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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와(夏娃)는 한민족의 조상일 가능성이 더 높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0. 5. 10. 07:21

     

    이 글의 취지는 잃어버린 우리 한민족의 조상 금우산인(金牛山人)을 찾자는 것으로, 그것이 지금은 하와(夏娃)라는 이름으로서 중국인의 조상으로 둔갑돼 있다. 짜장면들은 그저 북경원인이나 상동인(☞ '사라진 북경원인')을 제 조상으로 밀어붙일 것이지 왜 남의 할머니를 제 시조모(始祖母)라 우기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 뿌리 찾기에 앞서 먼저 우리 조상이 살던 터전부터 잠시 훑고 가자.

     

    지금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어떻게 돼 있는지 확인은 안 했으나 지난 7, 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사의 첫 장은 분명 4대 문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직도 귀에 익은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이 그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는 '황하문명'이란 말이 슬슬 사라지기 시작했다.

     

    황하 유역이 아닌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시기나 질적으로 황하문명을 상회하는 문명의 증거들이 출현한 까닭인데, 그중에서도 동이족의 영역이었던 요하(遼河)와 대릉하(大凌河) 유역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집단 주거유적은 자그만치 8200~7600년 전의 것으로서 중국이 주장하는 황하문명의 연대에 최소 3천6백년을 앞서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중에서도 1982년 발견된 사해(査海) 유적과 1983년 발견된 흥륭와(興隆窪) 유적은 특히 중국학자들을 당혹시켰으니 이 집단 취락시설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와 옥결(玉玦, 옥귀걸이) 등은 중국 황하문명, 혹은 앙소(仰韶, 양사오)문명의 것보다 훨씬 한반도 친화적이었다. 

     

    이에 중국학자들은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것은 아주 잠깐, 그들은 곧 위 문명을 중화문명의 것으로 편입시켰다. 한국학자들의 무관심과 일본학자들의 방임 속에서 그들은 일약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앞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국민이 되는 일석일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 것이었다.

     

     

    일본학자가 그린 '요하유역 신석기문화의 유적'

     

    위 그림을 근거로 찾아본 사해 유적지와 흥륭와 유적지

     

     

    그들은 이것을 '요하문명'이라고 명명했고, 사해 주거유적을 ‘중화(中華) 제일촌’, 흥륭와 주거유적을 ‘화하(華夏) 제일촌’이라는 중국냄새 팍팍 풍기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유적으로 선전하고 있는데, 조만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유적으로 변모하게 될 날이 오리라는 것 또한 명약관화하다.(즈음하여 북한학계는 '대동강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 세계 5대문명으로 선전했던 바, 가히 난형난제라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자주적이라는 면에서 점수를 줘야할지.....? 난감하네~)

     

    앞서도 여러 번 얘기했지만 지금의 중국은 '중국 땅에서 벌어진 일들은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확고부동한 중화제일 역사관을 마련했다. 까닭에 원(元)나라도 중국의 역사이고(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몽골의 역사 같은데.....) 나아가 칭기스칸도 중국인이다. 이렇게 볼 때 위의 사해 유적과 흥륭와 유적에 대해 쉬쉬하고 침묵했다는 것이 오히려 양심적으로 보이고, 그렇게 잠시라도 고민했다는 것이 귀여워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 최고(最古)의 마을유적으로 변모한지 오래다.

     

     

    발굴 당시의 사해 주거유적 

     

    1993년 정비된 사해유적

    15,000㎡의 면적에서 55좌의 주거시설과 33개의 화덕, 무덤 10기가 발굴됐다.

     

    사해 유적지에 건립된 박물관과 표석

     

     

    흥륭와 주거유적

    위 홍보 사진에서는 빗살무늬토기, 옥결, 출토 인골 등을 볼 수다.

     

     

    사실 요하문명과 같은 영역인 요서(랴오시) 지방에서 요하문명보다 늦게 형성된 홍산문화(紅山文化)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다.(일본에서는 홍산문화를 2기 요하문명으로 분류한다) 홍산문화는 우리나라의 소위 환빠(환단고기 애호가)들이 애오라지 매달리고 있는 문화유적이기도 하므로...... 하지만 그건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곳에서 발견된 금우산인(金牛山人)에 대해서만 말해보자.

     

     

    강원도 고성 문암리에서 출토된 신석기 유적.

    1998~2001년 발견되고 발굴된 것으로 사해 유적과 흥륭와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형식과 매우 흡사하며 무엇보다 그동안 한반도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옥결(붉은 원 표시)이 출토돼 주목을 받았다.

     

    고성 문암리 출토 옥결

     

    요녕성 흥륭와 출토 옥

     

    요녕성 적봉시 출토 옥

     

    요녕성 적봉시 출토 옥

    BC 4000~BC 3000년경 홍산문화(紅山文化)의 대표유물이다.

     

     

    중국학계가 전설시대로 분류되는 하(夏)나라와 상(商)나라를 역사시대로 편입시킨 이른바 ‘하상주 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를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다. 그리하여 중국 역사는 BC 1046년(주나라의 기원)에서 천년을 뛰어 BC 2070년(하나라 건국 연도)까지 올라갔는데, 더 나아가 그들은 삼황오제라 불리는 전설상의 인물 중 오제(五帝) 시대까지를 목표로 하는 '중화문명 탐험공정’에 들어갔다.(그렇게 되면 중국의 역사는 다시 천년이 올라가게 되는 바, 수메르 문명에 맞먹는 역사를 지니게 된다) 

     

    그런데 중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있으니 이제는 중국 땅에서 인류가 기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 기원의 정설이었던 '아프리카 기원설'(Human Migration Out of Africa)을 배격하고 나선 것이다.

     

    '아프리카 기원설' 혹은 '이브 학설'(The Eve of Theory)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1987년 미국 UC 버클리대학 팀(앨런 윌슨, 레베카 칸, 미크 스턴 킹)이 주장했다. 그들은 1987년, 세계 각지 147명의 미토콘드리아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인류의 기원은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사는 '이브'라는 한 여자로부터 나왔다고 했고, 영국의 인류유전학자 브라이언 사이키스는 이 '아프리카 기원설' 을 더욱 키워, 전 세계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아프리카 이브의 L형을 기본으로 하는 33개로 분류하고, 이 중 동양인을 여섯 개 집단으로 나누었다.

     

     

    인류 아프리카 기원설 지도

     

    미토콘드리아 이브설의 기본형

     

     

    이와 같은 '아프리카 기원설'은 모든 생명체의 특징이 기본적으로 DNA 염기서열에 의해 결정된다는 움직일 수 없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주장되어진 것이기에 오랫동안 인류기원의 정설로서 받아들여졌다.(이 이론에 의거하면 유럽인은 물론 우리 한국인도 크로마뇽인의 후손이 된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등(일부 한국학자를 포함한) 동아시아 학자들은 근자에 이를 배격하고 나왔던 바,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커얼리튼 쿤 교수가 1962년 주장한 '다지역 기원설'을 발전시킨 주장을 폈다.

     

    쿤이 주장한 '다지역 기원설'의 요지는 우리 인류가 같은 조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진화돼 온 호모에렉투스의 후손으로, 크로마뇽인과 같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인류의 공통조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이 이론에 의거하면 우리 한국인의 조상은 수십만 년 전, 만주 혹은 한반도에 정주해 살던 원시인이다) 동아시아 학자들은  이와 같은 '다지역 기원설'의 근거로써 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인류화석을 제시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주구점의 북경원인과 산정동인, 후베이성 원현에서 발견된 원현인(鄖縣人)을 들 수 있다.(이중 원현인은 무려 100만 년 전의 인류 화석이다)

     

     

    호북성 좌성시 역사박물관의 원현인 2호 화석.

    1989년 원현인 1호 화석에 이어 1990년에 발견된 인골 화석이다.

     

     

    그리고 여기에 요동반도 서남쪽, 영안진 서전둔촌(永安镇 西田屯村) 금우산(金牛山, 진류산) 동굴에서 발견된 금우산인(진류산인)을 얹었다.(1984년 9월) 금우산은 해발 70m에도 못 미치는 작은 산에 불과하나 1974년부터 시작된 수 차례의 발굴을 통해 78종의 포유류 화석과 인골 화석, 그리고 고대인의  거주지와 불을 사용한 화덕의 흔적 및 뗀석기 등을 발견했다. 여기서 발굴된 인골은 산의 이름을 따 금우산인으로 명명했는데, 북경원인(75~25만 년 전)보다 진화한 약 28만 년 전의 호모사피엔스로 여겨진다.

     

    중국학자들은 처음에는 이 화석을 30세 정도의 남성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버클리대학의 '이브 학설'을 의식했는지 곧 성별과 나이를 20~22세 가량의 여자로 정정했다. 그리고 그 이름도 하와(夏娃)로 명명하고 '하와 학설'이라는 것을 내세웠다. 그 의도는 물어보나 마나 한 것이었으니 금우산의 하와에게도 '다지역 기원설'의 한 축을 담당하게 하려는 것이었다.(그것을 주도한 사람이 저명한 인류학자 자란포·賈蘭坡라는 사실이 조금은 놀랍다)

     

     

    중국문명의 원류는 발해만에서 탄생한 발해문명(랴오허문명)이며, 그 발해문명은 멀리 28만년 전에 아시아 동북에 존재했던 진뉴산인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자란보(賈蘭波)는 “베이징인이 살고 있을 당시, 베이징인보다 진보적인 특징을 가진, 즉 원시 부엌까지 갖춘 진뉴산인이 있었다”면서 “진뉴산인부터 초기 호모사피엔스의 신시대로 돌입했다”고 말했다. ‘중화민족’의 원류를 28만년 전의 발해만에서 찾는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0191507581&code=210100#csidxe8d691f3db1583d8b9a178c0ae742c4

    금우산인이 발견된 금우산

    금우산인은 요녕성 영구(營口) 동북쪽 대석교(大石橋)시에 있는 작은 산의 동굴에서 발견됐다. 

     

    금우산인의 두개골 화석

    뇌용적 1390cc로 북경원인보다 200cc 정도 증가했다.

     

    금우산 고인류 유적박물관에 전시된 화석

     

     

    여기까지의 자란파의 행동에서는 나무랄 일이 없다. 나름대로의 이론으로 인류의 기원을 좇는 일은 학자로서의 당연한 사명이라고 볼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못마땅한 것은 그 하와를 중국인의 시조모(始祖母)로 삼았다는 것이다.(북경원인에게서는 현재 중국인의 DNA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 '사라진 북경원인') 하지만 누가 보아도 금우산인은 지역적으로나 생김새로나(여기서 생김새는 삽니를 말한다 ☞ '재미 땡기는 삽니 이론') 동이족, 즉 우리 한민족의 조상에 가깝다.

     

    같은 동북 아시아인이긴 해도 중국인(화북인)과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다르다. 반면 일본인과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볼 때 많은 면에서 동일성을 지니고, 언어적으로도 유사성이 짙다. 따라서 (지금은 서로 미워하긴 해도) 한국인과 일본인은 결국 같은 뿌리임을 알 수 있는데, 금우산인에게서는 중국인의 DNA보다 일본인의 DNA가 더 많이 발현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요하문명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여러가지 사연으로 배제돼 있지만 언젠가는 요하문명과 금우산 하와의 실체가 밝혀지리라 기대한다. 

     

    ※ 가끔 받는 질문인데, 하와와 이브는 당연히 같은 말이다. 하와는 히브리어 성서에 써 있는 말이고 이브는 영어이다. 4세기 라틴어역 성서 불가타(Vulgata, 보급판이라는 뜻)가 편찬될 때 하와는 헤바(Heva)가 됐고, 1611년 불가타의 흠정영역본(킹 제임스 성서)이 편찬될 때 자음탈락 등의 현상이 일어나며 이브(Eve)가 됐다. 히브리어 성서의 헬라어 번역본인 셉투아긴트(☞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과 '70인역 성서')에서는 유와(Eua)로 변역됐다.

     

     

    금우산의 위치

    이곳에서 중원은 한참 멀고 한반도는 가깝다. 요하 지역은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고)조선과 부여와 고구려의 땅이었지만 이곳이 중국의 역사에 편입된 것은 17세기 청나라가 건국된 이후이다. 

     

    인골이 발견된 금우산 A지점 동굴

     

    동굴 안내문

    그밖에도 사슴, 불곰, 검치호(호랑이 종류) 등을 비롯한 포유류의 뼈, 그리고 인공의 화덕과 사람이 부순 동물의 뼈가 발견되었다.(화덕은 사람에 의해 불이 관리되었음을 말해준다)

     

    금우산 고인류 유적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금우산 동굴 출토 유물의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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