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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무인도 밤섬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5. 2. 23:09
한강의 밤섬은 지금은 무인도이며 들어갈 수조차 없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살던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천여 명의 주민들이 고깃배 제작과 함께 누에를 치고 약초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었다고 하는데,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섬 전체가 뽕나무 밭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밤섬 전체 면적의 절반가량이 버드나무와 뽕나무 군락이다. 1968년 섬을 폭파하고 뽕밭을 싹 밀어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를 만들었음에도 다시 섬이 생기고 뽕밭을 이룬 것을 보면 자연의 힘이란 정말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밤섬에는 1960년대 말까지도 78가구 443명의 주민이 살았다. 하지만 이들은 마포 창천동 와우산 기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고,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다이너마이트 폭발 굉음과 함께 섬은 폭파되었다. 당시 공사가 시작된 여의도 제방공사에 토사가 부족했던 바, 밤섬을 폭파해 쓰기로 한 것인데, 즈음한 한강개발에 있어 유속을 빠르게 하기 위한 목적도 동반되었다. 한마디로 일거양득이었던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섬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커졌다는 사실이다. 원인을 따지자면 우선은 바닥이 암반인 까닭일 터, 이에 시간이 감에 따라 중·상류에서 흘러든 토사들이 다시 퇴적되었던 것이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면적이 5년 전보다 8600㎡ 가량이 증가해, 결과적으로는 폭파 전 면적의 6.5배까지 넓어졌다고 한다.
특히 윗섬보다도 특히 아랫섬의 면적이 크게 넓어졌는데, 상류 쪽은 홍수 때 침식이 일어나지만, 아래쪽은 반대로 퇴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참! 밤섬은 본래 위섬, 아랫섬이 없는 하나의 섬이었지만, 폭파 후 섬이 위아래로 나뉘고 가운데로 물길이 났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의 측량 결과에 따르면 밤섬의 면적은 29만3012㎡(약 8만8600평)로서 축구장 면적 41개에 해당한다. 이 섬은 현재 철새들의 천국이 되었으며 최근에는 수달 발자국도 발견되었다. 한강개발과 함께 사라졌던 한강의 수달은 2017년 천호대교 북단 부근에서 처음 포착된 이래 뚝섬, 중랑천, 청계천 등지에서 꾸준히 발견되고 있는데, 밤섬은 무인도이자 먹이가 풍부한 관계로 상당수가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가의 우점종 갈대와 물억새 사이에 사는 물고기들은 수달의 최고의 먹이가 된다. 게다가 2012년 밤섬은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수달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인 것이다. 이와 같은 환경은 비단 수달뿐 아니라 다른 동식물에게도 좋은 서식 환경이 되었던 바, 현재 조류 40여 종, 식물 190여 종, 곤충 15종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그야말로 한국의 오카방코인데, 그것이 대도시의 한가운데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욱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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