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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시(名詩) 감상 - 괴물
    카테고리 없음 2019. 12. 21. 23:59

    고은 시인(86)이 자신의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뒤 대법원 상고는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마무리된 것이다. 

    최영미 시인은 5일 오전 트위터를 통해 “변호사로부터 ‘어제가 최 시인님 상대로 한 고은의 상고 마감일이었는데 오늘 확인해 보니 상고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박진성 시인만 상고한 상태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최 시인은 트위터 메시지에 “대법원 가지 않고 끝났다”고 덧붙였다. 이어 “나는 작은 바퀴 하나를 굴렸을 뿐. 그 바퀴 굴리는데 나의 온 힘을 쏟았다”고 썼다. 

    앞서 11월 서울고법 민사 13부(재판장 김용빈 부장판사는)는 고 시인이 최 시인과 박진성 시인, 최 시인의 글을 게재한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고 시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올 2월 1심 재판부도 고 시인 패소 판결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051535001&code=940100#csidxd0215703ece942fba2bdc587c45149f

    고은 시인(86)이 자신의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뒤 대법원 상고는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마무리된 것이다. 

    최영미 시인은 5일 오전 트위터를 통해 “변호사로부터 ‘어제가 최 시인님 상대로 한 고은의 상고 마감일이었는데 오늘 확인해 보니 상고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박진성 시인만 상고한 상태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최 시인은 트위터 메시지에 “대법원 가지 않고 끝났다”고 덧붙였다. 이어 “나는 작은 바퀴 하나를 굴렸을 뿐. 그 바퀴 굴리는데 나의 온 힘을 쏟았다”고 썼다. 

    앞서 11월 서울고법 민사 13부(재판장 김용빈 부장판사는)는 고 시인이 최 시인과 박진성 시인, 최 시인의 글을 게재한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고 시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올 2월 1심 재판부도 고 시인 패소 판결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051535001&code=940100#csidxd0215703ece942fba2bdc587c45149f


    지난 달 8일, 고은 시인(본명 고은태, 86)은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최영미 시인(58)과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2심에서 항소가 기각되며 패소했다.(1심에 이어) 2018년 7월 17일, 고은이 소를 제기할 당시 요구한 손해배상액수가 10억7천만원이었는데, 주민센터로부터 기초생활수급자 통지를 받고 잠시 아연했었다는 최영미로서는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


    그녀도 내심 그러했는지 SNS에 V 시그널의 사진과 함께 재판을 도와준 분들에 대한 감사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상고심이 남아 있는 상태라 아주 안심할 수는 없었는데, 상고 마감일인 지난 12월 5일 고은이 상고를 포기한 것으로 확인되며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최영미는 고은이 최초로 소를 제기했을 때 이번 재판이 그의 장례식이 될 것이라는 일성을 토한 바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셈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발단이 된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라는 시를 다시 한번 감상해보자. 배경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넣으려고 했는데, 굳이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괴물'이 자택 정원에서 완전무장한 채 외부 동정을 살피는 사진만을 캡처했다. 이젠 늙어서였을까, 괴물치고는 초라하고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 죄를 논하기 전에 우선 서글프다 - -;;




    밖의 동정을 살피는 '괴물'

    이 집은 수원시가 그를 모셔오며 광교산에 있는 저택을 리모델링해 제공한 곳인데 이 사진이 공개되며 여론이 나빠져 집도 쫓겨날 판이 됐다.(사진출처; 음성타임즈, 뉴스 1)


     

    괴물


    En 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 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드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2017, <황해문학>겨울호)



    최영미와 고은



    최영미는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시 '속초에서'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건 아무래도 그 2년 후에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내면서부터 일 것이다. 이른바 '불의 연대'(年代)라는 386과의 결별을 암시하는 듯한 제목의 이 책은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없다'는 통념을 깨고 상당량이 팔렸던 바, 흔한 표현을 빌리자면 혜성과 같은 출현이었다.(그 무렵 어느 책방에서인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껑충한 여인을 본 기억이 있다)


    최영미 시의 매력은 역시 시크함이다. 사전적 의미의 '세련되고 멋있다'라기보다는 '차갑다, 도도하다, 무심하다'라는 관용적 의미의 시크다. 이 자리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같은 매력이 물씬 풍기는 만인의 애송 시 한 편을 옮겨본다.




    (출처; cantmeou.egloos.com/4420666)

     


    최영미 시인을 본 건 그렇게 먼발치였고, 또 그녀가 맞는지 확실치도 않다. 하지만 고은 시인은 많이 봤다. 젊어서 자실(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주관한 창작 교실에서도 수 차례 그의 강의를 들었고,(자신은 술을 먹어야 말이 나온나며 소주 병을 놓고 하는 강의가 그때도 좀 아니다 싶었지만..... 하긴 담배를 피우며 강의하는 놈들도 있던 시절이었으니.....) 노벨 문학상에서 탈락된 후 어느 출판사 사무실에선가 취해 주정하는 추한 꼴을 본 적도 있었다.(사실 그때 알아봤다 ⊙Ψ⊙!!)


    그 두 사람의 싸움에 다른 글쟁이들이 눈치를 보며 나서지 못하는 비겁함을 보일 때, 류근 시인이 용기도 아닌 그저 당연함으로 나섰다. 우리가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매주 볼 수 있는 그 사람으로, 이외수 작가로부터 "시인이 온전히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는 찬사(?)를 들었으나 실은 등단 후 18년 간 시를 쓰지 않은 시인 같지 않은 시인이다. 


    그는 남들이 우물거리고 있을 때 "최영미가 말하는 En은 고은"이라고 직설적으로 언급하며 그 사실이 "놀랍고 지겹다"고 했다. 60~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은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야 처음 듣는 일이라며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고, 하필이면 이 와중에 연예인 대마초 사건 터뜨리듯 물타기에 이용하는 듯한 정황 또한 지겹고 지겹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소위 '문단' 근처에서 기웃거린 내 또래 이상의 문인 가운데 고은 시인의 기행과 비행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눈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되나", "나아가 그의 손길을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고 키득거린 이들은 또 얼마나 되나”며 아낌없이 쓴소리를 퍼부었다. 이상은 모두 그의 SNS 내용인데, 그 짧고 굵은 글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았다.


    "위선과 비겁은 문학의 언어가 아니다. 나는 선배들에게 늘 이렇게 듣고 배웠다. 최영미 시인의 새삼스럽지도 않은 고발에 편승해서 다시 이빨을 곤두세우고 있는 문인들이여, 언론들이여. 베드로처럼 고개를 가로젓는 문인들이여, 언론들이여. 부디 당신들도 회개하라. 당신들도 부디 반성하고 고백하고 부끄러움을 장착하라. 당신들이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는다고 부르짖는 김남주 시인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 조롱하는 주인의 목을 바로 그 종의 손으로, 바로 그 낫을 들어 단숨에 베었다."

    (SNS 내용 출처; 국민일보, 원본링크; 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112908&code=61121111&cp=du)



    류근 시인(사진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



    김남주의 시 <종과 주인>에서 빌려온 문장은 어떤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며 물타기를 시도하는 모리배들에 대한 질타가 아닌가 한다.(솔직히 아래 글의 취지도 정확히 전달은 안 되나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갑자기 성추행 고발, 고백 등의 소위 "미투"가 유행하고 있네요. 해외까지 바람이 분 것을 보니, 국제적인 배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고은"씨는 민족주의 시인의 대표주자인데도 중앙일보가 집중 타격을 하는 것은 이재용 집행유예 덮기와 함께 아주 볼만합니다. 원래, 성추행, 성추문은 좌파 운동권, 민노총 등에서 심각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20년이 넘는 얘기지요. 그 때 "말"지에 좌파의 성추문과 관련된 르포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것이 파장을 우려해 봉인되어왔는데, 노벨상 문학상 후보인 "고인"씨에게 불똥이 튈 줄이야.....

    류근 시인이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기억이 난다. "한국인에게는 할복의 유전자가 없다" 이른바 헤이그 밀사의 한 사람이었던 이준 열사의 죽음에 대한 설왕설래에서 그가 입에 담은 말이다. 맞는 얘기다. 이제껏 한국 사람 중에서 칼로 배를 찔러 죽은 사람은 있어도 배를 갈라 죽은 사람은 드물다.(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럴 때는 할복의 유전자가 없는 게 좀 안타깝다. 극심한 고통에 대한 보상일까, 할복을 하면 사자(死者)가 통절히 반성했다는 생각에 그간 진 죄를 대개는 용서받고 명예의 회복도 따르는 까닭이다.(결론을 맺지 못했지만 쓸데없는 댓글이 붙을까 싶어 이만 줄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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