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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와 삼각맨션아파트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12. 2. 22:03

     

    젊은 세대까지 불어닥친 트로트 열풍 때문일까,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가 지금도 애창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그 곡을 부른 배호라는 가수는 이름만 들었지 사실 나도 본 적이 없다. 곡이 발표된 해가 1967년이니 낯이 서는 것은 당연한데, 다만 그해 완공된 삼각지 입체교차로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한때 서울의 명물이기도 했거니와 그 구조물이 철거된 해가 1994년 12월로, 비교적 근자인 까닭이리라.

     

     

    완공 무렵의 삼각지 로터리 고가도로

     

    삼각지 입체교차로는 차량들이 신호 대기 없이 번잡한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회전식 로터리식으로 설계되어 입체 구조물 위를 빙글 돌아 제 방향을 찾아가게끔 만들어졌다. 까닭에 지방에서 올라온 차량들이 이곳에 진입했다 몇 바퀴를 도는 일도 있었고, 돌다 돌다 결국 입구를 잘못 찾아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했으며, 차량이 몰리는 시간에는 꼬리물기 또한 극심했다. (정말이지 다들 필사적으로 앞 차량의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이 시설물은 당시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김현옥 서울시장의 작품으로서, 그의 별명은 당연히  밀어붙이기식 공사 행정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변화시킨 주인공이기도 했지만, 삼각지 입체교차로 완공 이듬해 사상 최대의 건축물 붕괴 사고인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당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

     

    용산 삼각지에 이와 같은 구조물이 만들어진 이유는 당연히 교통의 편의를 위해서였을 터, 그걸 보면 1967년 무렵에도 이곳 용산 삼각지 일대는 교통량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또한 일제강점기 군사기지와 공장·기업 등이 밀집했던 용산권(圈)의 영향이 아닐까 여겨지는데, 엊그제 포스팅했던 한국전력의 전신 일한와사(日韓瓦斯) 서울 본사가 있던 곳도 이곳 삼각지였다.(☞ '개화기 전기 산업에 관한 복잡다난한 일들과 을지로 한국전력 서울본부'

     

    삼각지의 지명은 1906년 러일전쟁 후 일제에 의해 건설된 경부선 철도와 한강로가 만들어낸 삼각형 모양의 지형에서 유래되었다. 이후 이곳 삼각지는 한강・서울역・이태원쪽으로 통하는 세 갈래길이 만들어졌는데, 이후 지하철 4호선이 삼각지를 경유하며 교통환경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은 삼각지 입체교차로의 철거를 가져왔지만 지금까지도 삼각형 땅 모양은 변함이 없다. 

     

     

    일한와사가 표시된 경성지사지전도 용산 부분 (1911년)
    직각삼각형 형태가 연한 한강로2가41번지 일대
    옛 삼각지 입체교차로 자리에서 본 원효로 방면
    서울역 방면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나 위 지도에 표시된 삼각지대 내에 일한와사 본사 건물이 있었다. 일한와사는 1915년 경성전기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경성전기가 돈을 벌어 1928년 남대문로 초입에 건축한 5층짜리 르네상스식 건물은 지금도 한국전력 서울본부 사옥으로 쓰이고 있다. 경성전기는 해방 이후에도 이름이 그대로 유지되다 1961년 발전기회사인 조선전업, 배전회사인 남선전기와 통합하며 한국전력 주식회사가 되었다.

     

    아울러 삼각지 땅의 권리도 한국전력에 배타적으로 승계되어 최근까지도  경성전기 창고 건물들이 남아 있었으나, 어제 가보니 막 철거가 이루어진 듯했다. 담벼락과 철조망 뒤에서 거의 100년을 버틴 셈이다. 하지만 그 삼각형 땅 안에 1970년 건립된  6층 높이 130가구의 삼각맨션아파트는 그대로 있었다. 앞서 1956년 건립된 갈월동 동양아파트를 해방 후의 첫 아파트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충정로의 역사적 건물, 충정·성요셉·서소문아파트') 삼각맨션아파트는 그보다 14년 후의 건물임에도 외형상으로는 훨씬 낡아 보인다.  

     

     

    한국전력공사 삼각지 용산창고 (2019년)
    삼각지 경성전기 창고 (2014년) / '오래된 풍경' 펌
    현재 모습 / 뒤에 보이는 건물이 삼각맨션아파트임
    사진 속 굴착기가 옛 창고를 가볍게 털어버린 듯.

     

    사실 삼각맨션아파트 단지는 2010년 한차례 재개발이 추진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2만860㎡ 전체 용지 중의 약 25%를 한국전력공사가 소유하고 있어 개발이 쉽지 않았다. 전체 용지를 묶어 개발해야만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시공업체로서는 달려들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 다시 재개발 얘기가 돌고 있으나 역시 쉽지 않을 것 같다. 소유자나 시공자나 부담이 없으려면 용적률을 올리는 방안밖에 없는데, 최근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으로 최고 높이가 제한될 듯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른 시기에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났으면 한다.

     

     

    삼각맨션아파트 여기 저기
    아파트 담장 밖으로는 또 다른 별세계가 위치한다.

     

    마지막으로 서두에 언급했던 가수 배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는 1942년 4월 24일 출생했는데, 출생지가 중국 산둥성으로 특이하다. 그의 아버지 배국민은 광복군 출신으로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산둥성 칭다오에서 2세를 보았다. 배호는 부모와 함께 해방 후 입국하여 동대문 밖 창신동 달동네에서 어렵게 살았다. 이후 1955년 부친이 사망하자 어머니의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삼성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어려운 가정환경에 2학년을 마치고 중퇴했다.

     

    이듬해인 1956년 가족은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배호는 대중음악을 하던 외삼촌 김광빈의 밑에서 음악을 하게 되었는데, 어린 나이에 악단의 드럼 주자로서 미8군 무대에 서고 방송국 출연도 할 만큼 음악적 재질을 보였다. 이후 1964년에는 '두메산골'이라는 곡으로서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어 '누가 울어', '파도',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톱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배호의 음악은 시대를 갈랐던 바,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이어져온 미성에 가느다란 목소리를 내던 트로트 가수 부류와는 달리 미국 스탠더드 팝 가수들이 구가한 중후한 저음에, 특유의 바이브레이션 및 절정부에서의 이른바 '꺽기'로써 애절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이후 새로운 남성 트로트 창법의 교과서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71년 11월 7일,  29세의 젊은 나이에 신장염으로 타계하며 더 이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후 음반계의 농간으로 그를 모창(模唱)한 가짜 배호 음반들이 연이어 등장한 탓에 지금은 진짜 배호의 목소리조차 분간이 어렵게 되었다는 것인데, 나는 아래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진짜로 여기고 있다. 말한 대로 1967년 만들어진 회전 로터리 형식의 삼각지 입체교차로는 배호의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의 소재가 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노래가 먼저 나왔다.

     

    그것은 가사를 들어도 알 수 있으니, 실연당한 사나이가 옛 연인을 찾아 삼각지까지 왔으나 결국은 발길을 돌려 돌아간다는 얘기다. 애인이 삼각지 로타리 근방에 살았는지, 아니면 삼각지 로타리에 유별난 추억이 있었는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터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 듣기

    배호(裵湖, 1942~1971)
    옛 삼각지 입체교차로 자리에 세워진 노래비
    용산구 역사문화명소가 그려진 주변의 벤치
    주변의 삼각지 안내문

    로운 사나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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