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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랑천을 찾아온 원앙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 19. 23:50

     

    중랑천은 임꺽정의 근거지였다는 양주 불곡산에서 발원하여 남쪽 서울시를 향해 흐르는 길이 20㎞의 하천이다. 중랑천환경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중랑천 최상의 발원지는 불곡산 상투봉과 임꺽정봉 사이의 ‘불곡샘’으로, 이후 도봉구와 노원구의 경계를 형성하며 흐르다 중랑구를 관통하여 왕십리·금호동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한다.

     

    과거에는 서울 도봉구 쪽  중랑천을 서원천(書院川)이라고 불렀는데 상류의 도봉서원에서 유래됐다. 거유(巨儒) 조광조와 송시열을 배향한 도봉서원은 그 아래 서원마을이 형성되었을 정도로 세력을 떨치던 곳이었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날아가고 이후로 서원천의 이름을 도봉천이 대신하게 되었다.

     

     

    양주 불곡산 상투봉/ '한국의 산하' 사진
    도봉천 상류의 백로
    도봉천
    하류 한강합류지점의 중랑천과 용비교
    용비교·두모교·동호대교
    두모교 아래서 중랑천과 한강이 만난다.

     

    도봉천이 흐르던 노원구와 도봉구 일대는 1963년까지는 양주군 노해면에 속했으며 '갈대 노(蘆)' 자에 '바다 해(海)' 자를 쓴다. 아마도 강변에 갈대가 무성해 불리게 된 말일 텐데, 문득 모세가 물을 갈라 건넜다는 '얌 수프(yam suph)'가 떠오른다. 구약성서 출애급기에는 히브리인들이 건넌 바다를 '얌 수프'라고 적고 있는데, 히브리어로 '얌'은 '바다', '수프'는 '갈대'를 의미한다. 엑소더스 당시 히브리인들이 건넌 바다 역시 갈대 무성한 나일강 하류의 지천(枝川)이었으나 히브리어에서는 바다나 호수나 넓은 강을 모두 '얌'(yam)으로 표기한 까닭에 훗날 홍해 바다를 건넜다는 엄청난 오역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중랑천에서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은 역시 여름철 홍수다. 거의 매년 동부간선도로를 침수시키는 엄청난 물살이 필시 중랑(中浪)천이라는 이름을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본래는 '중량(中梁)'이었으나 1911년 일제가 경성부지도를 만들면서 中梁橋를 中浪橋로 잘못 표기하며 '중랑'으로 굳어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중량천(中梁川)보다도 중랑포(中浪浦)라는 지명이 더 많이 등장하는 바, 옳다고 하기 어렵다.

     

     

    중랑천 양 방향 동부간선도로가 침수된 사진 / '연합뉴스'
    2022년 홍수 때의 중량교 아래 중랑천 물결

     

    이같은 물난리 탓인지 중랑천 변에는 옛 유적을 별로 찾아볼 수 없는데, 앞서 게재한 노무라 모토유키가 찍은 중랑천변의 판자촌들은 이때 어떻게 버텼는지 새삼 궁금하다. 필시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청계천의 성자 노무라 모토유키')

     

     

    노무라 찍은 1973년의 중랑천변 판자촌

     

    다만 성종 13년(1482)에 완공되었다는 하류의 살곶이다리는 지금도 짱짱하다. '살곶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화살이 꽂혔다'는 뜻으로서 그 말이 연유되게 된 두 가지 스토리가 전한다. 첫째는 함흥에서 돌아온 이성계가 중랑천까지 마중 나온 미운 자식 태종에게 쏜 화살이 실패하여 다리 인근의 기둥에 꽂혔다는 것이고, 둘째는 매사냥을 즐겼던 태종이 매사냥 터인 이곳에 자주 행차하여 화살을 쏘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자의 출전은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이고 후자의 출전은 <태종실록>이다. 나는 후자를 믿는 편으로, 매사냥 터로 유명했던 일대가 매봉산과 응봉의 이름으로 남아 있고, 태조 4년 그곳에 해당 관청인 응방이 설치됐다는 기록 또한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아무튼 길이 76m, 폭 6m의 이 돌다리는 조선 500년 내내 한양과 남쪽 지방을 잇는 민중의 중요 교통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던 바, 고마운 다리임에는 틀림없다.  

     

     

    눈발 흩뿌리는 살곶이다리
    2022년 찍은 사진이다.
    다리 밑 교각
    청계천박물관의 살곶이다리 미니어처

     

    어제 중랑천 용비교 아래에서 약 200마리의 원앙이 발견된 데 이어 오늘은 살곶이다리 옆 성동교 밑에도 원앙이 모여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뉴스에 따르면 원앙은 전 세계 2만 마리뿐인 조류로서 이렇듯 도심에서 무리로 발견된 건 드문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들아보면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니 그만큼 서식지가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실제로 한 환경단체 조사 결과, 재작년 겨울 중랑천 철새보호구역 전체에서 목격된 원앙 개체 수는 모두 1천여 마리였는데, 지난해에는 200여 마리로 줄었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철새들이 주요하게 서식했던 곳은 중랑천 응봉교 인근의 여울과 수변부였으나 2023년 해당 구간을 대규모로 준설해 호소화하면서 수면성 오리류들이 서식지가 줄었고, 수변으로 산책용 데크가 만들어지며 원앙 등의 서식 환경이 나빠졌다는 것이 팩트다. 그래서 오늘 오후 원앙을 보려던 마음을 급 바꾸어 사진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람들을 피해 중랑천의 하류까지 내려왔다는데, 나까지 가서 게네들을 괴롭힐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2022년 찍은 성동교
    어제 나타난 중랑천의 원앙
    한겨레신문 사진을 빌려왔다. / 원앙은 암수 쌍으로 서식한다.
    연합뉴스의 원앙 사진 / 넘 예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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