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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듣보잡 지역 신에게 패한 여호와
    성서와 UFO 2019. 2. 27. 23:43

    * 도킨스에 대한 반론은 한 번 건너 뜁니다.


    1868년 오페르트(E. Oppert)라는 덕국(德國, 독일)놈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파헤쳐 얻은 부장품과 시신을 두고 조선과 통상교섭을 벌이려 들 즈음, 멀리 요르단 땅 디반(Dhiban)에서도 케린(F. A. kelin)이라는 독일 선교사가 인근에서 발견된 고대 비석을 두고 지역 베드윈족들과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베드윈족이 보여준 높이 1m 정도의 비석에는 고대 히브리 문자가 가득 들어차 있었고, 그중 여호와(YHWH)라고 하는 테트라그라마톤*에 눈이 번쩍 뜨인 케린이 그 비석을 매입하고자 나선 것이었다. 


    * 그리스어로 '넉 자로 된 말'이란 뜻으로, '여호와(YHWA)'의 단어를 의미한다. 자음 연결로 이루어진 (고대 히브리어에서는 모음이 없었으므로) 이 네 자의 단어로 인해 이후 라틴어 표기에서도 이를 따라 했다.(괜히)


    케린은 당시 예루살렘에서 활동하고 있던 신교(新敎) 선교사였는데, 이 테트라그라마톤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베드윈족들에게 비의 중대성을 쉽게 깨닫게 해주었다. 이에 베드윈족들은 그 비석을 쪼개서 각 조각대로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을 했던 바, 결국 케린은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물러났고,(독일 정부까지 나섰음에도) 소문을 들은 프랑스 영사가 개입해 이들을 얼르고 뺨친 끝에 비석 조각의 65%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조각들은 1873년 본국으로 보내졌고 전문가들에 의해 합체되어 루브르 박물관의 중요 전시물이 되었다. 다행히도 파손되기 전 프랑스 영사관이 고용한 아랍인의 탁본이 있어 비문의 완벽 복원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후 비석은 발견 지역의 이름을 따 모압 비석(Moabite Stone)으로 불리기도 하고 비석 주인공의 이름을 따 메사 비문(Mesha Inscription)이라고도 불려졌는데, 지금도 그 두 개가 혼용된다.(여기서는 메사 비문으로 하겠다)


         복원된 메사 비문 파편



    루브르 박물관의 메사 비문과 테트라그라마톤




    디반의 위치(이스라엘 사해 동쪽)와 비가 발견된 디반의 고(古)도시 유적지

     

    메사 비문은 모압 왕 메사의 승전비로서 높이 115cm, 밑 폭 68cm의 현무암에 약 1천 자의 고대 히브리어 문자가 빼곡히 기록돼 있다. 메사 왕과 이스라엘과의 싸움은 구약성서 열왕기에도 비교적 자세히 기록돼 있으나 두 기록이 일치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측에서는 일방적으로 기록된 이 비문이 달갑지 않지만 그것이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됐고, 또 지금까지 발견된 구약시대의 가장 긴 기록문이어서 고대 언어와 문자, 그리고 성서의 내용을 보완하는 자료로 연구되고 있다.(위의 컴퓨터 탁본에는 테트라그라마톤의 위치가 부각돼 있다)



    비석의 주인공인 메사는 기원전 840년 경 사해 동쪽 일원을 다스리던 모합의 왕으로, 이 비는 자신의 영토 확장 업적을 기려 세운 비석이었다. 그는 비석에서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나는 그모스(Kemosh) 신의 아들인 모압 왕 메사이며 디본 사람이다.


    이 메사 왕은 구약성서에도 출현한다.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열왕기하 3:4-5)


    여기서 말하는 아합은 눈에 익숙한 자일터, 불세출의 활약을 보이다 승천한 엘리야가 활약하던 바로 그 당시의 이스라엘 왕이다. 위 열왕기의 기록에 의하면 모압 왕은 한때 이스라엘 왕국에 조공을 바쳤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메사 비문에도 기록돼 있다. 비록 아합 왕은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아버지인 오므리 왕의 이름은 확실히 명시돼 있고, 아합 왕이 틀림없을 왕위 계승자도 강조돼 나타나 있는 바, 모압 왕국이 그 두 이스라엘 왕에게 시달림을 받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비문의 내용은 곧 반전을 이룬다.



     

    그모스 신께서 모압에 진노하였던 바, 모압은 오랫동안 이스라엘 왕 오므리에게 지배당했다. 또 그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을 때도 그 역시 "모압을 지배하리라" 천명했다. 나의 치세에 그는 이처럼 호언했지만, 나는 그와 그의 왕조를 무찔렀으며, 이스라엘은 영원히 멸망하였다.


    과거 오므리는 메데바(Medeba) 땅 전체를 점령하여 그곳에서 40 평생을 살았고, 그 아들은 반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모스 신께서 나의 치세에 그 땅을 회복시켜 주었고 나는 그곳에 바알 므온(Baal Meon)을 건설하고 그 안에 저수지를 만들었으며 키리아템(Kiriataim)도 건설하였다.


    옛 이스라엘 왕*이 아탈롯을 건설한 이래 가드 사람들이 그곳에 살았으나 지금은 내가 그 땅을 정복하였고, 모압과 모압의 신 그모스를 위하여 그 도시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그곳에서 나는 아탈롯의 우두머리 우리엘을 케리욧에 있는 그모스 신에게 바쳤으며, 샤론과 마칼롯의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 다윗 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모합 왕 메사는 더욱 강역을 넓힌다.





    그모스 신께서 "가서 이스라엘의 느보를 취하라" 함에, 나는 야간 공격을 개시해 새벽부터 자정이 될 때까지 싸워 함락시키고, 성 안 장정 7천 명과 부녀자까지 죽여 모압의 여신인 아스달 그모스에게 바쳤다. 또한 그들의 신 여호와에게 바쳐진 제기(祭器)들을 그모스 신에게 바쳤다.


    이스라엘 왕이 야하스에 진을 치고 거기 머물며 나와 대적하였으나, 그모스 신께서 그를 멀리 쫓아내어주시니 나는 모압 용사 2백 명을 데리고 야하스를 함몰시키고 그곳을 디본 땅에 예속시켰다. 나는 또 카르호(Qarhoh)를 건설하여 성읍과 성벽을 쌓고 성문과 탑을 쌓았다. 그리고 궁전을 만들었으며 성 안에 저주지도 팠다. 전에는 이곳에 저수지가 없던 까닭이다..... 나는 아로엘(Aroer)을 건설하였으며..... 황폐화된 베제르(Bezer)를 다시 세웠으며..... 모압에 예속시킨 백 여 개 성을 다스렸다......



    앞서 말했듯 비문의 기록은 성서의 기록과 상이한 바, 이번에 성서의 기록을 한번 좇아가보자.


    모압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과의 최초 접촉 기록은 사무엘(하 8:2)에 나오는 다윗 왕의 모압 정복이다. 이후 이스라엘에 복속돼 있던 모압은 아합 왕 사후 메사 왕이 이스라엘에게 반기를 든다. 이때 아합의 왕 아하시아는 즉위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운 나쁘게 복층 난간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친다. 이에 그는 이방의 신인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어본다.


    그러자 열이 받은 여호와는 "이스라엘에 신이 없어서 네가 이방의 신 바알세붑에게 신탁하느냐? 그로 인해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반드시 죽으리라" 악담을 해대고,(선지자 엘리야를 통하여) 결국 그 말대로 죽고 만다. 아하시아가 죽자 이스라엘에서는 그의 동생 여호람이 왕으로 즉위한다.(아하시아의 후사가 없었으므로/이상 열왕기하 1:1-17)


    여호람은 즉위 후 남쪽  유다 왕국의 여호사밧 왕을 부추켜 이스라엘·유다·에돔 3개국 연합군으로 모합을 공격하는데,(에돔 왕은 여호사밧과 결혼동맹을 맺었으므로 따라 참전한 것 같다) 이 시점에 유명한 엘리야의 승천 사건이 일어난다.(미투님께서 질문하신 '엘리사의 대머리를 비웃은 아이들이 곰에 찢겨 죽는 사건'이 일어난 것도 바로 이 즈음이죠. 그런데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


    * 엘리사는 벧엘의 젊은이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신의 대리자를 업신여기는 일이라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으로 숲에 있던 곰 두 마리를 자극시켜 혼을 내려 했던 것이지요. 헌데 설마 죽을 지는 몰랐겠죠.^^ 답이 됐을는지요? 엘리야가 승천하면서 떨어뜨린 겉옷에 대해서는 '재미로 본 괴베클리 테페'에서 언급했는데 읽어보셨겠죠?


    여호람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군을 위시한 3국 연합군은 기세 좋게 모합을 치러갔지만 길을 잘 못 택해 7일 간이나 먹을 물을 구하지 못한다. 이에 속이 바싹 탄 유다 왕 여호사밧이 선지자 엘리사를 찾게 된다. 하지만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에게 퉁명스럽게 답한다.


    "(죽든 말든) 내가 당신들과 무슨 상관 있습니까? 당신의 부친이 모시던 이방 신의 선지자나 당신 모친의 선지자들에게 가 물어보소서."


    하지만 결국 그들을 도와 근방 계곡의 건천(wadi)을 파게 만들고 결국 물을 찾아낸다. 아침 햇살에 반사되는 건천의 물을 본 모압 사람들은 자중지란이 일어나 저들끼리 싸워 흘린 핏물이라고 착각하고(붉은 황토와 섞인 물에 대한 착시인듯) 노략질이나 하러 가자며 이스라엘 군을 공격한다. 하지만 이렇듯 마구잡이로 나선 공격은 오히려 역습을 맞게 되고 전황이 크게 불리해진다.


    이에 모압 왕 메사는 결사대 7백 명을 이끌고 에돔 군을 공격해 활로를 뚫으려 했으나 결국 돌파하지 못하고 성으로 퇴각한다. 마침내 그는 극약처방으로써 자신의 군사들에게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여주게 된다. 다름 아닌 왕위 계승자인 맏아들을 자신들의 신(그모스)에게 번제물로 올린 것이다. 이에 식었던 모압 군의 피가 다시 끓게 되니 그 격노함이 이스라엘 군에게 임하자 3국 연합군은 마침내 포위를 풀고 제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이상 열왕기 하 3:7-27)


    이 연합군의 회군을 마지막으로 전쟁의 스토리는 끝이 나고 열왕기하 4장부터는 과부의 기름 그릇에 얽힌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위 메사 왕의 비문 대로 전쟁은 결국 모합의 승리로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니, 이에 대한 성서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 갔더라.(열왕기하 3:26-27)


    지금까지 살펴본 전쟁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여호와를 모신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연합군은 그모스 신을 모신 모합 군에게 패배를 한 것이요, 더 간단히 말하자면 전지전능한 여호와가 듣보잡 신 그모스에게 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에 역대 성서학자들은 이상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아내느라 분주했지만,(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알레고리칼한 해석을 비롯해) 이 역시 지금까지 이렇다할 답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그래서 자신들도 솔직히 난제라고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유다, 에돔의 위치와 모압의 최대 영토.

    3국 연합이니 언뜻 대단한 전쟁처럼 보이지만 겨우 우리나라 경기도만한 땅을 가진 모합을 공격하고자 세 나라가 덤벼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보살피는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는 모합의 듣보잡 신 그모스에게 패한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그저 가장 유력한 학설이라는 게, 이때 모압 왕이 제물로 바친 왕세자는 에돔의 왕세자였다고 하는 견해다. 에돔 군을 공격했던 모압 군이 에돔의 왕자를 잡아와 그를 인신공양한 까닭에 기세가 꺾여 물러갔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모압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를 만들었다'는 아모스 2장 1절의 구절인데, 상황도 시기도 모두 맞지 않는 주장이다.(이는 유다 왕 웃시야 시대의 이야기인 바, 성서학자들도 본문과 너무 동떨어진 내용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성서의 단어를 제 식 대로 풀어 해석한 주장으로서,(이것도 교계에서 즐겨쓰는 방법 중의 하나다) 위의 격노(קֶצֶף־)를 '슬픔(grieved)'으로 번역한 제네바 성서에 대한 옹호론이다.(Then he took his eldest son, that should have reigned in his stead, and offered him for a burnt offering upon the wall: so that Israel was sore grieved, and they departed from him, and returned to their country./1599년 제네바 성서)'


    제네바 성서는 영국 메리 여왕(Bloody Mary)의 박해('성공회')로 인해 스위스 제네바로 이주한 사람들이 신교(新敎)의 입장에서 편찬한 성서인데, 이 성서는 indignation, fury, wrath, anger ,즉 '분노'로 번역된 영어 성서와 궤를 달리 한다. 즉 제네바 성서 대로 해석하자면 제 아들을 번제하는 에돔 왕을 보고 너무 슬퍼한 나머지(오죽하면 저럴까 해서) 군사행동 자체를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ㅎㅎ 소가 웃을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위에서 인용한 열왕기의 내용은 아무런 하자가 없다. 앞서 말한 해석 그대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전지전능한 여호와가 듣보잡 신 그모스에게 패한 것이 된다고?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패한 것이 아니라 싸움에 개입을 안 한 것이다. 마른 계곡의 물을 찾아준 여호와의 말씀은 엘리사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한 것에 불과하고(자세히 읽어보면 정말 그렇다) 또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으니 마치 여호아의 능력이 작용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엘리사에게 앞서의 엘리야처럼 불을 부르고 물을 말리는 능력을 기대할 수는 없었으니(열왕기하 3:26-27) 이스라엘 군의 패퇴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호와는 이 싸움에서 왜 연합군을 돕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에돔은 그렇다 하더라도 이스라엘과 유다는 자신이 사랑하고 지켜주는 민족이 아니었는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같은 질문도 사실 성서를 집중해 읽지 않은 까닭이다. 여호와는 그 현장에 없었음이니, 바로 그전에 엘리야와 함께 UFO를 타고 사라지지 않았던가?(* 'UFO의 모선에 끌어올려진 선지자 엘리야' 참조)



    요르단의 아르논 계곡

    비가 올 때만 강이 형성되는 건천(wadi)으로서 열왕기에 언급된 이스라엘 연합군과 모압군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 이 골짜기로 여겨진다.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계곡

    엘리야가 승천한 곳은 강의 하류 길갈 어디쯤인데, 좌우지간 이 계곡 상공에 UFO의 모선이 출현했음은 확실하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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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