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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 온 철의 제국 히타이트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3. 11. 23:51

     
    세계 최초로 철기 사용을 보편화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기원전 17∼13세기 이집트, 아시리아와 함께 '오리엔트 3대 강국'으로 군림했던 나라. 바로 히타이트다. 그 히타이트 제국의 유물 212점이 서울에 왔다 하기에 부푼 마음으로 전시장인 한성백제박물관을 찾았다. 히타이트의 유물을 직접 보는 것은 과거 히로시마대학 박물관 이후 거의 20년만이라 셀레이기까지 했다.
      
     

    포스터
    전시회가 열리는 한성백제박물관
    1층 전시장 입구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제국의 수도 하투샤 전경이 3D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수도 하투사 성의 사자의 문
    수도 하투샤 부감
    수도 하투샤는 크게 상부도시와 하부도시로 구분되며, 상부도시에는 사원과 요새, 하부도시에는 대사원과 왕궁이 위치한다.
    하부도시의 대사원과 왕궁 위치
    3D로 재현된 대사원
    왕궁의 유적
    전시장 바닥에 히타이트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의 돌 '그린 스톤'이 실물 크기로 재현됐다.
    하투샤 왕궁 유적지
    일부 복원된 하투샤의 왕궁
    지금부터 그 비밀의 문으로 들어가 보자.

     
    조금 연배가 있는 분들의 기억에는 인류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민족이라는 강력한 첫인상으로 남아 있으리라 여겨지는 히타이트다. 하지만 이후 고고학의 발전에 따라 인류 최초의 철기 사용 민족은 히타이트가 아니라 기원전 2천 년 경의 아르메니아인(人)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다만 청동기와 철기 야금술을 보편화시킨 민족은 어디까지나 히타이트족(族)이니, 히타이트는 이를 바탕으로 소수 민족임에도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히타이트의 신들 / 야즐르카야 바위 신전에 새겨진 신들의 이동 모습이다. 지하 세계의 신을 비롯한 여러 신들이 아래의 낫 모양 칼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전시장의 히타이트의 낫 모양 칼 / 낫 표면에 '위대한 왕'이라는 뜻의 쐐기문자가 새겨 있어 왕이 사용한 의례용 칼로 추정된다.
    히타이트 전차
    전시장의 안내문

     
    그렇게 강국이 된 히타이트는 지금의 튀르키예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과 아르메니아 고원 일대를 석권하고 기원전 13세기 무와탈리 2세(1315~1290) 때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남하를 개시한다. 그런데 당시 남방 이집트 왕국에서도 람세스 2세(BC 1301~1234)라는 걸출한 영주(英主)가 북벌을 감행하고 있었던 바, 두 세력의 충돌은 불가피하였다. 그리하여 맞부딪힌 싸움이 기원전 1279년 시리아 남부 카데시 평원에서 벌어진 카데시 전투이다.  
     
     

    히타이트와 고대 이집트 왕국 & 카데시의 위치
    최전성기 히타이트와 그 주변 세계 / 전시장 게시물

     
    이집트 테베신전의 벽화에는 이때 람세스 2세가 완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패배하였고 이후 람세스 2세는 북방 진출의 의지를 꺾고 히타이트와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당시 점토판에 작성된 4부의 협정문 중의 3개가 불완전하게나마 전해지는데, 그중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이 현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인류 최초의 평화협정 조약문으로써 뉴욕 UN본부 휴게실에 걸린 유명한 모뉴먼트가 바로 당시 체결됐던 평화협정문의 모사품이다.
     
    평화협정은 기원전 1279년 히타이트 군의 사령관이었던 하투실리 3세(무와탈리 왕의 동생)와 람세스 2세 간에 이루어졌다. 당시의 국제어인 악카드어로 쓰여진 협정문에는 전쟁의 중단과 상호 불가침, 상호 원조, 상호 약탈의 금지, 포로의 교환과 처우에 관한 조항 등, 현대의 협정문과 유사한 내용들이 기록돼 있다. 말한 대로 이 협정문은 3,300년 전 이루어진 인류 최초의 국가간 평화협정조약 문서로서, 정확한 체결장소는 알 수 없으나 전투가 벌어졌던 카데시 평원으로 추정하여 흔히 '카데시 평화협정문'이라 불린다. 
     
     

    UN본부의 '카데시 평화협정문'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의 '카데시 평화협정문'
    전시장의 카데시 조약 설명문 / 연대는 조금 다르다.
    '카데시 평화협정문'에 쓰여 있는 글
    하투실리 3세의 도장이 찍힌 점토 (왼쪽)

     
    학자에 따라서는 카데시 평화협정문이 기원전 1259년에 작성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약이 무와탈리 2세가 아닌 하투실리 3세와 람세스 2세 간에 체결된 점에 주목한 것인데, 만일 그러하다면 람세스 2세는 카데시 전투 이후로도 20년간 지속적으로 북벌을 감행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채 결국 평화협정을 맺고 철수했다는 말이 된다.  대신 그는 동쪽으로 진출, 시리아를 정복하고, 아프리카 누비아를 정벌해 아부심벨 사원을 세웠다. 
     
     

    카데시 전투에서의 람세스 2세 / 테베의 신전에 그려진 카데시 전투 묘사도이다.

     
    반면 힛타이트는 이후로도 남진을 지속하여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것으로 여겨지니, 성서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자신과 아내의 무덤으로 쓰일 막벨라 동굴이 있는 땅을 매입한 것도 가나안에 살고 있는 히타이트 사람으로부터였으며,(창세기 23:3-7) 모세가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을 영도하여 탈출했을 때도 가나안 땅에는 히타이트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민수기 13:29)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 / 막벨라 동굴로도 불리는 이스라엘 헤브론 시내의 이 건물은 실은 오스만 제국 때 완성되었다. 하지만 기단은 기원전 1세기 헤롯 왕 때의 것으로 당시 만들어진 건물 중 유일하게 원형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로 알려져 있다.

     
    또 모세는 자신들의 신으로부터 가나안 땅의 히타이트 사람들을 몰아내라는 신탁을 받은 후(신명기 7:1-5) 이를 실행에 옮기니 히타이트인들과의 싸움은 모세의 다음 영도자인 여호수아의 때까지 이어진다.(여호수아 3:10) 그렇다면 그 두 종족간의 싸움은 어찌되었을까? 신의 지원을 받은 히브리인들이 이겼을까?
     
    아래의 사진들은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에 관한 관련 사진과 발견된 유물들이다. 제국의 수도 하투샤는 불에 탄 폐허로 19세기 발견됐다. 최강국의 수도가 왜 소실(燒失)되었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다. 혹 히브리인들의 안정된 가나안 정착을 이루려는 히브리신 여호와의 물리력에 당한 것은 아닐까 (저 소돔과 고모라처럼)  하는 지극히 개인적 상상을 해본다.  

     
     

    제국의 수도 하투샤
    하투사 성의 정문 격인 스핑크스의 문
    상부도시에 있는 상형문자가 새겨진 방
    상형문자가 새겨진 방의 여러 글자
    히타이트의 문자에 관하여
    쐐기문자로 기록된 점토판
    위 '지혜의 서' 확대 사진
    정화 의식을 기록한 점토판
    하투샤 왕이 하르삼나 왕에게 보낸 편지
    토지 기증 문서 / 점토판에 문서를 작성한 후 날인한 점토 덩어리를 붙여 공증을 했다.
    또 다른 공증 문서 / 글을 작성한 뒤에 도장을 찍었으므로 이 쪽이 뒷면인 셈이다.
    히타이트인의 여러 형식의 도장
    히타이트의 군대에 관하여 / 히타이트는 카데시 전투에 보병 4만명, 용병 1만명, 전차 3천500대를 동원했다.
    히타이트의 군인들
    청동 화살촉
    칼과 단검
    찰갑옷
    송풍관과 무기 거푸집
    친절한 안내문
    히타이트의 신에 관하여 / 히타이트는 다양한 신을 숭상했는데 심지어는 점령한 나라의 신까지 섬겼다. 그러나 이방의 신들을 '히타이트화(化)' 하지 않았으며, 점령한 나라에 히타이트의 신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야즐르카야 바위 신전의 암각화
    야즐르카야에 관한 안내문
    다양한 형태의 제기 / 아래는 새부리모양의 제기 주전자
    황소 머리모양의 제기
    염소 머리모양의 제기
    의례용 도끼
    신이 새겨진 거푸집
    신이 된 히타이트의 왕
    위 '상형문자가 새겨진 방'에서 채집된 문자 중 슈필룰리우마 2세에 관련된 상형문자들이 전시장에 보조 자료로 전시됐다.
    '상형문자가 새겨진 방' 오른쪽 벽면에 새겨진 6줄의 루비아어 상형문자에 대한 한글 해석문이 보조 자료로 전시돼 있다.
    야즐르카야 전경 / Turkish Archaeological News 펌
    야즐르카야의 마이더스 왕의 무덤이라 전해지는 곳 / 만지는 것은 모두 황금으로 변했다는 그 유명한 왕이다.
    야즐르카야의 이동하는 신 암각화
    그래픽으로 처리된 신들의 이동 모습 / 히타이트는 수천 명의 신을 숭배하고 이민족의 신도 받아들인 포용력도 있는 나라였으며, 결혼과 이혼 등에 있어서의 여성의 권리를 규정하고 사형 제도를 없애는 등 인권 중심의 근대적 법률 시스템을 갖춘 선진 제국이었다. 고대에 있어 이와 같은 나라는 흔치 않다.
    제국의 일상에 관하여 / 아래는 '마타라'라 하는 여행용 수통이다.
    긴 항아리(왼쪽 위)와 큰 항아리
    접시 외
    주둥이가 있는 항아리 외
    그릇 받침이 있는 항아리 외
    손잡이가 붙은 큰 항아리
    동물모양 딸랑이 · 흑요석 장식품 · 사자모양 추
    팔찌와 연꽃모양 브로치 / 아래 브로치는 이집트로부터의 선물로 추정된다.
    칼 · 송곳 · 바늘 · 베틀 추 · 가락바퀴 외
    흑요석으로 만든 머리 장식품 / 단단한 흑요석에 머릿결 무늬를 낸 솜씨가 경탄할 만하다. 그 외도 볼 게 무진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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