하는 곳이었다. 

     

     
    양향청 터 표석
    명동성당의 첨탑으로 인해 주변이 중세유럽 거리처럼도 보인다.

     

    직접 가서 본 것이 아니고 기사의 발견도 세렌디피티가 될 수 있을까? 용어의 적절성은 차지하고서라도 최근에 본 기사 중에서는 '경주 월지의 출토품에서 고려시대 기와로 추정되는 유물 200여 점이 최근 발견됐다'는 기사는 매우 놀랍다.  월지 출토 유물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 추정 기와 200여 점을 발견했다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옥간요(玉看窰)'가 새겨진 기와 1점과, 평평한 면에 원형 돌기 문양을 새긴 일휘문(日輝文) 수막새 8점, 국화무늬 수막새 200점이 11세기 이후 등장하는 고려 기와로 분류됐다. 

     

    월지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이 별궁인 동궁과 함께 조성한 인공 호수로 그간 안압지로 잘못 불려졌으나 1980년 정비과정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신라시대에는 이 호수를 월지(月池)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974년부터 비롯된 월지 정비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은 무려 3만3000여 점으로 마치 신라시대의 타임캠슐이 오픈된 듯했는데, 내가 그 과정에서 가장 유심히 본 것은 주두, 첨자, 부연 등을 비롯한 동궁의 목재 건축부재였다. 이것이 신라시대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발전해 형태를 취해 그 시기가 못내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멸망한 왕성의 궁궐은 철저히 파괴된다는 것이 기존 통념이다. 물론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순조롭게 왕위를 영위하였으므로 동궁이 보존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신 왕조가 동궁과 월지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은 상식선의 상상이 아니라 월지 출토 유물은 일괄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국립경주박물관의 조사로 임해전을 비롯한 동궁의 전각들이 고려시대에 새로 지어지거나 보수되었을 개연성이 남겨지게 되었다. 아울러 월지가 조선시대에 '안압지''로 불리었던 만큼 이곳에 조선시대의 건물이 있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월지 출토 유물을 모두 통일신라시대나 그 이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이를 테면 월지에서 나온 청동거울 2점은 중국 요나라 양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주박물관 관계자는 "출토 기와를 재검토해 월지 유물의 연대가 고려시대까지 확장되면 연대 해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간단하고도 명료한 해답을 내놓았는데, 차제에 건축부재에 대한 시각만큼은 조선시대까지도 확장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말이다. 

     

     

    월지 부감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사진
    월지 출토 건축부재
    월지 출토 연화문 막새
    월지 출토 귀면와 / 문화재청 사진
    귀면와 발굴 당시 모습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14면체 주사위의 발굴 모습 / 정사각형 6개면과 육각형 8개면에 중인타비(衆人打鼻: 여러 사람으로부터 코를 맞기)와 같은 유희 방법이 써 있는 이 놀이 도구는 14면 각각의 면이 나올 확률이 1/14로 동일함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참나무로 된 이 놀라운 놀이도구는 건조를 위해 전기오븐에 넣고 돌렸다가 홀랑 타 없어졌다.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유물들
    월지 야경
    신라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임해전과 주변 전각
    경주 여행의 세렌디피티 / 우연히 들어가게 된 황오동 쪽샘지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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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