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이태원 참사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4. 10. 9. 22:54

     
    이태원 할로윈데이의 비극이 발생한 지 벌써 2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불과 2년 전의 일이니 그 비극이  무엇인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2022년 10월 29일 그날 밤의 최종 사상자는 사망 159명, 부상자는 195명이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20대 청춘이었으며 외국인도 26명 있었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 입구
    참사에 대한 기억의 문구들이 써 있는 입간판이나 그 내용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경사로 골목
    당시 이태원 골목에 모였던 사람들
    참사 다음날 폴리스라인이 처진 골목 / 경인일보 사진
    아비규환이었던 그 골목길에는
    지금은 이와 같은 푯말만이 서 있다. / 올해 4월 24일 밤에 찍은 사진이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그 좁은 장소(18.24㎡)에서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좁은 장소라는 말은 어폐가 있을 수 있겠다. 장소가 좁고 비탈졌던 까닭에 밀림(PUSH)이 일어나 사람들이 쓰러졌고, 이후 계속 포개지는 '연쇄 깔림'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장기 파손과 질식사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래서 골목 입구, 위 푯말 있는 쪽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던 바, 지나가던 어떤 미군 병사가 무 뽑듯 열댓 사람을 뽑아냈다는 목격담이 당시의 상황을 리얼하게 말해준다. 지금에야 하등 쓸데없는 말이지만, 그들이 술집 입장을 기다리지 말고 (어차피 어느 곳이라도 들어가려면 최소 2~3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므로) 미리미리 주변의 다른 업소로 갔었으면.... 
     
     

    당시 위 골목의 부감

     
    많은 분들이 공유하고 있을 듯한 참사 이후의 충격적인 장면을 나 역시 지인들로부터 몇 장 받았다. 그리고 거기서 찾은 가장 안타까운 점은 길거리에 누워 있는 사상자와 신고를 받고 도착한 구급차가 무질서하게 엉켜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도 제대로 된 지휘나 통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니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느낌이었는데, 반대로 제대로 된 지휘가 있어 피해자가 제 때 병원에 이송됐더라면 사망자는 훨씬 줄었으리라 여겨진다.  
     
    경찰이 도착한 시각은 최초 신고 후 적어도 40분 이상이 경과한 23시가 지나서였다고 한다. 불행히도 이때 경찰 지휘부는 모두 딴짓을 하고 있었다. 송모라고 하는 112상황실장과 박모라고 하는 112상황팀장은 근무장소를 이탈해 있었고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용산서 간부들과 함께 식사 중이었다고 하는데, 오후 9시 30분쯤 "상황이 위급하다", "압사가 유려된다"는 보고를 받고도 1시간 35분이 지난 11시 5분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50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 지난 7월, 검찰은 이임재 전(前) 서장에게 징역 7년을, 용산경찰서 송모 전(前) 112치안종합상황실장과 박모 전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3팀장에게 각각 금고 5년과 금고 2년6개월을 구형했다. 허위 상황보고서를 작성한 (이 서장이 10시 20분쯤 이태원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는 내용의) 용산서 정모 여성청소년과장, 최모 생활안전과 직원에게는 각각 징역 1년6개월과 징역 1년을 선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이 전 서장에 대해 "이번 사고를 막을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며 "관내 치안을 총괄하며 책임지는 용산경찰서장으로서 지역 내 인파 집중에 따른 사고를 예측해 대책을 마련하고 사고 현장에서 인명 피해를 막아야 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지역 경찰의 컨트롤타워에 해당함에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실효적이거나 실질적인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으며.... 사고 후 적절한 조치는커녕 본인의 과오를 은폐하기 바빴다"고 죄를 물었다.  
     
    ※ 엊그제 9월 30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1심에서 3년의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이 전 서장과 함께 기소된 송모 전 112상황실장에게는 금고 2년, 박모 전 112 상황팀장에게는 각각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으며,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를 받는 정 전(前) 여성청소년과장과 최 전(前) 생활안전과 경위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태원에 축제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되었음에도 예방 조치가 없었고, 사고 당시 개인적 일로 지방에 내려가 대처가 늦었던, 그리고 사고 후 "할로윈데이는 '축제'가 아닌, 사람이 모이는 하나의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물색없는 발언으로써 국민 밉상이 된 박희영 전 용산구청장은 2022년 12월 26일 가장 먼저 구속됐으나 지난해 7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는데, 그도 무죄가 선고됐다. 
     
    이임재 서장은 현장 도착 후 31분이 지난 11시 36분, 서울 치안의 총책임자인 김광호 서울청장과 첫  통화를 했다. 이 서장은 현장 도착 후 목격한 상황의 끔찍함에 즉시 보고전화를 했지만 김 청장은 받지 않았다. 김 청장은 전화 벨 소리를 한 차례 놓쳤다가 2분 후 연락을 받았다고 했지만 이는 거짓말로, 그는 3차례나 전화를 씹었다. 왜 그랬는지는 그만이 알 일이었다. 김 청장은 오후 11시 36분 비로서 전화를 받았으나 그 시각에 그가 도움 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었다.
     
    이 서장과 함께 김 청장에게 보고 책임이 있었던 서울청 112상황실 책임자였던 류모 관리관은 매우 한심하게도 그 시점에도 참사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류 관리관은 근무수칙상 자리를 지켜야 하는 서울청 5층 상황실이 아니라 (아마도 상황실에는 연락이 장마철 빗물처럼 빗발쳤을 것이다) 자신의 사무실(10층)에 있었다. 그는 이날 오후 11시 39분경에야 112상황팀장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고 상황실로 복귀했다. 이들이 사고를 안 때는 대통령이 보고를 받아 사고를 인지한 시간보다도 늦은 시각이었다. 

    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경찰 총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과의 불통이었다. 그는 당일 제천 월악산에 등산을 갔다가 캠핑장에서 지인들과 음주 후 취침했고 새벽 12시 너머까지 쏟아지는 전화와 문자를 받지 않았다. 등산 피로와 술 기운에 골아 떨어진 듯하다. 그가 첫 전화를 받은 것은 0시 14분이었다. 그는 훗날 국회에선가 누군가 이에 대해 힐난하자 자기도 주말에는 즐길 권리가 있다고 항변했다. 말이야 틀리지 않았지만 왠지 분노가 일었다.
     
    행정의 총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치권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자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는 취지의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나는 제발 그가 폼 나게 사표를 내 윤석렬 정부의 체면을 살려주길 원했지만, 그래서 대한민국 행정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했지만 그런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참사를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기회는 사고 전 여러 차례 있었다. 인근 지구대에 쏟아진 전화만도 수십 통이었다. 인파가 너무 몰려 위험하니 출동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일선 지구대에서부터 웃대가리까지 원활히 이루어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악마의 섭리라고나 할까? 이 신기하고도 무서운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요소요소에서 진행되었다. 여기서 '진행'이란 '불통과 차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대형 참사의 경우 대부분의 선진 문명국에서는 고위층의 누군가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 그리면 국민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다스리며, 또 사태를 추스르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좌우지간 책임 의식이 없다. 구속된 사람도 일선 경찰서장 뿐이다.
     
    이럴 경우 소위 '영'(令)이라는 것이 서지 않게 되며, 불복하고 덤벼들게 된다. 나라가 우습게 보인 결과인데, 온갖 듣보잡까지 탄핵을 입에 올리며 찢고 까불고 있는 현실이 마치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도 같아 씁쓸하다.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