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따라 삼백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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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불상도 아육왕(아소카왕)이 보낸 것일까?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3. 4. 1. 16:12
앞서 신라 황룡사의 장육존상이 근엄한 얼굴의 부처가 아니라 아래와 같은 온화한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지닌 부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나름대로의 근거로 피력한 바 있다. (☞ '황룡사 장육존상은 어떻게 생겼었을까?') 그런데 를 보면 장육존상이 인도의 아육왕(阿育王, 아소카왕)이 보낸 금과 철의 재료로써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약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새로 대궐을 용궁 남쪽에 세울 때, 황룡이 나타나서 절로 고쳐 황룡사라 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남해로부터 거대한 배가 떠 와서 지금의 울주시 곡포에 이르렀다. 안을 조사해 보니 편지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서 천축의 아육왕이 황철(黃鐵) 5만 7천근과 황금 3만 푼(分)을 모아서 석가삼존상을 주조하려다가 이루지 못하자 배에 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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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에 기록된 천마산 보광사 중수기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3. 2. 24. 19:29
는 조선 말기의 문신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쓴 39권 33책의 기록으로 경학(經學), 역사, 지리, 시문(詩文), 금석(金石), 풍속, 민담 등이 망라된 필기류(筆記類) 편저이다. 이 책은 역사적 자료로도 가치가 있거니와 읽을거리가 풍부해 일찍이 국역번역본이 나왔다. 원본은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1961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한 축쇄본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다. 이유원은 백사 이항복의 9세손으로, 1841년 과거에 급제한 후 의주부윤·전라도 관찰사·성균관 대사성·형조판서·예조판서 등의 관직을 거친 후 1864년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흥선대원군과 사이가 좋지 않아 정치적 부침과 충돌이 잦았는데, 는 흥선대원군 집권 후 한직으로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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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의 인목대비와 명빈 김씨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3. 2. 14. 21:56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는 남한강의 물줄기와 북한강의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두물머리 승경을 품은 절로 유명하다. 앞서 '남양주 겨울기행 - 여유당과 수종사 & 다산 정약용'에서 말한 대로 그 승경을 보기 위해서는 610m 높이의 운길산을 오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절이 정상 가까운 곳에 위치한 까닭인데, 그래서 수종사를 갈 때면 언제나 이 절묘한 심처(深處)를 찾아낸 어떤 이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사적기(寺跡記)는 발견자 중의 유력 후보로서 세조로 들고 있다. 사적기에 따르면, 피부병에 시달리던 세조는 1408년(세조5년) 치료를 위해 강원도에 다녀오다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고 새벽에 종소리를 듣는다. 이에 종소리를 따라 운길산을 오르게 되었는데 그 종소리는 다름 아닌 바위굴에서 물이 떨어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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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에 이르는 절 철원 도피안사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3. 1. 24. 12:20
우리나라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고찰(古刹) 도피안사의 도(到)자는 '이를 도' 자를 쓴다. 즉 '피안에 이르는 절'이라는 뜻인데, 어학사전에 따르면 피안은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필시 불가의 최종 목표일 그곳을 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해탈한 후의 내세라는 뜻이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저쪽 언덕'이다.피안이란 윤회의 세계에서 수행을 통해 열반의 세계로 도달하는 과정을 고통의 땅에서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 행복의 땅에 도착하는 과정에 비유한 데서 생긴 말이다. 즉 생로병사의 고통, 탐욕, 어리석음 등으로 윤회하는 이 세계를 '이쪽 언덕'이라는 뜻의 차안(此岸)이라고 하고 반대로 모든 고통과 속박에서 자유로운 깨달음의 세계를 저쪽 언덕이라는 뜻의 피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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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삼미 슈퍼스타즈의 인호봉과 장명부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2. 12. 10. 23:42
인호봉이라는 전설적인 투수가 있었다. 그는 최동원, 선동렬 급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가 가진 투수 부분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자신이 고교시절에 달성한 14타자 연속 삼진과 41이닝 무실점의 대기록이다. 이는 전인미답의 경지임에 분명하지만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며,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음에도 특별히 그를 기억하는 이유인즉, 위의 대기록과는 별개로 라디오와 TV 야구중계에서 투수 인호봉을 너무 많이 접해왔기 때문이다. 인천고등학교 시절 불세출의 기록을 세우며 인천고등학교를 일약 야구 명문학교 반열에 올려놓은 그는 당시 최고 투수상, 최고 타자상, 도루상, 출루상의 4관왕을 달성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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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사릉 소나무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2. 10. 20. 07:31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결국은 목숨까지 빼앗긴 이른바 단종애사는 널리 알려진 사실임에도 지금도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사실 조선 역사에서 이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드물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노린 이유는 그 자신이 야심가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단종의 부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문종은 부인들의 엽기 행각에 질려서인지 현덕왕후(단종의 모) 사후 새로 부인을 맞지 않았다. (☜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 문종 부인 레즈비언 썰은 사실일까?') 그래서 문종은 부인이 없던 조선의 유일한 왕이었다. 차라리 계비라도 들여 단종의 계모가 존재했다면 수양대군은 감히 쿠데타를 꿈꾸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할머니 소헌왕후(세종의 비)가 생존했더라면 아예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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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되어 복수를 한 단종 모 현덕왕후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2. 9. 29. 23:04
전에도 말했거니와 사는 곳이 구리시 동구릉 근방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자주 찾게 되는데, 그렇다고 혼자 간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누군가 구리시를 찾아왔을 때이다. 그럴 때 동구릉 구경을 시켜주고 입구의 왕릉갈비(지금은 동구릉떡갈비로 바뀌었음)에서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면 최소한 소홀함은 면한다. 왕릉 관람에 있어서도 이제는 요령이 생겨 첫 번째 만나게 되는 수릉과 두 번째의 현릉은 그냥 통과하고 세 번째 릉인 이성계의 건원릉으로 직행한다. 그리고 다음은 영조의 원릉이나 선조의 목릉으로 간다. 수릉과 현릉을 지나치는 이유는 무덤 주인공의 유명도가 낮기 때문으로, 수릉은 추존 왕 문조(효명세자)와 부인 신정왕후의 능이고, 현릉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이다. 그 생소함에 방문객의 표정은 대개 심드렁하다. 까닭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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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목조 비로자나불 & 여왕의 근친상간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2. 9. 12. 23:53
문화재청은 지난 1일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과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2건을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그 2구의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으로 지난 2005년 발견되어 2012년 보물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이 불상의 국보 승격의 이유를 "802년 해인사가 창건된 사실에 비춰볼 때 이 두 불상은 해인사 창건 시기와 머지않은 시점에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현존하는 단 2구의 신라시대 목조불상으로서 그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2005년 발견되었다는 말은 사실 어폐가 있다. 이 불상은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땅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