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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악산 연주암에서 생각해본 효령대군의 장수비결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1. 29. 23:52

     

    을사년 새해 첫날, 어디를 가면 의미기 있을까 고심하다 관악산 연주대를 선택했다. 등산보다는 연주대 부근에 있는 효령각을 찾아볼 생각에서였다. 사실 30~40대에 미쳐 있던 헬스(보디 빌딩)로 인해 얻은 무릎 관절질환에 등산은 기피하는 편이나, 연주대는 해발 629m로 그리 높지 않아 관절염 약을 먹고 출발했다. 무릎을 다친 것은 하체 운동기구의 하나인 레그 프레스에 과도하게 집중한 때문으로 보이며, 양쪽 연골판이 모두 파열돼 수술을 해야 했고 이후로도 오른쪽은 또 한 차례 수술을 했다. 

     

    서두에 주제와는 상관없는 얘기를 길게 하는 것은 운동을 함에 있어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이다. 특히 마라톤이나 헬스 등은 운동중독을 불러오기 쉬운데, 이때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쾌락물질은 마약보다 7배 강하다는 무시무시한 소문도 있다. 운동뿐 아니라 모든 것이 과유불급일 터이지만, 만일 새해 결심으로 운동을 선택한 분이라면 과유불급을 명심하시길 부탁드린다. 

     

    말한 대로 연주대는 해발 629m에 불과하나 그 아래의 위치한 연주암까지도 장시간에 걸쳐 힘들게 올라야 했다. 눈이 내려 더욱 힘든 듯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연주암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태종의 셋째 아들 효령대군 이보(李補, 1396~1486)가 건립했다는 설이 있으나 지붕돌(옥개석)이 짧아 대번에 고려시대 석탑임을 느끼게 한다. 효령대군의 시대가 조선 초기인 만큼 고려양식의 탑이 건립될 수는 있을 것이나 효령대군이 세웠다는 것은 아무래도 구라 같다. 

     

    구체적으로는 기단부에 가짜 기둥(우주)을 만들고 연화문을 새긴 것하며, 지붕돌 위 상륜부에 조성된 노반(露盤)과 앙화(仰花), 보주(寶珠)의 모양새가 고려중기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늘은 눈에 덮여 상륜부를 보기 힘들다. 연주암 삼층석탑은 누가 고려 때의 것이 아니라 할까봐, 시대적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니 지붕돌 처마가 짧고 탑신의 비례감도 상실된 이형(異形) 체감률의 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까지 내내 이어졌던 신라 석탑의 뛰어난 비례미와 균형미가 고려에 들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그 수수께끼를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 위에 까마귀가 앉았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

     

    연주암은 677년 의상대사가 관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이라고 하는데, 그때의 흔적일랑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가장 확실한 사적기(寺跡記)는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한 효령대군 이보가 왕위에 대한 미련과 세상사에 대한 번뇌를 끊고자 창건했다는 것인데, 위에서 말한 석탑이 고려 때의 것인 만큼 기존에 있던 절을 중창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효령대군은 불심이 깊었던 왕자로 종로 원각사(현 탑골공원)를 창건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다만 연주암은 조선시대에는 내내 영주암(靈珠庵)으로 불린 듯하니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관악산 영주대에 올라'(上冠岳山靈珠䑓)라는 시를 지었고, 허목(許穆, 1595~1682)은 <관악산 유람기>에서 "영주대는 세조 임금께서 예불하던 곳으로 관악산 꼭대기에 있다"고 했으며, <성호사설>의 저자 이익(李瀷, 1681~1763) 또한 유람기에서 "영주대는 관악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산의 승경(勝景)이 이보다 뛰어난 곳이 없다는 말을 듣고 관악산에 올라, 영주암에서 쉬고 마침내 영주대에 올랐다"고 썼다. 

     

     

    연주대 승경 / 보이는 당우는 응진전이다.
    연주대 가는 길의 삼층석탑
    원형의 기단부에 12지신상을, 1층 탑신에 석가세존을 새긴 현대작이다.
    삼층석탑 아래의 금륜보전 / 산신각이나 삼성각을 역할을 하는 곳인데 이름은 금륜보전이다.
    좌우의 산신, 독성과 함께 중앙에 칠성여래 부처님을 모셨다. / 까닭에 당우를 금륜보전이라 한 듯한데,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케이스다. 금륜보전의 금륜이란 칠성여래불이 손에 들고 있는 법륜모양의 바퀴를 말한다

     

    본래의 사찰 이름 영주암은 <화엄경>에 나오는 "파도 밑에 숨어 있는 신령한 구슬"(波底隱靈珠)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아무튼 효령대군은 이곳 연주암에 머무르며 불경을 공부했다. 흔히 그가 충녕에게 왕위를 양보한 후 불가에 귀의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승려가 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불심이 깊어 이곳 연주암에서 수도한 것은 사실이니, 이곳 효령각은 그 사실을 기려 세운 것이다.  

     

    효령각 내에는 조선 초의 것이라 하는 효령대군 이보의 영정이 있지만 어림없는 소리로, 근대작 중에서도 조악한 편이다. 효령각 역시 근자에 지어진 듯 보이는데, 양쪽 주련에 '출자왕국통불역'(出自王宮通佛域)과 '앙첨천국상선대'(仰瞻天國上仙臺)의 글자가 쓰여 있다. '스스로 궁을 나와 부처님 계신 곳으로 통행하니 부처의 세계를 우러르며 신선대에 오른다'는 뜻으로서, 내용으로 보면 이보가 마치 부처를 숭상해 스스로 왕위를 버리고 불가에 귀의한 듯 여겨진다.

     

     

    효령각

     

    하지만 이것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태종의 맏아들이자 이보의 형인 양녕대군 이제(李禔, 1394~1426)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은 왕자 시절 워낙에 망나니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양녕은 술을 좋아해 기생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는데, 이때 만난 어리(於里)라는 기생은 아예 궁에 들여 놀았고 훗날 그녀가 유부녀가 된 후에도 만나서 놀았다. 반면 이보는 온화한 성품으로 술은 한 방울도 못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던 바, <태종실록>에 '불가'(不可)를 선언하는 태종의 목소리가 생생히 실려 있다. 

     

    술을 마시는 것이 비록 무익(無益)하나, 그럼에도 중국의 사신을 대하여 주인으로서 한 모금도 능히 마실 수 없다면 어찌 손님을 권하여서 그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느냐?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 효령대군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니, 이것도 또한 불가하다.

     

    연주암에는 효령대군 이보가 억울함을 누르려 절에 걸린 대고(大鼓)를 가죽이 찢어질 정도로 두드렸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지금은 범종만 걸려 있고 대고는 보이지 않는다. 음주를 못한다고 왕위를 승계하지 못한 효령이었던 바, 그 억울함이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당시로서는 이해할만한 노릇이었으니 군신(君臣)간에, 그리고 대(對)중국 외교에 있어 '술'은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유일한 도구였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시절이었다. 

     

    아울러 당시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몸이 허약하다는 편견이 지배하는 시절이었으니, 태종 역시 허약한 자가 왕이 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긴 듯했다. 그러나 그같은 사고를 깨고 이보는 무려 90년 5개월을 살았다. 지금으로 보아도 장수라고 할 수 있는 향년이었다. (참고로 조선 왕의 평균 수명은 마흔 살이다) 이보가 이토록 징수한 이유는 물어보나 마나, 술을 못했기 때문이다.

     

    한 두 잔은 약(藥)과 같아 건강에 이롭다는 통념과 달리 의학계에서는 단 한 잔의 술도 몸에 나쁘다는 판정을 냈다. 나아가 국제암연구소에서는 술을 석면과 같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1군의 의미는 인간에게 명백한 발암성이 입증되었다는 뜻이라고 하며, 구체적으로는 구강암, 인두암, 후두암, 식도암, 간암, 유방암, 대장암의 유인 요건이 된다.

     

    효령대군 이보는 비록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술을 입에 대지 아니한 관계로 90살을 살며 세종부터 성종까지 무려 6명의 왕에게 어른 대접을 받았다. 살펴보면 세상 모든 일에 일득일실이 아닌 것이 없으니 효령대군의 경우도 바로 그러하다. 하지만 경험상 금주(禁酒)는 확실히,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크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새해 금주를 결심한 분들께 도움 말로써 드리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연주암에서 내려본 산하
    멀리 보이는 관악산 기상 레이더와 연주대
    산중에서 만난 수묵화 같은 풍경
    산중에서 만난 만화 같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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