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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수동 미타사 금보암에서 발견된 국보급 불상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2. 18. 22:30

     
    서울 미타사는 성동구 옥수동 한강변에 위치한 비구니 도량으로 창건연대는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인 신라 진성여왕 2년(888)까지 올라간다. 이 절을 창건한 사람은 원효나 의상 같은 고승이 아니라 대원(大願)이라는 비구니스님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창건연대가 미더워지며 아울러 비구니의 오랜 역사에 괜히 놀랜다. 대원스님은 기록으로 전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비구니일 것이다.
     
    이 같은 사적기(寺跡記)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천년고찰이 존재했을 것임은 그 위치 하나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의 미타사는 온통 한강뷰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고, 그 때문인지 스스로도 고졸함을 잃어 예스러운 풍치가 없지만, 과거 이 일대는 절승(絶勝)으로 인해 수많은 유·무명의 정자들이 명멸했던 곳이니, 세종 때의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 관리에게 휴가를 주어 책을 읽게 한 제도) 장소로서 유명한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 대표적이다.
     
     

    해외로 반출되었다가 2022년 국내로 돌아온 '독서당 계회도' (부분) / 1531년(중종 26)에 제작된 가장 오래된 계회도로서 옥수동 달맞이봉 뒤로 운무 속의 동호독서당이 살짝 보인다.
    서울대 소장 '독서당계회도' (부분) / 1570년에 그려진 작가 미상의 그림으로 동호독서당이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옥수동 극동아파트 상가 앞의 동호독서당 터 표석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이곳에선 상가 대신 한강이 보였는데....

     
    성동구 독서당로 40길 21의 미타사는 이 동호독서당의 직선거리 아래에 위치하며, 주변에는 독서당뿐 아니라 은파정(恩波亭), 수운정(水雲亭), 익평위정(益平尉亭), 고심정(古心亭), 임한정(臨漢亭), 서상국정(徐相國亭), 유하정(流霞亭), 쌍호정(雙湖亭), 사의정(四宜亭) 등 수많은 정자들이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주변의 빼어난 풍치에 이끌려 지어진 정자들로서, 위 <독서당 계회도>에도 일부가 그려져 있이다. 하지만 지금 그 정자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수려한 경관의 한가운데 위치했을 미타사마저 현대화돼 사찰인지 개인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모양새가 되었다.

    그래도 극락전을 비롯한 몇몇 전각은 고찰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중 극락전은 고려 예종 때(1115년) 건립됐다. (나도 잠깐 깜놀!) 만일 그때의 건물이 존속됐더라면 1376년에 중수된 기록을 갖고 있는 부석사 무량수전에 250년 앞서는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축물이 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저 이 절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일 뿐이다. 그래도
    조선 철종 때 신정왕후 조씨(조대비)의 하사금으로 지어진 건물이니 짧지만은 않은 연혁이다. 부근 삼성아파트는 신정왕후 출가 전 살던 곳으로 109동 앞에 표석이 서 있다. (물론 아파트에 거주하지는 않았다 ^^) 
     
     

    옥수동 현대아파트를 배경으로 선 미타사 극락전 / 탑은 1928년 선담스님이 세웠다.
    신정왕후 조씨(1808~1890)의 초상화
    신정왕후와 고종과 흥선대원군 ('애니 한국사' 그림) / 신정왕후는 명복이(고종)를 왕위에 올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요절한 효명세자의 아내로 33년 동안 뒷방 신세를 면치 못했던 여인의 회심의 한 수였다.
    옥수동 삼성아파트 내 쌍호정 터 표석 / 신정왕후 조씨의 생가에 있던 정자 터이다.
    현대아파트 쪽에서 내려본 미타사
    미타사 천불전
    종무소 뒤로 보이는 현대아파트
    독성각에서 보이는 삼성아파트

     
    그 밖의 대웅전, 천불전, 독성전은 근래에 지어진 당우일 터인데, 사찰의 본당인 대웅전이 용운암이라는 암자 안에 있는 것이 이색적으로 여겨진다. 이는 미타사라는 절이 대승암·칠성암·금보암·금수암·정수암·용운암·관음암·토굴암의 8개 독립된 암자로 구성된 특이란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인데, 과거 이 절의 유명 스님이 수행을 마친 비구니들을 차례로 분가 형식으로 내보내 독립시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용운암 내에 있는 대웅전
    용운암 입구
    관음암 앞의 수령 200년 이상된 느티나무 2그루
    관음암은 다분히 현대적이다.
    왼쪽 정수암, 오른쪽 금수암도 현대적이나
    가운데 금보암은 전통적이다.
    그렇지만 뒤편 주택 사이의 대승암은 다시 현대적 모양새로서 출현한다.

     
    아울러 각 당우에 산재해 있는 1883년(고종 20)에 조성된 칠성탱화를 비롯해 1887년 학허스님이 그린 아미타후불탱화 ·현왕탱화 · 감로왕탱화 · 신중탱화 · 지장탱화, 1900년 보암스님이 그린 신중탱화와 아미타후불탱화 등은 서울특별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갯수로는 20건이 넘는다. 그런데 이중 금보암에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彌陀寺 金寶庵 金銅觀音菩薩坐像)은 가히 국보급이다. 
     
    높이 35cm의 이 불상은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왼쪽 다리를 접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이러한 포즈를 절대자 전륜성왕의 자세라 하여 통칭 윤왕좌(輪王坐, Rajalilasana)라 부른다. 윤왕좌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 중국을 통해 들어온 티베트계 불상에서 나타나는 형식이나 흔하지는 않다. (보물 1841호 강진 고성사 청동보살좌상, 보물 1547호 해남 대흥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외 2건) 
     
    이 금동관음보살좌상은 2016년 완전한 형태로서 발견되었다. 조성 발원문이 없어 제작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개금(불상에 금칠을 하는 것) 발원문에는 1852년 종남산 미타사 백련암(금보암의 전신) 보살상의 개금 기록이 적혀 있어 적어도 철종 3년에 봉안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또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봉은사 본말목록재산대장을 보면 미타사에 높이가 각각 120분(分, 36cm)과 150분(分, 45cm)인 금동관음보살좌상 2점이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금보암 불상은 그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금보암 금동관음보살좌상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17호

     
    그렇다면 다른 불상 하나는 어디로 갔을까? 미타사 측에 따르면 오래 전 관음암 안에 보존돼 있던 약 45cm의 관음보살상이 도난됐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금보암 금동관음보살좌상과 거의 같은 모양새에 윤왕좌 포즈를 하고 있는 높이 38.5cm 불상이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불상이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불상 중의 하나이지만 국가지정문화재는 아니라는 점이다. 왜 그럴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관음보살좌상
    미타사 금보암 뒤로 보이는 종남산의 암벽 / 도둑놈은 필시 이 암벽을 타고 침입했을 듯. 이건 그저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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