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브라함이 만난 UFO와 가나안 이주의 진실 (I)성서와 UFO 2020. 2. 8. 00:19
"아브라함의 고향을 발굴하다."
1929년 3월 17일, 미국 사회는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각 신문의 헤드라인에 크게 들썩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자 믿음의 조상, 즉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 3대 종교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이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존재를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영국의 레너드 울리(Leonard Woolley)라는 고고학자가 이라크 남부의 텔 엘 무카야르, 즉 옛 수메르 우르의 지역에서 아브라함의 집터로 추정되는 유적을 발굴함으로써 비롯되었는데, 각 신문이 모두 이를 대서특필하였던 것이다.
그 무렵의 미국은 이른바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 전역을 휩쓸던 시절이었던 바, 당대의 미국 사회의 근간이었던 성서복음주의에 기대어 공황에 허덕이던 미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공하기 위한 발빠른 저널리즘이었다.
울리의 발굴을 보도한 신문 기사들.
부인 캐서린도 발굴에 참여하였다.
당시의 발굴 광경을 찍은 유리 건판 사진
우르(Ur) 발굴 현장의 울리
왼쪽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실제 주인공인 T .E. 로렌스 대위다.
울리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다시 고고학을 전공한 정통파 성서고고학자로, 말하자면 '인디아나 존스'의 모델 쯤 되는 자였다.(생김새도 해리슨 포드와 같이 말쑥한 미남형이다) 그는 브리티시 박물관과 펜실베니아 대학의 후원으로 1922년부터 12년간 1,800기가 넘는 우르 시대의 무덤을 발견했는데, 그 중 16개는 왕릉급이었다. 이것이 모두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이라 불리는 수메르 문명 전성기의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푸아비(Pu-abi)' 왕비의 능묘로서 거기서 발견된 금관을 비롯한 수많은 황금 유물들은 1922년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이집트 투탕카멘 묘의 유물과 비견될 만한 엄청난 것이었다. 그중 아래의 황금 소머리 장식의 현악기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이기도 하거니와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 해도 무색치 않을 만했다.
브리티시 박물관에 소장된 황금 소머리 장식의 하프.
악기의 발견에 기뻐하는 울리.
울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다시 우르의 지구라트(☞ '바벨탑과 언어혼란의 진실')를 탐사하고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대홍수의 흔적들을 찾았는데, 그러한 그의 업적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역시 아브라함의 홈타운 발굴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당시는 미국의 경제 공황기, 국민에게 뭔가라도 희망의 소식이 절실했던 까닭이었다. 우리나라의 IMF 외환 위기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분전하던 박찬호 선수의 활약상이 우리 국민에게는 그나마의 위안이었던 것처럼.
미국의 경제 공황기가 어떠했는지 사실 우리는 잘 모른다. 이에 앞에서처럼 우리의 IMF 사태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문학 작품이 전하는 당대의 미국 상황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렵고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작은 아마도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일 것이다. 주인공 가족이 살 길을 찾아 고향 오클라호마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과정에서의 고난과 분노가 포도알처럼 알알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아래의 한국어 번역본은 칼처럼 예리하고 빛나는 김승욱씨의 번역이 가슴을 도리는데, 혹 현실의 어려움으로 고통에 빠진 분이 계시다면 위안으로서의 일독을 권한다.
1939년 초간본 표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조드 일가가 그려져 있다.
국역본 <분노의 포도>
표지 사진은 영화 '분노의 포도'에서 주인공 조드로 열연한 헨리 포드.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는 흔히 엑소더스, 즉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에 비유된다. 조드 일가의 이주 과정이 이집트 땅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향하는 히브리인들의 고난의 과정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아브라함 일가의 가나안 이주 과정과 좀 더 흡사하다 보고 싶다. 그들이 고향인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가기까지의 길고 오랜 여정도 그러하거니와, 소설에서의 캘리포니아가 희망의 땅의 아니었듯, 아브라함 일가가 어렵게 도착한 가나안 역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전에 출간한 책에서도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에 있어서의 모순과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그 요지인즉 여호와는 대체 무슨 권리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말한 바대로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 또한 아니었으며, 각 지역대로 원주민이 엄연한 땅이었다. 한 마디로 임자 있는 땅이었던 것이다.(이에 대한 답을 II편에 실을 예정이다)
우리는 대부분 별다른 느낌없이 이 대목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사실 성서에서 이를 설명하거나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 여호와가 그랬으니 그랬나보다 할뿐이다.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성서의 문장이라야 그저 아래의 내용이 전부이다.
(셈의 후예인)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 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그리고 교계(敎界)에서는 여기서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를 어떻게든 아브람(아브라함)으로 연결 지으려 애쓰고 있지만, 최초로 여호와의 명령을 받고 우르를 떠난 사람은 분명코 그 아비 데라이다. 즉 아브라함 일족이 갈대아 땅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간 것은 아브라함의 결심이 아니라 아비 데라의 결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저 아비 데라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니,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났다’는 대목을 상기하자.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로
위 지도는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 과정을 도해했는데, 아비 데라가 받은 명령과 아들 아브라함이 받은 명령을 before와 after로 구별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데라는 웬일인지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않고 중간 쯤인 하란 땅에서 오랜 시간(약 15년)을 체류하다 그곳에서 죽는다. 이에 아브라함과 일행들은 자연히 그곳에 눌러 살게 되었을 것인데, 그럴 즈음 여호와가 그들 앞에 나타나 과거 데라에게 내린 명령을 아브라함에게 다시 내리게 되는 바, 이쯤에서 그 상황을 그린 그림 하나를 살펴보자.
'하란을 떠나는 아브라함'
이탈리아의 화가 프란체스코 바사노(1549-1592)는 성서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화폭에 옮긴 사람으로, 내 생각으론 그만큼 많은 종교화를 남긴 사람도 드물다. 위 그림은 하란 땅에서 여호와의 명령을 받고 분주히 그곳을 떠나는 아브라함 일가를 표현했는데, 보다시피 하늘에는 여호와가 그려져 있다. 여호와가 이렇게 나타나 명령을 내렸다는 뜻일 게다.
여호와는 아마도 우르에 살던 데라에게도 같은 형태로서 나타나 명령을 내렸을 것이니, 이에 놀란 데라가 일가를 독려해 안정된 제 고향을 버리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것은 누가 생각해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저 이렇게 넘어갈 수 있는 성서의 문장과 달리 그림으로 보면 뭔가 많이 엉성하다. 여호와가 데라나 아브라함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이와 같은 길밖에 없을진대 그럼에도 그 이해가 쉽지 않다. 그림으로 보면,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 이렇게 출현했을까? 이건 뭐 만화도 아니고....'하는 생각을 누구나가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호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서 그들 앞에 출현하였을까? 그 답은 오직 하나, 하늘을 날 수 있는 탈것(vehicle), 즉 UFO를 타고 출현하는 방법밖에 없다. 나는 분명 이렇게 단정하지만 그렇게 믿지 않을 분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을 터, 이에 대한 증거로서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실린 열혈 신자 스데반의 연설 녹취록을 제시한다.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사도행전 7:2-4)
여기서 보면 그 역시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한 주체를 아브라함에 맞추고 있으나 열혈 사도 스데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일 터, 그보다는 그때 나타났다는 '영광의 하나님'이란 단어를 주목해보자. 그것이 곧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는 문제를 푸는 열쇠인 바, 그 ‘영광’이란 단어는 다시 사도행전 22장에 등장한다.
(사울이 다마섹을 향해)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사도행전 22:6-8)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사도행전 22:11)
다들 아시다시피 위의 대목은 사울이 회심하게 되는 유명한 장면이다. 또한 아시다시피 사울은 그동안 예수 믿는 자를 잡으러 다니던 관원이었고, 이 날도 예수 믿는 자를 잡으러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 하늘의 큰 빛으로부터 난 광채를 맞고 눈이 멀게 된 것이었다. 얼마 뒤 다시 눈을 뜨고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난 사울은 이후 열혈 사도가 되어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게 되니, 지금의 기독교와 카톨릭이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은 모두 바울의 활약에 기인한 바 큰 것이었다.(☞ 'UFO의 레이저 빛에 혼쭐이 난 사울'/'바울의 UFO 사건(다마스쿠스 사건)을 해부한다')
언급한대로 이상은 모두 사도행전, 즉 신약에 실려 있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필자가 다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스데반이 언급한 ‘영광’과 사울이 목격하였다는 ‘큰 빛’이 원문인 헬라어 성서에서는 같은 단어인 dovza(독사)로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필자는 사울을 회심시켜 열혈 사도로 만든 하늘의 큰 빛은 대낮에 뜬 외계인의 비행선이요, 광채는 그곳으로부터 발사된 약한 레이저 광선이라 확신하는 바이다. 이에 크게 놀란 사울이 회심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는 바, 필자는 이 비행선이 2000년 전의 아브라함과 아비 데라의 앞에도 나타나 그 위력을 과시해 보였다고 또한 확신한다.
여호와가 탈 것, 즉 UFO를 타고 나타났다는 증거는 사실 그 외에도 차고도 넘치는데, 그 결정인 증거는 구약성서 에스겔서에서(1:1-28) 선지자 에스겔이 목격한 '북쪽에서부터 온 폭풍과 큰 구름 속에 나타난 UFO'가 될 것이며, (☞ '선지자 에스겔이 만난 외계인') 아래의 선지자 다니엘의 목격담 역시 증거로서의 가치가 높다 하겠다.
내가(선지자 다니엘)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 구름(UFO)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여호와)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다니엘 7:13-14)
그런데 여기서 UFO를 타고 갑자기 등장한 다니엘서의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밑도끝도없이, 마치 다른 곳에 장기출장 갔다가 귀환보고를 드리려는 듯 나타난 이 사람은 혹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과 같이 있었다는 그 예수가 아니었을까?
* '아브라함이 만난 UFO와 가나안 이주의 진실 (II)'로 이어짐.
아브라함 시대의 우르 상상도
우르 시 지도
위 그림들은 막연한 상상도가 아니라 울리의 발굴 평면도를 근거로 작성된 것들이다.
우르의 위치와, 2006년 구글 맵에서 촬영한 우르 사진.
지하에 묻힌 채로 복원된 아브라함의 생가.
가장 최근 사진으로, 우르의 지구라트와는 불과 1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
베네딕트 교단에서 추정하는 아브라함의 집.
위 사진과는 지척에 있는 건물이기는 하나 레너드 울리나 베네딕트 교단이나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추정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아무튼 이것이 옳다면,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는 집의 규모나 신전과의 거리로 볼 때 이른바 업타운이 아닌 다운타운에 거주한 것이 되는 바, 제관이나 이에 준하는 상위 계급의 공무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최근에는 관광객과 순례객을 위한 길까지 놓여졌는데, 닦인 길 곁을 걷는 개가 인상적이다.
울리 발굴 당시의 지구라트 사진과 복원 상상도.
울리의 지구라트 복원도
그는 우르의 지구라트도 바빌론의 것과 마찬가지로 7층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복원된 우르 지구라트.
그 원형을 알 수 없으므로 2단까지만 복원됐다. 우르 지구라트가 언제 세웠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 바빌로니 왕 나보니도스(BC 555-539)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1854년 영국 고고학자 테일러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우르가 아브라함의 고향, 칼데아 우르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이 지구라트는 우르의 수호신인 월신(月神) 난나의 신전인데, 위의 4층과 7층의 설이 대립한다.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이유
성서에는 여호와가 우르 땅에서 데라와 아브라함을 이끌어낸 이유를 '데라가 강 건너의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바,(여호수와 24:2-3) 위 우르의 지구라트가 그 성서의 역사성을 증명한다.
걸프전 때의 탄환자국
지구라트는 이처럼 말끔히 복원됐으나, 2003년 제 2차 걸프전 당시 점령군인 미군에 의해 군데군데 탄흔의 상처가 아로새겨졌다. 하지만 일부러 총질한 것은 아니고 근방에서 벌어진 이라크 군과의 교전 때문이라는데, 어찌됐든 새로운 형태의 '문명과 야만'임에는 분명하다.
하란의 옛 집과 그곳의 사람들
아브라함과 그 일가도 이와 같이 생활했을 것이다.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apan Images
-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 국내도서
- 저자 : 김기백
-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성서와 UF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가 아브라함을 불러낸 진짜 이유(I) (0) 2020.02.18 캐슬린 케년이 밝혀낸 여리고성의 실체 (0) 2020.02.09 외계인과 여호와 (1) 2020.01.2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번역한 사람은 누구일까? (0) 2020.01.24 아담과 하와의 배꼽 (0) 202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