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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큘라 백작과 콘스탄티노플 함락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0. 7. 3. 01:49

     

    백작이라고 하는 유럽 중세기의 작위는 우리에게 친숙한 낱말이 아니다. 역사상 봉건제를 경험해보지 못한 까닭이다. 반면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쉬 이해할 듯하니, 아마도 제후나 다이묘(大名)를 떠올릴 법하다. 특히 일본은 역사상의 통치제도가 거의 봉건제로 일관되었을 뿐아니라 사무라이들로부터 왕권을 되찾아 온 메이지 유신 이후도 서구의 작위를 차용하였던 바,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당한 이토 히로부미의 작위도 백작이었다.(당시 그의 관직은 일본 총리대신이었고 작위는 백작이었는데, 사후 최고 작위인 공작으로 추증되었다)

     

    봉건제가 오래 지속된 유럽 제국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을 터, 백작 위로도 공작과 후작이 있어 웬만한 가문에서는 감투로써 행세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같은 작위의 배경이 되는 봉건제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중세 유럽에서 영주가 가신(家臣)에게 봉토를 나눠주고 그 대신 군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주종관계를 기본으로 한 통치제도'로 설명돼 있지만 이 또한 이해가 쉽지 않다. 말했다시피 우리 역사에는 그와 같은 통치제도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백작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호칭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아래 3명의 백작 정도는 귀에 익다. 아수라 백작, 몽테 크리스토 백작, 그리고 드라큘라 백작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아수라 백작과 몽테 크리스토 백작은 픽션이고 드라큘라 백작은 논픽션이다. 이 중 역사상의 실제 인물은 드라큘라 백작뿐이라는 것이다. 

     

     

     

    아수라 백작. '마징가 Z'라는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악한으로 자웅동체의 양성인간이다. 원작인 일본만화에서는 본시 아슈라(あしゅら) 남작이었는데, 마징가 Z와 싸우다 죽은 후 아슈라 남작의 창조자였던 헬 박사에 의해 백작으로 추증되었다. 

     

     

    리차드 챔벌레인이 주연한 영화 '몽테 크리스토 백작' 속의 몽테 크리스토(오른쪽). 원작은 알렉산드르 뒤마의(보다 정확하게는 뒤마가 작가들을 고용해 만든 저작공장에서 생산된) 소설로서, 억울한 정치적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에드몽 당테스의 복수와 사랑을 그렸다.

     

    15세기 왈라키아(현 루마니아 남부)의 영주였던 드라큘라 백작의 초상화. 그의 초상화로는 유일하게 전해지는 것으로, 드라큘라 백작의 성이 아닌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인근 암브루스 성에 소장돼 있는 그림이다. 16세기 이 성을 소유했던 티롤 지방의 백작 드리드리히 2세가 수집한 그림이라고 한다. 

     

    그림으로는 순수한 유럽인으로 보이지 않고 셈족과 훈족의 혼혈로 보이나, 당대의 역사적 상황에서 보자면 이와 같은 인종의 문제은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하지만 유럽인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듯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비교하는 사진도 최근 인터넷에 올라왔다.(콧수염만 붙이면 꽤 비슷할 듯) 

     

     

    그런데 이쯤되면 본인의 말 또한 픽션으로 의심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뭐?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이 실존인물이라고? 그럼 흡혈귀가 존재했었다는 거야?"하는 의심일 게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실존인물이었고, 게다가 당시 유럽 대륙으로의 침공을 개시한 동방의 대제국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을 거의 혈혈단신으로 막아내다 산화한 민족 영웅이기도 하였다. 그같은 역사적 사실로 보자면 그는 평생을 오스만 제국과 싸운 투쟁가일 뿐 흡혈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흡혈귀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내가 이 글을 쓰려는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오해를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서양 우월주의의 입각해서 교육을 받은, 그리하여 어느새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돼버린 서구 우월주의의 인식을 바로 잡고자 하는 면도 없지 않다. 

     

    동방의 오스만 제국이 유럽 공격을 시작하여 저 콘스탄티노플 성을 함락시킨 1453년 5월29일부터 오스트리아 비엔나 성의 목전에서 돌아간 1683년 9월 12일까지의 장장 200여 년 동안, 아니 그전 훈족의 왕 아틸라*가 유럽 침공을 개시하였던 때부터 계산하자면 무려 1000년 동안 유럽의 모든 나라는 황색 공포에 숨을 죽이거나 몸을 떨어야 했고, 실제로 동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동양제국의 속국(제후국)이 되거나 직접적인 통치를 받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그와 같은 사실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마민족의 후예들/로마제국을 유린한 흉노족', '훈족의 왕 아틸라' 참조)

     

     *훈족은 중국 역사에서 흉노라고 불린 몽골리안의 일파로서, 아틸라(406-453)는 서쪽의 훈족을 통합한 후 유럽을 침공, 중앙 아시아로부터 동유럽에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하였다.

     

     

     아틸라 제국의 영역

     

     오스만 제국의 영역

     

     

    이 글의 주인공인 드라큘라 백작은 바로 그 오스만 제국이 유럽 공격을 개시할 때의 인물인 바, 그를 설명하자면 콘스탄티노플 성의 함락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드라큘라 백작은 잠시 주제에서 멀어지겠지만, 오스만 제국과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이 동서양의 명운을 걸고 싸운 콘스탄티노플 성 전투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터, 이를 먼저 소개함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콘스탄티노플 성의 개략부터 눈에 익히며 저 난공불락의 성이 어떻게 함락되었는지 고찰해볼 필요가 있겠다. 훗날의 역사가들이 성이 함락된 1453년 5월 29일을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분기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보더라도 그 고찰의 가치는 충분하리라 여겨진다. 

     

    콘스탄티노플의 위치와 지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콘스탄티노플 성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진 천혜의 요새인데, 유일하게 육지에 접한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아래와 같은 3중의 성벽과 그 앞을 흐르는 해자에 의해 보호받았다. 

     

     

     

     

     

     

     

     잔디가 깔린 곳에 해자가 있었다. 

     

    뚜렷이 남아 있는 3중의 성벽과 해자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의 정문(칼리가리아 문)

     

    하지만 이 난공불락의 요새도 결국은 함락되어 투르크의 초승달이 걸리게 되었는데,

     

     

    성의 공격에는 놀랍게도 근대식 대포가 동원되었다.

    (나는 천년 제국 로마의 멸망이라는 역사적 사건 외에 대포라는 근대식 무기가 사용되어진 것도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요인이 아닌가 보고 있다. 이제 인류의 전쟁에는 투석기나 활을 사용하는 재래식 전투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화약 무기가 등장하게 됐던 것이다)

     

     

     

    이스탄불 박물관에 전시된 당대의 화포. 

     

     

     * '드라큘라 백작과 동로마제국 최후의 날'로 이어짐.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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