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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퍼시벌 로웰과 화성의 운하
    거꾸로 읽는 천문학개론 2018. 4. 30. 01:45

     

     

    1877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지오바니 스키아파렐리는 화성을 관측하다 그 표면에서 일직선 상으로 파인 선을 발견한다. 그는 이것을 이탈리아 어로 줄을 뜻하는 카날리(canali)로 명명했는데, 2년 후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1855-1916)은 이를 '운하(canal)'로 번역하여 소개한다. 이후 이 '운하'는 세상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화성에 정말로 이것을 만든 고등생명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다. 


    [Daum백과] 화성탐사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2, 강석기 외, 과학동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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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의 운하' 마리너 계곡

    길이 4,023km의 태양계에서 가장 긴 협곡으로 미국 동서를 가로지른 거리와 맞먹는다. 카날리가 말한 '줄'은 이 계곡을 지칭한 것으로 물길, 수로, 해협의 의미를 포함한다. 그런데 로웰이 인공의 '운하'로 번역해 문제가 발생되었다. 아무튼 대홍수와 같은 물이 만든 지형이라는 것이 중론이나 내가 볼 때는 거대한 운석이 스쳐간 스크래치로 여겨진다.  

     

     

    그런데 로웰은 왜 그것을 운하라고 했을까? 그것이 단순히 이탈리아 어의 오역이었을까? 아니다. 로웰은 실제로 그곳에 화성인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지구에 이렇게 인간들이 어엿한데 비슷한 환경대의 화성에 생명체가 없음을 그는 오히려 이상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화성의 또 다른 인공구조물을 찾는 데 평생을 다 바쳤다.(구경 30cm의 망원경을 갖춘 천문대까지 만들어) 하지만 그가 죽고 한참을 지나서까지 운하는커녕 그 어떤 소규모 인공구조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로웰은 평생 헛짓을 한 것일까? 아니다. 그의 노력은 적어도 1898년 H.G. 웰스의 소설 '세계 전쟁(War of the Worlds)'의 모티브는 되었던 바, 미국인의 대다수는 화성에 고도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믿게 되었고, 미항공우주국(NASA)의 전신인 미항공자문위원회가 발족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1924년 8월 화성 고등 생명체와 그 흔적을 찾으려는 열정이 온 지구인에게 모아졌다.  

     

    사람들은 화성인이 보냈을지 모를 지적인 신호를 듣기 위해 민간과 군 방송국을 포함한 모든 방송국이 3일간 전파 송출을 하지 말하자는 캠페인을 펼쳤고, 미군은 외계 음파를 분석할 수있는 부서를 만들기도 했다. 실제적으로 영국과 캐나다의 무선통신 교환수는 생전 접해보지 못한 전파음을 들었다는 보고를 하기도 했다. 이 같은 광적인 분위기 속에 일련의 과학자들은 스위스 알프스의 관측소에서 화성을 향해 전파 신호를 쏘아 보냈고, 천문학자들은 가까워진 화성 표면에 천체망원경을 더욱 밀착시켰다.('다음백과' 참조)

     

    그러한 가운데 1938년 '세계 전쟁'의 개정판이 라디오로 소개되었을 때, 미국인은 화성인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물론 화성인의 침공은 없었지만 1953년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세계 전쟁'이란 영화는 이후 쏟아져나온 SF 영화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원작은 이후로도 팀 버튼의 '화성침공', 최근의 '우주전쟁'까지 영향을 미쳤다. 

     

     

     

     

     

     

    1953년 작 '세계 전쟁'

     

     

     

    1997년 작 팀 버튼의 '화성침공'

     

     

     

    2005년 작 '우주전쟁'

     

     

    화성의 생명체를 찾으려는 노력은 196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최초의 화성 탐사선은 1964년 11월 28일 지구를 떠난 마리너 4호였다. 마리너 4호는 1965년 7월 화성 궤도에 집입하여 20장의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했으나, 화성인은 물론이요 운하로 인식될만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어 1969년 추가 발사된 마리너 6호와 7호가 더 많은 사진을 찍어 보냈지만 기대하는 것들은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최초의 화성 탐사선 마리너 4호

     


    화성 탐사는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다음 차례는 마리너 9호였다. 1971년 5월 30일 지구를 떠나 11월 화성 궤도에 진입한 마리너 9호는 그해 12월부터 화성 곳곳을 찍은 7천여 장을 전송했다. 거대 화산과 계곡, 극관의 미세한 층리, 과거에 물이 흘렀던 흔적 등, 앞선 마리너 우주선들이 찍어 보내지 못한 영상이었으나 여전히 운하에 대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마리너 9호와, 마리너 9호가 보내온 니르갈 계곡 사진

     

    마리너 9호가 보내온 올림푸스 화산 사진. 마리너가 보내온 사진 베스트 11 중 No.1에 뽑혔다.

     

    올림푸스 화산의 분석. 폭 600km, 높이 250km로, 에베레스트보다 3배나 높은 이 화산은 화성 뿐 아니라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사화산으로 판명났다. 분화구의 지름은 65km로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보다 길다. 

     

     

    70년대 들어 화성 탐사를 담당한 탐사선은 바이킹이었다. 화성 표면을 샅샅이 훑었는데도 운하의 흔적을 찾지 못하자, 과학자들은 우주선을 화성 표면에 직접 착륙시키는 구상을 하게 됐고, 바이킹 1호와 2호가 그 임무를 띠고 1975년 8월 20일과 9월 9일에 화성을 향해 출발했다. 바이킹 호는 1976년 7월 20일과 9월 3일, 각각 화성 표면에 안착했다. 

     

     

     

      바이킹 호의 구조

     

     

    마리너 호의 조사를 통해 화성에 고등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셈이었지만, 과학자들은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바이킹 호를 보낸 이유도 거기 있었으니 화성 지표 아래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 수준의 생명체라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 기대에 부응하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1976년 바이킹 1호가  다음과 같은 사진을 보낸 온 것이었다. 

     

     

     

     

    이른바 화성 인면암(Face of Mars), 즉 사람얼굴 바위로 이름 붙여진 이 사진은 오랫동안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요지인즉슨 이 얼굴을 만든 화성인이 고대에 존재했었다는 것인데, 혹자는 그 화성인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열을 올렸다. 그 정답이 밝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빛의 음양 효과로 인한 착시인 것이었다. 

     

     

    위 사진이 워낙에 화제가 됐던지라 아래 사진을 벌써 세번째 올리게 됐다.

     

     

    여기서 '울퉁불퉁한 우주 이야기'라는 책에 실린 재미있는 문제를 하나 올린다. 여러분께서도 함께 풀어보시길.(의외로 어려워요^^)

     

    * 화성은 왜 붉은 색일까? 

    1. 뜨거워서   2. 부끄러워서   3. 녹슬어서   4. 아파서 

     

    이 문제와 답은 바이킹 호가 가지고 있었다. 바이킹 탐사선은 화성의 토양이 대부분 규소와 철로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화성이 붉은 색을 띠게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산소와 결합한 땅속의 철이 산화철의 상태로 드러나기 때문에/따라서 정답은 3번이 되겠다) 아울러 화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95%)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질소 2.6%, 아르곤 1.6%) 대기압은 지구의 15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 이것은 화성이 마르스로 불려지게 된 연원이기도 하다.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화성의 붉은 표면이 피로 연상되었고, 이에 그리스 사람들은 전쟁의 신 아레스로 불렀던 바, 로마에서는 마르스가 되었다.(* 아레스에 대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조각품' 참조)

     

    이렇듯 화성은 대기의 질이 최악인 데다 액체 상태의 물을 발견할 수 없는 등,  생명체가 살기에는 접합치 않은 행성이라는 것이 바이킹 호의 최종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탐사선은 계속 발사됐다. 한마디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수천 억을 들인 각국의 화성 탐사선 가운데는 발사에 실패하거나 발사 직후 폭발, 발사 후의 추락과 실종, 심지어 화성 표면과 충돌하여 산화한 것들도 부지기수였던 바, 일괄해 '화성의 저주'로 불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6년 12월 4일, 이번에는 패스파인더 호가 발사되었다. 탐사선은 모선 ‘프로브’와 탐사로봇 ‘소저너’로 나뉘어 있었다. 프로브는 착륙지점에 정착해 소저너를 풀어준 뒤 대기를 분석, 자료들을 지구에 전송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노예 폐지론자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의 이름을 딴 소저너는 화성 표면의 지질 탐사활동 임무를 맡았다.(소저너는 재미 과학자 박영호 박사의 주도 하에 제작된 탐사 로봇으로 주목을 받았다)
     
    패스파인더 호는 1997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화성에 도착, 프로브와 소저너를 화성 표면에 내려놓았다. 사상 처음으로 화성 땅을 밟은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소저너는 화성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 사진 중에 생명체로 여겨질 만하거나 그 흔적들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여전히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화성은 여전히 매력적인 별이었고, 더욱이 소저너가 보내온 자료 중에서는 물의 흔적에 관한 것도 있었던 바, 2007년 8월 4일 피닉스 호가 발사되었다.(피닉스 호는 2008년 5월 26일 화성에 착륙했다) 

    그리고 2010년, 미국 텍사스대학 연구진은 1971년 구 소련이 발사한 마스 3호에서 보내온 자료와 2008년 피닉스 호가 보낸 사진 자료를 종합 분석해 마침내 화성에 거대한 바다가 존재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그 증거 사진인 맨 아래 (강물의) 델타 사진은 과거 화성에 강과 바다가 있었음을 한 눈으로도 짐작케 해준다. 로웰이 말한 운하는 아닐지라도 해협은 있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NASA 제트추진 연구소 박영호 박사 

     

    박영호 박사가 만든 소저너(지금 화성인들이 바둑판으로 쓰고 있다는 우스개도 있다)

     

    미국 20불 지폐의 소저너 트루스(1797-1883)

     

    화성 표면을 탐사 중인 소저너. 소저너는 당초 1개월 정도의 활동을 예상했으나 통신이 두절될 때까지 약 3개월을 활동하며 1만 5000장의 표면 사진과 26억 비트의 기상정보를 전송했다. 그중에서는 물의 흔적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도 들어 있었던 바, 이후 화성 탐사 계획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피닉스 호의 구조

     

    화성 표면을 탐사 중인 피닉스 호

     

    구 소련의 마스 오딧세이 탐사선이 찍은 화성 표면 사진.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은 눈물 방울 모양의 지형이 수백만 년 전 바다의 형성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성의 델타 흔적. 피닉스 호가 보내온 흑백사진에 NASA가 색을 입혔다. 화성에 물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유력한 사진이다.

     

     

    * 그밖에 화성에 물이 존재하거나,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진들

     

     1999년 지형과 2005년 지형의 비교.

     

     2001년 2005년 지형의 비교.

     

     

     

     

    화성과 지구의 자갈 퇴적층 비교

     

     

     

     

     

     

     

     

     

     

     

    화성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화성의 눈?

    밤에 급격히 떨어지는 화성의 기온은 극지방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표면을 덮는 드라이아이스로 전환시킨다. 따라서 어쩌면 화성에서 눈을 즐길 수 있을는지 모른다. 참고로 화성의 평균온도는 영하 63도이고, 최저온도는 영하 143도, 최고온도는 영상 35도이다.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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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