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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인물열전(오자서 편)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1. 8. 01:43
분위기를 바꿔 백발에 관한 역사적 인물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흰머리를 가진 역사적 인물을 보자면 적어도 수억 명은 될 터, 그건 아니고 하룻밤 만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된 사람의 이야기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면 그렇게도 되는 모양인데, 본인도 요즘 흰머리가 늘어 그 또한 스트레스다. 물론 나 같은 경우는 그저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겠지만 말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중국 춘추시대(BC 7-4세기)의 오자서(伍子胥)란 인물이다. 이름은 오원(伍員)이나 우리에게는 그의 자(字)인 '자서'로 더 익숙하다. 오자서는 당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대대로 초나라의 임금을 섬긴 명문가의 자제였다. 그의 아비 오사(伍奢)는 초평왕(楚平王) 시절 태자 건(建)의 태전(太傳: 개인교사)로 임명됐는데, 이때 비무기(費無忌)란 자는 소전(少傳: 보좌역)에 임명됐다. 그런데 비무기는 소전의 역할보다 평왕의 비위 맞추는 일에 더 충실했다.(비무기는 이외에도 간신의 역할로 춘추시대의 여러 무대를 장식한다)
하루는 평왕이 비무기에게 진(秦)나라에 가서 태자 건의 신붓감을 알아오라 시켰다. 이에 비무기는 진나라로 갔는데, 진왕(秦王)의 공주가 절세미인임을 보고 냉큼 말을 달려 평왕에게 고했다.
“진나라 공주가 끝내주는 미인입니다. 그 여인은 왕께서 취하시고 태자의 비(妃)는 따로 구하심이 좋겠습니다.”
“허ㅡ. 그 정도로 미인이더냐?”
평왕도 그 말에 혹해 정말로 진의 공주를 후궁으로 맞이하여 곁에 끼고 살더니 곧 진(軫)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태자 건은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이후 비무기는 이 일로 인해 태자 건이 임금이 되면 자기가 죽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하더니 태자를 중상모략하기 시작했다. 이에 평소에도 귀가 얇았던 평왕은 건을 변방의 수비대장으로 보냈다. 하지만 이로서도 안심이 안됐던 비무기는 다시 태자를 비방했다.
“태자는 대왕께서 자신의 아내 될 여자를 뺏었다 하여 몹시 화가 나 있다고 합니다. 지금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다른 나라의 제후들과 사귀는 것이 필시 반란을 일으킬 모양샙니다.”
그러자 평왕은 오사를 불러 사실여부를 캐물었는데, 이것이 무고임을 간파한 오사는 비무기의 간특함과 평왕의 좁은 소견머리를 지적했으나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어 평왕은 태자 건을 죽이려 분양(奮揚)이라는 사자를 보냈는데, 분양은 먼저 제 부하를 태자에게 보내 고했다.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태자께서는 빨리 피하십시오.”
이에 태자는 급히 송(宋)나라로 도망갔으나 오사와 그의 자식들은 죽을 목숨이 되었다. 비무기가 다시 왕을 꼬드긴 것이었다.
“오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둘 다 비범한 자들입니다. 아버지 오사를 이용해 그들을 불러들여 모두 죽여 버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초나라에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귀가 얇은 평왕은 다시 그것을 실행에 옮겼는데, 이때 오사의 말은 이러했다.
“큰 아들 상(尙)은 본시 마음이 어질고 유약해 부르면 반드시 올 겁니다. 하지만 둘째 원(員)은 고집이 세고 강건하므로 필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면 모두가 죽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인즉 그러했으니, 사자의 명령을 받은 오자서는 제 형 오상에게 이렇게 말했다.
“말은 좋게 했지만 왕이 우리를 부른 것은 아버지를 살려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면 아버지나 우리나 모두 죽을 것이니 다른 나라로 도망 가 후일을 도모합시다. 부자(父子)가 같이 죽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오상의 말은 아비의 생각대로였다.
“가면 모두가 죽는다는 건 나도 안다. 허나 아버지가 위급한 마당에 가지 않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다. 내가 가지도 않고 훗날의 일도 성사되지 못한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가서 죽을 터이니 너는 도망 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다오.”
그렇게 서울인 영(郢)으로 간 오상은 아비 오사와 함께 죽었는데, 이때 오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초나라의 임금과 신하들은 이제 큰 병란(兵亂)에 휩싸일 터이다.”
오자서는 그 길로 송나라로 달아나 태자 건과 함께 정(鄭)나라로 도망쳤고, 정나라는 그들을 환대했다. 그러나 진(晉)나라가 획책한 병화(兵火)에 휩쓸려 태자 건은 주살당하고 오자서는 다시 쫓기게 되었던 바, 이번에는 제 3국인 오(吳)나라로 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혹도 하나 달렸으니, 태자 건의 어린 아들 승(勝)까지 떠맡게 됐던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낮에 잠을 자고 밤에 길을 재촉해 소관(昭關)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오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었다. 오자서는 밤새 고민을 했으나 끝내 그곳을 빠져나갈 묘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초나라에서는 벌써부터 오자서를 붙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던 바, 경계가 무척 삼엄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어린 아이까지 동반하고 있었으므로 식별이 더욱 쉬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어린 승과 함께 관문으로 나아갔다. 여차하면 관문의 수비병들을 베어버리고 성을 빠져나가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것이 여하히 이루어질 수 있을까는 모르겠으나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물론 누더기 옷 속에는 칼 한 자루가 단단히 움켜쥐어진 상태였다.
이런데 이게 웬일? 그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성문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오자서는 그 사실이 못내 의아했지만 까닭을 알 수 없었는데, 얼마 후 한 강물 앞에 이르러서야 모든 연유를 알게 되었다. 강물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이 흰 백발인 것이었다. 밤새의 극심한 고민이 검은 머리를 파뿌리로 만들었음이니, 이에 수비대들은 그와 어린 승을 할아버지와 손자로 여겨 검문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오자서는 자신의 모습에 크게 놀랐으나 그 겨를도 잠시, 곧 다시 도망쳐야 했다. 뒤늦게 오자서의 존재를 인식한 초나라의 군사들이 그를 추격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에는 큰 강물이 가로 막고 있어 옴짝달싹 할 수 없었는데, 바로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강물 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배 한 척이 다가와 그를 건네 준 것이었다.
무사히 강을 건넌 오자서는 당연히 그 어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을 터,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인 칼을 풀어 내주며 말했다.
“이 검(劍)은 백금(百金)의 값어치가 있는 물건입니다. 답례로 받아주십시오.”
그런데 뜻밖에도 어부는 검을 사양하며 이렇게 답했다.
“지금 초나라에는 당신을 잡으면 5만 석의 쌀과 집규(執珪: 봉국의 군주에 해당하는 최고위직)의 벼슬을 내린다는 포고가 걸렸습니다. 어디 백금의 값어치에 비하겠습니까?”
오자서는 이 같은 이름 모를 의인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이었다.
이후 오자서는 오왕 합려(闔廬)를 만나 나라를 부국으로 키운 후 초나라에 대한 정벌을 획책한다. 그러나 합려는 아직 오나라의 힘이 초나라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주저하는데, 그러자 오자서는 손무(孫武: 손자병법의 저자)를 추천하고 주변국인 당(唐)과 채(菜)를 끌어들인 후 그들과 함께 대국 초나라를 정벌한다. 그리고 BC 506년 마침내 초나라의 수도 영(郢)에 입성하니, 이로써 변방국이었던 오나라는 당대의 강국에 오르게 되고 오왕 합려는 춘추의 패자(覇者)로 등극한다.
당시 초나라는 평왕이 죽고 그의 아들 진(珍)이 소왕(昭王)이 되었으나, 소왕이 멀리 달아나는 바람에 죽이진 못하였다. 대신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끌어내 3백번의 채찍질을 가하는데, 이때 행위의 과함을 지적한 친구 신포서(申包胥)의 말에 대한 답변은 매우 유명하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도리에 맞게 행동할 겨를이 없지 않은가?”
이로써 오자서는 부형(父兄)의 원수를 갚고 합려를 패자에 등극시키지만, 합려는 이후 이웃 월(越)나라를 정벌하다 월왕 구천(句踐)과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죽고 만다. 합려는 죽을 때 제 아들 부차(夫差)에게 월왕 구천에 대한 복수를 다짐받는데, 이에 부차는 제 아비의 유언을 받들어 2년 후 월나라를 쳐 구천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부차는 구천의 뇌물을 받은 간신 백비(伯嚭)의 의견을 받아들여 구천을 살려두고 월나라를 속국으로 삼는다. 그리고 북쪽의 제(齊)나라를 비롯한 북방 나라들의 공략에 나섰으니, 자신도 명실공히 당대의 패자에 오르기 위함에서였다. 그때 오자서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구천이 식사를 할 때 한 가지 반찬만으로 밥을 먹고 상을 당한 집에 반드시 조문을 가고 아픈 사람에게는 꼭 병문안을 한다고 합니다. 이는 자신의 의지를 다지고, 장차 그 사람들을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월왕을 죽이지 않고 북쪽 나라를 공략함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차는 오자서의 듣지 않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땅을 크게 빼앗고, 이어 추(鄒)나라와 노(魯)나라를 위협하고 돌아오는데, 이때 구천은 오왕 부차를 적극 지원하였다. 이후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더욱 듣지 않게 되었는데, 그 4년 후 부차가 다시 북정(北征)에 나서자 이번에도 오자서는 앞서서 왕을 말렸다.
“옛 경서에 이르기를 시비(是非)를 엄중히 하여, 맞지 앉는 자가 있으면 가볍게는 코를 베고 무겁게는 죽여 살아남지 못하게 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옛 상(商)나라가 흥한 까닭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왕께서는 제(齊)를 버려두고 월나라를 마저 평정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훗날 후회를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차는 끝내 이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백비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한다. 이에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아아. 간신 백비가 지금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 데도 왕은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나를 죽이려 드는구나. 나는 그대의 부친을 패자가 되도록 해드렸으며, 그대가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 왕자들이 왕위를 다툴 때 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그대의 아버지와 다투었으니, 그 일이 없었더면 그대도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대는 왕위에 올랐고, 그 공으로 나라를 쪼개 그 일부를 주려 했지만 나는 받지도 않았다. 그런 충의지사(忠義之士)인 나를 간신의 말만 듣고 죽이려 하는가.”
하고는 다음의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BC 485)
“내가 죽거든 무덤 위에 노나무(관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나무)를 심어 관을 짜라.(오왕 부차가 전사하면 그 시신을 담기 위해) 그리고 내 눈을 빼어 동문(東門) 위에 걸어라. 월나라가 쳐 들어와 오나라를 멸망하는 꼴을 보리라.”
오왕 부차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그의 시신을 양자강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계획대로 북정에 나섰으나 이번에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그 후 그가 북벌에 몰두해 있는 사이 월나라의 구천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BC 473) 이때 패한 부차는 자결하였고, 이때 구천은 간신 백비도 죽였다. 불충한 신하라는 이유에서였다.
한편, 오자서가 젊은 시절 같이 데리고 도망쳤던 태자 건의 아들 승(勝)은 어찌 되었을까? 그는 오자서와 함께 오나라로 들어와 장성했는데, 이후 초나라 혜왕이 그를 불러 변경인 언(鄢) 땅의 제후로 앉혔다. 그는 이후 제 아버지 건의 원수인 정나라를 호시탐탐 노렸으나 초의 재상인 자서(子西)가 역으로 정나라를 돕자 내란을 일으켜 자서를 죽였다. 그리고 내친 침에 혜왕까지 공격했으나 오히려 역공을 당해 죽고 말았다.
굴묘편시(掘墓鞭屍), 일모도원(日暮途遠), 회계지치(會稽之恥), 토사구팽, 오월동주, 외신상담 등의 숱한 고사를 탄생시킨 오자서의 이야기는 대강 이상과 같다. 더불어 당대의 숨 막히는 전쟁사 속에 효빈(效顰)이라고 하는 고사성어도 나왔으니 아래와 같은 미인 서시(西施)의 찡그림과 함께였다.
오왕 부차는 회계산 전투에서 월왕 구천에 승리한 후 한 여인을 상납받는데, 이 여인이 중국 4대 미인의 한 사람으로 일컽어지는 서시이다. 그녀는 속 병이 있어 가끔 얼굴을 찡그렸는데, 그때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웠던 바, 이후 오·월(吳·越)의 못생긴 여자들도 모두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본받을 효, 찡그릴 빈의 효빈(效顰)은 '멋모르고 남을 흉내내는 꼴불견'의 의미로 쓰였다.(사진은 중국 드라마 속의 서시)
* '백발 인물열전(천자문의 저자는 누구인가?)' '백발 인물열전(관운장 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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