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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정로의 역사적 건물, 충정·성요셉·서소문아파트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4. 9. 23:58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는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을 기려 명명한 도로이다. 민영환은 1905년 11월 일본과의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칼로 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에서 그와 같은 죽음은 많지 않다. 부모에게서 받은 신체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의 유교사상은 죽음에까지 적용되었으니 할복과 같은 결기를 보여주는 죽음은 좀처럼 없었다. 
     
     

    충정로의 충정공 민영환 상
    국민에게 보내는 민영환의 유언이 새겨진 기단


    하지만 민영환은 차고 있던 긴 칼을 빼 유혈 낭자한 죽음의 길을 택했다. 망국의 신하로서 처절한 죄값음을 하겠다는, 그리고 자신의 죽음은 굴복이 아니라 강한 저항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충정로는 이렇듯 지명의 유래가 분명하니 충정로역 부근의 충정아파트는 처음에는 그 이름이 아니었을 것이다. 건물의 건립연도 추정은 1931년이나 1932년, 혹은 1937년으로 제각각이지만 일제강점기인 것만은 분명한 터, 절대 충정아파트일 리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이 동네는 1883년 부임한 일본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의 이름을 빌어 죽첨정(竹添町, 다케조에 쬬)으로 불렸고, 아파트의 이름은 도요다아파트였다. 설계자인 도요다 다네오(豊田種松)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도요다아파트는 1930년대 후반 급격히 늘어난 경성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서구식 주거건물로서 일본인 신혼가구가 많이 입주해 살았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의 숙소로,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의 숙소로 이용된 적도 있다.
     
     

    드디어 발견!
    반가운 마음에 일단 한 장 찰칵!


    이후 미군 전용의 트래머 호텔(Traymore Hotel) → 코리아 호텔 → 유림아파트 → 충정아파트가 되었다가 2023년 서울시의 도시정비형 재개발 결정으로 철거가 확정되었다. 사실 충정아파트는 1979년 충정로 왕복 8차선 확장 공사로 아파트의 3분의 1 정도가 잘려 나가며 원형은 상실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무렵 철거가 계획되었지만 입주자들의 반발로 전체 52가구 중 20가구 정도만 헐렸는데, 잘려 나간 부분에 살던 주민 중 3가구가 중앙계단 자리에 집을 덧붙여 지으며 공용공간을 점유했고, 그 바람에 복도와 계단을 다시 내면서 내·외부가 모두 본래의 원형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충청아파트는 그 역사상으로 인해 (사실상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이다) 수리 후 보존 쪽으로 힘이 실렸고, 2008년 마침내 도시환경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며 재개발 대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13년에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하였으며, 나아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있었다. 하지만 워낙에 건물이 낡아 안전등급에 미달되었고 (즉시철거에 해당하는 E등급 판정을 받음) 아울러 입주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보상금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결국 재개발은 물 건너 가고 철거가 확정되었다.   

     

    곧 볼 수 없게 될 충정아파트
    아파트 좌측면
    1층 복도
    3층 통로
    우리나라 최초의 중앙난방 아파트임을 말해주는 굴뚝
    굴뚝 상부 / 굴뚝은 본래 아파트 안 중정(中庭)에 있었을 것이나
    지금 중정은 형태가 교란되었다.
    계단참의 창문
    맨 위층에서 본 바깥
    그간의 다사다난을 말해주는 복도의 벽보


    이견이 존재하기는 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30년에 준공된  남산동1가의 미쿠니아파트(三國商會アパート)를 꼽는다. 하지만 미쿠니아파트는 외형은 아파트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나 공동화장실과 식당이 건물 내부에 따로 존재해 아파트라기보다는 미쿠니상사의 관사에 가까웠다.  
     
    그래서 관사가 아닌 최초의 아파트로는 충정아파트, 혹은 내자동 미쿠니아파트를 꼽는데, 시기적으로는 충정아파트가 앞선다. 서울시 건축물대장에는 준공일자가 1937년 8월 29일로 돼 있다. 해방 후의 첫 아파트는 중구 주교동에 위치한 중앙아파트와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동양아파트를 들 수 있는데, 건축 연도는 1956년으로 똑같다.  
     
     

    의외로 상태가 양호한 동양아파트
    동양아파트 입구
    안쪽에서 본 모습
    동양아파트 안쪽의 오래돼 보이는 단독주택
    금방의 오래된 목욕탕 굴뚝 / 아래 벽의 '소변금지+가위' 그림도 오랫만에 본다. ^^
    갈월동 횡단보도 건너편의 오래된 숙박시설
    여인숙 바로 옆의 갈월동 지하차도 / 옛 만초천이 흘렀던 곳이다.

     
    충정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의 성요셉아파트(중구 중림동 149)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다. 1층은 물론 상가인데 아파트가 언덕의 경사를 따라 계단식으로 세워져 있어 높이에 따라 층수가 달라진다. 그래서 높은 쪽의 2층과 낮은 쪽의 5층이 복도로 연결되며, 또 계단식 곡선 길을 따라 구부정하게 지어진 까닭에 복도도 건물 모양에 따라 길게 휘어져 있어 흡사 요술의 성과도 같은 공간을 구성한다. 외관도 요술의 성처럼 아기자기하다.
      
    성요셉아파트라는 종교적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당초 이 건물이 인근 '약현성당' 신도들을 위해 건립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욕이 미칠 수 없는 건축비가 따라붙었던 바, 결국 민간에 매각되며 서민 주거아파트로서 완공되었다. 시기는 1971년 6월로, 26개의 상가와 62세대가 형성되었다. 준공 초기엔 남대문시장과 중림시장의 여유 있는 상인들이 주로 거주했다고 하는데, 1990년대 서울의 주요 상권이 강남으로 넘어가며 수산물과 농산물도 노량진 및 가락동으로 따라 이전돼 아파트와 상가가 급 쇠락했다. 
     
     

    성요셉아파트
    성요셉아파트는 특이한 설계와 70년대 주거환경을 볼 수 있는 희소성으로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으나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휘어진 복도
    아파트 입구
    아파트 옥상에서 본 약현성당
    1892년에 세워진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성당이다.
    아파트 옥상에서 본 남산 방면
    서소문로에서 본 약현성당
    서소문 역사공원의 순교자 현양탑 / 1901년 신유박해 이래 많은 천주교도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이 탑은 그들 순교자를 기려 1997년 세워졌다.
    과거의 형장이 서소문 역사공원으로 꾸며졌다 / 형장 앞으로 만초천 지류가 흘렀고 처형된 시신은 그대로 개천에 버려졌다. 왼쪽 끝 건물인 서대문 경찰서 옆으로 만초천이 있었다.
    뚜께 우물터 / 망나니가 칼을 씻은 우물터를 복원했다.

     
    성요셉아파트 가까운 곳에 1972년 건립된 서소문아파트가 있다. 앞서도 말한 바 있지만 이 아파트는 만초천 위에 지어진, 그래서 대지지분이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아파트다. 아울러 만초천 곡류(曲流)를 따라 지어진 까닭에 활처럼 파격적인 형식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주상복합아파트(1층은 상가, 2층 이상은 주택)로 분양되었는데, 도심의 신축에다 생활이 편리했던 까닭에 부자와 연예인이 많이 입주했다.
     
    서울 서쪽의 큰 물줄기였던 만초천은 복개되어 용산 미8군 영내에 130 미터 정도의 지류만 남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물줄기를 이 서소문 아파트가 고스란히 안내한다. 아파트를 따라 지하에 만초천이 흐르고 있는 것이니, 아래 지도는 한 일본인이 복개되기 전의 만초천을 표시한 것이다. 위쪽에 만초천 표시를, 아래에 반달처럼 굽은 곳에 서소문 아파트 표시를 내놓았다.
     
    말한 대로 서소문아파트는 천 위에 지어진  까닭에 홍제천 위에 지어진 유진상가, 도로 위에 지어진 낙원상가아파트 등과 더불어 대지지분이 없는 건물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지어질 때와는 달리 건축법이 바뀌어 지금은 하천 위에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재개발·재건축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10년간 단 1건의 매매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교통이 편하고 값이 싸 전·월세는 꾸준하다고 한다.
     
    등기부등본상 주소는 '서대문구 미근동 215에서 서울 중구 의주로2가 138의 1 앞 하천복개지역'이며 서울 미래유산이다. 
     
     

    만초천과 서소문아파트를 볼 수 있는 지도
    서소문아파트 통일로 시작점
    서대문경찰서와 서소문아파트
    통일로에서 본 서소문아파트
    서소문로에서 본 서소문아파트
    6동과 7동 사이에 건물을 관통하는 통로가 있다.
    통로를 나가 아파트 뒷면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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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