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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삿포로 신(新)치토세 공항에서 충돌한 고려와 거란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 17. 00:33

     
    오늘 저녁 들어온 후지뉴스네트워크(FNN)의 보도 따르면 대한항공과 홍콩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여객기가 일본 홋카이도 신(新)치토세 공항에서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FNN은 신치토세 공항을 운영하는 홋카이도 공항(Hokkaido Airports)을 인용한 보도에서 "16일 오후 5시 30분경 여객기 충돌 정보가 들어왔다"고 전했는데, 충돌에 따른 부상자 발생 등 자세한 내용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
     
    FNN이 오늘 신치토세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 46편이 폭설로 인해 결항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는 어느 한 편의 항공기가 활주로 밖 다른 항공기와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신치토세 공항은 홋카이도와 삿포로를 방문하는 한국관광객들이 엄청 이용하는 공항이기도 한데, 예전 일본생활을 할 때 한국가수 계은숙이 부른 기타구코(北空港)라는 노래에 반해 무작정 홋카이도 치토세 공항행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난다.
     
    당시 계은숙은 TV 최고 인기프로그램인 NHK '홍백가합전'에 7회 연속 초청될 정도로(1988~1994년) 초절정의 인기를 구가했으나 2007년 필로폰 투약 혐의로 일본 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형을 받은 후 한국으로 추방되었고, 이후 한국에서도 몇 차례의 투약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천망(天網)을 확인하려는 듯 하늘 높이 치솟던 그녀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추락했는데, 지금은 어찌 사는지 모르겠다. 
     
     

    신치토세 공항

    아름다운 풍광의 신치토세 공항 동영상

    전성기의 계은숙

    . 기타구코 듣기

     

    이야기가 샜다. 다시 일본 신치토세 공항에서 충돌한 대한항공과 홍콩 캐세이퍼시픽 항공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런데 이쯤에서 그것이 왜 고려와 거란 충돌인가를 밝힐 필요가 있겠다.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이 영어로 Korea Airline이라고 불리는 것, 그리고 Korea가 '고려'에서 비롯되었음도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고려라는 이름이 대외적으로 한국을 대표하게 된 데는 여러 설이 있으나, 몽골 전성기 때 교황 이노센트 IV세가 파견한 루부르크라는 선교사가 원나라를 거쳐 압록강까지 왔다가 Coree라는 이름을 교황청에 보내는 편지에 처음 사용하며 고려국의 존재를 알렸고, 이후 그것이 영어 Korea로 고착화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캐세이퍼시픽 항공사는 1946년 창립된 홍콩을 거점으로 하는 프리미엄급 국제 항공사로, 영어로는 Cathay Pacific Airways로 불리며 한자로는 국태 항공공사(國泰航空公司)로 표기된다. 그래서 혹간 중국 항공사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영국계 다국적 기업인 스와이어 그룹 계열의 항공사다. 캐세이 패시픽은 그저 발음만 달리 하는 같은 항공사이고, 캐세이 드래곤은 2006년 홍콩 제2의 항공사인 드래곤에어를 인수해  만든 자회사이다. 
     
    여기까지는 그저 상식선의 이야기일 터이다. 그런데 Cathay가 거란의 음차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예전 내가 모셨던 스와이어 그룹 출신의 회사 대표마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앞서도 잠시 말한 바 있지만, 그는 자신이 스와이어 그룹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무척 자부심 높던 사람이던지라 자주 그 회사를 입에 올렸다. 이를테면, 캐세이퍼시픽이 큰 항공사이긴 하지만 스와이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매출의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는 식이었다. 그때 그 대표님과 사석에서 세이에 대한 약간의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나는 평소 알고 있던 대로 세이 거란의 뜻하는 키타이의 영어식 발음인데, 그 오랜 이민족의 나라가 아직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는 식으로 말을 했고,(조금은 요령부득으로) 이때 대표님의 반응은 어이없고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뭐, 거란? 고려 시대, 그 거란 말이야?" 
    "예. 그 거란이요. 발해를 멸망시키고, 우리나라에도 쳐들어왔던..... 그 거란족을 섬멸시킨 귀주대첩인가 하는 게 우리나라 3대첩(살수대첩, 한산대첩과 더불어) 중의 하나잖아요?" 
    "이 사람이, 지금 역사 강의해? 귀주대첩이 왜 나와? 그리고 그 거란족이 무슨 캐세이야?"
     
    반응이 생각보다 격해 그때는 말을 얼버무렸지만,(하도 펄쩍 뛰어 나도 자신이 없었다) 다시 찾아보니 캐세이가 그 거란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1천 년 전에 멸망한 거란이 현대에 이르러 캐세이란 이름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인데, 2천 년 전에 멸망한 진나라가 차이나(China)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뭐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몰랐을 뿐, 거란은 역사적으로 차이나보다도 훨씬 서방세계에 각인된 이름이니 그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는 북방 최초의 정복왕조로서 그 영토가 만주에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른 대제국이었다. 까닭에 나는 지금도 고려가 그 대제국의 침입을 3차례나 물리쳤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한데,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면 어제 말한 양규(楊規, ?~1011) 장군의 분전으로 거란의 2차 칩입을 물리 친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곧 거란과의 마지막 싸움인 3차 전쟁의 영웅 강감찬의 귀주대첩이 등장할 차례이다) 아무튼 이쯤에서 요나라가 얼마나 대국이었는가를 지도로 확인해 보자. 

     
     

    요나라의 영토

     

    하지만 그렇다고 요나라가 천년제국을 구가한 것은 아니었다. 916년 거란족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북중국에 세운 요나라는 이후 200년 동안 북방의 패자로 군림하였으나, 남쪽의 송나라로부터 매년 세폐를 받아 배부르게 된 요나라는 북방민족 특질의 상무(尙武)정신을 차츰 상실해갔다. 그리하여 1125년 동쪽에서 일어난 여진족의 금나라와 송나라의 협공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망국의 와중에 한 사람의 영걸이 나타났으니 야율아보기의 8대손인 야율대석(耶律大石)이었다. 그는 북방의 신흥강국인 금나라와 싸우는 대신 유민들을 이끌고 중앙아시아로 이주,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일대의 카라한 칸국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였던 바, 이 나라가 서요(西遼)이다. 그리고 그들은 건국 과정에서, 서방을 위협해 십자군전쟁까지 불러일으킨 셀주크투르크 제국과 한판 붙어 승리를 거두니 이것이 1141년 9월 사마르칸트 동북쪽 카트완(Qatvan) 평원에서 벌어진 카트완 전투였다.  

     
     

    요나라의 서진과 서요의 건국

     

    카트완 전투는 요나라의 서역 침공 당시 자신의 힘으로는 거란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카라한 칸국이 셀주크제국에게 구원을 청해 벌어졌다. 셀주크제국과 서요의 대군이 카트빈 평원 유슈르사나(Ushrsana)에서 충돌한 이 전투는 셀주크제국의 술탄 산자르와 서요의 왕 야율대석이 직접 군사를 지휘한 대전투로서, 결과는 거란군의 대승이었다. 그리고 이 전투는 결국 셀주크제국 멸망의 단초를 제공하였던 바, 유럽제국은 비로소 셀주크제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거란에게 멸망한 카라한 칸국(840~1212)

    카트완 전투 전황도 / 는 산자르의 공격로, 는 야율대석의 공격로이며 는 산자르의 패주로이다. 이후 야율대석은 사마르칸트를 거쳐 부하라와 호라즘을 정복하고 탈라스 평원을 경유해 수도인 발라사군으로 귀환한다.   

     

    서요 제국(1124~1218)
    서요제국 한눈에 보기

     

    이때부터 거란은 요한왕국, 혹은 카라키타이(Qara-Khitai) 칸국이라 불리며 서방에 알려지게 되었다. 카라키타이는 투르크어로 '흑거란'이란 뜻으로 얼굴이 거무튀튀한 거란족에의 통칭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반면 투르크족은 동양이 뿌리였으나 초원 스카타이족과의 오랜 혼혈로서 서양인과 같은 흰 피부를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키타이(Khitai)는 다시 유럽으로 오며 캐세이가 되었는데, 유럽에서는 자신들을 셀주크제국의 침입으로 구해낸 고마운 나라로 인식되었다.  
     
    캐세이, 즉 서요는 이후 100년가량을 중앙아시아의 패자로 존속하다(1124~1218) 그후 세워진 호라즘 왕국과 함께 칭기즈칸의 몽골군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하지만 향후 캐세이라는 이름은 또 하나의 중국명으로서 유럽 사회에 인식되었으니, 이것이 오늘날 항공사의 이름으로서 쓰이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그들의 왕은 덕종(德宗), 인종(仁宗) 등 중국식 시호를 채택했으나 대외적으로는 '칸'으로 불렸고, 연경(延慶: 1132~1134), 천희(天禧: 1211~1218)와 같은 중국식 연호를 사용하였다. 국교로 둔 특별한 종교는 없었고 불교와 이슬람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혼재된 다양성의 나라였다.  
     
     

    구글에서 발견한 셀주크왕조의 투르크 전사 이미지
    구글에서 발견한 카라키타이(서요) 전사 이미지
    서요의 무덤 벽화에 그려진 거란인의 모습
    수도 발라사군에 남은 서요의 유일한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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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