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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절에 생각해본 낙랑국 왕조(王調)의 독립운동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3. 1. 23:22

     

    낙랑은 기원전 108년 한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고토에 세운 4개의 군(郡) 가운데 가장 오래 존속했던 번국이며 또 고대 한민족에 영향을 큰 영향을 미친 번국으로, 우리나라의 북방 고대사는 이 낙랑국(혹은 낙랑군)과의 패권 다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설이긴 하지만 낙랑국 멸망을 배경으로 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운의 러브 스토리는 고구려의 낙랑국 멸망이 얼마나 힘든 역정이었는지를 대변한다. 

     

     

    평양 석암동 고분 출토 낙랑 버클 / 국립중앙박물관
    낙랑의 말 장식품
    낙랑의 토기

     

    낙랑공주가 사랑하는 고구려 왕자를 위해 찢었다는 자명고(自鳴鼓)는 '스스로 울리는 북'이라는 뜻이다. 낙랑국이 보유하고 있는 이 북은 적군이 칩입하면 스스로 울려 위급을 알렸다. 이에 방비가 용이할 수 있었던 바, 고구려군은 낙랑 공략에 번번이 실패를 해야 했다. 그러던 중 고구려 대무신왕(재위: 18~44)의 아들 호동왕자는 낙랑국왕 최리의 딸 낙랑공주와 어찌어찌하다 사랑에 빠지고, 결국 낙랑공주는 사랑하는 연인  호동왕자를 위해 낙랑국의 보물 자명고를 찢는다.

     

    이에 낙랑국은 멸망하고 낙랑국왕 최리는 항복하지만 제 딸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결국 죽이고 만다. 호동왕자는 싸늘한 시신이 된 낙랑공주를 부둥켜 안고 한참을 통곡하는데, 그 얼마 후 한나라와의 싸움에 나선  호동왕자는 태자하 전투에서 패해 전사한다.  

     

    이 전설보다 조금 앞서는 시기인 서기 25년, 역사적으로는 낙랑군에서 조선인 왕조(王調)의 반란이 있었다. 당시 중국은 신(新)나라와 한나라의 교체시기로, 조선국의 유민인 왕조 그 혼란을 이용해 낙랑태수 유헌(劉憲)을 죽이고 독립을 했던 바, 스스로를 대장군낙랑태수(大將軍樂浪太守)라 칭하였다. 하지만 광무제 유수(劉秀, BC 6~ AD 57) 신나라 황제 왕망과 싸우느라 먼 낙랑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서기 30년, 후한 광무제는 비로소 왕조를 토벌하기 위한 원정을 단행하였던 바, 왕준(王遵)을 새로운 낙랑태수로 삼고 그를 사령관으로 하는 대군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왕조와 왕준의 군대는 충돌하지 않았다. 삼로(三老, 관직 이름) 왕굉(王閎) 군결조리(郡決曹吏) 양읍(楊邑)이 배신하여 왕준의 군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왕조를 죽이고 한(漢)에 투항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조선인이면서 어찌하여  왕조를 배신하고 한나라에 투항했을까? 역사는 그에 대한 대답을 간단·명확히 해준다. 그 조상이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왕굉은 기원전 177년 일어난 제북왕 유흥거 (劉興居)의 난(亂) 때 낙랑으로 망명한 왕중이란 자의 9대손이었고, 양읍 역시 조상이 산동성에서 건너온 중국인으로 중국 친화적 사고를 가진 자였던 것이다.

     

     

    고조선의 비파형 청동검 /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의 청동검·칼집·거울
    한반도의 고대무기

     

    이는 훗날 백제가 멸망할 때, 백제 장수 예식진(祢寔進, 615~672)이 공산성에서 농성 중인 의자왕을 붙잡아 포박한 후 성문을 열어 당나라 소정방에게 항복한 것과 동일한 경우다. 예식진의 선조 예씨 가문은 오래전 (410~420년 사이) 산동반도에서 백제 공주 지방으로 건너온 이주민이었으므로 중국 친화적 사고가 발동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백제는 당나라 침공 10일만에 허무한 멸망을 맞고 말았던  것이다. 

     

    3.1절은 우리민족의 일제로부터의 저항이지만, 식민지 조선은 이제 일본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피식민국이 지배국에 앞선 사례는 영국과 미국의 사례 외에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라 본다. 그래서 기쁘기 한량없지만 그 기쁨도 잠시, 지금은 중국이 다시 거대한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환으로써 중국인들은 작금의 크고 작은 충돌의 전위에 서고 있는 바, 한국 내 커뮤니티에 인해전술의 댓글 부대가 덤벼들고,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에 있어서도 중국인들이 탄핵 찬성 시위에 대거 몰리고 있다.

     

    그 이유는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대의 규모가 찬성 쪽을 압도하고 있어 여간 다행히 아니다. 중국 정부에서는 표면상으로는 한국 내 중국인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지시했지만 별로 말리고 싶은 눈치는 아닌 듯하고, 중국인들 또한 별로 귀담아 듣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런 탄핵 찬성 시위대들을 두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래는 오늘 광화문에 모인 압도적인 탄핵 반대, 자유 우파 시위대의  모습들이다.

     

     

    며칠 전의 광화문 광장
    오늘의 광화문 광장
    3.1절 광화문 집회 보도 발췌 사진 / 광화문 광장을 넘어 청계천 입구, 시청 앞, 숭례문, 서울역까지 탄핵반대 지지자들이 들어찼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이다. (사진 출저: 공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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